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영(21세, 여)

아름다울 가, 빛 날 영. 가영은 이름대로 아름답게 빛나던 아이였다. 유쾌하고 강단 있었다. 아빠가 옥편을 뒤져가며 지은 이름이다. 으레 친할아버지가 지었을 이름을 아빠가 지은 건, 가영이 어렵게 가진 딸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귀하고 소중했다.

가영은 장래희망을 중학생 때 정했다. 목원대 패션디자인학과 학생들이 패션쇼를 하는 걸 TV로 보고 매료됐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들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였다. 가영은 "주목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옷으로 전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교에 들어간 가영씨는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캐나다 학교로 교환학생을 준비했다.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뉴욕으로 넘어가 패션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유학비를 벌기 위해 방학 때도 12시간씩 일했다. "엄마가 내줄게"해도 "엄마 도움도 받겠지만, 그것만으로 유학을 가는 건 맞지 않다"며 세 번의 방학을 오롯이 아르바이트로 보냈다.

명절에도 알바비가 더 나온다며 근무를 자처했다. 편의점, 햄버거 가게, 마트, 감자탕 가게, 가릴 것 없이 했다. 2022년 10월 29일, 사고가 난 그 날에도 학교에서 치르는 수시 시험 감독을 돕는 알바를 했다. 며칠 뒤 알바비가 들어왔다. 7만 9000원. 가영이가 써보지도 못하고 간 돈이 1400만 원에 달했다. 가영이가 지원했던 캐나다 학교에서는 가영이 떠나고 보름 후 합격 통보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