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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19.12.03 21:09 수정 2019.12.03 21:09
광주 송학곡자 제조장을 찾아갔다. 술 빚을 때에 송학곡자를 쓰는 양조인들과 동행했다. 송학은 소나무와 학을 뜻하는 것일 테고, 곡자(曲子)는 누룩을 뜻하는 한자어다.

사업자면허증에는 1972-1호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니 1972년에 창업한 회사로 보인다. 현재 송학곡자는 경남 진주곡자와 함께 가장 오래된 누룩 회사다. 정성문 대표는 1984년 무렵에 양조장집 아들인 지인을 따라 술 마시러 송정리의 금천주조장을 놀러갔다가, 주조장에서 함께 운영하고 있던 송학곡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송학곡자 회사. ⓒ 막걸리학교

 
당시 송학곡자에서는 25명 정도 되는 여성들이 일하고 있었다. 힘든 일은 남자 두 명이 맡아 했는데, 한 남자는 밀을 빻는 일을 하고, 다른 남자는 밀에 물을 뿌려 반죽하는 일을 했다. 누룩을 디디는 일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정 대표는 그곳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1999년에 지금의 광주시 광산구 삼거동으로 분리 독립을 했고, 회사를 도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나는 막걸리 바람이 불 무렵인 2009년에 송학곡자 제조장 안에서 방송인이자 부산 생탁 모델인 왕종근씨와 30분짜리 막걸리 대담 영상을 찍은 적이 있다. 그러고 10년 만에 다시 송학곡자를 찾아왔는데, 그때 찍은 영상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누룩 성형기가 좀더 정교해졌다는 점이다. 발로 디디는 누룩에 가깝게 하려고, 컨베이어벨트에 실린 누룩을 네 번에 걸쳐 나눠서 누르는 압착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누룩방을 열어보니 후끈하게 안경에 김이 서렸다. 방안에 조명도 없고, 통로에 연탄난로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제 갓 누룩을 넣은 방안은 누룩에서 증발한 수분 때문에 습기가 가득찼고, 복도 천장에는 대중목욕탕의 천장처럼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실내외의 온도 차이가 큰 겨울이면 바닥에 물이 찰 정도라고 했다.
 

송학곡자 누룩방에서 누룩을 살피고 있는 정성문 대표. ⓒ 막걸리학교

 
누룩방은 모두 16개가 있는데, 누룩방의 중앙 통로는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들었고, 양쪽으로 시렁이 11단씩 쌓여 있는데, 시렁 안쪽으로 팔을 뻗어 누룩 4장을 넣을 수 있게 해서 그 깊이가 90㎝ 정도 되었다. 시렁과 시렁 사이는 한 뼘 20㎝ 정도 되었다. 그렇게 양옆으로 11단의 시렁 위에 놓인 누룩이 2,112장이었다. 이는 누룩 성형기로 하루에 만들 수 있는 분량이었다.

금천주조장에 있던 누룩 제조장에서는 시렁에 널빤지를 깔고 띄웠는데, 송학곡자는 시렁을 각목으로 만들어 밑으로 공기가 통하게 하고, 각목을 뾰쪽하게 깎아 누룩과의 접촉을 최소화하여 접촉면이 썩지 않게 했다. 그래서 금천주조장에서는 누룩을 뒤집어줘야 했는데, 송학곡자에서는 뒤집어주지 않고 누룩을 띄웠다.

함께 간 이들이 양조인들이라 누룩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쌀로 빚는 전통술은, 누룩의 향과 맛이 술맛을 많이 지배한다. 술이 시어져도, 술이 써져도 누룩 탓을 한다. 누룩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이 살기에, 누룩 탓을 하기 좋다. 질문이 이어졌다.

"누룩방의 온도는 몇 도를 유지합니까?"
"누룩방은 연탄난로로 온도를 유지합니다. 누룩방 초창기부터 사용했던 연료를 쓰고 있습니다. 온풍기를 사용도 해보았지만, 좁은 실내에서 부는 바람이 누룩 곰팡이를 띄우기에는 안정적이지 못해, 연탄난로를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온도는 48도까지 올라가는데, 낮은 온도는 35도 정도를 유지합니다. 7~10일 정도 띄우고, 20일 정도 방안에 있으면서 건조시킵니다."

송학곡자의 누룩방 온도는 높은 편이었다. 보통 35도에서 45도 이하의 온도를 유지하는데, 송학곡자에서는 온도를 높여서 누룩 곰팡이의 증식은 유리하지만 효모 증식에는 불리한 환경이었다. 그리고 연탄가스 때문에 누룩방에 산소량이 적다는 것도 효모 증식에 불리한 환경이었다. 정 대표는 누룩의 당화력은 좋아도, 상대적으로 효모량은 적을 수 있겠다는 우리들의 평가에 수긍을 했다.

온도와 함께 습도 유지도 중요한 요소였다. 초기에 7~10일 기간에는 90% 정도 습도를 유지하고, 그 뒤로는 60% 이상의 습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밀은 어느 정도 크기로 파쇄를 합니까?"
"밀은 너무 거칠게 빻아도, 너무 곱게 빻아도 누룩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대략 밀 한 알을 6~8개 정도 조각나게 빻습니다."

"혹시 누룩을 만들 때 효모 따위의 첨가물을 넣지는 않나요?"
"저희는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습니다. 밀을 파쇄하여 반죽하고 둥글게 성형한 뒤에 누룩방에 넣어 자연 발효시킵니다. 누룩방에는 많은 곰팡이균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조건만 맞춰주면 누룩은 잘 떠집니다."

누룩의 크기를 재어 보았다. 폭이 21㎝, 두께 2.7㎝, 무게는 831g이었다. 밀을 1kg 정도 사용하는데 다 뜨고 나면 이 정도 무게가 된다고 했다. 누룩의 두께는 진주곡자 것보다 더 얇았다. 정 대표는 송학곡자의 누룩은 다른 지역보다 얇은 편이라고 했다. 얇기 때문에 수분을 더 많이 넣고, 습기가 많은 공간에서 띄운다고 했다.

10년 전보다 내 눈에 크게 달라져 보인 것은 회사 분위기였다. 예전은 좀 적막했다면 지금은 활기 넘쳤다. 누룩 제조장 일을 정 대표 아들이 앞장서서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전라남북도의 양조장에 공급하고 시장에다가 팔았다면, 지금은 전국의 양조장에 팔고, 온라인으로 팔고 있었다. 또 한의원에도 팔고, 외국 수출용 물량 주문을 받아서 팔고, 제주 감귤 농장에도 판다. 정 대표는 전통 누룩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10년 전 금천주조장에 딸린 누룩제조장을 찾아갔던 날, 제18발효실이 18번째 누룩방이다. ⓒ 막걸리학교

 
나는 송정리 금천주조장이 궁금하여 안부를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금천주조장은 폐업 신고를 하여 문을 닫았고, 그 터는 건설회사에 팔려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고 했다. 10년 전에는 양조장 공장장 월급을 간신히 줄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곡자 제조장은 폐허인 채로 남아 있었는데, 세월은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그때 금천주조장에 딸린 누룩방은 24개였고, 1번 방부터 누룩을 채워나가면 24일이 지나면 24번 방까지 채워졌고, 25일째에는 다 띄워진 1번 방의 누룩을 꺼내고 새로 누룩 채우기를 반복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는 누룩을 24일 동안 띄웠다. 그리고 아주머니 한 명당 오전에 200장, 오후에 200장의 누룩을 디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허리가 아프니 천장에 걸어둔 줄을 잡고 디뎠다고 금천주조장 공장장이 줄도 보여줬는데, 이제 사람도, 주조장도, 누룩방도, 그 터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이렇게 구구하게 누룩방 이야기를 적는 것은, 지금 보는 것이 또 언젠가 다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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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