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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9.05 19:15 수정 2019.09.05 21:30

토마 피케티의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쇠이유 출판사에서 9월 12일 발간 예정인 토마 피케티의 새로운 책이다.

[기사수정: 5일 오후 9시30분]

아마존은 끝도 없는 화염에 휩싸여 있고, 홍콩 인민들은 마침내 격렬한 투쟁 끝에 승리에 도달하는 사이, 영국에선 브렉시트가 다시 한번 고비를 맞고, 한국에선, 한 법학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정치드라마가 숨가쁜 반전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종방을 향해 달리던 사이. 프랑스의 한 남자는 지난 6년간 준비해온 1232페이지의 묵직한 저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이름은 토마 피케티. 책의 제목은 <자본과 이데올로기>. 이 책이 던지는 한 가지 메시지는 "이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다. 프랑스 언론은 6년만의 피케티 저서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21세기 자본> 그 후 6년

2013년 출간 후, 피케티를 세상에서 가장 핫한 경제학자로 만들어 주었던 <21세기 자본>은 지금까지 43개 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250만 부가 팔려나갔다. 자본의 편향된 축적이 빚어온 불평등의 역사에 대한 서술과 실증이 <21세기의 자본>이 담고 있는 내용이라면, 두 번째 책은, "왜 인류 공동체에게 이토록 큰 해악을 끼치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정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에 대한 저자 본인의 오랜 질문에 답한다. 

첫 책 출간 이후, 그는 일찍이 가보지 않았고, 잘 알지 못했던 세상 곳곳을 다녔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수백 번의 토론을 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그는 자신이 품었던 의문에 대한 구체적 해답들을 하나둘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들을 하나의 정치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여, 자본주의를 대신할 대안으로 제시하기에 이른다.

피케티에 따르면, 6년 전에 나온 자신의 책은 두 가지 결정적인 결핍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지나치게 서구 중심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정치 이데올로기라는 검은 상자의 표면만 긁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앞선 저작에 대한 이러한 자각이 새로운 저작을 향한 도전으로 이끌었고, 감히 그는 검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만다. 소비에트의 거대한 도전이 실패로 판정된 후, 사람들은 더 이상 자본주의 체제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그 폐기를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불평등과 모순을 쌓아만 왔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의 새 저작은 그러한 두려움을 건너뛰고자 하는 사람들 앞에 놓일 디딤돌이 되겠다는 야심에서 태어났다.

불평등을 타파할 대안을 찾아나서는 사람이 기억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세상에 만연한 불평등은 한 번도 자연스럽게 생겨난 적이 없다는 사실. 즉, 그것은 언제나 '합법적'으로 지배계급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치밀하게 만들어졌다. 모든 체제는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불평등을 정당화시켰고 법과 세금, 사유재산, 교육 체계를 통해 불평등을 공고히 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또 하나의 사실은, 세상의 그 어떤 사회 제도도 영원히 존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회적 기구, 제도를 상상하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는 불평등을 확대하고, 자본이 극소수 사람에게 집중되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면, 또 다른 사람들은 불평등을 줄이고, 자본이 효율적으로 재분배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움직이고, 거대한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 내어 함께 공을 굴려갈 때만이 가능하다.

"사유재산의 신성함을 깨자"
 

지난 2014년 내한 당시 토마 피케티 교수. ⓒ 권우성

 
사유재산의 신성함을 건드리면 세상이 붕괴하지 않을까? 마치 루이 16세의 목을 베면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를 진심으로 고민했던 혁명 직후 프랑스 인민들의 두려움처럼, 오늘의 세계는 '사유재산'이란 금기를 차마 건드리기 힘들어 한다.

미국이 소득세 최고세율을 91%까지 올렸을 때도 미국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았다고 피케티는 말한다. 세금의 누진성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1950~70년대에 생산성 증가율은 지금보다 한결 높았다. 그러나 레이건 이후의 미국에서 1%의 상위층이 소유하던 자산은 지난 36년간 12%에서 20%로 늘었으며 하위 50%가 점하던 자산의 규모는 정반대로 19%에서 12%로 축소되었다. 그러니 두려움 없이 우린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도 된다.

<옵스(l'Obs)>지는 피케티가 이 책에서 전하는 10가지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1. 사회적 소유와 기업의 공동 경영 확대. 종업원들이 이사회의 50%를 차지하게 하고 대주주들의 투표권 제한, 예를 들어 대기업 내에서는 10% 이하로 제한.

2. 사유재산에 대한 누진적 재산세 신설. 20억 유로 이상의 재산에는 90%의 세율을, 소규모의 재산에는 0.1%의 세금을 매겨서 그 돈으로 기본자본 지급을 위한 토대를 마련함.

3. 25세가 되면 누구나 (기본소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기본자본을 사회로부터 받음. 예를 들어, 프랑스의 일인당 평균 자산이 20만 유로인데, 이것의 60%인 12만 유로(약 1억6천만원)를 25세가 되는 모든 청년들에게 지급하는 것. 프랑스 인구의 절반이 부모로부터 아무런 자산도 물려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무렵의 청년들은 부모가 아닌, 국가로부터 그들의 자립 기반을 지원받는 것이다. 누군가는 집 구입을, 누군가는 창업을 위한 종잣돈이 되어줄 수 있다.

4. 최상류층의 소득세와 상속세의 확대(90%까지). 부동산 자산에 대해 토지대장이 존재하듯이, 금융자산의 소유권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국제금융등록제' 도입.

5. 세금의 누진제 원칙을 헌법화. 모든 종류의 세금은 소득에 비례하여 그 과세의 비율을 차등화하는 것이 원칙.

6. 교육 정의 실현. 1990년대에 들어서며 선진국들의 교육에 대한 투자액은 정체되어 왔고, 이는 교육을 통한 불평등 해소를 더디게 만들었다. 교육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저소득층의 교육 시설에 상대적으로 높은 투자를 진행해, 교육을 불평등 해소를 위한 효과적 장치로 사용한다.

7. 탄소카드를 신설해 각자가 소비하는 탄소량을 측정하고, 누진적인 개인별 탄소세를 부과.

8. 정치에 대한 재정 지원의 민주화. 시민들이 민주적 평등을 위한 쿠폰을 정부로부터 받은 후, 각 시민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이를 전달한다. 개별 기부금의 상한선 제한.

9. 무역 협정 및 국제 조약에 계량적이고 구속력 있는 세금부과와 환경 보호를 위한 목표를 포함시킨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계약 및 조약(유럽 포함)을 정지시킨다.

10. 세무 당국이 누가 무엇을 소유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국제적인 금융등록제(토지대장처럼) 실시.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중지.

세금의 누진제 강화, 자본 흐름의 투명성 확대, 환경보호에 대한 보편적 목표 부여, 교육의 공공성 강화가 피케티가 찾아낸,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불평등을 축소하기 위한 대안의 굵직한 테마들이다.

피케티의 즐거운 상상, 기본자본

이중에서 가장 획기적인 제안은 청년들에게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기본자본'으로 보인다. 불평등을 극복하고, 인류가 스스로를 족쇄로 얽어매는 불행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사유재산에 바쳐진 신성함"의 금기를 깨야 한다고 피케티는 말한다. 사유재산이 아니라 사회공유재산. 그것이 청년 전체에 지급하는 '기본자본'이란 생각은, 소련 붕괴 이후 봉인되어 있던 정치적 상상력의 둑을 과감하게 허문다.

불평등의 늪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날려버리고, '참여적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세계를 재설계하는 피케티의 즐거운 상상.

이 대범한 그림을 들여다 보며 생각한다. 김용균과 조국의 딸. 그 어떤 계급에 속해도 차별과 경쟁이란 지옥도를 벗어나기 어려운 우리의 청춘들을 위해 우리에겐 어떤 상상이 필요할지를. 무능한 정치가 더 깊은 수렁으로 우리를 이끌고 갈 때, 동시대의 저편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인류와 머리를 맞대며 상상력을 충전하는 것은 어떨까.


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글항아리(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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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