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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6.11 07:52 수정 2020.06.11 17:45
 

장혜영은 다큐 <어른이 되면> 감독이자 <생각많은 둘째언니> 채널을 운영하는 유투버로 지난 10월 정의당에 입당했다. ⓒ 장혜영

  "아주 유감스러운 답변일 수도 있지만 정치를 하셔야 될 거예요."
 
지난 21대 총선이 한창 치러지고 있을 때였다. 한 언론사 뉴미디어 채널에 고은영 당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와 함께 출연한 영상에서 내가 한 말이다. 고 후보는 이렇게 물었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정치를 선택할 수는 없는 여성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궁금해요."
 
21대 국회가 열린 지 열흘이 넘었다. 나는 지난해 10월 말 정의당에 입당해 정치를 시작했고 21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선거를 치렀다. 정의당은 가산점제도를 넘어 비례 앞순번에 과감한 청년할당을 도입했고, 그 결과 21대 국회 최연소 국회의원인 27세 류호정 의원과 33세인 내가 비례 1, 2번을 받아 의원이 되었다.
 
어두운 방 안에 스위치 켜기

돌이켜보면 너무 숨가쁜 7개월이었다. 정치를 시작한다는 것은 완만한 경사로를 오르는 일이 아니라 어두운 방 안에서 전등 스위치를 켜는 것에 가깝다. 갑자기 방 안에 불이 환하게 켜지고 방 한 가운데에 내가 있다. 그리고 나를 빙 둘러싼 사람들이 온갖 질문을 시작한다. 개중에는 아는 것도 있지만 모르는 것도 많다.

그러나 시작한 이상 중간은 없다. 초보자를 위한 '튜토리얼 모드' 따위도 당연히 없다. 가혹하게 느껴져도 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는 내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 무엇을 기여할 것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무언가를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런 척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기여하겠다고 소리치는 것이 진짜 좋은 것인지, 다른 속셈은 없는지, 사람들은 묻고 또 묻는다. 무한한 설명책임. 그런 단어를 써도 좋겠다. 
 

2019년 10월 정치활동을 결심하며 그린 만화 (출처:장혜영 페이스북) ⓒ 장혜영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 고심이 길었다. 아무리 굳센 사람들도 녹여서 엿가락처럼 휘어지게 만들거나 마른 대나무처럼 부러지게 만드는 무서운 정치의 길이 감히 내 길이라고 꿈꿔본 적 없다. 그럼에도 이 길에 뛰어든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내가 그토록 원하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우리가 서로를 돌보지 않았기에 각자도생조차 어려운 세상이 됐음을 깨달은 이후로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라도 함께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자 노력했다.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지역사회에서 격리되어 시설에서 살아야 했던 동생의 탈시설을 도왔고, 그것을 다큐멘터리로, 책으로 만들었다. 사람들 마음에 스미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의 꽃을 피워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야기가 곧장 누군가의 장애인연금이 되거나 활동지원시간이, 자립생활주택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변화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 4.15 총선 당신 선거운동을 하던 모습. 그의 지인인 뇌병변 장애 1급 지체장애인 홍현승씨 셀카를 찍고 있다. ⓒ 유성애

 
지금 당장 어떤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그 변화 없이는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다.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것은 말뜻 그대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안전해지기 위해서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운이 나쁘고 불쌍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불평등에 고통받는 시민으로서 다른 시민들 앞에 자기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적당한 시혜와 동정에 의탁하며 살아가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들 곁을 서성이다 나도 그만 마음이 성큼 움직이고 말았던 것 같다. 권리를 위한 투쟁에 있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기로, 선거권 뿐만 아니라 피선거권을 행사해보자고 말이다.

21대 총선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의당 당내 경선이 막 시작되던 무렵 국내에 코로나19 감염이 본격화됐다. 첫 온라인 정견발표를 준비하는데 경북 청도대남병원  폐쇄정신병동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온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첫 사망자는 20년을 그 병동에 갇혀 살아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대체 어떤 시간들과 관계들로 채워져왔을까.

장례조차 치를 수 없게 된 그 죽음과 함께 코로나19는 내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소스라치도록 다시 일깨워주었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 이미 취약한 사람이 가장 취약하다는 것. 우리가 이것을 바로잡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것. 지금 이 순간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며, 나는 지금 그 변화를 만들 힘을 갖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것. 그리고 절망할 틈 없이 힘을 향해 나아가고 그 힘으로 진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지만 정치를 할 생각은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다시 질문을 받는다 해도 내 답변은 같다.

"정치를 하셔야 될 거예요.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두렵다면. 스스로 내가 원하는 미래를 이끌어내고 싶다면."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장혜영님은 21대 국회의원으로 정의당 혁신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2019년동안 (재)와글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청년정치와글와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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