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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7.29 08:40 수정 2020.07.29 08:40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국회·청와대·정부부처 모두를 세종시로 이전하자는 '행정수도 이전'을 공론화했다. 사진 왼쪽부터 국회의사장, 청와대, 정부서울청사. ⓒ 오마이뉴스


"지역에서 조금이라도 잘난 사람은 다 서울로 보내려고 하는 이유가 대체 뭐예요?"

지난해 경남 지역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집단심층면접(FGI)를 한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경남에 사는 청소년들은 성장하는 동안 부모님과 주위 어른들로부터 "열심히 노력해서 꼭 서울로 가라"는 말을 듣게 된다고 한다. 지역에 남고 싶다고 하면 "네가 남들보다 뭐가 부족해서?"라는 말이 돌아온다. 심지어 지역 대학에 다니는 청년은 부모님으로부터 "네가 여기 남아 있으니 꼭 실패한 사람인 것 같아서 민망하다"는 말도 들어봤다고 했다. 

한 청년은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을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찾아내서 뭐라고 좀 해 주고 싶어요"라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이후로 제주도, 충청도, 강원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똑같은 얘기들이 나왔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에게는 '어서 떠나라'는 압력이 일상이 돼 있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의문을 표한 것 중 하나는 왜 지자체마다 예산을 투입해서 청년들을 수도권으로 밀어내는 장학제도를 운영하느냐는 것이다. 지역 고등학교 졸업생 중에서 서울의 소위 '명문대'에 들어간 순서로 장학금을 주고, 서울에 지어놓은 장학관 기숙사에 들어갈 특전을 주는 식이다.

심지어 지역을 떠났다가 한참만에 귀농 등의 이유로 돌아오는 사람에게도 혜택을 주는데, 지역 안에서 진학하고,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돌아가는 것이 거의 없다.

너무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수도 있다. "아니, 잘난 사람일수록 서울로 보내는 것이 지역에도 더욱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그게 왜 지역에 도움이 되는 건지를 알 수가 없다.

그 차이는 바로 '출세'(出世)라는 개념에서 나온다. 이 개념에 대한 이해 차이, 즉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사이에서 출세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데에 이 미스터리를 풀 열쇠가 있다.

출세
 

서울대학교 정문 ⓒ 연합뉴스

 
최근에 일부러 여러 세대의 사람들에게 이 '출세'라는 말을 어떤 어감으로 이해하는지를 물어봤다.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여전히 이 말을 긍정적인 것으로 쓰고 있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출세해야지", "그래, 너도 이제 출세할 때가 됐지", "나중에 출세하면 잊지 말고 후배들도 챙겨주고 그래", 이런 식이다.

40대 전후 사람들은 대체로 약간의 조롱하는 투를 담아서 쓴다. "너 이제 출세했다 이거냐?", "그 선배 아직도 그렇게 출세하려고 애쓰냐?" 이런 식이다. 30대 이하의 세대는 어떨까? 출세가 긍정적인 말이었다는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출세주의자'라는 식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 물불 안 가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만 쓰이는 줄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왜 이런 간극이 생겼을까? 본래 출세라는 개념 자체가 전근대적인 사회 작동 원리인 '정실자본주의'(情實資本主義)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50대 이상의 사람들이 살아오는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출세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명제가 모두 인정됐다. 첫째, 출세한 사람은 부와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다. 둘째, 출세하는 데는 집안과 친지와 학교 및 지역 사람들의 조력이 어느 정도 있었으니, 출세를 통해서 얻은 권한으로 얻게 된 것을 이들과 나눠야 한다. 예를 들어 일자리, 사업 기회, 투자 기회 등이 생기면 이를 적극적으로 배분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출세해서 그런 기회가 눈에 보이는데도 나누지 않고 원칙대로만 처리한다면 지극히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공부를 잘 해서 어떤 직위에 올라서 특정한 권한이 생긴 엘리트는 이를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과 친지, 학연과 지연 네트워크를 위해서 쓴다. 이를테면 고향 부모님이 "네 사촌 그 아이가 참 성실한데 취업을 못 해서 삼촌이 걱정이 많으시니 어떡하냐"고 하소연하시는 것도 들어 드려야 하고, 대학 동창이 "우리 같이 활동했던 OOO가 고생 많이 하다가 겨우 사업 하나 차렸는데 어떻게든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 하는 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말을 소홀히 했다가는 일가친척과 동문들 사이에서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라고 욕을 먹을 것이다. 그래서 사촌 취직자리도 소개해 주고, 동창의 사업체가 납품할 만한 데도 알아봐 준다. 이것이 바로 정실자본주의지만, 이 사람은 그런 문제의식을 가질 리 없다. '나 정도면 충분히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도와주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자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는 동안 같은 조직 내에서 성실하게 일 하는 비정규직 또는 별도 직군의 직원이 자신들의 네트워크와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은 임금을 받다가, 낙하산으로 밀고 들어오는 인사에 밀려서 이유도 모르고 해고된다는 사실까지는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다. 실력보다는 학연·지연으로 경쟁해야 살아남는 경제 구조 속에서 기업과 산업의 진짜 경쟁력은 침식당하게 된다는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속한 진짜 공동체는 조직이나 국가가 아니라 '출세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면, 지역에서 왜 청소년과 청년들을 공부 잘 하는 순서대로 서울로 보내며, 그들에게 각종 지원까지 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지역 사람들을 취직시켜 주고, 사업 및 투자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지역으로 밀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울에서 오는 자원을 나눠서 먹고 사는 편이 지역 안에 있는 자원만 가지고 잘 살려고 애쓰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균열 

<불평등의 세대>라는 책을 통해서 86세대의 사회 자원 독점을 화두에 올린 이철승 서강대 교수의 비판 지점도 같은 맥락이다. 한때 나라를 위해서 안정된 직장을 뒤로 한 채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퇴학과 수배, 고문까지 감수했던 86세대였지만, 그들에게도 출세주의 그리고 정실자본주의의 문화는 내재돼 있었다.

어느덧 민주화가 이뤄지고 언론과 대학, 정치권과 기업들의 권력 중심부에 그들의 '동년배', 그리고 '친구의 친구'가 즐비하게 됐다. 이 네트워크를 통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된 이상 일자리와 사업, 투자 기회들이 보이면 이 네트워크 안에서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 자녀의 대학 입시를 위해서 인턴·실습 기회들을 나누는 것도 포함된다.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왜 도덕성을 중요시한 86세대 안에서도 '미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올까 의문도 이 지점에서 조금 풀린다. 출세한 '남자'가 누릴 수 있는 것 중에는 성적(性的)인 욕망을 풀 권한도 있다는 것이 암묵적인 상식이었던 것이다. "남자가 그러려고 출세하지, 뭐 하러 출세하겠나?"라는 농담이 한 때 별 거부감 없이 사용되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 욕망은 혼자 푸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있어야 하고 출세로 획득한 '권한'을 이용해서 쉽게 풀면 성폭력이 되고 마는데, 그 사실을 어떤 사람들은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출세주의는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해서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역할만을, 불편부당하게 수행해야 할 뿐이다. 일자리와 사업과 투자 기회 같은 것들을 공정한 절차 없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다. 오히려 가족과 지인들에게 그런 기회가 돌아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이것이 21세기의 상식이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들, 취업 청탁으로 인해 국회의원, 금융지주 회장까지 재판을 받는 사례들을 보면 출세주의가 깨졌다는 신호가 선명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를 감지 못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방 도시의 기성세대들이 특히 그럴 것이고, 때문에 지역 청소년들을 성적 순으로 서울로 밀어 올려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허상
 

더불어민주당 행정수도완성추진단 우원식 총괄단장과 박범계 부단장, 김태년 원내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행정수도완성추진단 1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이런 와중에 서울의 부동산 값을 잡으려면 주요 대학과 기업, 공공기관들을 지방으로 내려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또 나왔다. 지금까지 시도된 혁신도시·기업도시 등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삶의 질을 높였는지 아니면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교통편만 발달시켰는지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이런 주장을 또 하는 것은 그야말로 포퓰리즘이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그동안 나름대로 자구적인 재생 노력을 하던 지역들도차도 서울의 주요 시설 중 하나라도 '하사'받기 위해 서울만 바라봐야 하고, 출세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먼저 정보를 얻은 사람들, 주로 출세 네트워크의 핵심에 닿으려고 노력해 왔던 사람들은 개인적인 이득도 볼 것이다. 이렇게 다시 출세주의는 강화될 뿐이다. 본연의 목표였던 지역균형발전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는 '서울'에 어떻게든 인맥을 대야 한다는 열망은 더욱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주요 국가 시설과 대학, 기업을 싹 다 몰아서 어느 지역(예를 들어 세종시)에 집중적으로 배치한다면 혹시 모른다. 서울의 위상이 지금보다 낮아질지도.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일까? 그 지역에 또다른 서울이 생겨나는 것이고, 사람들의 가치관과 행동 양태는 그대로 유지된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사람은 서울이나 세종시로 보내라'는 식으로 변주가 약간 이뤄질 뿐이다.

따라서 공고한 '서울 공화국'을 깨트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기대 살아온 가치체계를 바꾸는 일이다. 지역 출신의 잘난 사람 하나를 높이 밀어올리려 하기보다는, 여기서 계속 살아갈 사람들이 내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희망

유일한 희망은 모순적이게도 우리가 상당한 위기 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와 달리, 적당하게 배분할 만한 여분의 일자리나 자원 따위는 거의 없다. 본격적으로 접어드는 마이너스 성장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위로 올라갈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근 보편적 사회안전망 논의가 시작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살든 똑같이 누릴 수 있는 안전망이 생긴다면, 앞으로는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 때 삶의 질이 더 높아질 수 있다.

또한, 기후위기의 경고를 분명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서울보다는 지방에서의 삶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지속가능한 삶,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삶, 공동체에 기여하는 소박한 삶을 지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역마다 그런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다.

앞에서 만났다는 지역 청년들 중 상당수가 이미 '로컬 크리에이터' 등 이름으로 각자의 고유한 삶의 방식과 비즈니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을 '멋지다', '힙하다'고 여기고 모여드는 청년·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서울 공화국'을 깨트리는 틈은 여기서부터 생겨나지 않을까. 

그런데도 기성세대가 이들을 "서울의 대기업·공기업에 못 들어갔으니까 지방에서 저러고 있겠지"라는 식으로 재단하고 평가하려 한다면 어떤 긍정적인 변화도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변화에 필요한 정책, 제도, 자원 등을 책임지는 사람들일수록 출세주의에 젖은 채로 살아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요 공직자들에게 있어서 서울에 아파트를 가졌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여받은 권한과 자원의 작은 부분이라도 출세주의에 따라서 쓰고 있지 않은지 제대로 감시하는 일이다. 한동안 그런 자정 과정을 거친 뒤에, 어느 세대의 사람이건 '출세'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게 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낡은 세계와 작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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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기자,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홍보팀장으로 일했고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경제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LAB2050 연구실장으로 일하며 '좋은 일'을 주제로 연구해 왔다. 현재는 일in연구소 대표이며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