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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2.28 09:56수정 2018.12.28 09:56
내 작은 술집인 '1001 M.U.N'에는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코스 식사를 예약하고 오시는 손님들이 있다. 오늘 저녁이 그런 손님들이 오는 날이어서 나는 전채를 준비하고, 스프를 끓이고, 메인 식사를 준비하느라 꽤나 분주했다. 바 한 쪽 구석에서는 연암이 내가 따라 준 셰리와인 한 잔을 홀짝거리며 열심히 요리 중인 내 모습을 흥미진진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이, 아우. 자네 그러고 있으니 꽤나 멋져 보이는데? 그 뭐라더라… 우리 때 숙수 같은 사람들을 요즘 사람들이 부르는 말인데…"
"셰프(chef)요?"
"맞아, 하하하. 그렇게 열심히 요리하는 모습을 보니 진짜 셰프 같아."
"그런 말씀 마세요. 아시잖아요. 저 요리학원 한 번 다닌 적 없는 거. 그리고 셰프는요, 요리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원래 셰프 데 퀴진(chef de cuisine)이라고 해서 여러 명이 분야별로 요리를 담당하는 큰 주방의 주방장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저같이 혼자 요리하는 사람은 그냥 요리사, 굳이 영어로 하자면 쿡(cook)이라구요."
"뭐라고 부른들 어떤가? 아무튼 멋있어 보인다는 얘기야."

 
근래 드물게 그가 칭찬을 늘어놓는 걸 보니 저녁에 나갈 요리들을 같이 맛보고 싶은 눈치였다.
 
"하하, 이 음식들 드시고 싶으셔서 그러죠? 잠깐만 기다리세요. 손님들 드실 때 슬쩍 같이 내 드릴게요."
"착한 아우님, 고마워."

 
그 때였다. 문 위의 풍경소리와 함께 예약한 손님들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찬바람이 열린 문틈으로 들이치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키 크고 훤칠한 두 아들과 귀여운 딸, 그리고 어머니. 나는 젖은 손을 행주로 닦으며 손님들을 달랑 하나 있는 창가 쪽의 작은 식사 테이블로 안내했다.
 
"어서 오세요. 밖이 많이 춥죠? 네 분 식사는 예약하신 대로 잘 준비해놨습니다. 우선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큰 아들이 환한 미소로 화답하며 감사하다고 인사하기에 나는 잘 말린 생강차와 도라지차 섞은 것을 차병에 담고 따뜻한 물을 부어 우려낸 후 찻잔과 함께 내어 드렸다.
 
"꼭 일 년 만에 다시 뵙는군요. 우선 차 한 잔 하고 계시면 식사는 순서대로 올려드리겠습니다."
 
남매들은 다시 예의 바른 미소로 감사하다며 인사했고, 어머니는 그런 남매들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주방으로 돌아와 몇 가지 채소에 제철 사과와 색색의 방울토마토를 섞고, 미리 만들어 둔 유자드레싱을 뿌린 샐러드를 만들어 손님 테이블로 내갔다. 물론 내가기 전에 따로 작은 접시에 덜어 한 쪽 구석의 연암에게 슬쩍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연암은 눈을 찡긋하며 웃는 것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샐러드를 낸 후, 나는 손님들 앞에 놓인 와인잔에 알자스의 리슬링을 한 잔씩 따랐다.
 
"오늘의 샐러드는 유자 드레싱을 얹은 시즌 샐러드입니다. 같이 드린 와인은 알자스 지방에서 빚은 리슬링 와인인데 화사한 꽃과 과일향기가 일품이고, 은은하게 단맛도 있어서 이 샐러드의 드레싱과 잘 어울릴 겁니다."
  

알자스의 리슬링. 게부르츠트라미너와 함께 알자스를 대표하는 화이트 와인인 리슬링은 바로 인접한 독일에서 동일한 리슬링 포도로 만드는 와인들과도 사뭇 다른 농후하고 견고한 맛을 자랑한다. 리슬링 품종은 토양에 특히 민감하며 알자스 같이 천혜의 자연 및 토양 조건과 만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와인이 된다. ⓒ Throzen

 
남매들과 어머니는 다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기쁜 표정으로 서로의 잔을 부딪쳐 건배를 했다. 막내 여동생이 각자의 앞접시에 샐러드를 예쁘게 분배했고, 가족들은 각자 1년을 보낸 얘기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시작했다. 오븐에 빵을 넣고 스프 냄비에 불을 끓이는데 바로 옆 구석자리에서 연암이 입을 손으로 가리고 내게 말을 걸었다.
 
"저 식구들은 다 따로 사나 보지? 1년 만에 만나는 것같이 얘기들을 하네?"
"예, 맞아요. 어머니만 이 쪽에 사셨고, 남매들은 다 외국이나 외지에서 학교 다니나 봐요. 저희 단골이신데 저렇게 1년에 한 번씩 꼭 저희 집에 오셔서 식사를 하시곤 하죠."

 
나도 손님들 쪽에 들리지 않게 입을 가리고 소곤소곤 대답해 준 후, 다시 스프와 스테이크 소스 준비를 했다.
 
잠시 후, 손님들이 샐러드를 다 드신 듯 해서 접시를 치우려고 갔다. 남매들은 다 각자의 접시를 비웠지만 어머니의 샐러드 접시는 그저 남매들의 얘기를 듣느라 음식은 들 생각도 없으셨는지 막내딸이 덜어준 샐러드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어머니 샐러드는 아직 안 드셨군요. 더 드시겠어요?"
"아뇨, 괜찮아요. 그냥 치워주세요."
"예. 그럼 채소는 넉넉하니 이따 드레싱 따로 해서 포장해 드릴께요."
"감사합니다."

 
나는 샐러드 접시들을 치웠고, 시간 맞춰 오븐에서 꺼낸 빵을 썰어 올리브유, 스프와 함께 내갔다.
 
"오늘의 스프는 양파스프입니다. 자색양파를 버터에 천천히 오래 볶은 후에 화이트와인으로 맛을 내고 닭 육수를 부어 끓인 거라 이렇게 추운 날 몸을 따뜻하게 덥혀드릴 겁니다. 빵은 천연발효 바게트구요, 여기 같이 드린 이탈리아산 올리브유에 듬뿍 찍어 드시면 맛있을 겁니다."
 
손님들은 스프그릇에서 피어 오르는 진한 양파스프의 향에 작은 탄성을 냈고, 나는 새로운 와인잔에 레드와인을 한 잔씩 따르며, 간단히 와인 설명을 곁들였다.
 
"지금 드린 와인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돈나푸가타(Donna Fugata)라는 와이너리에서 시칠리아의 토종 품종인 네로다볼라(Nero d'Avola)로 만든 셰라자데(Sherazade)라는 와인입니다. 셰라자데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인 바로 그 셰라자데 왕비를 뜻하구요, 부드러운 듯 밝은 색을 띠고 있지만 드셔보면 꽤나 힘이 있고, 여운도 길어서 이 양파 스프와 잘 어울릴 겁니다."
 
손님들은 내 설명을 들으면서 와인의 빛깔도 살펴보고 향도 맡아보더니 각자 한 모금씩 마셔보고는 이구동성으로 너무 맛있다고 했다. 나는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과 함께 역시 미소로 손님들의 칭찬에 화답하고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연암이 자기 와인잔을 쓱 내밀며 물었다.
 
"이거 예전에 내가 마셔본 그 와인이랑 같은 데서 나온 거 맞지? 자네네 상호랑도 관계 있다고 했던."
"네, 맞아요. 바로 그 돈나푸가타 와이너리에서 나온 거죠. 그 때 형님이 드셨던 건 이 집에서 나오는 와인 중 가장 대표작인 '밀레 에 우나 노테(Mille e Una Notte)', 바로 저희 '1001 M.U.N'의 유래가 된 와인이었구요(노블칼럼 제 2화 '마리 앙투아네트 친언니의 피난처였던 와이너리' http://omn.kr/s099 참조), 이 와인은 그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와인이지만 맛은 결코 그에 못지 않아요."
"오, 그렇군! 나도 마셔보고 싶구먼."

 

시칠리아 돈나푸가타(Donnafugata) 와이너리의 셰라자데. 시칠리아의 토종 품종인 네로 다볼라(Nero d’Avola)로 만든 이 와인은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인 셰라자데 왕비를 모델로 한 라벨만큼이나 관능적이고 빼어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 ⓒ winniczek

 
그가 자신의 빈 와인잔을 자꾸 들이미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에게 다른 병에 담겨 있던 '셰라자데'를 한 잔 따라주고 스프와 빵을 내밀었다. 그는 진중한 모습으로 와인의 색을 감상하고, 향을 맡더니 입 안에 물고 맛을 음미했다.

그리고는 손님들처럼 맛있다는 탄성을 내더니 허겁지겁 양파스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양파를 볶는 냄새를 바로 앞에서 맡고 있었으니 손님들보다 더 배가 고팠던 듯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 걸 헛기침으로 대신하고 화구에 스테이크를 구울 팬을 올리고 불을 높여 팬을 달궜다.
 
이윽고 팬이 달궈졌고, 나는 팬에 넉넉히 올리브유를 두른 후, 마찬가지로 올리브유에 재워뒀다가 소금과 후추, 그리고 허브를 골고루 뿌린 한우 안심을 올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팬에서 고기의 육향, 허브의 냄새, 올리브유의 향기가 고루 섞인 맛있는 연기가 피어 올랐다. 진공 포장한 채로 만 8일 동안 충분히 숙성시킨 후, 몇 시간 전부터 꺼내 고기의 온도를 충분히 올려주고, 진공 포장을 풀어 고기 겉면의 남은 핏물까지 제거한 후 올리브유를 발라 재워둔 안심이었다.
 
5cm 가까운 두께였기에 한 쪽 면을 3분 30초씩 튀기듯 구워주고(searing), 다시 뒤집어 같은 시간을 구워줬다. 고기의 양쪽 겉면이 바삭하게 구워진 것을 확인한 후 불을 끄고 호일로 잘 감싸 5분 간 레스팅(resting)을 시켜줬다.

스테이크는 굽는 것 이상으로 이 레스팅 과정이 중요하다. 충분한 시간의 레스팅을 거쳐야 구워진 표면에 몰렸던 열기와 육즙이 레스팅을 거치며 고기의 속으로 전달돼 육즙은 고기에 고루 스며들고 먹기에 가장 적당한 미디움-레어(medium rare) 상태의 스테이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고기를 굽는 내 모습을 연암이 아주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왜 고기를 다섯 덩어리나 굽지?"
"형님도 드리려구요."
"하하하, 그건 고맙구먼. 그래도…아, 아닐세. 계속 하게"

 
그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그냥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나는 고기들을 레스팅시키면서 한편으로는 따뜻하게 덥혀놓은 접시들을 깔아 놓고 그 위에 소스와 곁들임 음식으로 올릴 야채와 버섯 등을 배열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의 기색을 제대로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이윽고 플레이팅 준비가 끝났고, 마침 손님들을 보니 스프도 다 드신 것 같았다. 여전히 어머니는 자식들 얼굴만 쳐다보고 있느라 음식을 고스란히 남겼고, 나는 손님들께 포장해드리겠노라고 하고 스프 그릇들을 거두어 왔다.
 
이윽고 레스팅이 끝난 스테이크를 하나씩 접시 위에 올리고 스테이크 위에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reggiano,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와 레지오-에밀리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성치즈) 치즈를 얇게 깎아 올렸다. 플레이팅이 끝난 스테이크 접시를 한 사람씩 손님 앞에 놔드리고, 나는 특별히 준비해둔 와인병을 들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갔다.
 
"오늘 메인은 한우 안심 스테이크입니다. 고기는 안심 중에서도 가장 가운데 부위인 샤토브리앙 부위만을 골라 다시 8일 동안 습식 숙성(wet aging)시켜 미디움 레어로 구웠습니다. 고기 위에 올라간 치즈는 24개월 숙성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구요, 소스는 남미식의 치미추리 소스와 흑맥주에 숙성시킨 통겨자 소스, 그리고 송로버섯을 다져 올리브유에 재운 트러플 소스의 3가지를 같이 올려 드렸으니 각각 드셔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맞춰 준비한 와인은 이 와인입니다."
 
나는 한 손으로는 와인병의 병목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볍게 아래를 받쳐 비스듬하게 세운 채로 손님들께 라벨을 보여 드렸다.
 
"이 와인은 칠레의 산타 로라(Santa Laura) 와이너리에서 만든 로라 하트윅 패밀리 에디션(Laura Hartwig Edicion de Familia) 2014년 빈티지입니다.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말벡, 그리고 쁘띠 베르도의 네 가지 품종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힘차고 강건하면서도 굉장히 우아한 맛과 향기를 가진 와인이죠. 테이스팅 해보시겠습니까?"
 
가장 바깥 쪽에 앉아있던 맏아들이 자신의 와인잔을 살짝 내밀었고, 나는 그의 잔에 테이스팅을 위해 약간의 와인을 따랐다. 그는 오랜 유학생활 덕분에 와인이 익숙한 듯 가볍게 와인잔을 돌리더니 잔을 들어 잠시 향을 맡다가 한 모금을 마셨다. 잠시 눈을 감고 음미한 그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손님들의 잔에 골고루 와인을 따랐다.
 
"잠시 와인에 대해 추가 설명을 좀 드려도 될까요? 이 와인의 이름이자 라벨의 주인공인 로라 하트윅 여사는 산타 로라 와이너리의 창립자인 알레한드로 하트윅 카르테의 부인입니다. 원래는 와인을 만들던 사람들도 아니고 남편인 알레한드로가 글로벌 제약회사에 근무했던 관계로 오랫동안 캐나다에 살았죠. 그러다 로라 여사가 부친이 소유했던 칠레 산타 크루즈 마을의 땅을 상속받게 되면서 칠레로 돌아왔고, 마침 당시에 세계적으로 칠레 와인의 붐이 불기 시작했던 터라 두 사람은 이 땅에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라벨은 부인인 로라 여사에게 헌정된 것인데 젊었을 적부터 대단한 미인이기도 했지만 한 가정의 어머니로, 또 와이너리의 안주인으로서도 정말 역할을 잘했던 것 같습니다. 그 어머니에게 헌정된 와인이라서인지 이 와인을 마셔보면 왠지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어머니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오늘 이 가족모임을 위해, 특히 어머님을 위해 준비한 와인이니 모쪼록 맛있게 드시고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가족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여가며 내 설명을 듣다가, 내 말이 끝나자 자신들의 어머니 쪽을 바라보며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맏아들이 동생들을 돌아보며 건배를 제의했다.
 
"어머니를 위해, 건배."
 
동생들도 건배를 외치며 잔을 부딪쳤고, 눈가가 촉촉해진 어머니도 따라서 건배를 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 모습을 보던 연암이 아무 말 없이 내 쪽으로 자신의 잔을 내밀었고, 우리도 이 우아한 와인으로 건배를 했다. 가족들은 다시 즐겁게 먹고 마시고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즐겼고, 곁에서 고기의 잘려진 단면을 슬쩍 보니 오늘따라 스테이크도 아주 잘 구워진 것 같아 나 스스로도 제법 만족스러웠다.
  

칠레 산타 로라(Santa Laura) 와이너리의 로라 하트윅 패밀리 에디션(Laura Hartwig Edicion de Familia). 와이너리 창립자의 부인인 로라 하트윅 여사의 이름을 딴 이 와인은 힘차고 강건하면서도 로라 하트윅 여사를 떠올리게 하는 우아함과 긴 여운을 자랑한다. ⓒ winniczek


연암도 소스 하나, 곁들임 음식 하나 남김 없이 거의 접시를 핥을 기세로 비웠고, 연신 와인잔을 비우더니 마침내 긴 트림과 함께 식기를 내려놨다. 마침 가족들의 식사도 끝났고, 난 후식으로 직접 구운 피칸 파이와 커피를 내갔다. 그리고 서비스로 포트와인을 작은 잔에 조금씩 따라 함께 냈다.
 
내 쪽에서만 보이도록 안쪽에 걸어놓은 시계가 어느새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족들은 아쉬운 듯 자리를 정리했다. 나는 연암과 마시던 와인잔을 내려놓고 테이블쪽으로 가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다.
 
"다 드셨습니까? 음식은 드실 만 하셨나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건 없으셨는지요?"
"별 말씀을요. 음식도 와인도 모두 너무 훌륭했습니다. 매번 멋진 식사 준비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저야말로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다음에도 더 정성껏 준비해서 모시겠습니다."
"예, 연락드릴게요."

 
남매들은 먼저 일어나 정중히 인사를 하면서 나갔고, 나는 어머니가 남긴 음식들을 깨끗이 포장해 남매들에게 건넸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내게 인사를 하며 흰 봉투를 건넸다.
 
"사장님, 늘 감사 드려요. 덕분에 오늘 너무 행복했습니다."
"아니, 이건 뭔지요? 계산이라면 예약하시면서 선불로 다 끝내셨습니다만…"
"이건 그냥 제가 드리는 작은 감사의 인사에요. 사양하지 말고 받아주셔요."
"그렇지만…"

 
그녀는 내 손에 억지로 봉투를 쥐어줬다.
 
"당분간은 못 찾아 뵐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기회가 되면 꼭 여기 다시 오고 싶어요.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이 시간들이 제게는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이거든요."
"저도 손님들 다녀가시면 언제나 이 작은 가게 안이 행복한 기운으로 꽉 차는 것 같아 너무 감사하답니다. 부디 조만간 꼭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 다시 한 번 감사 드려요. 그럼 다음에 또 뵐게요."

 
인사를 하는 그녀에게 나도 정중히 인사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밖에서는 남매들이 저만치에서 서로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가족 모두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고, 가족들도 내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나는 가게 안으로 돌아와 그녀가 주고 간 봉투를 열어 보았다. 거기에는 빳빳한 새 지폐 10장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마치 부조 봉투처럼. 그 돈을 보는데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연암이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자네… 알고 있었군."
"예. 형님 덕분에요."

 
우리는 잠시 서로 말없이 있었다. 내가 아직 와인이 남은 잔을 들어 그에게 건배를 청했다.
 
"어머니를 위해."
 
그도 마찬가지로 잔을 들었으나 부딪치지는 않은 채로 말했다.
 
"가족의 추억을 위해."
 
12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25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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