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3 18:46최종 업데이트 20.06.2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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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아르케>는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의 본질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추구하는 자리입니다. [편집자말]
어제까지 4차 산업혁명으로 떠들썩하던 세상이 이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도배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가 무엇인지, 그 세상은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백인백색이지만 누구나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는 지금 파편적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미국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선진국이라 불린 나라들의 지위나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세계화는 진전되지 못할 것이다 등등.


트럼프 미 대통령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G7을 G11이나 G12로 확대 개편할 필요성을 피력한 것은 이 변화의 양상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사건이었다. 어제까지 '헬조선'이었던 우리가 갑자기 코로나 방역 성공으로 지상낙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 것도 참 놀라운 변화다.

인류의 본격적인 21세기는 내용적으로 봤을 때 2020년에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2001년은 그저 숫자로서의 임의적인 기준일 뿐이다. 2001년이 시작될 무렵 세계질서가 크게 변하는 일은 없었다. 여기서 거꾸로 추적해 보자면 지금의 세계질서가 만들어진 때는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였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19세기의 연장일 뿐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이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100년의 간격을 두고 전쟁과 전염병이라는 아주 전통적인 인류의 위협요소로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것도 흥미롭다.

늘 하는 말이지만 전환기의 중요한 특징은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기존의 법칙, 규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현대물리학이 어떻게 인간의 인식을 극적으로 바꾸었는지 잘 알고 있다. 특히 인간의 언어가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를 기술하는 데에 전혀 적합하지 않음을 깨닫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당황했다.

바이러스의 규칙
 

코로나바이러스 모식도(왼쪽)와 단면도. 유전물질과 단백질(RNA and N protein)이 껍데기(Envelope)에 쌓여 있다. 껍데기 바깥쪽으로는 당단백질(Spike Glycoprotein)과 효소(Hemagglutinin-esterase dimer)가 자리한다. 사람 등 숙주의 세포막을 뚫는 역할은 당단백질과 효소가 맡고 있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모습을 보면 자연 그 자체의 언어와 규칙을 그대로 잘 따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바이러스는 유전물질과 단백질로만 구성된 가장 단순한 구조의 반생명체이다. 조건이 맞으면 자기복제로 증식하고 맞지 않으면 사멸한다. 바이러스에게 인종이나 경제나 정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방역을 잘 하려면 바이러스의 습성에 맞춰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인간의 언어나 인간세상의 규칙은 바이러스를 막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지금 우리 문명의 가장 취약한 지점에서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바이러스의 무자비한 비인간성 때문이다.

환기도 잘 안 되는 다닥다닥 붙은 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는 환경을 우리 인간은 참을 수 있다.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사업주의 이해와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자의 처지가 맞아 떨어지면 그런 바이러스 친화적인 공간은 어떻게든 어디서든 탄생하고 유지된다.

싱가포르의 외국인 노동자들 집단거주지도 비슷한 사례이다. 20세기의 자본주의 세상은 방역보다는 이윤창출에 최적화되어 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그러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윤창출을 극대화하려는 노동조건은 대체로 바이러스에 대단히 유리하다. 인간이 인간답게 노동할 환경은 바이러스나 세균에는 그리 좋지 않은 조건임을 아마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불결한 곳은 피하고 싶고 쾌적한 공기와 널찍한 공간을 더 좋아한다. 아프면, 누구나 쉬고 싶다. 바이러스의 원리와 규칙을 잘 아는 전문가의 조언을 잘 들은 한국은 대체로 방역에 성공했고, 그보다는 인간의 원리와 규칙만 탐닉했던 미국은 방역에 실패했다. 코로나 팬데믹의 일차적인 교훈은 현상의 근본원리에 천착하는 것이다.

분단된 한반도는 20세기의 모순이 가장 상징적으로 응축된 공간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단지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 감염상태를 벗어나는 순간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새로운 세계질서가 들어서는 시대라면, 한반도 내지 동북아의 신질서는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주제이다.

20세기의 한반도가 비극의 주연이었던 이유는 강대국의 논리와 규칙에 따라 분단되고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일차적인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이 가장 큰 피해자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냉전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마당에 유독 한반도에만 여전히 냉전의 원리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마치 자연의 원리를 무시한 채 인간의 편의대로만 대처하려다 막대한 인명피해를 양산하고 방역에 실패한 것과도 같다. 그 사회의 보호받지 못한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이 남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와 남북관계
 

폭파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북한이 지난 16일 오후 2시 50분경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연락사무소 뒤쪽 15층짜리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외벽 유리창이 폭파 충격으로 부서지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에서 정말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당사자의 논리와 규칙이 보다 중요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냉전의 논리, 강대국의 논리로만 남북관계를 끌고 가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국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회고록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비핵화 협상이 '한국의 창조물'이며 미국의 전략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보수가 미국의 전략이 반영되지 못함을 한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국의 보수는 이런 볼턴을 열렬히 응원하고 나섰다. 최근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사건과 한데 묶어 비핵화협상과 대북정책이 파탄에 이르렀으니 다시 제재와 압박으로 되돌아가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놀랍게도 한국의 보수에는 '미국의 전략'만 있고 '한국의 창조물'이 없다. 한국보수의 근본적인 문제는 '코리아 퍼스트'가 아니라는 데 있다.

볼턴이 지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한국의 창조물'이라고 평가할 정도였으면 오히려 이는 그간 한국정부가 외교적으로 얼마나 큰 성과를 냈는지를 방증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국내정치와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 때문에 하노이 회담을 망쳤지만, 우리가 당사자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여전히 강대국에게만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세계경찰 역할을 포기한 미국이 독일에서 주둔군을 감축하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주한미군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오래 전부터 한반도의 선지자들은 주한미군 없는 한반도와 동북아를 준비하자고 말해왔었다. 여전히 주둔하더라도 그 규모와 성격은 바뀔 수밖에 없다. 동북아 질서 전체에 대한 '한국의 창조물'이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누구나 인정하듯 북미관계가 그렇게 급진전될 수 있었던 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과 의외성이 큰 역할을 했다. 트럼프는 그 자신이 정치 신인이었을 뿐더러 미국에서 주류 정치세력들에 대한 혐오를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모든 정책을 지난 오바마 행정부와 반대로 가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기존의 문법과 프로토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한반도 냉전 해체의 열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아직도 한국전쟁이 종전되지 않은 현실이 이해되지 않으리만큼 놀라웠고 자기 나라 군대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남의 나라에 주둔하는 상황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냉전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트럼프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판단이다. 철저하게 반과학주의로 일관하며 파리기후협약도 탈퇴해 지구에 엄청난 위협을 안겼으며, 감염병 전문가의 말도 듣지 않아 미국을 지금 저 지경으로 만든 트럼프의 유일하게 비이성적인 유효성이 있었다면, 그건 본인의 말마따나 북미 간 전쟁을 막고 정상회담으로 협상의 물꼬를 튼 게 아닐까 싶다.

한국의 창조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자료사진) ⓒ 연합뉴스

 
혈세를 들여 만든 멀쩡한 건물을 기분 나쁘다고 홀랑 터뜨려버린 북한의 행위는 누가 봐도 잘못이다. 사춘기 시절 질풍노도식의 외교는 오래가지 못한다. 다만 북한의 답답함이나 억울함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노이에서 뺨 맞고 여태 어디서 제대로 된 화풀이도 못한 데다, 미국에게 사과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걸 보상할만한 대체 조치들이 작동하는 것도 아니고, 남북정상간 약속조차 잘 이행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미국에 발목이 붙잡혀 전혀 진도를 못 내고 있는 정부도 그렇지만, 총선에서 압승하고도 아직 미적대는 국회에도 불만이 있을 것이다. 햇볕정책의 계승세력이 사상 처음으로 국회 절대다수를 차지했으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방안을 준비했을 법도 한데 현실에서는 해묵은 대북전단 하나 막지도 못했으니 기대의 크기만큼 실망감이 커졌으리라 상상해 볼 수 있다.

북한의 무례하고도 폭력적인 언행을 잠시 제쳐놓는다면 (이는 분명 용납해서는 안 된다.) 무려 190석에 달한다는 이른바 범여권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는 21대 국회의 역사적인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누구나 다 알 듯이 이번 총선의 놀라운 결과는 지난 촛불혁명의 계승으로서, 그때 행정 권력의 교체만으로 이루지 못한 개혁의 법제화, 제도화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 담겨 있다. 거기에는 분명 새 시대를 맞이해야 할 남북관계와 동북아 질서도 포함돼 있다.

21대 국회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21세기를 여는 국회가 돼야 한다. 그냥 '일하는 국회'가 아니라 '일 잘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 개성의 폭발음을 들으면서 청와대뿐만 아니라 자꾸만 여의도로 눈길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제는 국회에서도 '한국의 창조물'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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