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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22 09:36 수정 2019.08.22 14:57
사법농단이란 초유의 사태 이후 사법개혁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독일 현지에서 약 1700km를 누비며 그 해법을 고민했습니다. 이 연속보도를 통해 '서초산성'이 되어버린 한국 법원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베를린주 법무부 제4부 마틴 그로스(Martin Groβ) 대표. ⓒ 남소연


[서초산성 ②] '사법권 독립' 망친, '사법부 독립'이란 허상 http://omn.kr/1keas

"복잡한 시스템으로 보일 수 있는데 실제로 복잡하다. 그래도 내 생각에 단점은 한 가지밖에 없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6월 2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주 법무부에서 만난 마틴 그로스(Martin Groß) 4부 대표가 독일 법관 임용방식을 한 마디로 설명하며 웃었다. 옆자리의 프리데리케 나이케(Friederike Neike) 부대표, 디르크 쿠퍼나겔(Dirk Kupfernagel) 1/A부 대표도 함께 웃었다.

세 사람은 베를린 주 법무부에서 법관 인사(1/A부)와 교육, 연수(4부) 등을 맡고 있다. 한국에선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인사총괄심의관실, 사법지원실 등에서 담당하는 업무다.

너무 다른 두 나라, 두 법원

독일은 법관 인사와 법원 예산은 물론 제도 연구, 판사 교육 등을 행정부에서 맡고 있다. 사무분담처럼 재판과 연관성이 큰 일만 법원 내부(법관운영위원회, Präsidium)에서 정한다. 또 16개 주 가운데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브레멘, 함부르크, 라인란트팔츠, 헤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튀링겐, 바덴뷔르템베르크 등 9곳이 독립기구인 법관선출위원회(Richterwahlausschuss)에서 판사를 뽑는다. 
 

독일 베를린주 법무부 입구. ⓒ 남소연

 
법관선출위원회 구성이나 운영방식은 주마다 약간씩 다르다. 베를린 주는 주 법관법에 따라 법관선출위원회에 의회 추천 8명, 직업법관 2명, 변호사 1명이 참여한다. 주 법무부는 공고를 내 지원자를 받은 다음 후보자를 정하고 추천서를 작성, 법관선출위원회로 보낸다. 합의부 배석에서 재판장으로, 또는 하급심 법원에서 상급심 법원으로 승진할 때, 법원장을 뽑을 때도 같은 절차를 밟는데 보통 3~4년씩 걸린다. 그로스 대표가 말한 '유일한 단점'이다.

베를린 주 법무부 관계자들은 법무부와 의회, 법관선출위원회가 '어떤 사람이 판사가 되어야 하는가'를 긴밀히 논의하고, 후보자 스스로도 법관의 삶을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독일 판사 대부분은 67세가 되는 말일까지 평생 법관으로 살기 때문이다(단 연방헌법재판관들은 임기가 12년이고 정년은 68세).

그런데 수십 년 판사로 살아갈 사람을 뽑는 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법원이 아니라 행정부와 의회다. 바깥 정치에 흔들렸던 역사 탓에 '밖으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해온 한국 사법부와 가장 다른 부분이다.

심지어 베를린 주는 2005년 주 법관법을 개정하며 법관선출위원회에서 의회 추천인사의 비율을 높였다. 쿠퍼나겔 대표는 "판사 그룹이 혼자 결정하면 안 된다는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그 방식이 오히려 판사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지 않겠냐'고 묻자 그로스 대표는 "흥미로운 질문"이라며 "반대로 묻겠다"고 했다.

"판사의 재판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은 어떻게 부여되는 것인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지만 판사는 임명직이다. 사법부 안에서 인사권을 갖는다면,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독일 베를린주 법무부 제1부(인사 및 공무법) 디르크 쿠퍼나겔(Dirk Kupfernagel) 대표. ⓒ 남소연


"독일 판사도 '승진'한다, 하지만..."

판사 한 사람은 많은 운명을 정한다.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감옥살이를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수십 년 만에 누명을 벗을 수 있다. 기업이 망하거나 재기할 기회를 얻는 것도 판사의 손에 달려 있다. 그들이 구름 위에 혹은 그들만의 성 안에 머물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와 존중을 얻어야 하는, 민주적 정당성을 얻어야 하는 까닭이다.

독일 사회는 그 해법을 법관선출위원회를 세우는 데에서 찾았다. 나이케 부대표는 "한국의 배경지식으로 독일의 시스템을 보면 오해할 수는 있다"면서도 "법관선출위원회는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 입법부나 행정부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법원과 사법행정의 분리도 한국과 큰 차이다. 한국은 대법원장 한 사람이 판사 약 3000명의 인사권을 독점한 데다 사법행정이 승진 코스로 여겨져 그 일을 맡은 판사는 '윗선' 눈치를 본다. 하지만 쿠퍼나겔 대표는 "(판사가) 왜 눈치를 보냐"며 의아해했다.

"독일 판사들에게도 승진 개념이 있고, 그걸 원하는 판사들이 법무부나 행정부 파견을 자원한다. 그들도 '눈치'를 보지만, 단순히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베를린 주 법무부의 경우 판사 40~45명 정도 파견근무를 하고 있는데, 보통 3년 근무 후에 판사 본인이 파견을 연장할지, 기존 근무법원으로 돌아갈지 결정한다. 법무부가 (판사를) 발탁하진 않는다."

독일 판사들에게 사법행정은 단지 일에 불과하다. 잘 맞으면 진로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로스 대표가 그런 사례다. 주 지방법원(Amtsgericht, 1심 법원) 판사였던 그는 사법행정을 선호해 법무부 소속으로 남았다.

국민을 대표하는 자와 국민을 결정하는 자
 

독일 연방법무부 피오트르 말라쵸브스키(Piotr Malachowski) 대변인. ⓒ 남소연

 
연방법원도 비슷한 시스템이다. 같은 날 만난 피오트르 말라쵸브스키(Piotr Malachowski) 연방법무부 대변인은 "연방법관 인사는 '연방법관선출위원회'에서 정하고, 연방법원 예산이나 일반 행정은 법무부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최종 임명은 연방대통령이 한다.

독일은 주마다 대법원(Oberlandesgericht)이 있지만, 복잡하고 중요한 사건은 법률에 근거해 연방헌법재판소, 연방일반법원, 연방노동법원, 연방사회법원,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이 최종 결론을 내린다. 연방법무부는 이 가운데 연방헌법재판관과 연방일반법원,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판사 250여 명의 인사를 담당한다. 연방사회법원과 연방노동법원의 경우 연방노동사회부 몫이다.

연방법원은 승진이 없다. 다만 합의부 부장이나 법원장 등을 고위직으로 볼 수 있는데, 이들 역시 연방법관선출위원회가 정한다. 주 단위처럼 공고를 내고, 지원을 받는 방식은 아니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연방법무부 입구에 부착된 '독일연방공화국을 위한 기본법' 제20조 (1) 독일연방공화국은 민주적이고 사회적 연방 국가이다. (2)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권력은 국민에 의하여 선거와 투표로, 그리고 입법 행정 및 사법의 특별 기관을 통하여 행사된다. (3) 입법은 헌법질서에, 행정 및 사법은 법률 및 권리에 구속된다. (4) 모든 독일인은 이러한 질서의 폐지를 기도하는 자에 대하여, 다른 구제수단이 불가능할 때는,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 ⓒ 남소연


예를 들어 법원장의 경우 해당 법원에서 5년 이상 근무한 판사들 가운데 행정부 장관이 후보자를 골라 법관선출위원회에 추천한다. 주 법원장도 비슷하게 뽑는다. 대법원장이 기수와 경력 등을 감안해 서울고등법원부터 제주지방법원까지 정하는 한국과 정반대 방식이다.

또 한국은 2~3년마다 근무지를 옮겨야 한다. 전문법관제를 실행 중인 가정법원(4~6년), 근속 기간이 조금 더 긴 특허법원이 아니면 '5년 이상 근무'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드물다. 반면 독일은 판사 동의 없는 전보가 법으로 금지됐다.

연방법관선출위원회는 연방의회 의원 16명과 주별 행정부 장관 16명이 참여하며 선출위원들도 법관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연방의회 쪽 구성은 다시 정당 의석수에 따라 다르다. 말라쵸브스키 대변인은 "연방의회뿐 아니라 주 행정부 장관들 역시 소속 정당이 있기 때문에 연방판사 임명 과정에서 정치 세력의 영향이 크다는 비판도 일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 세력은 (단순한 이익집단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 선출된,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대의정치를 하는 집단"이라며 "다양한 관계자들이 선출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이것은 대합의를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정치문화의 차이로 볼 수도 있다"며 "독일은 전쟁 후 연방제를 갖추면서 합의를 이루는 것에 매우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사람이 모든 권한을 가진다면 결국..."

이 '합의'는 행정부와 의회가 판사 개개인을 정치 성향 등에 맞춰 좌지우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베를린 주 법무부도, 연방법무부도 똑같이 말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사법행정 담당 기관이 재판에 개입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전직 대법원장까지 재판을 받는 중이라고 하면,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말라쵸브스키 대변인은 '연방법무부가 연방법원에 사건 정보 등을 요구하거나 전달받을 수 있냐'는 질문에 "우리가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기관은 연방검찰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예를 들어 재판 관련 예산, 공간 등에 관한 정보는 법원에 문의할 수 있지만, 재판의 정보는 요구할 수 없다"며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독일 베를린주 법무부 제4부 프리데리케 나이케(Friederike Neike) 부대표. ⓒ 남소연

 
나이케 베를린 주 법무부 4부 부대표는 "판사가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어떻게 판결할지를 두고 그 어떤 간섭도 있을 수 없다"며 "만약 어떤 재판을 조사하는 일만 있어도 독일에서는 큰 스캔들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로스 대표는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 등을 두고 "(한국처럼) 한 기관에서, 오직 한 사람이 모든 권한을 가진다면 언젠가 직권남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우리는 복잡한 구조를 마련해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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