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2
원고료로 응원하기
본문듣기 등록 2020.02.27 09:26 수정 2020.02.27 09:49
오늘의 뉴스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기상천외한 사건사고를 보면 이 사회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자주 비관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사는 오늘의 비관을 발판 삼아 조금씩 진보해왔습니다. 때때로 퇴행을 반복했을지라도요. <오마이뉴스>가 '2000년 사건, 그후'를 기획한 이유입니다. 오늘은 비관하되, 내일을 낙관하려는 의지는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편집자말]

<한국일보> 2000년 7월 7일 보도 ⓒ 한국일보


2000년 7월 6일. 경기 연천군의 한 건강원에 불법사육한 반달가슴곰의 쓸개를 탕으로 만들어 먹은 남성들이 구속기소됐다. 곰쓸개즙을 목적으로 한 '보신관광 추태'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나온 첫 구속기소였다. 그런데 혐의가 '문화재보호법 위반'. 1991년부터 존재한 동물보호법은 처벌수위가 낮으니, 반달가슴곰이 천연기념물인 점을 이용해 보다 무거운 벌(2년 이상의 징역)을 주자는 검찰의 우회전략이었다.    

최근에는 동물학대 범죄에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경의선숲길에서 고양이 '자두'를 내동댕이치고 머리를 짓밟아 죽인 정아무개씨에게 법원은 동물보호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지난 10월 망원동 주택가에서 주인과 산책 나왔다가 길을 잃은 강아지 '토순이'를 머리가 심하게 훼손될 정도로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에도 재판부는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8년이 넘도록 함께 산 반려견 토순이를 한 순간에 잃은 가족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8개월의 형량에 대해 "터무니없게 부족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 년 동안 몇 주가 멀다하고 동물학대 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실형 선고가 내려진 경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다. 지난 20년 동안 굳이 문화재보호법을 끌어오지 않고 동물보호법만 가지고도 부족하나마 실형을 선고할 수 있을만큼 세상이 조금은 달라진 것이다.

1908명 중 단 3명

지난해 10월 국회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기소 송치된 인원은 총 1908명. 이 중 구속 기소된 사람은 3명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중에는 천안에서 개, 고양이를 방치해 무더기로 굶겨 죽인 펫샵 업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올해로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지 거의 30년이 되었다. 1991년 제정된 동물보호법에는 고작 12개의 조문이 있었다. 조문 수만 비교하면 현재 동물보호법의 4분의 1 수준이다. 내용도 극히 간단해, "잔인한 방법에 의한 도살이나 혐오감을 주는 방법에 의한 도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동물을 유기하는 행위 등에 대해 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었다. 타 법에 비해 처벌 규정이 너무 미약하다 보니 실제로 조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1992년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구포개시장에서 살아있는 개와 고양이의 목을 칼로 벤다는 이유로 인근 대학 등에서 진정을 넣어 부산 북구청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경찰은 잔인한 방법에 의한 도살임을 인정하면서도 "최고 형량 20만 원인 동물보호법 위반사범 범행현장을 적발하기 위해 잠복근무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2007년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처벌 규정이 20만 원에서 5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되었다. 당시 동물에 대한 금지행위가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동물의 체액을 채취하는 행위(사육곰 농장에서 살아있는 곰의 쓸개즙을 빼는 행위를 단속하겠다는 의도였다), 목을 매다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등으로 일부 학대 유형을 명시했다. 동물 등록제를 도입하고, 동물실험은 윤리위원회 승인을 받도록 하는 조항도 이때 생겼다. 

그러나 법이 개정되었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동물학대 사건을 근절할 수는 없었다. 법이 그런 장치로 작동하지 않았다. 2010년 서울에서 발생한 동물 연쇄학대 사건은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송파구에서 8마리 이상의 강아지들에게 라이터로 눈에 화상을 입히고, 멀쩡한 발톱을 뽑고, 칼로 자상을 입히고, 면도칼 조각을 삼키게 하는 등 충격적 학대행위를 한 희대의 동물학대 사건이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에서 고양이를 끔찍하게 학대하는 장면이 그대로 폐쇄회로TV에 찍힌 고양이 '은비'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연쇄 학대범은 법정 최고형인 5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졌지만, 이렇게 잔혹한 학대를 한 범죄자에게 고작 벌금이 최고의 형량이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였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여러 동물보호단체들과 시민들이 동물보호법 강화를 주장해 학대에 대한 처벌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되었다.

너무나도 많은, ~라는 이유로 
  

지난해 7월 1일, 60년 된 부산 구포 개시장이 폐쇄되는 현장 모습이다. 이날 현장에서 86마리의 개들이 구조됐다. ⓒ 동물자유연대

 
그러나 징역형의 처벌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동물학대 죄만으로 실형이 선고되는 일은 드물었다. 사법부가 학대행위임은 인정하면서도 대부분 정상참작요소가 있으면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15년 길고양이 600여 마리를 불법적으로 포획해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죽여 건강원에 판매한 '나비탕 사건'이다. 학대자의 생계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동물에게 극악무도한 학대를 하더라도 '사람 먹고 사는 일'이 동물의 생명보다 중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형이 내려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2012년 '에쿠스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질주하는 승용차에 묶여 끌려가던 비글이 도로에 핏자국을 남기며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동물을 죽이려고 하는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된 대표적인 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견주가 개를 죽이려고 의도한 행위인지를 밝혀낼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승용차나 오토바이에 개를 매달고 주행해 다치게 하는 사건은 그 이후로도 종종 일어났다. 에쿠스 사건 때 엄중한 처벌이 내려졌다면, 유사한 학대 사건이 그 이후로도 수차례 발생했을까? 

'몰랐다'는 주장은 굶겨 죽인 경우에도 통했다. 2013년 동물보호법을 개정해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않아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치 행위'를 동물학대에 추가했음에도, 밥을 주지 않아 자신의 동물이 굶어 죽은 경우에도 '굶어 죽을 줄 몰랐다'며 고의성이 없음을 주장하는 사건이 다반사였다. 2015년 동물자유연대는 밭에 설치된 뜬장에서 굶어 죽은 개의 사체 부검까지 의뢰해 "다른 질병은 없으며 위장에 내용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사료 섭취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럼에도 개를 굶겨 죽일 의도가 없었다는 주인은 처벌받지 않았다. (관련기사: 밥 안 줘 아사 직전... 그래도 처벌 못하는 이유)

다행히 2017년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동물보호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반려목적으로 기르는 동물의 사육공간과 위생, 건강관리 의무를 위반해 질병이나 상해를 유발한 경우 동물학대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하지만 대상 동물을 '반려목적'으로 한정한데다, 질병과 상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조치를 취할 수 있어 예방 장치로는 아직 부족하다. 도심 밖 야외에서 길러지는 개들은 심장사상충 등 질병에 감염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바닥이 뚫린 뜬장에서 살면서 발에 염증이나 상처가 생긴 경우가 많다. 아쉽게도 법 개정을 근거로 이를 모두 단속을 하기에는 아직 사회적 인식도, 행정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2018년에는 개 번식장, 소위 '강아지 공장'의 비참한 실태가 TV동물농장을 통해 방송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배설물과 구더기가 가득한 철창 안에서 수차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어미개들과 강제교배에 직접 불법 제왕절개 수술까지 하는 업자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국회에서도 반려동물 생산업을 규제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되었고, 이는 신고제가 적용되었던 반려동물 생산업이 허가제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반려동물 생산업은 대량 사육을 허용하는 구조이고, 펫숍을 찾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입양된 동물은 2018년 기준 전체 동물의 27%에 그친다. 절반 이상이 안락사나 폐사되고 있다. 동물복지가 향상되려면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인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법이 '생명 선언'을 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27일 당시 바른미래당 이상돈 의원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등 동물권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동물보호법안 국회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전과 비교하면 동물보호법 등 제도적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최근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학대행위에 대한 처벌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되었다. 동물 유기에 대한 처벌도 이전에는 과태료에 불과해 경찰 수사가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농림부는 지난 1월 발표한 동물복지 5개년 계획에서 일부 행위만 열거한 동물학대 범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동물학대를 유형별로 나누어 처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많은 시·도가 동물보호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예산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보이고 있다. 동물보호법 외에도 동물원수족관법,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 등 다른 동물관련 법률도 느리기는 하지만 개정을 거듭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적 기준에는 못 미치는 상황이다. 영국은 2017년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을 징역 2년에서 5년으로 강화했고, 미국은 지난해 11월 연방정부 차원에서 동물학대범을 처벌하는 팩트법(PACT Act·Preventing Animal Cruelty and Torture)을 통과시켰다. 동물을 압사시키거나 태우는 일, 익사 또는 질식시키는 행위 등 폭력적인 행위를 할 경우 최대 7년 징역형에 처하게 된다.

동물을 학대한 사람에게서 피학대 동물의 소유권을 빼앗아 올 수도 없고, 다시 동물을 기르는 것에 대해 아무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역시 재발을 방지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해외의 경우 동물학대를 저지를 경우 범죄의 경중에 따라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동물을 소유할 수 없는 제도가 보편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동물학대자의 소유권 제한에 대한 법안 발의가 여러 차례 됐으나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다행히 동물복지 5개년 계획에는 재범 방지를 위해 동물 학대자의 소유권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법에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잔혹한 동물학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똑같이 해줘야 한다"며 분노하는 시민들도 많다.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약한 존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에 분노한다는 뜻일 것이다. 학대범을 단죄함으로써 다시는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고, 동물학대가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중범죄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학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무조건 처벌 수준만 강화해서는 동물복지 수준을 향상시킬 수 없다. 학대행위가 이미 발생한 후의 처벌보다 모든 동물이 제공받아야 하는 의무적인 '복지기준'을 수립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았을 때 조치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강화되어야 법적 논쟁이 생기기 전에 학대를 방지할 수 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