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 08:00최종 업데이트 20.09.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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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대통령과 총리가 연이어 의회에서 일자리 관련한 발언을 했습니다. 대통령은 향후 몇년 간 일자리가 최우선 과제라고 했고, 총리는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외국기업유치와 외국인 유입에 반대할 수만은 없다고 했습니다. ⓒ 스트레이츠 타임즈 화면 갈무리

 
지금 싱가포르는 코로나19 문제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으면서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격론이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4일, 할리 마 야콥 대통령은 새로운 의회 개회식 연설을 통해 실업문제에 대한 심각성에 정부도 인식을 같이 하고 있으며, 일자리 문제가 앞으로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최우선 순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흘 뒤인 8월 27일, 조세핀 테오 노동부 장관은 내국인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외국인 취업자의 급여 기준액을 올린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외국인이 취업비자를 받으려면 일정 금액 이상의 임금을 받는 경우에만 가능한데, 이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고급 인력에게만 취업비자를 주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렇다면 내국인의 실업률과 외국인 취업자의 급여 기준액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국인의 취업을 보다 어렵게 만들어 양질의 일자리를 내국인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외국인의 취업 제한이 내국인의 실업률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는 싱가포르의 인구 구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019년을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인구는 570만명 수준인데, 그 중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는 400만 명 정도이고 나머지 30% 가량이 외국인 취업자와 그 가족, 그리고 유학생 등입니다.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인구 구성. 인구의 30% 이상이 외국인 체류자이고, 노동인구의 40%가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 싱가포르 노동부 (MOM)

 
인구가 적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외국인 노동력을 끌어 쓰고 있는데 그 수가 약 143만명으로, 싱가포르 전체 노동시장의 40% 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자 싱가포르인들의 불만이 외국인 취업자들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취업자가 받을 수 있는 비자의 종류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급 인력이 받는 EP(Employment Pass), 경력이 있는 기능 인력이 받는 S패스(SPass), 그리고 싱가포르 사람들이 꺼려 하는 건설현장이나 환경정리 등의 일을 위한 워크 퍼밋(Work Permit).

이 중에서 EP나 S패스를 가지고 일하는 외국인 취업자 약 40만 명이 이번 급여 기준액 상향의 대상입니다. 전문직 종사자로 EP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월급이 3900달러(약 340만원) 이상이어야 했는데, 이번 조치로 월 4500달러(약 390만원) 이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금융권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그 금액이 5000달러 (약 430만원)로 더 높습니다. 기능직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S패스를 위한 최저 월급은 기존의 2200 달러(약 190만원)에서 2400 달러(약 206만원)로 올랐습니다.

이제까지는 싱가포르의 기업들이 내국인을 채용하는 대신 동남아 인근의 국가에서 고학력 전문직 경력자들을 낮은 급여를 주고 뽑아 썼는데, 비자 발급이 가능한 금액을 올려버림으로써 앞으로는 높은 급여를 주고서라도 꼭 필요해서 뽑아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내국인을 채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발표가 난 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이번에 새로 구성된 의회에서는 이 금액도 너무 낮다며 기술 및 전문 서비스 분야에 대해서는 급여 기준액을 추가로 인상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가 하면, EP의 경우 쿼터제를 실시해서 일정 수 이상은 뽑지 못하게 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여기에 대해 노동부 장관은 9월 1일 의회 답변을 통해 비자 쿼터제는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제한하고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대신 기업들이 직원을 해고하는 과정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다른 필요한 조치를 충분히 취했는지, 외국인과 내국인 사이에 차별은 없었는지 등을 조사해서 해고를 최소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의회에서 실업률 문제로 격론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노동부 장관은 실업의 위기에 있는 내국인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던 중에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이야기 하던 중 감정이 격해진 노동부 장관이 눈물을 보이고 있습니다 ⓒ 스트레이츠 타임스 영상 캡처

 
이 문제에 리센룽 총리까지 나섰습니다. 9월 2일 진행된 의회 연설을 통해 총리는 싱가포르 정부가 외국기업을 유치하고 외국 인재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일자리 창출과 싱가포르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창출했기 때문"이라며, 싱가포르 정부가 외국인 취업자의 비자 문제와 관련한 "정책을 조정하더라도 더 이상 외국인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싱가포르 총리가 현대자동차의 싱가포르 투자를 예로 들면서 외국기업의 투자유치가 싱가포르의 일자리에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채널뉴스아시아 뉴스 화면 갈무리

 
리센룽 총리는 연설 도중 코로나19로 인한 침체된 경제 환경에서도 여러 외국 기업이 싱가포르에 관심을 표명했다면서 성공적으로 외국 기업을 유치할 경우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현대자동차가 싱가포르에 설립할 전기자동차 공장을 꼽았습니다.

싱가포르 총리가 외국 기업 투자 유치의 성공 사례로 한국 기업을 언급한 것은 싱가포르에서 차지하는 한국 기업의 위상을 보여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싱가포르가 외국 기업 유치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실업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싱가포르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19 이후로 실직한 이들에게 보조금으로 3개월 동안 월 최대 800달러(약 70만원)이 이미 지급이 되었고, 소득 수준 하위 20%의 경우 재산 정도에 따라 3000달러가 한번에 지급되기도 했습니다.

항공과 관광 분야 등 타격이 큰 산업 분야의 경우 고용을 계속 유지할 경우 임금의 50%, 그 밖의 다른 산업 분야의 경우는 10%에서 30%까지 정부가 임금을 보조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 직원을 고용하는 경우에는 40세 미만인 경우 임금의 25%, 40세 이상인 경우는 50%를 일년 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싱가포르의 실업률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총리와 대통령, 의원들이 모두 나서서 최우선 과제로 삼고 이런 대책을 내놓고 있는 걸까요?

2020년 2분기 싱가포르 전체 실업률은 2.9%로 지난 10년 중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2019년 실업률 2.3%에 비해서 0.6%가 증가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비중이 30% 정도 되는데, 그 인원을 제외한 내국인의 실업률은 3.9%입니다. (2019년은 3.1%)
 

e-나라지표에 나와 있는 한국의 실업률 추이. 코로나 이후 점점 상승하고 있습니다. ⓒ 통계청

 
이 숫자만 보면 이게 높은 건지 낮은 건지 잘 판단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2월 한국의 실업률은 3.4%였고, 2020년 6월의 실업률은 4.3%입니다. 싱가포르의 전체 실업률과 비교하면 2020년 2분기 한국의 실업률이 1.4%포인트가 높고, 싱가포르 내국인만의 실업률 3.9%와 비교해도 한국이 0.4%포인트가 높습니다.

싱가포르 내국인의 실업률 3.9%에 총리와 대통령이 의회에 나와 일자리 문제를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는 다짐을 하고, 노동부 장관은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대통령이 매일 점검한다는 일자리 현황판의 9월 5일 상황입니다. 실업률은 오르고 고용률과 취업자 수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 일자리 위원회

 
한국은 어떤가요? 문재인 대통령은 최임 초기 "대통령이 매일 일자리 상황을 점검"한다면서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대통령과 비서관들은 코로나 이후 높아진 실업률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 조용할까요? 정부는 코로나 확산과 의사들 파업 문제만으로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고, 국회에서는 일자리 문제 대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휴가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경우처럼 책임 있는 관리의 눈물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싱가포르보다 사정이 더 나쁜 상황에서도 그 누구 하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답답할 뿐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못 사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없어서 못 사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그들의 낙심이 분노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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