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42
10,000
본문듣기 등록 2019.10.16 08:28 수정 2019.10.16 08:28
저널리스트로 평생을 살아온 정연주 전 KBS 사장이 격주 수요일 '정연주의 한국언론 묵시록'으로 여러분을 찾아간다. 이 연재는 한국 언론에 대한 고발이자, 몸으로 경험한 '한국 언론 50년의 역사'다. [편집자말]
  

정연주 KBS사장이 2008년 8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돌이켜 보니, 11년 전 나를 에워쌌던 세월이 참 험했구나 싶다. 검찰은 '배임'이라는 죄를 '만들었고', 감사원은 온갖 무리를 하면서 전광석화 속도전으로 나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렸다.

2008년 초, MB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나에 대한 사퇴압박은 전방위에서 나왔다. MB의 멘토 최시중씨는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김금수 KBS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사임을 압박했다.

한나라당은 "정연주 퇴진이 0순위"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은 나의 퇴진 기사를 쏟아냈다. KBS 내부에서는 내게 늘 적대적이었던 수구적 KBS 노조(구노조)가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해 본격적인 퇴진운동에 들어갔다. KBS 안팎은 노조가 내건 검은 만장으로 가득했다.

5월 들어서면서 상황은 가파르게 전개되었다. 2008년 5월 13일, KBS에 대한 특별감사를 반대했던 전윤철 감사원장이 갑자기 사임하자, 이틀 뒤 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이 기다렸다는 듯이 KBS 특별감사를 요청했고, 감사원은 전격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바로 예비감사를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본감사도 진행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속전속결 속도전이었다.

검찰도 가만있을 리 없었다. 5월 14일, 전직 KBS 직원이 나를 배임혐의로 고발하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정 사장과 거래했다는 '자백'만 하면 세무조사 없던 걸로"

감사원과 검찰의 두 올가미가 나를 옥죄기 시작할 무렵, 국세청에서 KBS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던 외주제작사 여섯 군데의 세무조사를 시작, 나와의 유착관계를 파헤치려 온갖 압박을 가했다. 당시 세무조사를 받았던 한 외주제작사 사장은 세월이 한참 지나고서야 그때 당한 수모와 피해를 이야기했다. 술에 잔뜩 취한 그는 어느 날 밤늦게 내게 전화를 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원망이 가득 묻어있었다.

"정 사장님. 정권 바뀌었으면 그냥 사표내시지 왜 그리 버티셨습니까. 저뿐 아니라 다른 외주사 사장들, KBS 드라마, 예능 피디들 엄청 당했습니다. 저는 수억 원 추징도 당했구요. 게다가 조사 과정에 정 사장님하고 무슨 거래를 했다는 '자백'만 하면 세무조사 전부 없던 걸로 하겠다고 어떻게나 닦달을 하든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집 주변은 매일 아침 난장판
 

반핵반김국민협의회,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008년 8월 6일 오후 여의도 KBS 본사앞에서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권력 기관들이 이렇게 본격적으로 나서자 이른바 보수단체 사람들도 덩달아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일 이른 아침부터 내가 살던 아파트에 몰려와 난장판을 벌였다. 큰 확성기로 "빨갱이 정연주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길바닥과 전신주에는 "빨갱이 정연주 구속"이라는 빨간 글씨의 표지를 덕지덕지 붙였다. 그들은 그렇게 아침 나절 동안 난장판을 벌인 뒤 장소를 KBS 앞으로 옮겨서 다시 거기서 시위를 이어갔다.

나의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이 최근 당시 일을 이렇게 기억했다.

"...2008년 여름 광우병 촛불시위가 차츰 사그라지고 있었다. 광우병 사태로 국민들에게 크게 한방 얻어맞은 이명박 정부는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섰다. 그 첫 번째 타깃이 되어 저들과의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KBS 정연주 사장이다. 그의 혐의는 참으로 해괴했다... 사실 내가 정연주 사장 건을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정연주 사장의 집은 우리 집에서 불과 200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해 여름 매일 아침 소위 보수단체들이 그의 집 앞 골목에 찾아와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큰 확성기를 틀어놓고 시위를 하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좌파 빨갱이 정연주 구속하라' 나는 당시 매일 아침 귀가 찢어질 듯한 이 괴성을 들으며 출근을 해야 했다. 직접 찾아가 항의를 하다 그 패거리들에게 몰매를 맞을 뻔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나의 주변이 하나 둘씩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1년이 채 안 되어 노무현 대통령을 잃었다. 또한 수많은 언론인, 문화예술인, 학자, 노동자, 농민, 서민 등이 그들에게 농락당했다..."


배임 수사와 재판과정은 사법 고문

2008년 봄과 여름에 일어난 여러 일들 가운데 가장 나를 괴롭혔던 것은 검찰의 배임 혐의 수사와 재판 과정이었다. 그것은 '사법 고문'이었다. 검찰의 논리는 너무나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것인데도, 그들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범죄를 '만들어 갔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 나를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것, 그 외에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2003년 봄 KBS 사장에 취임하고 보니 KBS와 국세청 사이에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두 17건의 세무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고, 더욱이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법인세 추징금이 해마다 부과되고 있었다. 17건 소송도 KBS가 7승9패(1건 미선고)로 판결 결과가 서로 엇갈렸다.

소송이 17건이나 되고, 국세청에서 다시 추징을 하는 핵심 이유는 과세기준에 대해 KBS와 국세청의 주장이 확연히 엇갈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징수권을 가진 국세청은 자기들 기준대로 해마다 수백억 원대의 세금 추징을 계속하고 있었고, 소송과 추징의 악순환은 끝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해결하기 위해 TF를 구성하고,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었다. 그 결과 2005년 서울고등법원의 조정 권고를 받아들여 분쟁을 해결하였다.

황당할 정도로 단순한 검찰의 범죄구성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과 관련된 수사에 대한 외압·축소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23일 검찰관계자들이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오가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검찰의 논리는 황당할 정도로 단순했다. 1심에서 승소한 7건을 중간에 '법원 조정'으로 종결하지 말고 대법원까지 밀고 갔다면 2200억 원이 넘는 돈을 국세청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데, 중간에 법원 조정으로 끝내서 KBS에 1700여 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이 경우 검찰의 범죄가 확고하게 구성되려면 (1) 대법원까지 갈 경우 100% 승소 (2) 국세청이 이자 포함, 패소가액 전액을 지급 (3) 국세청은 이후 절대 재부과하지 않음 (4) 이로서 사건 종결이라는 얼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느 것 하나만 무너져도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1)의 경우인 대법원까지 모두 100% 승소의 건은 7건의 재판 가운데 2건이 2심과 대법원에서 패소한 일이 발생했다. 더욱이 17건의 재판 가운데 KBS는 1심에서 9건이나 패소했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기가 막혔다. "당시 공사(KBS)가 상급심에서도 승소 가능성이 매우 높아" 고등법원 조정으로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승소 가능성이 100%'여야 범죄가 구성이 되지, 승소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가능성만으로 어떻게 죄명도 무시무시한 배임죄를 적용하고, 나중에 징역형 5년을 구형할 수 있단 말인가.

검찰의 범죄구성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징수권을 가진 국세청이 재부과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전제다. 과세관청과 KBS 사이 분쟁의 핵심이 과세방법에 대한 다툼인데, 국세청은 비록 패소하더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방법으로 과세를 할 수 있었다. 실제 재판과정에서 국세청 관리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국세청은 재부과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전율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계속>
댓글4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10,000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