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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10.12 07:10 수정 2020.10.12 07:10
서울대 정문에서 신림 방면으로 1km가량 올라가면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이 있다. 녹두거리나 신림동 고시촌으로 이름이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 버스 정류장 이름도 ‘고시촌 입구’다. 고시촌 입구에서 남쪽으로 올라가면 비좁은 언덕길이 이어진다. 오가는 차들도 속도를 줄여 조심조심 다닐 만큼 언덕의 경사는 가파르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낡은 80년대식 간판을 내건 고시원들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언덕길 위에 있다고 해서 ‘윗동네’라고 불리는 이곳을 지키고 있는 고시원은 어림잡아 50여개가 넘는다. 몇몇 고시원에는 아직도 ‘00기 000,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오래된 푯말이 걸려 있다. 1980년대부터 많은 학생들이 사법시험 합격의 꿈을 안고 땀 흘리며, 울고 웃었던 이곳. 그 세월과 함께 낡아버린 고시원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싼 월세 찾아 대학동으로 흘러든 중년

지난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되면서 대학동 고시촌의 풍경은 바뀌고 있다. 고시원을 채웠던 더벅머리 고시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40~60대 중장년 1인 가구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한때는 판·검사를 꿈꿨지만, 날개를 펴지 못한 채 대학동에 주저앉아버린 머리카락이 하얀 중·장년 고시낭인들도 있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대학동의 1인 가구는 1만2172가구로 전체 가구의 75.1%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관악구 고시원의 상당수가 이곳 대학동에 몰려있다. 고시원 밀집도를 뜻하는 주택 1만호당 고시원 수를 살펴보면 대학동은 717.2호로 서울 모든 지역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대학동 언덕배기 낡은 고시원들은 대부분 임대료가 싸다. 대학동 고시원은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주거지이다. 실제로 <오마이뉴스> 취재진이 파악한 대학동 일대 낡은 고시원들의 임대료는 보증금 없이 한 달에 15~20만원. 웬만한 서울 고시원 임대료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8년 발표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국 고시촌·고시텔의 한 달 임대료는 평균 33만4000원이었다. 대학동 고시원은 전국 평균에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니 자연스럽게 주거취약계층 사이에선 입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 올해 1월 대학동에 자리 잡은 김아무개(56)씨는 “다른 지역으로 가면 고시원이라도 30만~40만원인데 이곳은 반값”라며 “이곳이 임대료가 가장 싸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고 말했다. 대학동에서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해피인 박보아 활동가도 “주거비가 저렴해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있고 대부분 40~50대 중장년층들”이라고 설명했다. 숫자로도 확인된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지난 2015년 관악구 대학동의 주거급여 수급자 수는 385명, 그런데 2020년 수급자 수는 816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생계급여 수급자 수도 2015년 364명에서 2020년 542명으로 200명 가량 증가했다.

대학동 고시촌에 주목한 이유

특히 대학동 주거급여 수급자 중에서는 40~60대 중·장년층 비율이 높다. 주거급여 수급자 816명을 연령별로 나눠보면, 40~65세가 420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40~65세 중 남성은 320명, 여성은 100명으로 남성 비율이 더 높다. 대학동의 생계급여 수급자들도 53.75%가 40~65세 중장년층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대상이 아닌 차상위 계층, 고시 낭인 등을 포함하면 주거 취약계층인 중년층의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대부분 개인적인 사정으로 홀몸이 된 사람들이 주거비가 저렴한 대학동을 찾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난한 중년이 모이는 곳, 그래서 대학동은 중년 1인 가구의 주거 문제가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신명자 복음자리재단 이사장은 “방치하면 주거 빈곤 문제가 폭발할 가능성을 안고 있는 곳이 대학동”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3월부터 대학동 일대를 취재했다. 대학동에서 반평생을 산 고시낭인을 비롯해 홀로 사는 중년층들을 만났고, 고시원을 돌며 열악한 주거 실태를 들여다봤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주변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 식사 해결, 고독사의 두려움, 이웃과의 다툼 등이 이들의 고민거리였다. 임대주택에 입주하려 했지만 노인이나 장애인, 신혼부부에 밀려나기 일쑤였다. 이들에게 포근한 보금자리는 정녕 사치일까. 대학동에 사는 중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년 주거 실태와 주거 복지 정책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에 있는 건물 2100여채중 274채에 고시원이 있다. 이 숫자는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파악한 것으로 일반주택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3D지도에서 노란색 건물이 고시원이 있는 건물로, 마우스 또는 손으로 움직이면 지도를 회전 및 확대, 축소할 수 있다. (데이터출처 : 공공데이터포털 202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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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소속입니다. 주로 땅을 보러 다니고, 세종에도 종종 내려갑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이희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