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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10.20 07:10 수정 2020.10.20 07:10
"기본적인 생리 현상조차 마음 편히 해결할 수 없어요. 방은 40개인데 화장실이 3개밖에 없어서 아침에 사람들이 줄을 서요. 급하면 공원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가죠. 그럴 때가 많아요. 여러 명이 쓰다 보니 청결을 기대하긴 어렵죠. 변기 뚜껑 위에다 용변을 보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이민수(53, 가명) 정부가 취약계층에 지급하는 주거급여는 1인 가구의 경우 최대 26만6000원(서울-1급지)이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에서 주거급여만으로 살 수 있는 값싼 고시원들의 시설은 어떨까. <오마이뉴스>는 한국도시연구소에 의뢰해 지난 8월 10일부터 8월 21일까지 대학동 고시원 거주민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응답을 토대로 대학동 71개 원룸·고시원의 시세와 방·화장실의 개수, 공동부엌 유무 현황을 파악했다. 분석 대상 71곳 가운데, 보증금 없이 월세 27만원 이하인 곳(아래 주거급여 고시원)은 모두 36곳이었다. 조사 결과 이들 고시원·원룸은 부엌이 없거나 화장실이 부족해 국토교통부의 최저주거기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정한 최저 주거기준에 따르면 주택은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이 완비된 전용 부엌과 전용 화장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월세 27만원 이하 : 부엌? 없음, 화장실? 태부족

36곳 중 거주자들이 취식을 할 수 있는 공동 부엌이 있는 곳은 불과 5곳뿐이었다. 나머지 31곳은 부엌이 없어 거주지 내에서 식사 해결이 불가능했다. 이러다보니 거주민들에게 식사 문제는 언제나 고민거리다. 고시원 거주민 100명 중 27명이 고시원 생활의 어려운 점으로 '식사 해결'을 꼽은 것도 부엌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화장실도 부족했다. 주거급여 고시원 36곳 중 방마다 화장실을 갖춘 곳은 9곳이었다. 나머지 27곳은 공동 화장실을 쓰고 있었다. 고시원 방 수에 비해 공동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한 곳이 많았다. 24곳의 방과 화장실(부정확 하게 기재한 3곳 제외, 변기 기준) 개수를 계산해본 결과, 화장실 1개당 평균 6.2명이 공유하고 있었다. 변기 하나를 쓰기 위해 6명 이상의 사람이 줄을 선다는 얘기다. 40개의 방이 있는데도 화장실은 단 3개뿐인 고시원도 있었다. 화장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불평도 많다. "여러 명이 쓰다 보니 관리가 제대로 안될 수밖에 없죠. 화장실 하수도관 같은 게 오래됐는데, 교체를 안하니까… 여름이면 냄새가 올라오죠."(62세, 대학동 거주자) 실제로 고시원 거주민 100명 가운데 21명은 '화장실 부족과 불결'을 고시원 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점으로 꼽았다. 주거비 부담(18명)이나 소음(15명)보다 더 높은 수치다. 거주하는 곳의 화장실이 부족하다는 응답도 35%였다. 엄밀히 따지면, 고시원이 최저주거기준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법적으로 고시원은 주택이 아닌 비주택 혹은 주택 이외의 거처에 속한다. 대다수 고시원이 고시 공부 목적이 아닌 거주 공간으로 바뀌고 있지만, 아직까지 법률적 정의는 그렇다. 그렇다고 고시원에 대한 주거 기준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휴지조각이 된 노후 고시원 대책

2018년 11월 국일고시원 화재 사건 이후 서울시는 지난해 3월 '노후 고시원 거주자 주거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서 서울시는 고시원이 갖춰야 할 기준을 제시했다. 각 고시원 방의 면적을 7㎡ 이상 확보하고, 각 방에는 의무적으로 창문을 설치하도록 했다. 최저주거기준의 1인당 최소 면적은 14㎡지만, 그 절반 수준만 지키도록 했다. 문제는 이 기준이 기존 고시원에는 적용되지 않고, 새로 설립할 고시원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대학동에 있는 고시원들의 경우 방 면적이 7㎡ 이하인 곳이 여전히 많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지난 5~6월 대학동 고시원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벌였다. 연구소 조사에 응한 곳은 모두 43곳. 이 가운데 7㎡ 미만인 방이 있는 고시원은 총 14곳이었다. 10곳 중 3곳은 서울시가 제시한 기준에 못 미치는 고시원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좁은 방은 거주민들의 주된 고민거리 중 하나다. <오마이뉴스> 설문조사에서도 거주민의 42%가 좁은 방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고시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는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후 고시원 대책은) 기존 고시원이 아닌 새로 짓는 고시원에 적용되는 지침이었고 권고사항이었다"며 "기존 고시원에 대해 각 실 당 7㎡ 면적을 확보하라고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생리 현상조차 마음 편히 해결할 수 없어요.
방은 40개인데 화장실이 3개밖에 없어서
아침에 사람들이 줄을 서요.
대학동에 있는 고시원들의 경우
방 면적이 7m2 이하인 곳은 여전히 많다.

주택으로 등록한 뒤 '고시원업'하는 곳도 상당수

주택으로 등록한 뒤 고시원으로 활용하거나 불법 증축한 고시원들이 많은 것도 문제다. <오마이뉴스>가 대학동 고시원 간판을 내건 41곳의 건축물대장을 확인한 결과, 무단 증축 등 건축법을 위반한 위반건축물로 지정된 곳은 총 5곳이었다. 고시원은 건축법상 다중생활시설이나 근린생활시설로 등록돼 있어야 하지만, '주택'으로 등록된 곳도 13곳에 달했다. 주택으로 등록돼 있다면 고시원에 대한 소방안전점검 대상에 누락될 수 있고, 소방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건물을 고시원 용도로 등록할 경우 다중이용업소 완비증명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주택용도 건물은 이런 절차가 필요 없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필요도 없고 임대료에 대한 세금 신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우려도 있다. 진미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거안정연구센터장은 "건물 불법 용도변경은 300만원 이하 벌금인데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관할 관청도 이를 철저히 모니터링하기도 어렵고, 설사 그렇게 제재가 된다고 해도 장기적으로는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사업자 본인 이득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건축물 관리를 담당하는 관악구청은 개선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고시원이 주택에 있으면 더 좋은 것 아닌가"라며 "(주택이 기존 고시원보다) 더 넓을 텐데, 그러면 주거 여건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 용도 변경 등 적법하지 않은 건물 활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

영국의 HMO가 제시하는 기준

전문가들은 취약계층의 주거 수준 개선이 필요하다며 영국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은 다인거주주택(HMO, Houses in Multiple Occupation) 제도를 통해 1인당 침실 면적을 최소 6.5㎡이상 확보하고 부엌도 반드시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5인 이하 거주지에 대해선 부엌 면적을 최소 7㎡ 이상 확보하도록 했다. 기준을 지키지 않는 임대업자에겐 '철퇴'를 가한다. 주거 기준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임대업자에 대해서는 최고 5000파운드, 우리 돈으로 최대 791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만약 죄질이 나쁘거나 지속적으로 규정을 어겼을 경우 사업자 면허를 취소해 아예 임대업을 할 수 없도록 했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영국의 경우 HMO 제도를 통해 엄격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데 주거취약계층을 보호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대학동 뿐만 아니라 서울 여러 고시원들을 보면 사람이 살 수 있는 면적이 아닌 방들이 많다"며 "주거로 적절하지 않은 공간은 공공이 임대를 못하도록 규제해야 주거취약계층이 더 나쁜 선택에 내몰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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