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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3.24 14:45 수정 2020.03.24 14:45
술을 잘 빚으려면, 누룩을 잘 선택하거나 잘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누룩을 직접 만들어 쓰는 양조인과 사서 쓰는 양조인의 차이는, 양념을 직접 만들어 쓰는 요리사와 사서 쓰는 요리사의 차이쯤 된다. 격이 다르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잘 만들려면 재료의 지배력이 커야 한다. 막걸리의 기본 재료는 쌀, 누룩, 물이다. 쌀과 물은 공동체의 자산이라서 내 쌀과 내 물을 설정하기 어렵지만, 누룩은 차별화된 내 누룩이 가능하다. 누룩은 온도와 습도와 환경에 따라 다양한 제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누룩은 밀, 쌀, 보리, 수수, 조, 녹두 등의 곡물로 만든다. 부재료로 연잎, 쑥, 닥나무잎, 짚 등이 사용된다. 누룩은 곡물에 곰팡이를 자라게 하여, 그 곰팡이가 생성하는 효소를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오늘은 집에서 혼자서도 만들 수 있는 쌀 누룩에 도전해보자.

집에서 혼자 만들 수 있는 누룩

준비할 재료
쌀 4㎏, 물 1ℓ, 믹서기, 단단한 종이 상자, 전기방석, 풀잎 또는 나뭇잎, 꽃


쌀을 가루내서 만드는 누룩이 이화곡(梨花曲)이다. 이화곡은 떠먹는 술 이화주를 만들 때 쓴다. 이화주는 배꽃이 필 무렵에 누룩을 만들기 시작하거나, 미리 준비해둔 누룩으로 배꽃이 필 무렵에 빚는다.
 

배꽃, 이화주는 배꽃처럼 희다. ⓒ 막걸리학교

 
지역과 일기변화의 편차로 앞뒤로 일주일 정도 차이가 나지만, 배꽃은 4월 중순쯤에 핀다. 4월 중순에 이화주를 빚으려면 지금쯤은 이화곡을 만들어야 한다. 이화주는 고려 시대 경기체가의 '한림별곡'에 나오고, 물을 아주 적게 써서 빚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날 술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화주는 고급 탁주의 한 종류로, 막걸리 빚기를 배운 사람 중에서 성격이 아주 급한 사람이 이화주에 곧장 도전한다. 그 술이 떠먹기 때문에 적은 양으로 여럿이서 고급스럽게 즐길 수 있고, 보기 드물어서 귀하고 자랑하기 좋기 때문이다. 이 술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기 좋으니, 홈파티를 위해 빚어두면 인기가 좋다.

쌀 4kg을 물에 불렸다가 가루낸다. 쌀은 2~4시간 정도 물에 불려두었다가, 30분 정도 물 빼기를 한 뒤에 가루낸다. 믹서기로 가루를 내고, 중간체로 밭쳐낸다. 집에서 만드니 쌀 입자가 좀 거칠어도 상관없다. 쌀가루를 양손에 한 줌씩 쥐어 눈싸움할 때 만드는 눈덩어리처럼, 야구공 정도 크기로 단단하게 뭉쳐본다. 이때 힘주어 뭉쳐도 뭉쳐지지 않으면, 물을 한 컵 200㎖ 정도를 고루 뿌려서 섞은 뒤에 다시 뭉친다.

쌀은 물에 불리면 20~25% 정도 무게가 늘어난다. 그런데 쌀을 체로 치고, 또 잠시 방치하면 수분이 날아가서 안 뭉쳐질 수 있다. 물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질어질 수 있으니, 단단히 쥐었을 때 뭉쳐지고 손에는 물기가 묻어나지 않는 정도라야 한다. 물기가 많으면 썩을 수 있으므로, 뭉쳐질 수 있는 최소한의 물량으로 뭉친다. 그때 물의 양이 쌀 대비 25% 안팎이고, 이 분량은 쌀을 불리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쌀 1㎏이 물을 머금어 1.25㎏이 되니, 이화곡 한 덩어리를 200g 크기로 만들면 쌀 1㎏으로 6개를 만들 수 있다. 쌀 4kg으로는 24개 정도 이화곡을 뭉칠 수 있다. 뭉쳐진 쌀가루 덩어리를 사과 상자에 담는데, 이때 준비한 전기방석을 상자 밑에 깐다.

전기방석은 철물점에서 1만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상자 안에 짚이나 쑥단을 깔면 좋은데, 없다면 마트에서 계란 30개가 담기는 종이 계란판 3장을 구해와서 먼저 한 장을 종이 상자 바닥에 깔고 12개를 담고, 그 위에 종이 계란판을 다시 얹어 12개를 놓고, 그 위에 모자처럼 종이 계란판은 덮어주면 된다. 계란 90개를 사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 요령껏 구해보길 바란다.
 
이때 종이 계란판은 상자 속에서 적당한 습도를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종이 계란판만으로는 아쉬우니, 집 주변의 잎이 넓은 식물의 잎을 몇 장 따거나, 줄기가 긴 풀을 꺾어다가 넣어주는 것이 궁여지책이지만 괜찮다.

예전에 누룩을 만들 때에 짚이나 쑥 말고도 연잎, 도꼬마리잎, 닥나무잎 등을 사용했는데, 이는 물가에 자라는 넓은 잎이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잎을 썼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잎에 있는 미생물, 효모나 곰팡이균을 얻기 위함이다. 그러니 꽃도 몇 송이 따서 넣어줘도 좋다. 꽃에는 효모가 많기 때문이다.

피어라, 곰팡이
 

계란판 위에 이화곡을 띄우는 모습. ⓒ 막걸리학교

 
상자는 이틀에 한 번씩 열어서 누룩을 뒤집어 주고, 아래 판과 위 판을 번갈아준다. 그대로 방치하면 이화곡이 계란판에 붙어서 훼손된다. 일주일쯤 지나면 이화곡에 솜털처럼 하얀 곰팡이가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분이 많을수록 곰팡이의 밀도는 더 높아진다. 그런데 수분이 많으면 좋은 게 아니다. 곰팡이의 생장 조건이 너무 좋아서 이화곡의 겉면에 곰팡이가 피고, 균사가 안에까지 파고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틀에 한 번씩 들여다보는데, 2주일이 지나면 이화곡이 좀 단단해지고 곰팡이의 포자도 검은빛을 띠게 된다. 이때 비닐장갑을 끼고서 겉면의 곰팡이를 가볍게 털어내주고서 다시 상자에 담아 2주일 정도 더 발효를 시킨다.
 

이화곡을 절반으로 가르니 균사가 퍼져 노란빛이 돌았다. ⓒ 막걸리학교

 
이화곡을 다 띄우고 나면 겉면에 검은 곰팡이와 노란 곰팡이가 피어서 더럽고 흉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누룩이 썩은 것은 아니다. 수분이 날아가 원래 크기보다 20% 정도 줄어들었고 돌덩어리처럼 단단하게 되어 있다. 겉면에 핀 곰팡이를 과일 껍질 깎듯이 칼로 깎아내면 속에 하얀 쌀가루 색이 드러난다. 자세히 보면 노란 기운이 돌아 곰팡이 균사가 들어와 변화시켰다는 것을 살필 수 있다.
 

이화곡을 절구에 빻고 가루내서 쓴다. ⓒ 막걸리학교


단단한 이화곡을 깨서, 믹서기로 갈아 가루를 내서 이화주를 빚는다. 이화주는 쌀을 가루내서 익반죽한 것을 뜨거운 물에 익혀서 빚는다. 하지만 고두밥이나 백설기를 만들어 이화곡을 사용하여 만들면 새로운 술을 만들 수 있다. 유념할 것은 이화곡의 사용량인데, 이화곡은 주재료인 쌀의 40%를 사용한다. 우리는 4㎏ 분량의 이화곡을 만들었으니 쌀 10㎏ 분량의 술을 빚을 수 있다.

한 달이면 이화곡이 만들어지니, 지금 이화곡을 만들면 배꽃 필 무렵에 이화주를 빚을 수 있겠다. 그렇게 4월을 맞이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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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