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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7.23 10:57 수정 2019.07.23 11:10
뉴욕에서 한국식 소주인 토끼 소주를 만든다는 곳이 있어 찾아갔다. 택시를 타고 뉴욕 브루클린의 남쪽인 레드훅 지역에 있는 양조장 주소지에 내리자, 시멘트 기둥과 틀에 붉은 벽돌과 유리창으로 벽면을 채운 4층 건물이 앞에 있었다. 한때 제조장이나 물류 창고로 쓰였을 건물에 크래프트 증류소(Craft distilleries)인 밴 브런트 스틸하우스(Van Brunt Stillhouse)가 들어 있었다.
 

토끼 소주를 만드는 밴 브런트 스틸하우스 건물. ⓒ 막걸리학교

 
스틸하우스 입구 인도에는 위스키 테이스팅이 가능하다는 소박한 안내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좁은 시음장 입구로 들어서자, 토끼 소주를 만드는 브랜든 힐(Brandon Hill)이 우리를 알아보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브랜든은 키가 훤칠하고 머리칼색이 짙고 콧날이 오똑하고 턱수염이 짧은 잘 생긴 미국인이었다.

브랜든의 안내를 받아 밴 브런트 스틸하우스(Van Brunt Stillhouse)를 둘러보았다. 밴 브런트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 브루클린에 살았던 선구적인 농부의 이름으로, 브루클린에서는 그를 기려 도로명으로도 쓰고 있었다. 이 스틸하우스는 농가형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밴 브런트의 이름으로 쓰고 있었다.

브랜든은 제조장 바깥으로 나가 원료 처리 시설을 보여주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재배된 찹쌀을 주원료로 쓰는데, 곡물통에 담아두고 이를 분쇄하여 사용했다. 가루낸 찹쌀은 모터 펌프를 이용하여 당화솥으로 이송했다. 당화솥 안에는 회전날이 들어있다.

솥 안에 찹쌀가루를 붓고 화씨 120도(섭씨 48.8도)의 뜨거운 물을 부어 회전날을 돌려 치댄 범벅으로 밑술을 만든다. 술은 밑술과 덧술로 나뉘는 이양주 방식으로 빚는데, 밑술 한 지 3일 뒤에 고두밥을 지어 덧술을 한다고 소개했다.

브랜든의 영어 속에, '찹쌀', '고두밥', '누룩', '이양주', '범벅'이라는 한국어들이 섞여 있었다. 일주일쯤 발효시켜 알코올 12% 정도 되는 술을 얻어 증류기에 넣고, 증류를 한 뒤에 숙성시켜 토끼 소주를 만드는데, 이것이 그가 한국에서 배운 조선 시대 방식이라고 했다.

'토끼'와 '조선'이라는 한국어까지 듣게 되니, 우리는 신기하고 신통할 따름이었다. 브루클린에서 사는 미국인이 어떻게 조선 시대 빚어진 방식을 채택하여 소주를 만들게 되었을까? 독한 소주를 마신 것처럼 놀라웠다.

찹쌀, 고두밥, 누룩, 범벅, 조선... 영어 속에 섞여있는 한국어

브랜든은 1983년에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그리스인이고 어머니는 웨일즈인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하와이대학에서 분자 생물학(Molecular biology)을 전공했다. 대학을 다닐 때 밴드 활동을 하면서 베이스(Bass) 기타를 연주했고, 졸업 후에는 텍사스에서 맥주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면서 밴드 연주 공연을 다녔다.

맥주 컨설팅 회사에서는 공장 설비, 시설 관리, 제조 공정에 관련된 종합적인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는 여행을 좋아해서 지금까지 세계 90여 개국을 다녔는데, 한국도 그의 여행지 중의 하나였다. 그는 2010년 말 한국에 와서 영어 강사 생활을 하면서 2011년 토끼해를 온전히 보내고, 2012년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살면서 술 교육기관인 수수보리아카데미를 다니며 막걸리를 배웠고, 그곳에서 조효진 교수와 함께 한국의 양조장을 여행했다. 그가 방문한 한국 양조장이 60개가 넘었다. 그는 인상적인 양조장으로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 남양주의 봇뜰 막걸리, 전남 장성의 보해양조를 꼽았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으로 돌아와 처음에는 막걸리 전문 주점을 차리려고 했지만, 영업 허가를 받는 것이 까다로워 포기했다. 그는 2015년에 브루클린의 한식당인 인사(Insa)로부터 인사 소주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아 만들었다. 2016년 2월에는 토끼 소주를 만들었다. 증류소인 밴 브런트 스틸하우스를 금토일 3일 동안 빌려서 사용하고,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한다.

그는 토끼 소주 23도, 토끼 소주 40도, 감잎 토끼 소주, 오미자 토끼 소주를 만들고 있었다. 그의 동업 파트너인 박상준씨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 교포인인데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토끼 소주를 취급하고 있는 뉴욕의 식당과 주류 전문점의 숫자가 100개 정도 된다고 했다.

토끼 소주 이름은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2011년이 토끼해라서 붙였다. 그는 토끼가 달나라에 살고 있다는 한국 전설을 토끼 소주 술병에 새겨두었다. 그래서 상표에 토끼를 그리고 달 모양도 담아두었다. 토끼 상표의 디자인은 브랜든이 직접 했다. 근육질의 토끼를 가운데 두고 네 모서리에 하늘, 땅, 물, 불의 상징인 건곤감리(乾坤坎離)의 괘를 그려둔 회사 로고는 태극기가 연상되었다.
 

맨해튼의 주류전문점의 판매대에서 본 토끼 소주. ⓒ 막걸리학교

 
그는 한국의 전통 소주가 쌀 소주이고, 식량 정책 때문에 1965년부터 값싼 전분으로 만든 주정에 물을 희석한 소주 문화로 바뀐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가장 한국적인 소주를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전통 소주로서 지역 명성을 지닌 안동 소주 스타일의 쌀 소주를 만들게 되었다. 그는 안동에 가서 "안동 소주를 처음 마셨는데, 향과 깨끗함이 남달랐어요. 소주는 초록색 병만 있는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충격이었죠"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의 제법은 안동소주와 동일하지는 않다.

현재 안동 소주는 조옥화, 명인, 로얄, 명품, 일품, 금복주, 회곡, 올소 해서 모두 8개 회사에서 각기 다른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안동 소주는 대부분 멥쌀로 빚는데, 토끼 소주는 찹쌀로 빚는다. 브랜든은 소주에 부드러운 단맛을 담아내기 위해 찹쌀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에게 "증류를 하면 찹쌀의 단맛이 사라지지 않나요?"라고 묻자, 그는 "이론적으로는 당이 증발되지는 않지만 멥쌀과 찹쌀 소주의 차이는 분명이 존재합니다. 끓이고 증발하는 과정에서 분자의 변화가 있을 뿐이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맛과 향에 반영이 됩니다"라고 했다.

안동 소주는 대부분 고두밥을 지어서 술을 빚는데, 브랜든은 찹쌀가루를 내서 범벅으로 술을 빚고, 덧술할 때 고두밥을 짓는다. 범벅은 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반죽한 상태를 말하는데, 반죽하기가 까다로워 현대 양조에서 거의 채택하지 않은 조선 시대 방식이다. 그가 토끼 소주를 조선 시대 방식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제법 때문이다.

안동 소주는 조옥화 안동 소주만 전통 밀누룩을 사용하고 대부분 개량누룩(쌀에 균을 파종한 흩임누룩)을 쓰는데, 브랜든은 전통 밀누룩을 사용한다. 그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경력을 지니고 있어서, 한국식 밀누룩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친구의 연구실 한 공간에서, 30장 정도의 누룩이 들어가는 온습도가 조절이 되는 상자에서 누룩을 만들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증류기는 한국식 증류기와는 다른, 다단식 증류판이 달린 독일식 동증류기다. 이는 전통 단식 증류와 연속식 증류 방법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증류기로, 현대적인 크래프트 증류주 제조장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장비다.

한국적인 요소가 가득한 토끼 소주
 

토끼 소주를 증류하는 하이브리드 동증류기를 설명하고 있는 브랜든 힐. ⓒ 막걸리학교

 
브랜든은 한국 소주에서 출발했지만 과학적인 방식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소주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소주량의 최대치를 생각하고 있고, 그 생산량이 자신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국의 백화점에서 토끼 소주를 달라고 요청하지만, 주문을 받을까 고민스럽다고 했다.

브랜든이 만든 토끼 소주 속에는 한국적인 요소가 가득 들어있다. 그는 한국 소주 문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미국의 술 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비즈니스적인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한국 술 문화는 정감이 넘치는데 이는 안주를 차려놓고 서로 마주보며 건배하는 문화 속에서 쉽게 파악된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으로 장례식에서도 술을 대접하고, 어른들에게 두 손으로 술을 따르는 공경의 예절을 가지고 있어서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만약 한국인이 브루클린에서 브랜든처럼 소주를 빚고 있다면, 고지식하고 무모하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범벅으로 밑술하고 전통 누룩을 사용하는 이 방식은 한국에서조차 구현하기 어려운 제조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미료가 들어간 초록병 소주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한 전통 방식의 소주를 뉴욕에서 만들어내다니! 토끼 소주의 특유한 향기, 누룩에서 올라온 너트향 같은 게 어색하고 이질적이라는 비판을 맨해튼에서 듣고 있는데도!

그렇다면 한국을 잠시 여행한 이방인이 뉴욕 브루클린에서 한국 소주를 만드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맨해튼에서 들은 소문으로는 브랜든에게 한국 여자 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 소주를 빚고 그래서 한국에다가도 제조장을 만들 예정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이냐고 브랜든에게 물었더니, 브랜든이 활짝 웃었다.

그는 2012년 한국을 떠나온 뒤로도 해마다 한국을 방문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여성을 사귀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 제조장을 만드는 것은 설비 가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그는 한국 소주를 빚을까?

그는 한국 술 문화가 좋고 한국 술이 독특해서라고 말을 하지만, 정확한 대답은 그를 둘러싼 문화, 크래프트 맥주의 붐처럼 불고 있는 크래프트 증류주의 붐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주만 하더라도 '뉴욕 크래프트 증류주(New York Craft Spirits)' 그룹에 들어있는 증류소가 73개나 된다.

브랜든이 빌어 쓰고 있는 밴 브런트 스틸하우스도 브루클린에 사는 부부가 2012년에 창업했는데, 창업 동기가 '크래프트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driven by a love of Craft)'라고 했다.

브랜드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장 창의적인 주제의 하나로, 한국에 존재했을 법한 쌀 소주를 빚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한국 소주도 세계 크래프트 증류주의 붐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브랜든이 만든 토끼 소주를 통해서 보고 있는 것이다.
 

브랜든 힐은 직접 술을 빚고 증류하고 디자인한 상표를 붙여 토끼 소주를 만들고 있다. ⓒ 막걸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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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평론가, 여행작가. 술을 통해서 문화와 역사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술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