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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3.24 14:19 수정 2020.07.07 17:45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2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관련 대책을 내 놓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 기자회견 직후 확진자와 접촉이 확인되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 독일 연방정부/Bundesregierung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22일(현지시각) 독일 정부는 메르켈 총리가 접촉했던 의사가 코로나19 확진자로 판명되어 총리도 즉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해당 소식이 나오기 불과 1시간 전 메르켈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독일 전역에 적용되는 '3인 이상 접촉 금지 규정'을 발표했다.

독일은 지금 조용한 '전시' 상황이다. 메르켈 총리가 말했듯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위기'다. 통계를 따라가기 힘들 만큼 확진자 증가 추세가 가파르다. 안정된 시스템과 이성적인 시민들로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던 독일은 어쩌다가 이런 상태까지 오게 되었을까.

초기 방역의 안일함

한 달 전 중국과 한국이 코로나19로 한바탕 전쟁을 치를 때 독일은 '아시아 전염병'인 양 방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부 언론은 인종차별적 보도를 통해 '남의 일'이라는 인식을 더욱 강화했다. 초기 바이에른주에서 중국 출장자가 확진 판정을 받긴 했지만 위기의식은 없었다. 유럽연합(EU)의 열린 국경, 직장인들의 장기 휴가제도와 연금생활자들의 여행 비율 등을 고려하면 일찍이 심각성을 판단할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독일이 심각성을 느낀 것은 2월 말. 이탈리아 여행 이후 확진된 지역 감염자가 생기면서부터다. 옌스 스판 보건부 장관은 지역 감염이 밝혀진 직후인 2월 26일 '전염병 시작'을 알렸다. 발빠른 메시지로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미 늦은 메시지라는 게 드러났다.

한국과는 달리 휴대전화 및 카드 사용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독일에서는 확진자의 경로를 파악하고 접촉자를 빠르게 찾아내기도 쉽지 않았다. 접촉자라도 증상이 없는 경우 검사를 받기가 어려웠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손씻기과 거리두기 정도의 캠페인만 이어졌다.

마스크 사용은 처음부터 장려되지 않았다. 마스크는 지금도 확진자와 의료진들에게만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이는 독일 내에서 정상적인 마스크 수급이 불가능한 상태라 어쩔 수 없는 조치로 보인다.

연방제로 인한 일괄적이지 않은 조치
 

텅빈 브란덴부르크 앞 광장 독일 정부가 국민들에게 집에 머물 것을 호소한 지난 3월 19일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앞 광장이 텅 비어 있다. ⓒ 연합뉴스/AP

 
연방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은 주 정부의 권한이 막강하다. 이 때문에 독일 전역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규정'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각 지역의 이동 제한 및 이동 금지, 공공시설이나 학교 폐쇄 등의 결정이 모두 다른 시기에 제각각 이루어졌다.

바이에른주는 지난 20일 독일 주정부로는 처음으로 시민들의 외출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일차적으로 4월 3일까지 적용되며 위반시 최대 2만5000유로(한화 약 3400만원)를 부과한다. 바이에른주를 시작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잇따라 외출금지 명령이 내려졌고, 시민들은 '독일 전역에 적용해야 한다'며 강력한 조처를 요구했다.

반면 베를린시는 '블라블라(잡담)' 정책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바이에른주처럼 강력한 조치를 단번에 취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새를 보였기 때문이다. 베를린시는 행정명령을 통해 지난 3월 11일 1000명 이상 모임을 금지했다가 14일에는 50명 이상 모임을 금지했다. 19일에는 10명 이상 모임을 금지했다. 이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행정명령을 바꿔가며 대책이 급변했다.

독일 언론들은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 주총리를 "안티 바이러스 정치인", "독일 위기 드림팀"이라고 추켜세웠고, 미하엘 뮐러 베를린 시장에게는 "무대책이 더 무섭다"고 비판했다. 

독일은 결국 22일이 되어서야 연방정부 및 주총리 회의를 통해 독일 전역에 3명 이상 모임을 금지했다. 독일 전역에서 일괄적으로 적용된 첫 규정이다. 독일이 전염병 감염 시작을 선포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하지만 이미 외출금지령이 떨어진 일부 주에서는 하나마나 한 규정이 됐다.

독일의 트라우마, 나치

독일 나치 역사의 트라우마는 독일 연방제와 시민들의 자유, 다양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형태로 발전됐다. 다시는 나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다양성을 위협하는 '통일성'을 거부하며, 철저한 연방제도 또한 그렇게 발전했다. 이런 독일 시스템의 원칙은 기본법(헌법)에 그대로 명시되어 있다.

독일이 발빠르게 강력하고 일괄적인 조치를 하지 못한 것에는 이러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끝끝내 독일 전역의 '외출금지령'을 내리지 못하고, '3인 이상 접촉금지'를 발표한 데서 연방제와 개인에 대한 존중을 지켜가며 감염병 대책을 세우고자 하는 독일의 고민이 묻어난다. 앞서 독일 언론 또한 '외출금지령' 강제조치가 과연 기본법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꾸준히 제기했다.

한 발 늦은 조치, 독일은 코로나를 잡을 수 있을까

메르켈 총리는 지난 11일 코로나19 관련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독일 국민들의 60~70%가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이라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솔직하게 전했다. 이어 임기 내 최초로 TV 담화문까지 발표했지만 그 어떤 강력한 조치나 규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이성을 촉구했고, 외출을 자제하는 등 올바른 행동을 '권고'했다.

하지만 독일 시민들은 햇볕을 쬐러 공원에 모여들었고, 확진자는 계속 늘어났다. 지금은 독일 전역에 유효한 '규정'이 발표되었지만, 많이 늦은 듯하다. 

독일 보건부는 지난 21일 통신사 정보를 이용해 익명으로 사람들의 이동경로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전염병예방법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처 방법이 독일 현지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된 이후다.

하지만 아직까지 비판적인 목소리가 크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중시되는 독일에서는 집 밖을 나가는 자유는 없을지언정 내 정보를 가져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19 이후 독일 사회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독일 연방제도는 물론 유럽연합 내 국경의 장벽을 없앤 솅겐조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매일매일 증가하는 확진자의 수를 줄이는 게 우선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또 역설적으로 연방제 덕분에 독일 전역이 비교적 탄탄한 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22일 기준 독일 확진자는 2만 5000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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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베를린에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