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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7.27 08:01 수정 2020.07.27 08:01
1년에 형사고소 60만여 건, 민·형사 소송 6백만여 건. 대한민국에서 송사는 더 이상 특별한 경험이 아닙니다. 최근엔 정치, 경제, 문화적 주요 이슈들도 법정에서 판가름 나기 일쑤입니다. 작게는 수십만 원의 절도부터, 크게는 수천억 원대의 횡령, 대통령 탄핵까지 법적 분쟁이 되는 세상입니다.

현직 법원공무원이자 법조칼럼니스트 김용국이 자신의 일터 법원에서 겪은 일을 직접 들려드립니다. 그는 20년 넘게 민사, 형사, 이혼 법정에서 수많은 당사자들과 변호사들을 만났고, 판사들의 고뇌를 직접 목격하고 법정에서 조서를 기록해 왔습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과 법률 지식을 바탕으로 생생한 재판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법원의 속살을 보여드립니다.[편집자말]
[프롤로그]
15년 가까이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매체에 법과 관련된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시작하기까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왜였을까요?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제가 20년 넘게 몸담고 있는 일터, 법원을 드러내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재판을 직접 참여하고 기록하면서 느꼈던 보람과 기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부끄러운 과거, 재판 당사자들을 아프게 했던 사연까지 들춰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적잖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고심 끝에, 제가 경험한 법원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법원을 찾아온 이들의 울고 웃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쓰기로 했습니다. 소재는 사람이 될 수도, 재판이 될 수도, 판결이나 사법제도, 수사기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담담하게 <법원에서 생긴 일>을 써내려가려고 합니다.

굳이 전관예우, 사법파동, 법조비리, 사법농단과 같은 단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법조계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법조계가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 기자의 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법원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20년 전 친구의 한 마디 "법원 직원이 월급만으로 사냐?"

"야, 법원 직원이 월급으로 사냐? 월급 말고도 생기는 것 많잖아? 술도 많이 얻어 마실 거고, 어려울 때 판사 덕도 볼 거고. 그럼 됐지, 무슨 박봉 타령이야!"

21세기를 한 두 해 앞두던 때였으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대학 졸업 후 동기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자리였다. 다양한 일터에서 일하던 친구들과 서로 근황을 주고받았다. 법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내가 "박봉에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한 친구가 이렇게 쏘아붙였다.

화를 낼 수도, 그렇다고 순순히 인정할 수도 없었다.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던 그때 느낀 수치심은 아직도 또렷하다. 술기운으로 불콰해진 얼굴 때문에 심경을 감출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사실 그랬다. 내가 법원에 들어갈 당시는 IMF 구제금융 직후라 경기는 나빠지고 소송은 폭주하여 법원 일이란 게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렇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었다. 반면 변호사나 법무사는 송사 건수에 비례하여 수입이 급증하던 황금기였다. 그래서 수백 건의 사건을 법원에 한꺼번에 접수하면서 미안하다며 '식사비'를 주는 법무사가 있었고, 야근을 하면 고생한다면서 밥과 술을 사는 법률사무소도 있었다. 때로는 기록 복사를 부탁하면서 규정 이상의 복사비를 슬그머니 놓고 가는 변호사도 있었다. 지금으로선 이해할 수 없겠지만, 당시로선 '동업자'들의 미덕쯤으로 정당화되는 분위기였다.

재판이 끝나면 판사와 재판부 직원들의 회식도 잦았다. 형사 재판부 저녁 회식 때는 같은 법정에 들어오는 공판 검사가 '게스트'로 동석하는 일이 잦았다. 원활한 재판 진행을 위해 법원과 검찰이 친분을 쌓고 협조해야 한다는 듯한 문화였다. 여기에 가끔씩 판사를 하다가 퇴직한 변호사가 '선배'의 자격으로 찬조출연하기도 했다. 그들은 재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상석에 앉는 대가로 수십만 원의 술값을 계산하는 호기를 부렸다. 직원들의 회식 때는 법무사들이 '협찬'을 하고 택시비를 쥐어주는 일도 다반사였다.

퇴직 선배가 현직 후배에게 밥 사는 것이 무슨 흠이라고?

그때는 그런 분위기였다. 아니,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법무사는 법원 직원 출신, 변호사는 판사 출신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수입은 현직의 몇 배 혹은 10배 이상이었던 시대였다. 친정을 떠난 부자 선배가 가난한 현직 후배들에게 밥을 사는 것이 무슨 흠이 되느냐고 되묻던 시대이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20년 전 공직사회의 청렴도를 감안하더라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엄밀한 의미로는 '접대'였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단순히 밥을 사고 술을 사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극히 일부라고 하지만 개중에는 친분을 매개로 '사건'과 관련된 청탁이나 거래가 오가기도 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말단 직원에 불과했고, 매일 격무에 시달리던 나로서는 '대세'를 거스를 힘도 없었고, 또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일을 빨리 끝내고 퇴근하는 게 상책이었다. 게다가 지극히 현실적으로, 당시 처자식이 있던 나는 야근을 하면서 수십만 원에 불과한 박봉을 쪼개서 밥과 술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박봉과 격무에 대한 보상으로 '접대'를 용인한 적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가끔씩 '의정부 법조비리(1997년)', '대전 법조비리(1999년)'와 같은 대형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부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편에선 "극히 일부의 판검사나 변호사들이 무리를 해서 벌어진 행동" 쯤으로 치부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조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여기서 '조심하라'는 말은 '눈에 띌 만한 무리한 금품수수나 사건청탁을 조심하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렇게 살던 중 "법원직원이 월급으로 사느냐"는 친구의 조롱을 들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런 말을 들으려고 법원공무원이 된 건 아니었는데.' 마치 세상 사람들이 다들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것처럼 수치스러웠다. 이때부터 나는 그 전과 달라지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왔다고 세상이 호들갑을 떨던 2000년대 초반, 나에게 충격을 안겨준 사건 2가지를 경험한다.

"판사님, 그 사건이 무죄가 나오면 우리 지청장님이..."

형사재판부 실무를 맡고 있을 때였다. 우리 재판부 법정에 들어오던 공판검사가 회식자리에 합석했다. 그는 훤칠한 키에 달변으로, 법정에서 파렴치한 피고인들을 보기 좋게 휘어잡았다. 재판장은 가끔씩 이 검사를 회식에 초대했다. 그는 판사들 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술을 권하면서 인상 좋게 웃어보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 쯤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변한 검사가 이야기를 꺼냈다.

"부장(판사)님, 엊그제 재판한 A 피고인 사건 있잖습니까? 그 사건, 우리 지청장님이 상당히 신경을 쓰시는 사건이거든요. 다른 건은 몰라도 그 건은 무죄가 나와서 안 된다, 이렇게 여러 번 말씀하셔서 제가 조금 곤란한 상황입니다. 아무튼 잘 검토해주셨으면 합니다. 차라리 다른 건을 무죄로 하더라도……."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부장판사는 몇 차례 헛기침을 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 뒤, A 피고인이 무죄가 되었는지, 유죄가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또, 그 사건이 무죄가 되면 왜 지청장이 곤란한 것인지도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재판부 회식 자리에 검사가 참석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를(지금은 재판부 판사와 검사의 회식은 사라진 문화이다).

재판장의 '형님', 다음날 법정에 나타나다
 

법정 ⓒ 추광규

 
또 하나의 사건도 재판부 회식 때 발생했다. 법원은 통상 1년, 2년 정도에 재판부가 바뀐다. 그러다 보니 판사와 법원 직원들의 인사이동이 잦은 편이다. 당시만 해도 인사가 나면 새로 온 사람을 환영하는 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법원의 자연스런 문화였다. 당시 재판장인 B 부장판사는 20년 경력의 고참이었는데 경력이 짧은 나를 환대해주었다.
 
그는 며칠 후 고기 집에서 저녁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배석판사들과 재판부 직원 몇 명이 함께 했다. 떠나는 사람과 새로 오는 사람이 섞여서 마지막으로 정을 나누는 자리였다. 다들 거나하게 취해갈 무렵 누군가가 새롭게 술자리에 등장했다. 다들 어리둥절한 가운데 B 부장판사만이 "형님, 어서 오세요"라며 반갑게 맞았다. 술자리는 약간 어색해졌지만 그저 간단하게 수인사를 했을 뿐 그가 누구인지, 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아무도 물어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낯선 '형님'은 우리에게 술을 한두 잔씩 권하더니 2차로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형님'은 'XX클럽'이라고 이름 붙은 술집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양주가 나오고 곧이어 여종업원이 하나 둘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단란주점 정도 되는 듯싶었다.
 
그제야 나는 '형님'이 왜 합석하게 되었는지 눈치를 챘다. B 부장판사는 직원들에게 멋진 저녁을 사고 싶어서 자신보다 여유가 있는 '형님'을 불렀던 것이다. 저녁밥과 술값을 누가 계산했는지는 뻔한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분위기 탓인지 이미 마신 술도 다 깨어버린 상태였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얻어 마시는 술이 편할 리가 있겠는가. 동료와 함께 적당히 기회를 보아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왔다. B 부장판사와 '형님'이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지만 나까지 공짜 술을 얻어 마실 이유가 없었다.

여기까지는 B 부장판사의 지나친 호의로 여길 수도 있었다. 정작 문제는 다음날 벌어졌다. 인사이동 후 처음으로 재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오전 재판이 끝나갈 무렵,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법정에 눈에 띄었다. 전날 원치 않는 술자리에 함께했던 그 형님이었다.
 
형님의 정체는 변호사였던 것이다. 전날 밤만 해도 '형님-동생'으로 불리던 두 사람 사이의 지위는 어느새 '변호사님-재판장님'으로 역전되어 있었다. 상대방 변호사는 이런 사정을 모르는 채 열심히 자신의 의뢰인을 변호하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B 부장판사와 '형님' 변호사, 그리고 나뿐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은 반면교사가 되어 지금까지 나를 돌아보게 한다. B 부장판사나 법원당국에 정식으로 항의하지 못한 일이 후회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도 그 후로 회식 자리에 이런 스폰서를 끌어들이는 판사들을 한 번도 보지는 못했다.

이때부터 나의 법원생활 목표는 단순하고 분명해졌다. 주위사람과 가족들에게 떳떳한 법원공무원이 되리라. 나의 행동의 잣대는 떳떳한지 아닌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법원에 와서 판사에게 '굽실거리는'(이보다 더 이상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실은, 법원과 판사를 존중 혹은 존경해서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속으로는 욕을 할지언정 겉으로는 떠받드는 척 해야 했던 것이다. 칼자루를 쥔 쪽은 법원이었기에.

법원이 변했다고? ...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내가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를 굳이 여기에 꺼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현재를 바라보려면 과거를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부패와 부정도 애초엔 선의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아주 온화한 얼굴로 다가와서 조금씩 개인을 옭아매고, 더 나아가 조직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20세기말 법원생활을 시작해서 21세기에 와 있다. 불과 20여 년의 기간이지만 그 사이 법원은 마치 한 세기가 통째로 지나간 듯 급속도로 변했다. 더 이상 밥을 사겠다는 사람도 없고, 청탁을 할 수도 없는 문화가 되었다. 판사에게 비공식적인 루트로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변호사나 검사도 표면적으로는 없어졌다.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하겠다는 이유로 법정이 아닌 판사실에 들어가 독대하던 특권을 누리던 전관 변호사들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판사는 사건과 관련 없는 사적인 모임까지 신고하도록 바뀌었다. 그리고 김영란법을 비롯한 각종 법령과 규정도 촘촘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법원을 향한 불신의 눈초리. 2020년 오늘도 마찬가지다. 법원사람들 상당수는 그것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억울해한다. 정말로 현재의 사법불신은 오해에 불과할까.

(*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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