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02 13:29최종 업데이트 19.10.02 13:29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부론' 발간 국민보고대회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꼭 선거 때면 진보 경제 표방하는 한국 보수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가 '민부론'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정책에 대한 개괄적인 플랜을 보여주었다. 총선이 가까워지는데, 뭔가 정책적인 대결을 준비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좀 큰 눈으로 보면, MB 시절이나 박근혜 시절이나 경제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성장률이야 추세적으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임금상승률 같은 지표, 특히 시장 상황을 어느 정도는 반영한다는 주가지표 같은 것들은 별로다. DJ 정부 시절에 코스피는 5년간 2배, 노무현 시절에 3배 올랐다. 반면 MB에서 박근혜 시절의 근 10년 동안 코스피는 내내 소위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10년간 제자리 걸음한 코스피를 보면, 사실 경제 얘기를 하기가 자신들도 좀 민망하기는 할 것 같다.

여기에 한국 보수의 안타까움이 있는 거 아닌가 싶다. 경제는 보수, 민주주의는 진보, 이렇게 간단한 정식을 만들어서 산업화 세대와 민주주의 세대로 구분하려는 시도를 보수들이 했다. 이 말이 짝짝 맞아 들어가려면 자신들 집권기에 경제 수치들이 쭉쭉 나왔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후보 시절의 MB는 실용주의를 내걸고, 박근혜도 결국은 '경제 민주화'를 내걸어 중도층의 표를 가져갔다. 21세기 들어 한국의 보수는 적어도 경제의 관점에서는 '정통 보수'를 내걸고 대선을 치른 적이 없다. 선거 때는 최대한 진보 쪽 입장에 가까워졌다가, 집권하면 그때야 정통 보수였다. 뭐, 한국당의 황교안 대표가 어떻게 생각하든, 현실은 그랬다.

총리를 거쳐 불행했던 대통령 탄핵 때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던, 현직 한국의 관료로서는 가장 최고위층까지 갔던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경제관은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권한대행 시절 경제포럼 같은 외부 행사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자신의 경제관이라고 얘기한 건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기원을 따지면 그건 참여정부, 노무현 시절의 경제운용 기조였다. 그렇게 새로운 건 아니다. 그리고 새 시대에 그렇게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한국당 혹은 그 전신인 새누리당이 우리에게 보여준 경제 정책의 기조를 좀 알기 쉽게 요약하면 '놀부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흥부, 놀부의 바로 그 놀부가 한국 보수의 경제 기조를 잘 요약하는 것, 좀 슬픈 일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위기에 봉착한 놀부의 경제학

신자유주의가 유행하면서 부자들의 경제가 나아지면 사회 전체적으로 부의 흐름이 확산된다는 주장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는 IMF에서도 이런 식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일본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런 신자유주의 만으로는 새누리당 집권 시절의 경제가 잘 설명되지는 않는다.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와 토건이 동시에 진행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토건도 했다. MB 시절에는 토건 중 '토'에 해당하는 4대강을 열심히 했고, 박근혜 시절에는 '건'에 해당하는 최경환의 '초이노믹스'로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했다.

신자유주의면 신자유주의고, 토건이면 토건이지, 한 쪽으로는 민간 경제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국가가 직접 나서 토건을 했다. 그게 딱 놀부의 경제학 아닌가 싶다. 한국 경제가 갖는 불행한 점은, 돈 많으면 유리하고, 집 많으면 유리하고, 땅 많으면 유리하다는 점이다.

21세기의 한국 경제, 부자들에게는 대마불사와 강남불패가 특징이다. 그리고 약자들에게는 승자독식을 들이밀었다. 그 결과가 불평등한 경제이며 동시에 사회 전체가 공포 마케팅처럼 움직이게 되었다. 모두가 불안하고, 아무도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가 합계출산율 1 이하로 내려간 현재의 위기다.

아래 세대의 숫자가 더 적어지면서 성장에 기반해서 설계한 많은 경제적 제도들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게 '놀부의 경제학'이 갖는 전형적 특징 아닌가? 흥부의 자식일 것이 뻔한 이 시대, 누가 자식을 낳아서 억울할 일을 당하려고 할 것인가? 몸 누울 '방'도 변변치 않은 20대들이 어떻게 몇 억원에 달하는 집에 대한 고민을 할 것인가?
  

한국 사회 경제적 욕망의 상징인 강남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집권을 생각하는 한국의 보수라면

만약에 집권을 생각하는 한국의 보수라면, 놀부의 경제학보다는 흥부의 자식들을 품는, 그 정도의 비전은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야당으로서 한국당이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그게 아니면, 이미 두 번의 보수 집권에서 하던 것들을 수사학적으로 말만 바꿔서 다시 꺼내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황교안 대표에게 세 가지만 질문하고 싶다.

1) 다시 토건 경제로 복귀할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당은 중앙정부 차원이든 지방정부 차원이든, 강력한 토건정책을 썼다. 경제 지표를 단기간에 높이는 독약 같은 처방이지만, 뒷 세대에게는 부동산 거품이라는 진입장벽을 준다. 어떻게 할 것인가?

2) 금융경제에 대한 개혁안이 있는가?

시중에서 도저히 판매해서는 안 될 정도의 위험한 파생상품 같은 것은 금융기관들이 최소한의 기준만 세웠어도 막을 수 있는 일이다. 경제 관료 흔히 '모피아'들에 대해서는 진보도 제대로 손을 못 썼고, 보수도 마찬가지다. 이건 좌우 막론하고 별 대안이 없다. 모피아 경제에 대해서 개혁안을 가지고 있는가?

3) 직장 민주주의에 대해서 방안을 가지고 있는가?

작게 보면 '직장 갑질'로 표현되지만, 넓게 보편적인 눈으로 보면 생활 민주주의의 연장으로서 직장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한국이 10년 넘게 경제 기조로 유지하다 보니까 대기업의 횡포도 심해졌지만, 직장 내에서 정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기 어려울 정도로 회사든 공무원이든 조직 내에서의 수직화가 여전히 강하다. 특히 대리 이하의 젊은 직원들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조직 내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게 직장 민주주의 문제다. 여기에 대해서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가?

정책 실무에서는 '인터페이스'라고 부르는 큰 제목을 단다. '2만불 경제', '747', 이런 것들과 마찬가지로 '민부론'도 그 자체로는 인터페이스의 문제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안의 몇 가지 기준점들을 놓고 이게 놀부의 경제학인지 아니면 흥부의 경제학인지 혹은 또 다른 무엇인지, 판단을 하게 된다.

황교안 대표의 민부론이 결국은 한국 보수의 전형적인 놀부의 경제학인지, 또 다른 무엇인지 판단하고 싶다. 이제 한국의 보수도 "이렇게 하면 나라 망할 것 같지는 않다", 그 정도로 보이는 경제 정책을 제시할 때가 되었다. 대답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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