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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28 20:13 수정 2019.08.28 20:13
사법농단이란 초유의 사태 이후 사법개혁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독일 현지에서 약 1700km를 누비며 그 해법을 고민했습니다. 이 연속보도를 통해 '서초산성'이 되어버린 한국 법원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독일 베를린주 대법원 법정 내부. ⓒ 남소연


2012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원고 토마스 슐테-켈링하우스(Thomas Schulte-Kellinghaus) 바덴주 대법원 판사와 피고 주 대법원(Oberlandesgericht)의 법정싸움이 시작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크리스티네 휘겔 당시 주 대법원장은 켈링하우스 판사의 사건 처리율이 동료 법관들의 평균치보다 30% 정도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켈링하우스 판사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나름의 속도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더 많은 재판을 처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지금껏 본인이 해온 것과 다른 재판을 강요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그는 휘겔 법원장이 감독권한을 남용, 자신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며 직무법원(Dienstgericht)에 소송을 제기했다. 독일에서 '느린 판사 사건(Fall Langsamer Richter)'으로 유명한 재판이다. 1심과 항소심은 모두 '주 대법원장의 권한 남용은 없었다'고 판단했으나 상고심을 맡은 연방일반법원이 2018년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주 직무대법원으로 돌려보냈고,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느리다'고 지적받은 판사가 달려간 곳

판사가 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 직무법원이라는 독일의 제도가 빚어낸 낯선 풍경이다. 독일법관법은 "법관은 그의 독립이 침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직무감독을 받는다(26조 1항)"고 정하고 있다. 또 부당한 직무감독에 저항할 수 있는 절차를 보장한다(26조 3항).

직무법원은 그 절차를 맡은 곳이다. 소송은 켈링하우스 판사처럼 소속 법원장을 상대로 할 수도 있고, 합의부 배석판사가 부장판사를 상대로 할 수도 있다. 법관인사자문위원회(Präsidialrat), 법관직장협의회(Richterrat)의 결정도 재판 대상이다. 다만 법관운영위원회(Präsidium)가 정한 사무분담은 직무감독상의 조치가 아니라 직무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직무법원은 판사의 징계도 결정한다. 독일의 법관징계는 견책부터 과태료(Geldbuße), 감봉, 정직, 해임까지 가능하다. 법원장은 개별 판사를 견책만 할 수 있고, 나머지 징계는 모두 직무법원에서 정한다. 일반 공무원의 징계소송은 행정법원이 맡지만, 법관의 경우 민·형사사건을 다루는 일반법원에 직무법원이 설치된다는 점도 다르다.
 

독일 튀빙겐대학 법대 베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 교수. ⓒ 남소연

 
튀빙겐 에버하르트 카를스 대학교(Eberhard Karls Universität Tübingen) 법과대학에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강의하는 베른트 하인리히 교수는 6월 28일(현지시각) 인터뷰에서 "직무법원의 큰 역할은 법관을 감독하는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감독'은 감시가 아니라 법관의 위법 여부를 따지는 일이다. 하인리히 교수는 "판사는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지위이므로 당연히 신뢰받아야 하고, 스스로 사법기관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며 "법관의 존엄성을 훼손했다면 직무법원을 거쳐 제재 당할 수 있다"고 했다.

'깜깜이 징계' 한국 vs '투명 징계' 독일

직무'법원'에서만 법관 징계가 이뤄진다는 점은 독일이 사법신뢰를 유지하는 또 다른 비결이다. 법관 인사에 행정부나 입법부 등 정치세력이 참여하지만 그들이 부당하게 외압을 넣을 수 없도록, 법원 안에서도 상급자가 제멋대로 징계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징계 절차 자체가 재판이라 투명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대법원이 2018년 6월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에 사법농단 연루 판사 13명의 징계를 청구한 지 6개월 후, 징계 대상 10명이 정해진 다음에야 해당 법관 이름이 세상에 드러났다. 검찰이 지난 3월 5일 법원행정처에 넘긴 관련자 66명의 명단은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다. 이 가운데 현직 법관 10명의 징계 여부를 논의 중인 사실만 알려졌을 뿐이다. 한국의 법관 징계는 누가, 어떻게 징계 수위를 정하는지조차 비밀인 '깜깜이' 그 자체다.

또 한국은 대법원장이나 대법관, 소속 법원장 등 사법행정사무에 관한 감독권을 가진 사람만 법관 징계를 청구할 수 있다. 법관이 스스로 상급자의 위법한 직무감독에 저항할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단 징계에 불복할 경우 대법원에 취소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데, 단심제다. 독일은 직무법원 사건 역시 3심제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판사가 다른 판사를 재판하면 결국 제 식구 감싸기가 되지 않겠냐'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고심 끝에 독일 사회가 찾은 해법은 '더 투명하게'였다. 2004년 독일법관법 77조 4항에는 현직 변호사를 직무법원 재판부의 일원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임대판사(Leihenrichter)'라고 불리는 이들의 후보자 명단은 주 대법원 법관운영위원회가 작성하고, 이 가운데 누가 재판부에 참여할지는 해당 직무법원 법관운영위원회에서 정한다.

180년 전부터... '법 왜곡' 책임을 묻다
 

독일 카를스루에에 위치한 연방일반법원 박물관에 전시된 법관복. 왼쪽부터 연방헌법재판소, 주법원, 연방법원 법관복. ⓒ 남소연

 
이 모든 제도는 판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판사를 존중하는 만큼, 독일은 그들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다. 한국과 달리 독일이 법관 징계에 해임을 포함시킨 까닭도 문제법관을 배제, 국민의 사법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또 독일은 형법에 법왜곡죄(Rechtsbeugung)가 있다. 직권남용죄는 없지만, 공직자의 위법 행위에 책임을 묻고 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장치다.
 
독일 형법 339조 : 법관, 기타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할 때 한쪽 당사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한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 자유형에 처한다.

'법의 왜곡'이라는 개념은 1839년 뷔르템 군주국 형법 437~440조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후 1851년 프로이센 형법 314조에 오늘날의 법왜곡죄가 들어갔고, 1871년 독일제국 형법 336조에도 거의 그대로 반영돼 현재까지 살아 있다.

물론 법왜곡죄를 과도하게 적용하면 판사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 독일은 이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법관 등이 명백하게, 고의로 법을 어긴 경우에 한해 법왜곡죄를 적용한다. 주로 절차 관련 문제들이다. 2009년 연방일반법원은 슈투트가르트주 지방법원의 한 판사가 정신병원 강제구금형을 판결하며 구금대상자 가족들과 상담하고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절차를 지키지 않고 가짜로 서류를 꾸민 것을 법왜곡죄 유죄로 인정, 자유형(실형) 1년에 처했다.

법왜곡죄가 독일에서 빈번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 판사 등 적용대상들이 함부로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시키고, 사법체계를 보호하는 효과를 가진다. 특히 독일은 법관이 1년 이상 자유형을 받으면 자동 해임되는데, 법왜곡죄로 처벌을 받은 경우라면 일정기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할 수 없다. 그만큼 법관에게 법왜곡죄는 무거운 벌이다.

한국도 사법농단 이후 법왜곡죄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8년 9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법관이나 검사의 법왜곡 행위를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6월에는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적용대상에 경찰공무원 등을 추가하는 안을 내놨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도 수사기관 종사자의 증거 은폐 등을 처벌하기 위해 법왜곡죄를 도입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독일 튀빙겐대학 법대 베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 교수. ⓒ 남소연

 
그런데 독일의 법왜곡죄는 재판 '안'에서 성립 여부를 따진다. 하인리히 교수는 "법왜곡죄는 재판을 직접 지휘하거나 판결하는 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며 "외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면 강요 등 다른 혐의로 처벌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아니었으나 재판 '밖'에서 사건에 영향을 주려고 했다고 의심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게 법왜곡 책임을 물으려면 셈법이 복잡해진다는 얘기다.

우리가 놓친 두 가지... 견제와 균형

하지만 법왜곡죄 적용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사법농단의 책임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하인리히 교수는 "판사로서 정치적 타협을 위해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다른 방법을 시도한 행위는 분명히 위법하며 법 질서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법원 보호를 위한 선제적 조치였다'는 사법농단 연루자들의 변명과 달리 "이 문제는 사법부의 독립성과는 별개'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도 법관에게 더욱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하인리히 교수는 "적절하지 않은 판단으로 재판을 진행하거나 판결을 내린 판사를 법관 지위에 그대로 두는 것은 국민의 사법신뢰에 매우 큰 상처를 입힌다"며 "징계를 강화하지 않으면 법관의 존엄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법관 인사뿐 아니라 법관징계위원회 구성까지 대법원장이 정하는 한국의 "전체주의적인 시스템"을 다시 숙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경험(사법농단)이 보여주듯 매우 위험한 방식"이라며 "항상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견제와 균형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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