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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9.26 15:47 수정 2019.09.27 11:30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김원봉 장군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3기생들이 훈련을 받았던 '천녕사'에서 역사탐방단이 단체사진을 찍은 모습. ⓒ 임시정부100주년역사탐방단


"그동안 너무 몰랐고, 너무 무관심했던 나를 부끄럽게 하는 여행이었어요."
"제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다른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이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진행됐다. 탐방을 마친 학생과 교사들은 한결같이 그동안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자신이 부끄럽다는 소감을 남겼다. [첫 기사 :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 기억하고 찾아가고 찾아내야"]
 
[셋째 날] 버려진 독립군 훈련소에서 술 한 잔 따르고 시 낭송
 
역사탐방 셋째 날 첫 방문지는 난징(남경)에 있는 '천녕사'다. 그동안 김구 선생을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 청사와 주요인사 피난처, 김구 선생 피난처를 돌아 본 우리들은 이번에는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숨결이 서려 있는 곳을 찾았다.
 
1932년 7월 김원봉 장군은 중국 장제스(장개석)의 지원으로 독립운동 군사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난징 외곽에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설립했다. 1935년까지 3년여 동안 운영된 이 학교는 제1기부터 3기까지 모두 125명의 청년 간부들을 배출했다.
 
천녕사는 1935년 조석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3기생들이 훈련을 받았던 장소다. 1기와 2기생이 훈련했던 장소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도착한 천녕사 입구에는 '김원봉, 정율성, 이육사, 윤세주가 활동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터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이 안내판은 지난 7월 이 곳을 다녀간 '김포청소년역사문화탐구단'이 붙여 놓은 것이다.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김원봉 장군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3기생들이 훈련을 받았던 '천녕사'로 가는 길 입구다. 건물사이 좁은 길을 따라 산을 올라가야 하는데, 탐방단이 도착했을 때는 지역주민들이 공사를 하기 위해 쌓은 벽돌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건물 한 쪽에는 앞서 다녀간 역사탐방단이 붙여 놓은 안내판도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김원봉 장군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3기생들이 훈련을 받았던 '천녕사'로 가는 장면. 경사진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폐허된 것 같은 건물이 나온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김원봉 장군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3기생들이 훈련을 받았던 '천녕사'와 앞서 다녀간 김포 청소년들이 그 입구에 꽂아 놓은 바람개비. ⓒ 오마이뉴스 장재완

 
천녕사로 가기 위해서는 건물 사이 조그만 길을 지나 가파른 비탈길을 10여 분 올라야 한다. 탐방단이 도착했을 때는 공사를 위해 마을 주민들이 입구에 벽돌을 쌓아 놓은 상태였다. 몇몇 분들이 벽돌을 치우고 무성한 풀을 헤치고서야 겨우 길을 지날 수 있었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거리지만 30도의 날씨에 비탈길을 오르려니 숨이 가빠오고 땀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나뭇가지에 달린 반가운 글씨들을 보니 절로 힘이 났다. 태극기를 그리고, 화살표를 그리고, 바람개비를 만들어 천녕사 가는 길을 표시한 김포 청소년들의 솜씨다.
 
무성한 수풀과 아름드리나무 사이 옛 천녕사 건물이 나타났다. 현재 도교 사당으로 쓰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폐허된 건물에 가까웠다. 주변에는 무너진 건물 잔해와 우물로 보이는 구조물이 있었다. 또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지만 움푹 패인 웅덩이 같은 지형물 등이 보였다.
 
탐방단은 이곳에 작은 제사상을 차리고 묵념을 했다. 그리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켜낸 선열들에게 감사의 술 한 잔을 올리면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다. 또 조석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이었던 이육사 시인의 '광야', '청포도', '절정'이라는 3편의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천녕사에서 훈련했던 독립군들을 생각하며 '독립군가'와 '용진가', '압록강행진곡' 등을 불러보기도 했다.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김원봉 장군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3기생들이 훈련을 받았던 '천녕사'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애국선열들에게 간단한 제사상을 차려 술을 따르는 모습. ⓒ 오마이뉴스 장재완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김원봉 장군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3기생들이 훈련을 받았던 '천녕사'에서 이 학교 1기 출신인 이육사 시인의 시를 낭송하는 장면. ⓒ 오마이뉴스 장재완

   
다음 방문지는 '난징대학살 기념관'이다. 1937년 12월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한 일본은 12월 3일부터 이듬해까지 약 6주 동안 30만 명이나 되는 민간인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불태우고, 강간하고, 생매장했다. 중국인 가이드는 '학살'이 아닌 '도륙(屠戮, 사람이나 짐승을 무참하게 마구 죽임)'이 맞는 표현이라고 했다.
 
기념관이 자리한 곳은 일본이 집단학살을 자행했던 13곳 중 하나다. 기념관 내부에는 대학살로 희생된 당시 중국인들의 이름, 사진, 당시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자료, 각종 학살 증거와 사진, 신문기사, 증언영상,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탐방단은 다시 김구 선생의 피난처인 '회청교'로 향했다. 회청교는 김구 선생이 자싱에서 함께 선상 생활을 했던 주애보를 난징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했던 곳이다. 이곳 근처에서 '고물쟁이'로 신분을 위장한 두 사람은 1933년부터 5년 가까이 함께 생활하며 실질적인 부부로 지냈다고 한다. 이곳을 떠난 때 김구 선생은 주애보를 자싱으로 돌려보냈는데,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난징대학살 기념관' 외부 모습으로, 1937년 12월 난징을 점령한 일본은 12월 3일부터 이듬해까지 약 6주 동안 30만 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 오마이뉴스장재완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난징대학살 기념관' 내부에 있는 전시물로, 학살된 30만명을 명확하게 숫자로 보여주는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이 있는 대형홀 벽에는 수도 없이 많은 당시 난징 주민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난징대학살 기념관' 내부에 걸려 있는 학살 당시 난징 주민들 사진. ⓒ 오마이뉴스 장재완

  
역사탐방의 마지막 밤은 김구 선생이 묵었던 '중앙반점'에서 우리도 묵었다. 1933년 5월 김구 선생은 장제스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중앙반점 바로 뒤쪽에 국민정부 총통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머물면서 김구 선생은 장제스 총통과의 1대1 회담을 준비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김구 선생은 장 총통을 만나 "선생이 100만원을 허락하면, 2년 안에 일본·조선·만주 세 곳에서 큰 폭동을 일으켜, 대륙 침략을 위한 일본의 교두보를 파괴하겠소"라고 말한다.
 
이에 장 총통은 "상세한 계획을 글로 작성해 달라"고 요구했고, 중앙반점으로 돌아온 김구 선생은 다음 날 '계획서'를 작성해 보낸다. 그랬더니 장 총통은 "천황을 죽인다고 해도 천황은 또 나올 것이고, 대장을 죽인다 해도 대장이 또 나올 것이오. 그러니 앞으로 독립을 하려면 군인을 키워야 하지 않겠소"라고 답했다. 김구 선생은 "그것이 내가 진실로 바라는 바요"라고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그로 인해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한인 특별반'이 설치됐다. 이곳에 동북 3성의 옛 독립군들과 중국 내 청년들이 모여 들어 1933년 11월 1기로 92명이 입학했고, 이청천, 이범석이 교관과 영관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다만 아쉽게도 한인 학생을 받았다는 일본의 항의에 따라 1기만 졸업하고 말았다.
 
중앙반점은 김구 선생이 밤을 새워 고민하며 계획서를 작성했을 80여 년 전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가 묵는 방 어딘가에도 김구 선생의 발길이 닿았으리라 생각하니, 오래된 나무냄새마저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김구 선생이 자싱에서 함께 선상생활을 했던 주애보를 데려와 '고물쟁이'로 신분을 위장해 살았던 난징 회청교. 두 사람은 이 인근에서 1933년부터 5년 가까이 함께 생활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김구 선생이 자싱에서 함께 선상생활을 했던 주애보를 데려와 '고물쟁이'로 신분을 위장해 살았던 난징 회청교. 두 사람은 이 인근에서 1933년부터 5년 가까이 함께 생활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김구 선생이 장제스를 만나기 위해 묵었던 '중앙반점'. ⓒ 오마이뉴스 장재완

   
[넷째 날] 닦아도 닦아도 마르지 않는 눈물... 분함과 슬픔이 함께 밀려왔다
 
역사탐방 마지막 날 유일한 일정은 난징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이다. 우리가 묵은 중앙반점에서 걸어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기에 탐방단은 출발하기 전 옷매무새부터 살폈다. 슬리퍼를 신거나 반바지를 입어서는 안 된다.
 
2015년 12월 개관한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은 일제 성노예 관련 유적지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평안도 출신 박영심 할머니가 이 곳 두 번째 건물 19번방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 박영심 할머니는 2003년 11월 21일. 이곳 현장을 찾아 "내가 있던 곳이 바로 여기"라고 증언했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정부가 난징의 한복판인 이곳에 유적 진열관을 건립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70명의 사진이 벽면 전체를 덮고 있다. 이곳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던 피해자들의 사진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고, 생존해 있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또 눈물이 떨어지고 있는 형상의 벽면 아래에는 고 박영심 할머니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일본군 위안부' 사진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사진 중 임신한 위안부가 바로 박영심 할머니다. 그 임신한 위안부를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동상이다. 그 동상을 마주하는 순간, 눈물을 참기 위해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다.
 
진열관에는 총면적 3000㎡ 규모에 약 1600여 점의 전시물과 680점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당시 일본군이 운영한 동양 최대의 위안소였다. 당초 8개의 건물이 운영됐었는데 현재는 6곳만 온전한 형태로 복원시켜 놓았다.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일본군 성노예와 관련한 유적지로는 아시아 최대규모인 난징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 평안도 출신 박영심 할머지가 이 곳 두 번째 건물 19번방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증언하면서 '역사유적'으로 보존되게 됐다.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다. 진열관 입구에는 임신한 위안부(실제 박영심 할머니) 형상의 조각상이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일본군 성노예와 관련한 유적지로는 아시아 최대규모인 난징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 평안도 출신 박영심 할머지가 이 곳 두 번째 건물 19번방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증언하면서 '역사유적'으로 보존되게 됐다. 탐방단들이 관람을 하기 전 박영심 할머니를 비롯한 이 곳에 있었던 모든 위안부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일본군 성노예와 관련한 유적지로는 아시아 최대규모인 난징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을 후문에서 바라 본 모습. 리지샹위안소는 난징 시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어 재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고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 등으로 2014년 11월 낭징시인민정부가 '보존'키로 결정, 2015년 12월 정식 개관했다. 뒤로 보이는 고층빌딩과 대조를 이룬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공개하고 있는 두 개의 동 중 첫 번째 동에 들어서자 두루마리 형태의 책에 수많은 위안소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당시 난징에만 60개의 위안소가 있었다고 하니, 일본군이 위안소 운영을 얼마나 대대적이고,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또 이곳에는 콘돔이나 부인과 검사기구, 신체검사틀, 연고 등 위안부와 관련된 증거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위안부를 훔쳐보는 일본군의 사진, 살아남은 위안부 소녀들이 할머니가 되어 증언한 증언록, 증언영상 등도 전시되고 있다.
 
2동 19호. 박영심 할머니가 있었던 방에 들어서자 눈물이 차오르고 목이 메어 왔다. 다다미 침상과 작은 화장대, 주전자와 찻잔, 세숫대야 등이 그 당시를 그대로 재연해 놓았다. 벽면에는 박영심 할머니의 여러 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차마 자세히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적나라하고 처참했다.
 
마지막 전시관을 나서는 길에 '마르지 않는 눈물'이라는 제목이 붙은 한 할머니의 조각상을 만났다. 이 조각상의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마른 손수건과 함께 '그녀의 눈물을 닦아 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손수건을 들어 눈물을 닦아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너무 울어서 눈이 멀어 버렸다는 한 중국인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영상이 조각상과 자꾸 오버랩됐다.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을 나서면서 우리는 대부분 말이 없었다. 눈물이 차올라 자꾸 하늘을 올려보곤 했다. 분함과 슬픔이 함께 밀려왔다. 한 선생님은 눈물을 감추려 선글라스를 꺼내 썼지만, 결국 선글라스를 벗고 중앙반점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이것으로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3박4일간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공항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탐방단들은 "나를 찾는 여행이었다", "내 꿈을 찾은 것 같아요", "내가 누리는 것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등 저마다의 소감을 나누었다.
 
이번 일정의 해설을 맡았던 홍소연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 자문위원은 모든 일정을 마치면서 "비록 다른 나라 땅에 있지만, 우리나라 역사 최초로 민주공화제를 만들어 대한민국이 탄생한 임시정부 유적지를 더 많이 찾아오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올 수 있도록 수학여행을 보내거나 교과과정에 포함시켜 돌아보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그래야 독립운동가들이 찾고자 했던,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을 더 잘 알 수 있고, 더 소중히 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시에 임시정부 유적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매우 중요하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며 "아쉽게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했지만, 우리 땅에는 이를 기념할 만한 기념관 하나 없다. 현재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준비중에 있는데, 기념관이 세워지면 이 곳에라도 많이 찾아와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고마움과 조국의 소중함 느끼는 시간이었다"

다음은 이번 역사탐방에 함께 했던 김태훈 한국교직원공제회 경영지원부 차장과의 미니인터뷰 내용이다.
 

'The-K한국교직원공제회' 김태훈 경영지원부 차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
"이번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을 기획한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경영지원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어떻게 이번 역사탐방 일정에 참여하게 됐나?
"우리 회사에서는 그 동안 사회공헌사업은 타 부서에서 진행했었는데 올해부터 우리 부서로 모두 이관하게 됐다. 그래서 비록 일정을 주관하고 있지만 않지만 주최 측으로서 참여하게 됐다."
 
-역사탐방에 참여하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참여하게 됐나?
"처음에는 그냥, 우리 부서에서 추진하는 일이니 문제없이 잘 진행되기를 바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일정을 봤을 때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일정을 함께 다녀보니 정말 많은 것을 느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일정을 모두 마친 소감은 어떤가?
"이 사업이 정말 의미 있고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함께 한 학생들이나 교사들에게도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저 개인적으로도 역사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저는 이러한 역사에 대해서 정규 학교수업 시간에만 들었지 자세하게 공부해 볼 기회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정말 깊이 있게 공부를 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러한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이번 일정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저는 첫날 조그만 사거리에 서 있는데, 해설사 선생님이 바로 저 곳이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만났던 장소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 곳과 주변의 거리를 돌아봤는데,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김구 선생이나 윤봉길 의사가 있을 것만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뭔가 이상했다. 아, 이 곳이 그렇게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했던 곳이고, 또 그 분들이 일상적으로 거닐었던 곳이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졌었다.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도 막상 현장에 와서 느껴보니 그 동안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다는 것을 느꼈다. 목숨을 내걸고 나라를 지켰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현장에 와 보니 그 때의 분위기, 그 때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더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경험을 해 보기를 권하고, 저희 같은 단체나 국가 등이 이러한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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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