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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9.26 09:39 수정 2019.09.26 09:39
중국 신장 투루판에는 베제클리크 천불동 사원이 있다. 천불동 사원이란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면 스님이 생활하면서 종교 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사막 지역이다 보니 딱딱하게 굳은 흙 산에 굴을 파서 종교 활동 공간과 스님 생활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종교 활동 공간 내부에는 불상을 만들고 놓고 흙벽에 벽화를 그렸다. 
   
베제클리크 천불동 벽화의 수난
 

중국 신장 베제클리크 사원 표시판 ⓒ 김기동

 
이 벽화가 유물 가치가 크고 돈이 되기 때문에, 혼란했던 청나라 말기 유럽, 일본에서 문화재 장사꾼이 와서 벽화를 칼로 토막 내 가져갔다. 그래서 베제클리크 사원에 남아 있는 벽화는 얼마 없다. 그나마 남아 있는 벽화도 많이 손상돼 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래서 사실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베제클리크 천불동 벽화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다. 예상한 대로 굴 안에는 멀쩡한 벽화가 거의 없다.

나는 유럽과 러시아, 일본 장사꾼이 이곳에서 벽화를 떼어가기 전에 이미 많이 손상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이곳 신장 투루판 지역은 종교가 불교에서 이슬람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를 겪으면서 당연히(?) 불교 유적이 파괴되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중국 신장 지역 출토 벽화 (신장 우루무치 박물관) ⓒ 김기동

 
돈이 이데올로기, 종교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중국에서 확인했다. 이곳 투루판 원주민들은 600년경부터 불교 벽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후 10세기경 웨이얼 민족이 이곳으로 이동해 왔다. 웨이얼족도 400년간 불교를 믿었고 이곳 투루판에 불교 벽화를 그렸다. 

그후 14세기경 웨이얼족은 이슬람교로 종교를 바꾸었다. 웨이얼족은 이슬람교로 개종한 후에도 불교 벽화를 파괴하지 않았다. 그냥 방치했는데, 그 덕에 불교 벽화 사원이 모래에 묻혀버렸고,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이때까지도 벽화는 별 다른 훼손 없이 잘 보존됐다.

종교보다 강한 돈
 

중국 신장 베제클리크 석굴 전경 ⓒ 김기동

 그런데 그후 19세기 유럽, 러시아, 일본 장사꾼이 와서 모래를 파헤쳐 벽화를 떼간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 불교 벽화는 이데올로기, 종교가 바뀌어도 무사했는데 돈 버는 장사꾼에 의해 토막 나서 팔려나간 것이다. 역시 돈이 이데올로기, 종교보다 강하다.

별로 볼 것도 없는데 입장료를 받아 미안해서인지, 벽화가 있던 자리에는 유럽과 일본에서 떼어간 벽화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사진을 보니 벽화는 하나도 손상되지 않고 완벽한 상태 그대로였다. 물론 독일 사람이 가져간 벽화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공습으로 사라졌지만.

사진 아래에는 도둑맞은 이 벽화가 현재 보관되고 있는 나라와 장소에 대한 설명문이 있다. 놀랍게도 인도와 한국 박물관에도 베제클리크 천불동 사원 벽화가 보관돼 있다는 설명이 보인다. 인도에는 영국 장사꾼이 떼간 벽화가, 한국에는 일본 장사꾼이 떼간 벽화가 보관돼 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중국 신장 투루판 베제클리크 불교 벽화를 떼어간 일본 장사꾼이 한국 광산 채굴권을 얻으려고 조선총독부 대장에게 뇌물로 벽화를 주었단다. 그래서 중국 투루판의 천불동 벽화가 조선 땅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아마 일본이 패망한 후에 정신없이 몸만 일본으로 도망가느라 미처 가지고 가지 못해 한국에 남겨진 듯하다. 
 
엄밀하게 따지면 현재 한국에 있는 베제클리크 불교 벽화는 '장물'이다. 일본 장사꾼이 중국 신장 투루판에서 돈을 주고 벽화를 떼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랬을리 만무하다. 직접 강도질을 해서 가지고 간 나라는 독일, 러시아, 일본인데, 그렇게 강도질한 물건 중 일부는 지금 인도와 한국에 있는 것이다. 역시 돈은 이데올로기나 종교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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