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13 11:42최종 업데이트 19.08.13 11:42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편집자말]
 

리얼돌 쇼핑몰 캡처 ⓒ 리얼돌 구매 사이트


어떤 논란은 발생했을 때 입장을 정하기는커녕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있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리얼돌'을 둘러싼 논란이 내게는 그랬다. 나는 처음에 리얼돌을 두고 찬성과 반대의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조차 의아했다. 문자 그대로 리얼돌을 진짜 같은 인형, 그저 조금 큰 구체관절 인형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에 이 문제를 다룬 구체적인 기사를 읽고서야 리얼돌이 사실은 사람의 신체를 사실적으로 모사한 '섹스 토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리얼돌이 대부분 여성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주 사용자 층이 남자들이라는 점 역시도. 

섹스 토이가 실제 사람처럼 생긴 데다가 그렇게 클 필요가 있을까? 보관부터 사용까지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렵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다. 한 마디로 내게 리얼돌은 어느모로 봐도 시장성이 떨어지며 수요가 없어서 탄생조차 불가능한 상품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 논란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를 읽었다. 꽤나 많은 '좋아요'를 얻은 반응이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그렇다면 여자들도 남성 리얼돌을 만들어 쓰면 될일 아닌가'

사실 '남성 리얼돌'을 쓰는 게 꼭 '이성애자 여성'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남성이자 동성애자인 나도 정말 리얼돌이 필요하다면 남성의 형태를 한 것을 쓸테니까. 아무튼 저 반응은 리얼돌을 쓴다는 게 어떤 일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내가 남성형 리얼돌을 사서 쓴다면 어떤 느낌일까? 어쩌면 이런 상상을 통해 리얼돌을 극렬히 갈망하는 남성들의 심리를 이해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왜 리얼돌이라는 물건이 이 세상에 등장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리얼돌을 섹스 토이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하지만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려지는 그림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섹스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상호적인 소통의 과정이다. 하지만 리얼돌을 사용하는 일에는 당연히 그런 소통이 없다.

그렇다고 리얼돌을 단순히 물건으로 바라보자니 그러기에 이건 너무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나? 그러니까 내게 리얼돌을 사용하는 일이란, 누군가와 성관계를 나누는데 그 사람이 미동도 않고 허공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것과 같았다. 이건 너무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일이 아닌가?

이름 그대로 진짜 같은 인형인 리얼돌은 사람을 연상시키지만 그것은 결코 인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리얼돌은 사물과 사람의 경계를 흐린다. 그래서 이 물건을 다른 섹스 토이(특히 딜도)와 비교하는 것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차라리 '애나벨'과 비슷하다면 모를까.
 

영화 <애나벨> ⓒ 워너 브라더스

 
성욕은 '해소'하는 것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이런 리얼돌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하려면, 섹스 토이를 사용하는 것과 섹스를 하는 일의 차이를 느끼지 못해야 한다. 그렇다면 남성들에게 지금껏 섹스란 무엇이었을까. 흥미롭게도 많은 경우 남성들은 성욕을 '해소'되어야 하는 것으로 표현해왔다. 하지만 '해소'는 일방적인 과정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수용의 의미도 담겨있지 않다.

하지만 섹스를 하며 우리는 상대방으로부터 자극과 감정을 전달받고 그래서 성욕이 충족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는 생략될 수 없는 과정이다. 앞서 언급했듯 성관계는 상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해소'는 성욕을 두고 사용하기에 결코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

본래 상호적인 일을 일방적으로 한다는 것은 소통을 거부하거나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욕의 '해소'는 필연적으로 폭력적인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많은 남성들이 섹스와 성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남성들은 클럽에서 여성이 '강간 약물'에 취하도록 만든 후 성폭력을 저질렀다. 또 다른 남성들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성폭력 사건에서 저항하는 피해자들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공포심과 위력에 압도되어 거부는커녕 미동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가해자들은 이런 피해자들에게 성폭력을 저지른다. 이 모든 일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끔찍한 폭력이다. 하지만 동시에 의식이나 아무런 반응이 없는 피해자를 상대로 가해자들이 거리낌 없이 저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섬뜩한 일이기도 하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얼돌을 마주한 남성들이 해야할 일

리얼돌을 둘러싼 반응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리얼돌이 있으면 성폭력이 줄어든다'는 말이었다. 리얼돌로 성욕을 '해소'하면 성폭력도 자연히 감소하리란 뜻이다. 이는 성폭력의 원인을 '주체할 수 없는 성욕'으로 보는 시선과 같다. 그러나 반복해서 언급했듯 섹스와 성폭력은 다르다. 성욕은 섹스로 연결되지만 성폭력은 상호적인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겠다는 폭력에 대한 욕구와 연결된다.

그리고 피해자를 무력하게 만듦으로서 우월감을 느끼고 위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망이 성폭력의 근원이다. 만일 남성들이 이 두 욕망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 모든 욕구가 섞인 것이 성욕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함께 사회를 살아가기에 남자들이 아주 위험한 존재라는 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리얼돌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금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리얼돌의 등장을 상상하지 못했듯 남성들은 똑같은 문제점을 지녔지만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만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슬프게도 남자들의 상상력은 이 방면으로 지나치게 뛰어나다)

지금의 국면에서 정말 필요한 일은 리얼돌을 열렬히 환영하는 남자들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얼돌을 보고 거부감이 아니라 '성욕'을 느꼈다면 그 욕망의 내용은 무엇인지, 평소에 여성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았는지, 무엇을 섹스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어떤 행위로 구성되어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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