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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8.20 14:22 수정 2019.08.22 11:56
사법농단이란 초유의 사태 이후 사법개혁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독일 현지에서 약 1700km를 누비며 그 해법을 고민했습니다. 이 연속 보도를 시작으로 '서초산성'이 되어버린 한국 법원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독일 다하우 수용소(Konzentrationslager Dachau) 기념관에 비치돼 있는 한나 아렌트의 저서들. ⓒ 소중한

   
이 글의 제목과 마주할 분들의 표정이 궁금합니다. 대한민국 엘리트 법관들을 아이히만에 비교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너무도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독일 출신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쓴 책입니다. 그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해 이 책을 씁니다.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중책을 맡았던 인물로, 2차대전 이후 아르헨티나로 도망쳤다가 1960년 이스라엘 비밀 요원들에 의해 체포됐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말했습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매우 중요한, 때론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개념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악마나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곤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은 자"였고, 아이히만 스스로도 "기계에서 단지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의 이'에 불과했다"고 변호했습니다.
 
다만 아렌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라고 아이히만을 묘사합니다. 또한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을 그의 특징으로 규정합니다.
 
당연한 업무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개입 등 '사법농단'으로 구속되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7월 22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재판부 직권보석 결정으로 석방되고 있다. ⓒ 권우성

   
대한민국에서의 사법농단 이후, 법관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사태의 정점에 있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몇몇 대법관을 비롯한 고위 법관들, 그리고 법원행정처에 소속된 실무 법관들까지. 어떤 이는 "부적절하지만 죄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고, 어떤 이는 "시켜서 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법원 조직을 위한 일"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당연한 업무로 생각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사법농단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많은 이들은 그 법관들을 "진짜 똑똑한 사람들", "재판 하나는 기가 막히게 했던 사람들"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런 엘리트 법관들이 '법관 블랙리스트'를 통해 수뇌부 맘에 들지 않는 법관들을 관리했고, 각종 문건을 만들어 일선 재판에 개입했으며, 이를 위해 청와대·외교부·국회는 물론 피고(일본 전범기업) 측도 서슴없이 만났습니다.
 
"재판 하나는 기가 막히게 했다"는 법관들에게서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아이히만이 보였습니다. "시켜서 한 일이다, 당연한 업무라고 생각했다"라고 변론하는 법관들에게서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아이히만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유대인이 수용소에서 죽어갔듯,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여럿은 영문도 모른 채 자꾸 지연되는 재판 결과를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사유하는 법을 잃은 인간'으로 표현했듯, 그들도 법관으로서 사유하는 법을 잃었던 것은 아닌지 반추해봅니다. "법원 조직을 위한 일", "시켜서 한 일", "당연한 업무"와 같은 우리 엘리트 법관들의 변론에서 법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법관은 조직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법원입니다. 누군가 시켜서 일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법관에게 당연한 업무는 재판뿐입니다.

누군가는 그들을 학살 책임자와 비교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법관으로서 사유하는 능력을 잃었다는 진단에 더 큰 충격을 느꼈으면 합니다. 비교 대상은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비밀을 가진 자들의 성벽
 

사법농단 사태를 세상에 알린 이탄희 변호사. ⓒ 남소연

 
2017년 2월 법원행정처로의 출근을 앞둔 이탄희 판사(현재 변호사)는 자신이 법관 뒷조사 파일을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 끝에 사표를 제출합니다. 이때 그는 '성벽'을 경험합니다. 10년 가까이 법관으로 사는 동안, 법원행정처에서 그런 일을 한다는 걸 처음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를 비롯한 전국 대다수의 법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 공개된 법원행정처 문건 곳곳에 '외부로 알려지면 안 된다'라는 취지의 문구가 담겨 있었듯, 사법농단은 비밀을 가진 자들만이 알고 있는 내밀한 사실이었습니다.
 
'비밀을 가진 자'는 제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나치는 수용소에서의 살상을 '최종해결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유대인 이송을 '재정착'으로 불렀습니다. 마치 암호처럼 말입니다. 놀라운 점은 나치가 그러한 암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그룹을 따로 구별했다는 것입니다. 그 그룹에 속했던 이들이 바로 비밀을 가진 자로 불렸던 사람들입니다.
 
더 놀라운 점은 암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이 업무 과정에선 굳이 암호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아렌트는 그것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중략) 그들의 오랜 '정상적인' 지식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며 "질서와 제정신을 유지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즉 그러한 암호가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마비"(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시킨 것입니다.
 
뒤늦게 공개된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들을 떠올려봅니다. 예를 들어 '법관 블랙리스트' 또는 '뒷조사 파일'로 불리는 문건은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란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법관 뒷조사'를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로 표현한 것에서 암호의 속성이 떠오릅니다. 비밀을 가진 자들의 성벽 안에서 그렇게 사법농단이 벌어졌습니다.
 
시간을 따라 무성해진 것
 

독일 베를린주 대법원 언론담당 라파엘 네프(Raphael Neef) 판사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남소연

 
<오마이뉴스>는 그 낡았지만 굳건한 성벽(시스템)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법관 개개인의 책임과 자성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들로 구성돼도 그 편차가 크지 않은 시스템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그것이 묵묵히 공직을 수행하고 있는 대다수 법관을 위한 방향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법 선진국으로 불리는 독일을 직접 찾았습니다. 지난 6월 말, 8박 10일 동안 프랑크푸르트-베를린-뮌스터-카를스루에-튀빙겐-프랑크푸르트, 약 1700km를 돌아다니며 독일의 사법 시스템을 취재했습니다.     
  

'자전거 출퇴근' 판사들의 나라, 독일 법원리포트 ⓒ 김혜주

 
생각보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바로 '견제와 균형'의 원칙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주제로 일곱 차례에 걸쳐 사법개혁을 위한 보도를 이어갑니다.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와 연방일반법원은 수도 베를린으로부터 약 700km 떨어진 카를스루에라는 작은 도시에 있습니다. 카를스루에의 곳곳엔 법과 자유에 관한 문구가 담긴 팻말이 높게 걸려 있습니다. 그중 한 문장을 옮겨봅니다.
 
"우리가 진정 자유를 원한다면, 그동안 시간을 따라 무성해진, 우리를 가두는 많은 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서초산성 ②] '사법권 독립' 망친, '사법부 독립'이란 허상 http://omn.kr/1k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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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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