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1 08:41최종 업데이트 20.01.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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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 연합뉴스

 
요즘 군대가 군기가 빠진 것인가, 아니면 신세대 장병이 헌법상 권리를 찾으려는 것인가.

한국 최초로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마친 트랜스젠더 군인의 등장을 다룬, 한 일간지의 기사 첫 줄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상황은 이렇다. 전차 조종수로 복무해오던 하사 A는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이후 성전환 수술을 마쳤다. 여기에는 소속 부대의 배려와 승인이 있었고 당연히 이들은 A하사가 계속 복무를 이어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군은 A하사를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를 한 상태다. A하사에 대해 의무조사를 진행한 후, 성전환 수술이 국방부령 심신장애 등급표의 '고환, 성기 훼손'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물론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된 모든 군인이 전역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A하사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군을 떠날 수도 있는 위험은 아직 남아있다.


물론 A하사가 한국 최초로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이를 군에 공유한 트랜스젠더 군인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놀라는 점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A하사가 계속 복무를 하도록 두는 것에 그렇게 떠들썩한 절차와 논의가 필요한지는 의아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심신장애 등급표에 '고환, 성기 훼손'이라는 기준이 있다 해도(사실 나는 애초에 고환이나 남성 성기가 군 복무에 무슨 영향을 미치는지도 의문이다) 그로 인해 군 복무를 이행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게 아니라면, 굳이 '장애'라는 판단을 내리고 해당 군인을 전역을 시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애초에 부상이나 상해가 있었던 게 아니라 단지 신체가 변화한 것뿐이라면 이를 '훼손'이라 부르는 것도 아주 부적절하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A하사에 대한 군의 의무조사 결과가 트랜스젠더에게 매우 무례하고 모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성전환 수술은 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에 적합하다고 느끼는 몸을 형성해가는 과정이지, 무언가를 잃거나 상실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A하사는 절대 '훼손'된 몸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받는 예외적 존재
 

중앙일보의 인터넷판 기사 (글에서 인용된 부분만 편집) ⓒ 중앙일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이 A하사를 비합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성소수자를 '정상성'에서 벗어난 '결점'이 있는 존재로 치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군대가 사실상 '게이 군인 처벌법'이나 다름없는 군형법 92조의6을 유지하고 이를 빌미로 동성애자 군인들을 색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군인이 이성과 성행위를 하든 동성과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동성과 성관계를 맺는 군인이 무슨 신묘한 이유로 복무능력이 떨어지며 군대에 해를 끼친다는 걸까. 하지만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에서 동성 간 성관계는 '비정상적' 행위가 되어버리고, 보수적이고 경직된 조직일수록 낯설고 특이한 존재들은 곧바로 위협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한 일간지의 기사도 그런 질문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요즘 군대가 군기가 빠진 것인가'. 물론 이 기사는 나름의 균형 잡힌 시선을 담으려 시도한 듯한데, "예비역 선배는 물론 현역 사이에서 '군기가 빠질 때로 빠진 게 아닌가'라는 한탄이 나온다"는 인터뷰를 담은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육군 부사관이 부대 공금 4억원을 횡령한 뒤 해외로 도피한 데 이어 이번 일이 불거졌기 때문'에 군이 발칵 뒤집혔다는 설명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누군가 횡령을 한 것과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은 성격이 전혀 다른 일이다. 전자는 군 조직이 엉망이라는 증거일 수 있지만, 후자는 그럼에도 군대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완벽히 엉망은 아닌 조직임을 증명할 수 있는 계기다. 하지만 저 문장에서 현역 범죄자 군인이나 현역 트랜스젠더 군인이나 모두 군대의 기강이 해이해진 나머지 등장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게이들 때문에 군대가 망할까?' 질문을 받아치는 법

이 글의 목적은 그런 해묵은 시선의 문제점을 짚고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 과정에 발생하는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는 성소수자 역시도 시스젠더(Cisgender - 타고난 '지정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이 동일한 사람) 이성애자들만큼이나 훌륭한 군인·정치인·공무원 등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반론을 제기해 왔다. 이를 근거로 차별과 배제가 있어서는 안 되며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아니면 하다못해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 개인이 문제를 일으키고 이 때문에 하나의 조직이 망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으리라 주장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례를 들자면, 나는 동성애자 남성이며 동시에 군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소위 말하는 '관심병사'였고 군에 있던 내내 조직의 골칫거리로 존재했다. 그렇다면 나는 앞서 했던 주장의 반례가 되는 것일까.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의 '뉴스 읽어주는 퀴어'라는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진행자인 은하선과 나는 그 코너에서 군형법 92조의6의 문제점을 다루었는데, 나는 은하선에게 '게이들 때문에 군대가 망한다, 군 기강이 해이해진다'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사실 그때 내심 기대했던 답은 '단지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군 조직이 흐트러지거나 망할 일은 없다, 그건 소수자를 낯설게 보고 위협으로 간주하는 차별적인 시선이다'였다.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이거나. 그런데 진행자인 은하선의 입에서 나온 답은 달랐다.

"동성애자 때문에 망할 수도 있죠. 근데 이성애자 때문에 망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면 누구나 다 망하게 할 수 있는 거예요. 뭐 때문에 망했느냐, 사람 때문에."
 

군형법 92조의6을 다룬 큐플래닛 방송 ⓒ 큐플래닛

 
사람이니까 망할 수 있다

나는 처음에 그 답이 은하선 특유의 유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지 농담이라 생각했던 그 말에 깊은 통찰이 담겨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은하선의 말처럼 동성애자 때문에 군이 망하고, 양성애자 때문에 정당이 망하고, 트랜스젠더 때문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시스젠더 이성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니 사실 시스젠더인 전임 대통령은 괴뢰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국정을 운영하다 감옥에 갔고, 그보다 전임인 이성애자 대통령도 비리 때문에 역시나 감옥에 가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시스젠더 이성애자가 정치인이나 공무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묻지 않으며, 훌륭하고 모범적인 시스젠더 이성애자의 존재를 부러 증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는 '정상성'을 가진 존재가 지닌 권력이다. 무슨 짓을 하고 무엇을 망치건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시스젠더 이성애자들만큼 훌륭하게 사는 지를 증명하고 '정상성'이 가진 권력을 나누어 받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불평등한 구도 자체를 볼 수 있도록 가시화시키고 비판을 이어가야 한다.

나는 앞서 언급한 A하사가 모범적인 군인으로서 남은 복무도 훌륭히 잘 해내리라 믿는다. 그러나 사람의 앞일은 알 수 없다. 세상에는 일이 잘 풀릴 이유만큼이나 망할 이유도 지천에 널려있다. 트랜스젠더 군인도, 동성애자 정치인도, 무성애자 공무원도 예상치 못한 이유로 실패를 하고 공동체에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과 무관하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게 인간의 삶이다. 그리고 성소수자 역시도 사람이다. 나는 이 점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되어 부러 설득할 필요조차 없는 세상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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