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7 07:44최종 업데이트 20.01.0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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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커넥트 홍보영상 중 일부 ⓒ 배민커넥트

 
배달의 민족에서 자전거로 야간 배달을 하는 한 30대 청년이 손님이 사는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동이 있는 아파트 배달은 쉽지 않다. 밤에는 아파트 안내표지판도 보이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지도에서 아파트 동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 순간 사고가 났다. 사람이 쓰러졌다. 다행히 느린 속도로 달렸기 때문에 피해자가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했다. 이때 피해자는 배달의 민족 책임이라 생각해 회사에 전화를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럴 때 라이더에겐 전화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만 문의가 가능했다.

영혼 없는 챗봇, 사람과의 대화가 필요한 라이더들
  

사고 당시 챗봇과의 대화 ⓒ 제보자

 
'배달 중 사고가 났어요' 
  
결코 당황하는 법이 없는 챗봇이 정해진 답변을 남긴다.  

'배달중 사고가 발생하셨군요, 담당자가 빠르게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라이더님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므로, 위험하지 않은 곳에 계실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좋은 말이지만 알고리즘의 영혼 없는 대답에 피가 마른다. 피해자와 라이더 모두 인간의 등장을 기다렸다. 1시간 같은 1분 뒤 드디어 답이 왔다. '배달이 불가하신 걸까요?' 만나서 얘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그게 아니고 피해자에게 보상을 어떻게 할지, 보험은 처리가 되는 건지 알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문의종료 메세지가 떴다.

다시 로봇에 말을 걸었다. 똑같은 알고리즘에 맞춰야 했다. '배달중 사고가 났어요'부터 시작된 같은 질문과 알고리즘으로 이뤄진 대답. '위험하지 않은 곳에 계실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답변 이후 10분이 지나서야 메세지가 왔다. '배달이 불가능 하신 걸까요?'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 기계를 속여야 했다. 손님이 사용하는 배민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 ARS의 알고리즘의 안내에 따라갔다. 배달의 민족이 아닌 배민라이더스로 연결시켜주겠다는 인간의 약속을 받아내고 전화를 기다렸다. (배달의 민족은 손님의 주문을 음식점에 연결시켜주는 주문중개서비스, 배민라이더스는 음식점에서 손님에게 배달음식을 전달하는 배달중개서비스를 하는 회사다. 전자는 우아한형제들, 후자는 우아한청년들이 회사 이름이다)

피해자와 30분을 길거리에서 기다린 끝에 드디어 전화가 왔다. 배민 측은 '보험처리가 될 테니 배달 진행 중이던 두 건의 배달을 마저 하라'고 전했다.

사고는 알아서 처리하라? 
 

영화 <미안해요 리키>에서 택배 노동자 리키의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 분)는 강도들에 의해 남편이 크게 다치자 함께 병원에 온다. 병원에 있던중 택배회사 측에서 리키에게 물건을 변상해내라고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오자, 리키의 전화를 빼앗아 택배회사 측에 욕을 퍼붓는다. 평소 큰 소리 내는것조차 싫어하던 애비가 유일하게 큰 소리를 내며 욕을 한 장면이다. ⓒ 엔터테인먼트 원

 
배달을 마치자 다시 전화가 왔다. '자전거 사고는 보험처리가 안 되니, 라이더 분께서 직접 해결하셔야 한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현실에서 트는 것 같다. 택배기사인 리키는 택배를 하다 강도한테 폭행을 당하고 고객의 물건을 빼앗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리키는 관리자의 전화를 받는다.

"분실된 물건 중 손님의 여권은 보험이 안 되니 직접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자전거 배달원도, 영국의 택배 노동자도 일하다 발생한 사고의 책임을 홀로 진다. 노동자가 아닌 사장님이니까. 배달의 민족은 2019년 9월부터 '배민 커넥트'라는 이름으로 오토바이는 물론, 자전거와 킥보드, 심지어 도보로 자신이 원할 때 일을 할 수 있다며 배달원들을 모집했다.

배민은 '대학 공강 시간을 이용해서', '퇴근 후에 투잡으로', '직업이 하나일 필요 있냐'며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배민커넥트를 하라고 대대적인 광고를 했다. 그렇게 배민커넥트를 통해 일하는 사람(커넥터)의 숫자가 1만 5천 명이 넘어서 주말이면 민트색 헬멧을 쓴 전동킥보드와 자전거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자전거나 킥보드도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정차된 시민들의 차량을 파손시킬 수도 있고, 앞서 일어난 사고처럼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배민은 자전거나 킥보드 라이더에 대한 보험은 준비하지 않은 채로 사업을 시작했다. 오토바이 배달은 보험 가입이 의무인 반면에 자전거나 킥보드는 따로 보험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배민은 '배민커넥트' 사업을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난 이달 8일부터 자전거와 킥보드 라이더들에게도 보험을 적용한다.

만약 이들을 직접고용해서 모든 책임을 배민이 져야 했다면 보험도 없이 '커넥터'들을 뽑았을까? 사실 이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 탄생한 게 배민커넥트와 같은 플랫폼노동이다. 보험비도 당연히 라이더가 낸다. 이윤을 위해 사업을 벌인 건 배민인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을 보완하기 위한 보험료는 일하는 사람이 내는 것이다.

빚과 책임만 공유하는 공유경제
  

ⓒ pixabay


배민과 같은 플랫폼 기업은 사고에 대한 위험 전가 측면에서만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다. 1만 5천명에게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전동킥보드를 제공했다면 초기투자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그런데 배민커넥터들은 모두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 오토바이, 자전거, 전동킥보드를 구해 와야 한다.

공유경제의 이상에 따르면 집에 고이 모셔둔 자전거를 활용해서 일을 하는 게 맞지만, 실제로는 일을 하는 김에 평소에도 타고 다닐 자전거를 사는 경우가 더 많다. 막상 일을 하기 위해 언덕을 오르다, 허벅지가 터지고 욕설도 터지면 전기자전거 구입을 고민하게 되고 전기자전거를 살 바에야 전동 킥보드를 구입하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자신이 소유한 자동차를 이용해 택배를 해서 추가소득을 얻는 쿠팡플렉스도 마찬가지다. 경차에 백미러도 안 보이게 물건을 실어보면, 스타렉스 구입할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공유경제의 주창자들은 소유하지 말고 공유하라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산을 소유하지 못하고 빚을 공유한다. 심지어 도보로 배달을 하는 우리 조합원은 자신의 유일한 자산인 몸뚱아리를 사회를 위해 공유했는데, 무릎이 나가서 앓아누웠다. 몸도 빚을 진다.

부가적인 효과는 더 있다. 이들은 개인 사업자라 하지만 민트색 헬멧과 가방은 모두 배민이 제공하는 걸 써야 하며, 배민커넥터라는 배지를 반드시 달아야 한다. 배민은 광고비를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대로변부터 골목 구석구석까지 광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라이더유니온에는 전화기가 계속해서 울린다. "몸살감기가 와서 일은 못 하는데 오토바이 렌트비는 계속 내래요.", "제가 피해자인 사고가 났는데 사장이 오토바이 수리비를 내래요.", "도보로 열심히 일하다 무릎이 나갔어요." 대부분의 플랫폼노동자들의 해결책은 아픈 몸뚱아리를 일으켜 계속해서 달리는 것이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위태로운 마지막 장면처럼.

이 영화의 원제목은 < Sorry, We missed you >다. 영국 택배노동자들이 손님이 부재중일 때 남기는 메시지다. 노동자들이 손님을 놓친 걸 미안해 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들 노동자들을 놓친 걸 미안해 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박정훈 시민기자는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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