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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2.21 10:17수정 2018.12.25 11:40
본문 중의 역사적 사건, 음식과 와인을 제외한 일체의 인명은 원작자인 알퐁스 도데와 저자의 창작이며, 인용된 원작 '마지막 수업'은 글의 진행 의도상 축약되었음을 밝힙니다. - 기자말
 
1871년 5월, 이제는 독일 제국이 된 프러시아와의 전쟁에 패배한 프랑스는 독일과의 접경 지역인 알자스와 로렌을 독일에 할양해야만 했고, 그때까지 프랑스의 영토로 프랑스어를 배우던 사람들은 프랑스어 대신 독일어를 배워야 했다. 주인공인 소년 프란츠는 어느 날 아멜 선생님의 수업에서 오늘이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몹시 늦었다. 그래서 야단을 맞을까 봐 퍽 겁이 났다. 숨을 헐떡이며 겨우 교실에 도착한 나는 아이들이 떠드는 틈을 타서 조용히 자리에 앉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교실은 마치 일요일 아침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아멜 선생님은 호통을 치기는커녕 "프란츠, 어서 네 자리로 가거라" 하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재빨리 책상에 앉은 나는 그제야 선생님이 장학사가 오는 날이나 시상식이 있는 날에만 입는 정장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평소에는 비어 있던 교실 뒤편 의자에 삼각모를 쓴 오젤 할아버지와 전임 면장님을 비롯한 마을 어른들이 같이 와 앉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모두가 슬퍼 보였다. 내가 이 모든 광경에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동안 아멜 선생님이 교단에 올라와 엄숙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여러분, 이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마지막 수업입니다. 알자스와 로렌의 모든 초등학교는 독일어만을 가르치라는 명령이 베를린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의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입니다. 열심히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몇 마디 말씀은 나를 한없이 당황하게 했다. 이제는 프랑스어를 영원히 못 배우고 마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내가 수업을 빼먹고 놀러 다니던 일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읽기 지루하고 들고 다니기 거추장스럽기만 했던 문법책과 이야기 성경책이 이제는 헤어지기 싫은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의 정장도 마지막 수업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입고 오신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왜 마을 어른들이 교실 뒤에 앉아 계시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분들은 좀 더 학교에 자주 찾아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시는 것 같았고, 또한 사십 년 동안 충실히 봉사하신 선생님에 대한 감사와 사라진 조국에 대한 의무감의 표시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내가 외울 차례가 돌아왔고,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셨는데도 분사법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부끄럽고 서글픈 마음에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서있는 내게 선생님은 야단을 치시는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다.

"프란츠, 너를 야단치지 않으마. 넌 충분히 벌을 받고 있으니까 말이야. 사람들은 매일 이렇게 생각하지. '시간은 많아. 내일 배우면 돼.' 그래서 결국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너도 보고 있잖니. 그래! 교육을 늘 내일로 미루려 한 것이 우리 알자스 사람들의 커다란 불행이었어. 이제 프러시아 사람들이 우리에게 '거 보시오, 당신들은 프랑스인이라면서 프랑스어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잖소!' 이렇게 비웃은들 뭐라고 하겠니. 하지만 프란츠, 이건 너의 잘못만은 아니란다. 우리 모두 너와 마찬가지로 자기 잘못을 반성해야 해."

그리고 나서 아멜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프랑스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선생님은 프랑스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확하며, 가장 확실한 언어라고 하셨다. 또한 우리가 프랑스어를 잘 간직해야 하며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어떤 민족이 노예가 되더라도 자신들의 언어만 잘 간직한다면 감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도 하셨다.
 
아멜 선생님은 새로운 교본을 준비해 오셨는데 거기에는 커다란 종이에 '알자스', '프랑스', '알자스', '프랑스'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이따금 책에서 눈을 들어 볼 때마다, 아멜 선생님이 교단에서 꼼짝 않고 자기 주변의 물건들을 응시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이 조그만 학교에 있는 모든 것들을 눈에 담으려는 듯 말이다. 선생님은 40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이 교실에서 프랑스 말을 가르침으로써 조국에 봉사해 왔는데 이제 내일이면 선생님과 선생님의 누이 동생은 짐을 싸서 이 교실과 이 지방을 영원히 떠나야 하는 것이다. 선생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
 
갑자기 교회 시계가 정오를 알렸고, 그와 동시에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프러시아 군인들의 나팔 소리가 우리 교실 창문 바로 아래서 들려왔다. 아멜 선생님께서는 매우 창백한 얼굴로 교단에서 일어서셨다. 선생님의 키가 그렇게 커보였던 적은 처음이었다.
 
"여러분," 선생님이 말문을 여셨다. "여러분…저는, 저는…" 목이 메시는지 선생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다. 선생님은 칠판을 향해 돌아서더니 분필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쓰셨다. "프랑스 만세(Vive la France)!"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벽에 머리를 기댄 채 한참을 아무 말없이 계시다가 손짓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다 끝났다······ 다들 돌아가거라······."
 

19세기 후반의 알자스-로렌 지방 지도. 프랑스와 독일(프러시아)의 접경지인 알자스와 로렌은 수 없이 많은 국경 분쟁에 휘말려 국적이 여러 번 바뀌는 비운을 겪었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은 1871년에 프랑스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 패배해 이 두 곳을 독일에 할양할 당시의 알자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 Historum

 
나는 슬픈 마음에 아무 말도 못한 채 주섬주섬 책을 챙겨 돌아서다가 교실 뒤편의 어른들 중에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한 번 더 놀랐다. 아버지는 내게 무뚝뚝한 눈길을 한 번 주더니 모자를 벗어 손에 든 채로 선생님께 다가갔다.
 
"아멜 선생님."
 
선생님은 멍하게 칠판을 바라보고 계시다가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몸을 돌리셨다. 선생님의 눈가가 아직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선생님은 급히 눈시울을 닦으시며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아, 히펠(Rieffel)씨, 와주었군요. 부끄러운 모습 보여 미안합니다."
"선생님, 저희야말로 학교를 지키지 못해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냥 예전에 저 가르치실 때처럼 편하게 줄리앙이라고 불러 주세요."
"줄리앙, 줄리앙. 자네 아들 프란츠에게 아직 분사법도 다 못 가르쳤는데…"

 
선생님은 다시 목이 메시는지 말을 채 잇지 못하셨다. 아버지도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지만, 투박한 손으로 눈물을 쓱 닦고는 다시 선생님께 말을 이었다.
 
"선생님, 짐 싸시느라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저희 집에서 꼭 저녁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마을 사람들 몇 명도 같이 초대했으니 꼭 와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지, 동생 아멜리아와 함께 꼭 가겠네. 정말 고맙네."
"별 말씀을요.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모자를 꼭 쥔 채 선생님께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내게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다. 엄격하고 말수 적은 아버지가 저렇게 공손한 모습으로 선생님을 대하는 걸 보니 더 마음이 아파왔다.
 
이윽고 저녁이 되었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누나와 함께 바쁘게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집안 가득 퍼졌다. 식탁에는 아버지와 먼저 도착한 마을 어른들이 둘러앉아 야생 자두로 만든 독한 오드비(eau de vie, 과일이나 나무 열매 등을 이용해 만든 증류주. 알자스는 특히 청정한 과일 오드비로 유명하다)를 마시며 향후의 정세에 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어른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이 오드비 때문인지, 혹은 알자스가 강제로 독일에 할양된 것에 분개해서 그런 것인지 쉽게 구분이 가지 않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내가 제일 먼저 뛰어나가 손님을 맞았다. 아멜 선생님이 아직 미혼인 동생 아멜리아 아줌마와 함께 문 앞에 서 계셨다. 어른들이 모두 일어나 공손하게 선생님을 맞았고, 선생님은 예의 푸근한 미소로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셨다. 두 분을 끝으로 만찬 참석자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는 선생님과 아멜리아 아줌마에게도 작은 잔에 따른 오드비를 권했다. 선생님은 미소 지으시며 맛있게 몇 모금을 드셨으나 아멜리아 아줌마는 오드비가 너무 독하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냄새만 맡으시고 마시는 흉내만 내신 채 잔을 내려 놓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부엌과 식탁을 오가며 음식들을 날랐다. 첫 번째로 나온 음식은 우리 알자스의 전통 음식 중 가장 유명한 타르트 플랑베(Tarte Flambee), 혹은 플람크슈(Flammekueche) 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것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민 것에 신선한 흰 치즈인 프로마쥬 블랑과 생크림을 바르고 다시 그 위에 훈제 베이컨과 양파를 올린 후에 화덕에서 굽는 음식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잘 구워진 밀가루 반죽과 짭짤한 치즈와 베이컨의 맛, 그리고 양파의 달달한 향이 어울려 아주 기가 막힌 맛이 났다. 친척 중에 여러 나라를 많이 돌아다닌 삼촌뻘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아저씨 말로는 이탈리아에 이것과 아주 비슷한 음식이 있다고 했다. 밀가루 반죽에 토마토 소스를 바르고 프로마쥬(치즈)를 뿌린 후에 버섯이나 바질을 올려 먹는 음식인데, 피자라고 부른다던가…그런데 딱히 별 맛은 없더라고 했던 것 같다. 역시 타르트 플랑베가 가장 맛있다면서.  아버지는 타르트 플랑베에 맞춰 역시 우리 고장의 특산인 크레망 달자스(Cremant d'Alsace), 즉, 알자스의 지역 특산 발포 와인을 열어 모두의 잔에 따랐다. 그리고 건배를 제안했다.
 
"프랑스를 위해!"
  

알자스의 전통 음식인 타르트 플랑베(Tarte Flambee). 밀가루로 만든 도우 위에 흰색 치즈를 바르고 양파와 훈제 베이컨 등을 얹어 구운 음식으로 플람크슈(Flammekueche)라고도 부른다. ⓒ Tastemade

 
모두들 아버지의 건배사를 따라하고 크레망 달자스를 한 모금씩 마신 후 타르트 플랑베를 한 조각씩 덜어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비롯해 어른들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아멜 선생님께 배운 제자들이기도 했기 때문에 마치 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서로 농을 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니, 적어도 그러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못 말리겠다는 듯 그런 어른들을 보며 미소를 짓고 계셨다.
 
타르트 플랑베 접시가 순식간에 비워지자 나는 어머니께 이를 알렸고, 어머니는 다음 음식들을 내가라고 하셨다. 그 다음 음식은 봄철에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아스파라거스를 접시에 담고 식초, 수제 마요네즈, 그리고 네덜란드식 소스를 곁들인 것이었다. 어른들은 봄을 맞아 두툼하게 자란 아스파라거스를 각자 취향껏 소스에 찍어 먹었고, 아버지는 아스파라거스에는 이 와인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짝이라며 단 맛이 없는 드라이 뮈스카(Muscat, 영어로는 머스캣이라 부르는 포도 품종) 와인을 모두의 잔에 따라 주었다. 이어서 거위 간으로 만든 파테(Pate De Foie Gras)가 나왔는데 이것은 거위간, 즉 푸아그라에 송로버섯을 넣고 파이 껍질로 싸서 익힌 것이다.
 
음식을 나르면서 부엌에서 한 입씩 먹은 음식만으로도 이미 내 배는 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른들도 나도 최고의 음식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윽고 오늘의 메인 요리인 슈크루트 가르니(Chorcroute Garni)가 커다란 접시에 담긴 채로 온통 맛있는 냄새를 내뿜으며 식탁 가운데에 올려졌다. 슈크루트는 양배추를 잘게 찢어서 소금을 뿌린 다음 커다란 항아리에 넣어 발효시킨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사우어 크라우트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우리 알자스 사람들이 들으면 왠지 우리 음식을 도둑맞은 느낌이 들어 코웃음을 치곤 하는 음식이었다. 오늘의 음식은 이 슈크루트에 화이트 와인을 붓고 끓인 것에 감자와 소시지, 아버지가 직접 사냥해 오신 메추리와 큼직한 돼지고기가 통째로 들어가 있고, 역시 알자스 특산이면서 알자스어로는 민스터르카스(minschterkaas)라고 부르기도 하는 묑스테르(munster) 치즈가 곁들여져 있었다.

원래 묑스테르 치즈는 발효 후에 숙성하는 동안 며칠에 한 번씩 소금물로 겉을 닦아서 특유의 오렌지빛 껍질이 생기는데, 우리 집 묑스테르는 소금물 대신 아버지가 직접 빚은 와인으로 겉을 닦아서 풍미를 더한 것이었다. 모두들 감탄과 어머니의 요리 솜씨에 대한 찬사를 외치는데, 유독 아멜 선생님만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슈크루트 가르니를 쳐다보고 계셨다. 선생님의 침묵에 잠시 분위기가 서먹해지자, 아멜 선생님은 당황하신 듯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하셨다.
 
"아, 다들 미안합니다. 줄리앙, 이렇게 멋진 슈크루트 가르니는 이 알자스를 빼고는 프랑스 어디에서도 먹기 힘들 걸세. 너무나 훌륭해서 잠시 말을 잊었군. 좀 덜어 주겠나?"
  

알자스의 대표 음식인 슈크루트 가르니(Chorcroute Garni). 슈크루트는 어린 흰 양배추를 채썰어서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음식으로 한식의 백김치와 비슷하다. 슈크루트 가르니는 슈크루트에 와인을 붓고 끓이다가 소시지, 돼지고기, 새고기 등을 넣은 요리로 알자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이기도 하다. ⓒ gourmandiz.dhnet.be

 
선생님의 말씀에 다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돌아왔고, 아버지는 선생님을 비롯한 각자의 접시에 슈크루트와 고기들을 골고루 올려주셨다. 음식 분배가 끝난 후 아버지가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와인은 어떤 것을 드릴까요? 리슬링(Riesling)? 아님 게부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를 드시겠습니까?"
 
아멜 선생님은 잠시 접시에 담긴 요리들의 냄새를 골고루 맡으시더니 작은 탄성과 함께 대답하셨다.
 
"이 묑스테르는 게부르츠트라미너로 겉을 닦은 것이군!"
"예, 맞습니다. 제가 직접 담근 것이죠."
"역시! 보통은 리슬링을 더 많이 찾겠지만, 오늘은 이 묑스테르의 풍미에 맞춰 게부르츠트라미너를 맛보여 주지 않겠나?"

 
아버지는 그러실 줄 알았다는 듯한 미소와 함께 당신이 담근 게부르츠트라미너를 열어 모두의 잔에 골고루 따라 주셨다. 그 모습을 보며 음식 냄새를 맡고 있자니 나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눈치를 채셨는지, 나를 불러 작은 잔에 와인을 1/3 정도 따르고 물을 채워주셨다.

나는 물은 1:1이면 된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눈길을 마주하고는 그 정도라도 감지덕지하기로 했다. 나를 포함해 각자의 와인잔이 모두 채워지자 아버지는 아멜 선생님을 위한 건배를 제안했고, 어른들은 다 함께 건배를 외치고 게걸스럽게 음식 접시에 달려들었다. 그 모습만 보면 마치 오늘 처음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들 같았다.
  

알자스의 대표적인 와인 중 하나인 게부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알자스는 추운 산악기후 때문에 톡 쏘는 듯한 맛을 가진 리슬링 같은 화이트 와인들이 특히 유명한데, 특히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게부르츠트라미너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반면에, 알자스산 게부르츠트라미너는 뛰어난 향과 풍미를 자랑한다. ⓒ 이건수

 
이미 어느 정도 배가 부른 상태였던 나는 부엌 한 구석에서 어머니가 작은 접시에 덜어준 슈크루트와 소시지를 앞에 놓고도 그리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물에 탄 와인이 나를 사로잡았는데, 그건 마치 여러가지 과일을 압축해 놓은 듯한 엄청난 풍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물 탄 와인이 이 정도라니! 나는 어머니가 일하시는 틈에 내 와인잔을 슬쩍 비우고 부엌 한 켠에 놓여있는 게부르츠트라미너 병에서 물 타지 않은 와인을 잔에 따라 들었다.
 
와인잔을 코에 대자 과일 폭탄 같은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마치 건포도 같이 달달한 향이 올라왔다. 한 모금을 입에 물자 이번에는 새콤달콤한 맛과 함께 약간 쌉싸름한 풍미가 혀를 울렸다. 훈제 소시지를 만들 때 참나무 장작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 같은 맛도 났다.

아버지가 한 번씩 물을 타서 주곤 하시는 리슬링도 맛있었지만 이 게부르츠트라미너는 정말 맛이 좋아서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밖에서는 어른들이 입안 가득 슈크루트와 고기를 씹으면서 와인맛을 칭찬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파리에서 왔다는 아버지의 친구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알퐁스. 자네 이렇게 훌륭한 게부르츠트라미너를 파리에서 마셔본 적이 있나?"
 
소설을 쓴다는 알퐁스 아저씨가 대답했다.
 
"저는 사실 게부르츠트라미너를 좋아하진 않지만, 여기 알자스의 게부르츠트라미너는 정말 대단한데요. 이렇게 폭발적인 맛을 가진 게부르츠트라미너는 처음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달콤하면서 쌉싸름한 맛이 나죠?"
 
알자스 사람들이 다들 어깨를 으쓱하면서 알자스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냐고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도저히 남을 것 같지 않던 슈크루트 가르니 접시가 어이 없을 정도로 깨끗이 비워지자 나는 어머니를 도와 식탁을 정리한 후 준비된 디저트를 내갔다. 파리에서 온 소설가 알퐁스 아저씨는 연신 트림을 하면서 알자스 사람들의 식욕은 도저히 못 당하겠다고 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또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오늘의 디저트는 키르슈(Kirsch, 체리로 만든 증류주)로 맛을 낸 수플레와 진한 치즈 케이크였다. 여기에 식전주로 나왔던 오드비가 다시 등장했고, 어른들은 마치 디저트가 아니라 이제 처음으로 음식을 먹는 듯한 모습으로 디저트와 독한 오드비를 마셨다. 식사 시간이 끝나감에 따라 즐겁고 유쾌했던 분위기만큼이나 묵직한 침묵이 조금씩 식탁 위로 내려 앉았다. 아멜 선생님이 냅킨으로 입을 닦고 일어나시자 모두들 술잔과 식기를 내려놓고 선생님을 바라봤다.
 
"줄리앙과 히펠 부인, 그리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이 저녁 식사는 내 평생에 잊지 못할 겁니다. 20대에 알자스에 와 40년을 살았지만 오늘처럼 맛있고 즐거운 식사는 단언컨대 처음이었습니다."
 
선생님을 쳐다보는 아멜리아 아줌마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저는 동생과 함께 내일 떠납니다. 아마 고향인 프로방스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하지만 내 마음의 고향은 이 곳 알자스입니다. 지난 1월에 프러시아 황제가 파리에서 독일 황제에 등극했다고 하더군요. 지금 프러시아의 기세를 보건대 아마 짧은 시간 내에 알자스가 다시 프랑스 땅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 적어도 나는 남은 생에 다시 알자스로 돌아오기는 힘들겠지요."
 
어느새 선생님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부디, 프랑스어를,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했던 이 늙은 아멜을 잊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에게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우리의 말을 잊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감옥 안에서도 열쇠를 손에 들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일테니까요."
 
선생님은 부엌 입구쪽에서 훌쩍거리고 있는 나를 손짓으로 부르셨다. 그리고는 옆에 두셨던 작은 꾸러미를 내게 건네셨다.
 
"프란츠, 네게 분사법을 다 가르쳐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이건 내가 너희들을 가르칠 때 참고했던 교사용 교재란다. 당장은 좀 어렵겠지만 모르는 건 부모님이나 누나에게 물어가면서라도 꼭 프랑스어 공부를 마저 해다오."
 
나는 콧물까지 흘리면서 그러겠다고 약속했고, 선생님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동생과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하니 이만 일어나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른들도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과 악수를 나누고 이별 인사를 했다. 우리는 모두 문 밖으로 나와 선생님을 배웅했다. 오늘따라 밤하늘에 별도 보이지 않았다.
 
(2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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