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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6.06 12:16 수정 2019.06.06 13:19
'미술의 역사'란 천재 화가들의 무용담을 모은 사화집이라 할 만하다. 그만큼 뛰어난 미술가는 범인들이 갖기 어려운 창조적인 재능을 보인다. 서양의 미술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에서 고흐,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재능들이 미술사를 장식해왔다. 또한 중국에서는 황공망, 동기창 등에서 오창석, 제백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술가들이 붓과 종이를 들고 창조의 신과 재능을 다투었다.

한국미술사 또한 뛰어난 미술가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신라시대에는 당대 최고의 화가인 솔거(率居)가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솔거의 그림을 대단하게 생각하여 '신화(神畵)'라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솔거의 작품은 한 점도 남아있지 않다. 단지 '삼국사기'에 기록된 기사만이 남아 아쉬움을 달래준다.
 
"솔거는 신라인인데 출신이 미천하였다. 그는 천성적으로 그림을 잘 그렸다. 그가 일찍이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 까마귀 · 소리개 · 제비 · 참새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날아들다가 부딪쳐 떨어지곤 하였다. 세월이 오래되어 그림의 빛깔이 흐릿해지자 스님들이 단청으로 보수하였더니 다시는 새들이 오지 않았다. 또 경주 분황사의 관음보살과 진주 단속사의 유마화상이 모두 그의 필적이었는데, 세상 사람들이 '신화(神畵)'로 여겼다."(필자 요약)

고려시대에는 이녕(李寧)이란 화가가 유명하였다. 이녕은 그림에 뛰어나 임금의 총애를 받고 궁궐의 그림에 관한 모든 일을 주재하였다. 인종 때 송나라에 가서 휘종(徽宗)의 명으로 '예성강도(禮成江圖)'를 그려 바치고 포상을 받을 정도로 화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역시 아쉽게도 작품은 문헌상의 기록으로만 전할 뿐 실물은 현존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미술계 최고의 재능들
 

김정희 ‘세한도’ ⓒ 국립중앙박물관


  
이렇듯 조선시대 이전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은 불행하게도 작품이 전하지 않아 그 실체를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아쉬움은 조선시대에 들어 나타난 뛰어난 화가들의 작품으로 달래 수밖에 없다. 초기를 대표하는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은 조선시대 화가들의 수준이 중국사람 못지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이어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 등 '삼원(三園) 삼재(三齋)'라 불리는 이들이 조선시대 미술사를 장식한다. 이들 외에 호생관 최북이나 고송유수관도인 이인문, 추사 김정희, 고람 전기 등의 재주도 이들 못지않았다. 이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한 평생을 그림과 함께 살다간 '천생 화가'들이었다.

조선시대 화가들 중에서 어려서부터 특출한 재주로 유명한 화가는 역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와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043-1897)을 꼽을 수 있다. 김정희는 조선후기 한국미술사 최고의 인물로 꼽히는데 출생부터가 남달랐다고 전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24개월 만에 세상에 나왔다 하며, 태어날 무렵에는 시들어가는 뒷산 나무들이 김정희의 생기를 받아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까지 전한다. 천재적 인물다운 탄생 설화가 아닐 수 없다.

어린 김정희의 천재성은 일찍부터 발견되었다. 그의 나이 일곱 살 때,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집 앞을 지나가다가 대문에 써 붙인 '입춘첩(立春帖)' 글씨를 보게 되었다. 예사롭지 않은 글씨임을 알아차린 채제공은 문을 두드려 누가 쓴 글씨인지를 물었다. 마침 친아버지인 김노경이 우리 집 아이의 글씨라고 대답했다. 글씨의 주인공을 안 채제공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아이는 반드시 명필로서 이름을 떨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글씨를 잘 쓰게 되면 반드시 운명이 기구해 질 것이니 절대로 붓을 쥐게 하지 마시오. 대신에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게 되면 반드시 크고 귀하게 될 것입니다."(대동기문 기록)

이렇게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김정희는 학문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기며 조선후기 예원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의 '불이선란'과 '세한도'는 그의 예술세계를 응축한 천하의 절품이다.

천부적 재능의 화가 오원 장승업
             

호취도 ⓒ 삼성리움미술관


  
          
김정희 못지않게 특이한 어린 시절을 보낸 화가가 장승업이다. 장승업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한약국에서 심부름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수표동에 거주하던 역관 이응헌(李應憲)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 기식하기도 하였고, 한성판윤을 지낸 변원규(卞元圭)의 집에서 지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때쯤 그림을 좋아하기 시작하여 후에 화원 유숙(劉淑)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광화문 주변에 있던 지물포에서 민화를 그리던 '환쟁이'로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러한 천재적인 화가들의 일생은 대부분 신화나 역사 속 영웅의 일생 구조와 비슷한 면을 보인다. 대개 불우하거나 특별한 환경에서 태어나 수많은 고난을 겪다가, 엄청난 노력에 의해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려 한다.

마침 후원자가 나타나 구원을 받게 되고, 결국 주인공은 고난을 극복하고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삶을 살게 되는 서사구조를 보인다. 김정희의 일생이나 장승업의 일생 또한 이런 영웅들의 서사 구조와 비슷한 면을 보인다.

조선미술전람회의 총아 이인성
 

이인성 ‘선유도’ ⓒ 황정수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리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며 서구 문물이 밀려들어오는 혼란의 시대를 맞는다. 미술계도 이런 혼돈 속에서 새로운 구조로 재편되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괄목할 만한 화가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들은 훗날 한국 미술계의 전설적인 화가로 화단을 장식한다. 서양화의 김관호, 이인성, 오지호 등이 당대 최고 화가의 반열에 있었으며, 동양화가로는 안중식과 조석진의 제자들 중에서 뛰어난 화가 여럿 나온다. 김은호, 이상범, 이한복, 이용우 등이 당대를 대표하는 동양화가들이었다.

이들 중 서양화가 이인성(李仁星, 1912-1950)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여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전설적 화가가 되었다. 그 또한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빼어난 미술 재주를 보여 주목을 받는다. 그는 주변 선생들과 지역 유력자의 후원을 받아 일본 유학을 하게 되고, 결국 당대 최고 화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특히 조선미술전람회에서의 그의 활동은 눈부셨다. 그 또한 현실을 극복한 일제강점기 화단의 새로운 영웅이었다.

일제강점기 인물화의 천재 이당 김은호
                 

김은호 33세 사진 1924년 '이당 김은호' 한국근대미술연구소. 1978년 ⓒ 한국근대미술연구소


 
일제강점기 동양화가로는 단연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가 천재성을 보인 것으로 전한다. 그의 자서전격인 <서화백년>이란 책을 보면 그의 화가로서의 입문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스스로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고 하는데, 신라의 솔거나 조선의 김정희나 장승업도 따르지 못할 정도의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미술계 입문을 한다. 그만큼 그의 화가로서의 시작은 말로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전설적이다. 오히려 '신화적'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극적이다.

<서화백년>의 기록에 따르면 김은호는 1912년 나이 20세에 처음으로 서화미술회에 들어가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는 안국동 영풍서관에서 만난 중추원 참의 김교성(金敎聲)의 추천으로 안중식과 조석진이 이끌던 서화미술회에 입문하게 된다.

그는 첫날 안중식 앞에서 중국화보를 임모하는 즉석 시험을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입학을 허락받는다. 서화미술회에서 밤낮으로 서화를 학습한 그는 조석진과 안중식에게 '내림 그림' 곧 '신들린 무당처럼 신기를 받아 그린 그림'이란 칭찬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어진 제작을 하는 김은호 '이당 김은호' 한국근대미술연구소. 1978년 ⓒ 한국근대미술연구소


 
특히 그는 인물화를 잘 그렸는데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고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자 갑자기 덕수궁에 있던 고종이 '어진초본(御眞艸本)'을 그려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김은호로서는 생각지 않았던 놀라운 일이었다. 조선시대 같으면 당대 최고의 화원이 맡아야 할 일인데, 당대 최고의 화가인 두 선생마저 제쳐 두고 어린 제자가 맡게 되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이 김은호는 서화미술회에서 화필을 잡은 지 삼칠일, 곧 '21일' 밖에 안 되었는데, 이런 일을 맡게 되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때 마침 일본인이 고종의 어진을 그리려 하고 있었는데, 이를 마땅치 않게 생각한 고종이 얼굴 한 번을 내보이지 않자 진척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화사를 알아보던 차에 김은호가 인물을 그리는데 천재라는 소문을 듣고 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은호가 온 힘을 기울여 초본을 그려 보내니 고종이 흡족해 하였다. 결국 김은호는 어진화사가 되어 고종의 어진을 그리게 된다. 그러나 고종은 총독부의 지시를 받은 일본 화가를 물리칠 수 없어 김은호에게 먼저 창덕궁에 있던 순종의 어진을 그리게 한다.

김은호는 모든 재료를 준비하여 창덕궁 인정전에서 순종의 어진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순종은 매일 20분씩 시간을 내어 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초본을 제작하였다. 많은 경험은 없었으나 어진이라는 큰일이었기에 타고난 재주를 바탕으로 성심성의껏 그렸다. 이미 어진 경험이 있었던 두 스승이 수시로 드나들며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런 과정 속에서 큰 문제없이 초상화를 완성해 내었다.

<서화백년> 속 김은호 진술의 의문점
                   

김은호. ‘순종어진 초본’ 1915-1916 ⓒ 국립현대미술관


 
김은호의 이런 모든 과정 속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김은호가 이 어려운 순종의 어진 제작 일을 이루어낸 때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지 꼭 21일 후의 일이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알았다(生以知之)' 하더니, 김은호의 재주 또한 그에 못지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모두 김은호 자신의 진술에 의한 것일 뿐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김은호가 처음 안국동에 나타났을 때 그는 이미 20세의 성인이었다. 본인은 그때 글씨 정도는 단정히 쓸 줄 알았으나 그림은 배운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때 김교성의 추천으로 서화미술회에 들어가서 '남종화'의 명인인 안중식과 조석진의 지도를 받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전에 그림을 배우 적이 없다 하였는데, 그는 서화미술회에 들어가자마자 이미 초상화를 거의 완벽히 구사하였고, 채색을 중심으로 하는 '북종화' 또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구사하였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내림 그림'이라는 말로 설명하였다. 그런 독학의 재주를 바탕으로 21일 만에 어진 제작을 맡는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하고, 우리는 이런 서술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당시 모필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록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하더라도 초상화라는 분야에서 오랜 학습 없이 어진을 그릴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어진을 그리는 전통 초상화 양식은 과정이 매우 많고 그리기도 까다로워 오랜 학습을 한 화원이라도 아무나 맡을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화가 지망생이 완벽한 초상화 기법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은 있기 어려운 일이다.

본인은 스스로 독학을 하여 이루었다고 하였지만, 이런 특별한 기능은 일정기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모든 기능을 습득하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분명 김은호는 20살 이전에 다른 미술 학습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의 작품 경향이 당시 서화미술회 선생 7명의 솜씨와 많은 부분 다른 것은 이런 심증을 더욱 강하게 한다.  

이런 면에서 20살 이전의 김은호의 삶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다시 행해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김은호 본인의 진술에 의해서만 그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그렇다보니 그의 미술세계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의 현란한 인물화와 채색화에 대한 정확한 서술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기록을 뒤로 하고 새로 연구해야 한다.

단지 '내림 그림'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한국 근대미술 역사 서술이 너무나 초라하다. 있는 기록만을 정리하는 것이 미술사는 아니다. 그 기록에 대한 엄정한 검증을 거쳐 서술하여야만 제대로 된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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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국문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고교 국어 교사를 11년간 하였다. 2001년 교사 퇴직 후 줄곧 미술사 연구에 몰두하였다. 저서에 《경매된 서화》 (김상엽 공저, 시공사, 2005)가 있고, 논문에 <소치 허련의 완당 초상에 관한 소견>(《소치연구》 창간호, 2003) 외 다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