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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1.14 07:34 수정 2020.01.14 07:34
 

워킹맘은 고달프다. ⓒ eutahm

 
얼마 전 첫째의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에 다녀왔다. 신생아 시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런 아이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다는 사실에 감개가 무량했다. 그와 동시에 여러모로 긴장했는데, 막상 가보니 예비소집일이라고 특별히 거창하거나 중요한 행사가 있진 않았다. 그저 입학에 앞서 관련 서류를 배부하고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정도의 간략한 일정이 다였다. 아이들의 반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디서 확인하는지, 돌봄교실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참고로 돌봄교실이라 하면 정규 교과과정 이후 아이들을 전담하여 돌보아주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초등학교 1학년은 매일 오후 1시 무렵이면 수업이 끝나는데, 이는 오후 4~5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던 기존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비해 턱없이 짧은 일정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공백을 메꿀 수 있도록 아이들을 한데 모아 간식을 먹이고, 게임을 하고, 그림도 그리게 하는 등, 저녁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보살펴주는 것이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가 그만 놀라고 말았다. 알고 봤더니 돌봄교실은 원한다고 아무나 신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순위 기초생활보장수급자, 2순위 한부모가족, 3순위 법정차상위대상자, 4순위 맞벌이 가정으로 신청자의 상황에 따라 순위가 달라지고, 그러한 순위를 기준으로 우선 배정하는 형태였다. 심지어 나와 같이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사업자 등록증이 없는 프리랜서들, 즉 직업이 '애매한' 사람들과 일반 외벌이 가정의 전업주부들은 아예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약자 우선이야 당연하므로 취약계층이 우선순위인 부분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그러나 프리랜서나 전업주부는 아예 신청조차 못 하게끔 한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프리랜서지만 직장인보다도 더 바쁠 수 있고, 전업주부 역시 풀타임으로 가사노동을 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할 수 있고, 그밖에도 시험공부를 하거나 어린아이를 키우는 등 각자 사정이 있을 수 있는데,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없다고 하여 배제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신청이라도 하게 해달라는 나의 항의를 듣고 학교 관계자는 말했다.
 
"물론 어머니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정책 자체가 그래요. 우리 학교뿐만이 아니라 어디나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설령 신청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어차피 우선순위에 밀려서 안 되실 거예요. 지금 4순위까지도 다 소화를 못 해서 맞벌이인데도 떨어지는 아이들도 많아요. 인원이 그렇게 충분하지가 않거든요."
 

결국 모든 것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다니게 될 초등학교의 경우 1~2학년의 돌봄교실을 합쳐서 운영하는데, 정원이 한 학급에 20명씩 3개반, 즉 6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2개 학년의 재학 인원이 320명인 점을 고려할 때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그러므로 어차피 순위에 밀려 떨어질 거, 서류심사에 들이는 수고조차 없도록 프리랜서나 전업주부의 신청을 막아놓은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일하는 엄마'가 더 힘든 이유
 

초등돌봄교실 (자료사진) ⓒ 충북인뉴스

 
눈앞이 깜깜했다. 지금까지는 9시부터 5시까지 아이들이 없는 시간을 활용하여 가사노동을 하거나 청탁받은 원고를 썼는데, 앞으로는 새로이 방법을 찾고 시간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하고 답답했다. 한편으로는 풀타임으로 직장에 매여 있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맞벌이라고 하여 결코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2, 3순위를 제외하고 남은 자리에 4순위의 맞벌이 가정들이 들어가게 되는데, 보통은 인원이 넘쳐 추첨을 거쳐 최종인원을 확정 짓는다고 한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그야말로 방법이 없는 셈이다.
 
결국 맞벌이 가정의 부모들은 돌봄교실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 흔히 말하는 뺑뺑이, 즉 회사의 퇴근 시간까지 아이를 각종 학원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금전적으로 많은 부담이 된다. 또한 단순히 돈으로 때운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방과 후 과목의 사이사이, 혹은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는 사이, 아이를 돌봐주고 인계해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보통은 조부모가 이런 역할을 해주기 마련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으므로 상황이 여의치 않은 이들은 결국 회사를 휴직하거나 퇴사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니 그제야 이해가 갔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출산을 하고도 2~3달만에 바로 복귀할 정도로 열정과 의욕이 넘치던 여성 선배들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꿋꿋이 버틸 것만 같았던 그들이, 왜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결국 사라지고야 말았는지. 아이가 아주 어린 시절보다 왜 초등학교 입학이 더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여성들이 마주한 현실이란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계속해서 직장을 다니거나 일을 지속하기가 힘든 구조였다.
 
지금은 극장에서 내려왔지만 한창 <82년생 김지영>으로 논란이 뜨겁던 시기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와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이 비슷한 상황임에도 김지영만 비판을 듣는 점이 이상하다고. 비정규직(장그래)과 전업주부(김지영)로 각각 부당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틀림없는 바, 이를 타개하고자 애쓰는 것은 동일한데 왜 김지영만 냉혹한 시선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왜 직장을 구하려는 노력과 분투가 '어쨌든 먹고살 만한 주제에 배부른 투정을 하는' 것으로 치부되는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남성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장그래와 김지영이 비슷한 상황인 것은 맞지만, 어쨌든 장그래는 남자가 아니냐고. 남성과 여성의 입장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장그래는 언젠가 가장의 신분이 되어 가정을 책임질 사람이므로 좋은 일자리를 얻어 경제적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반면 김지영은 이미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남편이 있으니 딱히 직장이 없어도 괜찮은 것 아니냐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모르겠다고. 그것은 본인의 욕심이 아니냐고.

김지영씨의 앞날, 괜찮을까요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 롯데

 
이는 결국 여성들이 육아 이외에는 어떤 분야에서건 '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발언으로, 그야말로 모순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성별과 무관하게 일은 중요하다. 개인이 일에 대해 느끼는 가치를 타인이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일을 하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사회적 장애물을 훨씬 더 빈번하게 마주한다.

또한 결국 견디다 못해 전업주부가 되면, 그때부터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에 기대어 사는 무능력한 존재, '맘충'과 같은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고자 노력하고 분투하면, 그것은 다시금 '먹고살 만한 자'의 자아실현을 위한 배부른 투정이 되어버린다. 심지어는 돌봄교실 신청 자격과 같이 노력하고 분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신청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은 아이의 돌봄교실 신청서를 바라보면서 다시금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비록 회사에 재취업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글을 쓰는 것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 김지영씨의 앞날이 밝고 희망찬 것처럼 마무리를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찾았지만, 앞으로도 김지영씨는 육아와 일 사이에서 수많은 난관과 장애물을 마주할 것이 틀림없었다.
 
지난해 말, 출산율이 역대 최저,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며 각종 언론은 이대로면 대한민국은 멸망한다고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이 한 명 당 1억 원씩 상여금을 지급하자거나, 산후조리비용을 무료로 해주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가임기 지도를 그리고, 미혼 남녀들의 미팅을 주선하고, 부부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목청을 높이기에 앞서, 이미 낳은 아이들부터 잘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 아닐까. 그 주체가 한부모 가정이든, 워킹맘이든, 전업주부든 관계없이 아이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기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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