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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9.10 08:33 수정 2019.09.10 08:35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편집자말]
형이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축하하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컸다. 결혼이 단지 개인의 결합이 될 수 없음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 가족에게도 변화는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나는 형의 애인을 이름이 아니라 '형수'라고 부르게 될 터였고, 엄마는 이제 '시어머니'가 될 예정이었다. 물론 엄마와 형수는 형이 연애를 하던 당시에도 사이가 무척 좋았다. 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그 관계가 잘 유지될까 걱정이었다.

엄마가 이제 시어머니가 되어 형수에게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며느리의 도리'를 요구한다면? 명절 노동과 제사를 강요한다면? 그래서 형수와 엄마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갑자기 엄마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형수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한다면? 만약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엄마를 달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는 게 맞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닥치는 모습을 상상하면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듯했다. 엄마가 틀렸다고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설득을 하면, 엄마는 자기편이 없다는 섭섭함에 더욱 강경한 태도로 형수를 대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말에 동조하고 공감하며 위로를 하자니 그건 페미니스트로서 내가 지켜온 신념을 와장창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나는 형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기대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네이트판'에 올라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심지어 엄마가 꿈에 나타나 '그래도 너는 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형수 편을 들 줄 몰랐다'고 했을 때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싱겁지만 다행스럽게 끝난 고민
     

차례상 ⓒ pixabay


하지만 나의 이런 걱정은 다행스럽게도 아주 싱겁게 끝이 났다. 결혼식 전에 만난 엄마는 내게 선을 확실히 그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막내며느리로서 수십 년간 홀로 준비하길 반복했던 제사를 본인의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즉 형수와 형이 제사를 물려받지 않기를 바라셨다. 아니 지금 지내는 제사에도 굳이 오지 말라고 하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형수는 회사에 다녔다. 엄마는 형수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비우고 밤늦게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 판단했다. 또한 제사상에 오르는 산적이나 탕국, 전은 형이나 형수 세대에서 일상적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즉, 두 사람이 그 음식을 할 줄 알리도 없었다. 엄마는 못 하는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따른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엄마는 명절에 대해서도 확고히 선을 그었다. 가령 추석에 형과 형수가 엄마를 보러 왔다면, 설날에는 반대로 형수의 부모님 댁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여행이든 휴가든 본인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도 괜찮다고 하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명절에 자기 자식 보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같을 텐데 어떻게 두 번을 모두 형수에게 시댁에 오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같은 '엄마'로서 갑자기 딸이 사라진 명절을 장모님이 보내면 무척 허전할 것을 안다고 엄마는 말했다. 즉, 엄마가 보기에 명절마다 부부가 시댁을 찾는 지금의 관행은 불공평했다. 불공평한 것은 나쁜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된다. 그게 엄마의 판단이었다.

엄마가 가졌던 일관된 원칙

사실 제사와 명절 외에도 엄마가 형수와 형에 대해서 그었던 선은 일관됐다. 가령 아이를 가지는 일에 대해서도 그랬다. 엄마는 형수가 자식을 빨리 가져야 한다거나 적어도 둘은 낳아야 한다는 식의 참견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출산과 육아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상당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고 적당한 시기는 본인들밖에 알 수가 없다.

즉, 엄마가 아무리 말을 얹는다고 해도 당사자들이 거기에 따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요구는 왜 하나? 엄마는 형수와 형의 자녀계획을 궁금해 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른 조카가 생겨서 부모님의 신경이 그 쪽으로 분산되기를 바라는 내가 더 궁금해 했다. 

여기까지 글을 읽으면 나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페미니스트이거나 전통적인 가족체제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입장을 지닌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들로 태어났으면 내가 이렇게 안 살았다'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느끼는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이분법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순간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엄마가 흔히 말하는 활동과 정치적 신념으로서의 '여성주의'를 마주할 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도 엄마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보수적인 중년 여성에 가깝다. 자유한국당이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은 싫어하는 그런 사람.

다가온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하자
   

KBS 명절 보도 관련 캡처 ⓒ KBS


다만 엄마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리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했다. 열심히는 살되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것이 일관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불가능한 요구는 상대방에게 하지 말자는 것도. 어쩌면 엄마가 형수에게 '전통적인 며느리의 역할'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아주 단순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예전처럼 사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것은 모두를 괴롭게 만든다. 

실제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을 만드는 것을 삶의 선택지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나의 나이는 사람들이 말해온 '결혼적령기'인데 정작 내 주변의 또래들 중 결혼을 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신문을 봐도 '1인 가구'의 비율이 날로 늘어간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그것을 '문제'라고 보는 게 짜증나기는 하지만).

일상을 공유해온 이모네 식구들을 제외하면 친척들도 내게는 낯선 타인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명절 풍경을 세대를 거쳐 유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는 명절을 보내는 것 말이다. 아마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많은 글에서 우리가 이성애 중심의 정상가족 틀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기에 기반한 전통적인 가족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일들을 경험하며 깨닫게 된 것은, '그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엄마가 했던 일은 다가오는 현실을 인정한 것뿐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시대착오적인 인간이 된다. 그리고 그런 부류의 사람은 주변을 괴롭게 만든다. 

그러니 아직도 정상가족이 이어지리란 환상에 갇혀서 가족과 친척들에게 불가능한 역할을 요구하고, 특히나 소중한 휴일인 명절을 괴롭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하고 싶다. 어차피 세상은 변한다. 지금도 과거와 다르기는 마찬가지다. 그 순간을 누구도 괴로워하지 않으며 지나갈 방법은 분명히 있다.

글을 끝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족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다. 엄마는 내게 본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 명절과 자신의 제삿날을 이렇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한 적이 있다(물론 나는 벌써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기겁을 했지만). 어쩌면 이것이 다음 세대의 명절 풍경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 말을 남겨본다.

"명절에 모여서 차례 한다 기일에 제사 지낸다 그런 거 하지 마라. 그냥 너랑 형이랑 형수랑 모여서 맛있는 거 사먹고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고 그래. 그리고 내 이야기나 조금 하고. 그러고 집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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