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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13 08:09 수정 2019.06.13 15:54
근래에 방탄소년단(BTS)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세계 대중 음악계를 호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등장은 그들 혼자만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물론 한국만이 지니고 있는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라 하지만, 이들이 나타나기 이전에 힘쓴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바탕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 몇 년 전 이미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이란 노래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그 이전에도 '원더걸스' 등 다른 여러 음악인들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대중음악이 아닌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뛰어난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순수 클래식 음악을 하는 성악가 '조수미'도 있고, 동양인의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한 발레리나 '강수진'의 울퉁불퉁한 발가락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미술계 인물로는 비디오를 예술로 승화시킨 '백남준'이 있어 한국인의 예술적 재능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현대미술의 선구자 최승희

더 거슬러 올라가 근대기까지 올라가면 한국을 세계에 알린 유명한 예술가로는 불세출의 무용가 최승희(崔承喜, 1911-1967)가 있다.

최승희는 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의 예술계를 장악한 최고 슈퍼스타 중의 한 명이었다. 세계적이라 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아시아 권역에서는 최고의 스타였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고, 그의 사회적 영향력은 지대하였다. 현대 남북한의 무용의 본질은 여전히 그의 영향권 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승희는 특히 역동적인 안무로 유명하였는데, 그의 이국적이면서도 박자 빠른 춤사위는 미술가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무당춤, 승무를 비롯한 그의 화려하고 생동감 있는 춤사위는 미술가들이 즐겨 작업하는 주요 소재였다.

사진가들은 그의 춤 동작 하나하나를 포착하려 하였고, 조각가 중에도 그의 동작을 영원히 붙잡아 두려고 노력한 이가 많았다. 화가들도 이들 못지않게 그 화려한 자태를 그림으로 남기려 노력하였다.

한국 화가들이 그린 최승희
      

배운성 ‘장고춤을 추는 최승희’와 당시 사진 ⓒ 황정수

 
최승희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여 한국의 화가뿐만 아니라 일본의 유명화가들도 그를 소재로 자주 그림을 그렸다. 한국인 화가로 최승희를 작품화한 대표적인 이로 먼저 배운성(裵雲成, 1900-1978)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최승희의 장고 치는 모습을 목판화로 제작하였다. 그런데 실제 작품과 거의 같은 포즈의 사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을 바탕으로 판화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근래에 소개된 변월룡(邊月龍, 1916∼1990)이 춤추는 최승희의 모습을 그린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다른 이들의 작품이 대부분 젊은 시절 자유롭게 활동하던 아리따운 최승희를 담고 있다면, 변월룡의 작품은 사상 문제로 월북한 후 사회주의에 적응하여 활동하는 노련한 무용가 최승희의 춤추는 모습을 그린 듯한 작품이다.

일본 화가들이 그린 최승희
                      

우메하라 류자브로 ‘무당춤을 추는 최승희’ 1941년 ⓒ 국립현대미술관

 
최승희를 모델로 그린 화가들은 한국인들보다 오히려 일본인 화가들이 더 많다. 당대 일본의 대표적인 최고 수준의 작가들도 최승희를 자주 그릴 정도였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서양화가 우메하라 류자브로(梅原龍三郞, 1888~1986)는 1941년 무당춤을 추는 최승희를 그린 '무당춤을 추는 최승희'를 남겼다. 감각적인 붓질과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여 날렵하게 춤추는 최승희의 모습을 그렸다.

미인도를 잘 그리기로 유명한 가부라키 기요카타(鏑木淸方, 1878-1972)도 최승희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림으로 남겼다. 그 후배인 고바야시 고케이(小林古徑, 1883-1957)같은 능력 있는 화가도 최승희 모습을 여러 장 남겼다.

이 밖에 조각가 후지이 코유(藤井浩祐, 1882-1958)나 사진작가 호리노 마사오(堀野正雄, 1907-1998) 등도 열정적으로 최승희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겼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얼마나 많은 일본인 예술가들이 최승희를 동경했는지 알 만하다.

한국에 최승희가 있었다면 중국에는 매란방(梅蘭芳, 1894-1961)이란 대 스타가 있었다. 매란방은 중국의 전통극인 경극(京劇) 배우로 뛰어난 용모와 천재적인 연기력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린 인물이다. 매란방의 출현과 함께 시들어가던 경극의 인기가 되살아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으로 발전되었다. 당시 그의 인기는 중국, 한국, 일본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사실 매란방이란 존재는 현대에 그리 익숙하지 않지만, 이미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3년에 개봉되어 엄청난 관객몰이를 했던 그 유명한 영화 '패왕별희(霸王別姬)'가 매란방의 이미지를 주제로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패왕별희'는 매란방이 가장 많이 공연했던 경극의 제목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남배우 장국영(張國榮)이 분한 역할이 바로 매란방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설정한 배역이다. 실제 매란방 또한 뛰어난 외모를 가졌는데, 수려한 외모 뿐 아니라 섬세하고 흡인력 있는 연기력으로 많은 팬을 거느렸다. 섬세한 외모의 장국영을 주연배우로 내세운 것도 모두 매란방 본래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남자 배우가 여성 역할을 하는 배역은 매란방의 최고 인기 있는 배역이었다.

김은호가 그린 매란방
 

김은호 ‘매란방’ ⓒ 국립현대미술관

 
매란방의 인기는 한국에까지 소문이 나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였다. 당대 한국 최고의 화가였던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도 그 소문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1929년, 마침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던 단우(丹宇) 이용문(李容汶)의 후의로 친구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과 함께 중국 북경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마침 그 곳에서 매란방 일행의 공연이 있어 우연찮게 맞닥뜨리게 된다. 먼저 그 소식을 들은 허백련이 김은호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매란방이를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네. 나라면 몰라도 미인을 그리는 자네가 북경까지 와서 그 유명한 미남배우 매란방을 못보고 가서야 쓰겠나? 공연 날짜가 하루 남았다는 거야. 통역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장표를 사주겠다고 하더군."

이 말을 들은 김은호는 가슴이 설레었다. 미인도를 주로 그리는 자신에게는 새로운 영역을 경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북경 장안도 온통 매란방 이야기로 가득하였다.

김은호는 웃돈까지 주어가며 가장 보기 좋은 앞자리에 앉았다. 공연을 본 김은호는 깊은 감동에 빠졌다. 여성보다 더 고운 살결, 표정, 몸동작 모두 절대미녀 이상이었다. 화장을 했다지만 너무나 희고 보드라운 피부와 매혹적인 자태에 주인공이 남자라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였다.

김은호는 그때 본 장면을 기억하여 여러 장의 스케치를 해온다. 귀국하여 매란방의 자태를 잊지 못한 그는 북경에서 그려온 스케치와 당시 인기리에 팔리던 매란방의 사진을 바탕으로 화폭에 옮긴다. 분명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을 텐데, 현재 그때 그린 작품은 남아 있지 않다.

단지 그때의 기억과 자료를 바탕으로 1960년대에 그린 것이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남아 있는 매란방을 그린 작품은 모두 두 점으로 같은 밑그림으로 작업한 까닭에 거의 같은 내용에 크기도 같다. 한 점은 1966년 작가가 직접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 그려준 작품이고, 또 한 점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정황상 비슷한 시기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곱게 단장하고 화려한 무용복을 입은 무용수가 춤을 추다 잠시 멈칫 하는 모습을 그린 듯한 화면이다. 남자 배우가 여성으로 분장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너무 고운 모습에 마치 예쁜 여자 무용수가 춤을 추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독특한 머리 모양과 장식, 복식의 아름다움과 색조의 현란함, 세필로 그린 먹 선의 정교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한 가지 이 그림이 예술적으로 성공한 그림인가에는 약간의 의문이 생긴다. 매란방의 단정한 용모를 그려내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무용수 매란방 특유의 현란한 몸동작을 그려내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미술품의 성패는 화면 속에 생동감이 살아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온다는 면에서 이 작품은 아쉬움이 많다. 좀 더 생동감과 율동감이 드러나도록 그렸으면 더욱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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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문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고교 국어 교사를 11년간 하였다. 2001년 교사 퇴직 후 줄곧 미술사 연구에 몰두하였다. 저서에 《경매된 서화》 (김상엽 공저, 시공사, 2005)가 있고, 논문에 <소치 허련의 완당 초상에 관한 소견>(《소치연구》 창간호, 2003) 외 다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