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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5.14 20:12 수정 2019.05.15 10:13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납치됐다가 프랑스 특수부대에 구출된 한국인 여성(가운데)이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근교 빌라쿠블레 군 비행장에 도착한 모습. ⓒ 연합뉴스/EPA


프랑스 특수부대가 이슬람 무장 세력에게 납치된 프랑스인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서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 투입됐다. 이들은 프랑스인 2명과 한국인 1명, 미국인 1명을 구출했고, 프랑스 군인 2명이 이 과정에서 희생됐다.
 
프랑스 입장에선 두 명을 잃고 두 명을 얻었다. 그렇다면 이 작전을 수행한 걸 후회해야 할까? 마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던져주듯 한국 언론들은 국가의 경고를 무시하고 위험지역에 가서 군인의 생명을 잃게 한 두 관광객에 대해 프랑스 여론이 싸늘한 비판을 보내고 있다고 일제히 전했다.
 
그 발단은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부 장관의 11일 발언이었다. 그는 두 프랑스인이 관광한 지역은 "이미 오래 전부터 관광 위험 지역인 적색지대로 분류되었으며, 관광객들은 정부의 권고를 들어야 했다"며 이들의 부주의를 공식적으로 비난했다.
 
그러자 <르몽드> <마리안느> 등 현지 언론이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 오류가 있음을 바로 지적했다. 두 여행자가 여행한 베냉의 펜자리 국립공원은 프랑스 정부가 여행을 금지하는 적색지역이 아니었으며, 오렌지색지역(여행 자제) 혹은 황색 지역(여행 유의)이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프랑스, 스페인, 영국, 벨기에 역시 한국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 유의' 또는 '여행 자제' 지역이다. 그럼에도 숱한 관광객이 매일 이곳을 찾는다.)
 

5월 10일 전후로 한 베냉 지도 좌: 베냉에서 펜자리 국립공원의 위치 (북동쪽) / 중: 2019년 5월 9일까지 배넹 내 / 우: 2019년 5월 10일 이후 달라진 펜자리 국립공원내의 여행 경보 표시 ⓒ 프랑스 외교부

 
특히 베냉의 펜자리 국립공원은 가이드를 대동한 사파리 관광이 발달한 곳이다. 이슬람 무장 세력은 베냉에서 이들을 납치해 위험지역인 부르키나 파소로 이동시켰고, 말리에 있는 지하드 세력에게 인질들을 넘기기 직전 구출작전이 실행됐다.
 
르드리앙 외교부 장관의 말을 반박한 이 보도는 좌우를 막론한 거의 모든 프랑스에 의해 확산됐다. 보도를 종합하면 두 여행자가 여행금지 지역에 가 위험을 초래했다는 비난은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며, 프랑스 외교부는 납치 사건이 해결된 직후인 지난 10일에야 베냉의 펜자리 국립공원을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적색지대였다"라는 장관의 발언이 나오기 불과 하루 전이었다.
 
그가 누구든 어디에 있든
   

목숨을 바쳐 4명의 인질을 무장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구한 프랑스 특수부대 요원들. 세드릭 드 피에르퐁(좌), 알랭 베르통셀(우) ⓒ 프랑스 국방부

   
"나는 구출된 인질들이 이제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바로, 특수부대가 그들의 임무를 수행한 목적이다. 아들은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사망한 프랑스 군인 중 한 명인 알랭 베르통첼로의 아버지의 말은 프랑스인들이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을 잘 대변해 주었다.

국방부 장관 플로랑스 빠를리도 "지금은 두 여행자들의 부주의를 탓할 때가 아니라, 제 목숨을 희생시켜 프랑스 시민들을 구한 군인들을 추모할 때"라며 논란을 일축시켰다. 이번 작전을 총지휘한 로항 이즈나르 사령관 또한 "그들이 어디에 있든, 어떤 사람이든, 프랑스 시민이 위험에 처해 있다면, 그들을 구하러 가는 것은 우리의 임무"라며 이번 작전의 수행에 그 어떤 후회도 있을 수 없음을 확인했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만이 "왜 인질을 영웅 취급하느냐"며 딴지를 걸었다. 대통령이 인질을 맞으러 공항에 나간 일을 비꼰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는 국민의 목숨을 수호할 의무가 있으며, 이 정부는 당연한 그들의 의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과시적으로 확인시키는 공식 절차일 뿐이다. 실제로 마크롱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악수를 하며 그들을 맞았다. 다른 모든 프랑스 대통령들이 그렇게 해왔듯 그 역시 주어진 의무를 행했을 뿐이다.
 
현재 프랑스 내부에서 관광에 대한 비난 여론은 가라앉았다. 대신 목숨을 바쳐 시민을 구한 두 군인에 대한 회고와 추모, 납치되던 날 무참히 살해된 베냉인 가이드에 대한 뒤늦은 애도의 목소리로 낮게 출렁이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한국 온라인에선 구조된 한국인 여행자에 대한 비난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프랑스 사회에서 두 여행자에 대한 여론이 차갑다는 한국 언론의 보도는 위험 지역을 돌아다닌 중년 여성에게 거침없는 비난의 화살을 던져도 좋다는 신호탄으로 작용했다. 프랑스에선 외교부 장관 발언의 오류를 지적하는 기사들이 이어졌지만, 비난 여론이 희석되는 것을 저어한 탓인지 이를 전해주는 국내 언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함께 구출되어 자국으로 돌아간 미국 여성도 자신의 나라에서 "쓸데없이 위험지역을 돌아다닌 여자"라며 비난을 한 몸에 받았을까? 미국인들은 미국 국적을 가진 시민이 위험에서 구출되는 것을 마땅한 권리로 여긴다. 그것은 미국인과 프랑스인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누리고 요구해야 할 권리이다. 그러나 익명의 공간이 비추는 한국 사회는 그의 구출을 안도하기보다, 조롱하고 짜증내는 목소리로 넘치고 있다.
 
프랑스인은 고개 숙이지 않았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납치됐다가 프랑스 특수부대에 구출된 프랑스인들이 11일(현지시간) 파리 근교 빌라쿠블레 군 비행장에 도착해 마크롱 대통령과 인사하는 모습. ⓒ 연합뉴스/EPA

  
정작 제나라 군인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두 프랑스인들은 이름과 직업, 신혼여행을 떠난 동성 커플이라는 사실도 거리낌 없이 공개되었다.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들은 펜자리 국립공원이 품고 있는 낙원 같은 아름다움이 인간에 의해 위험한 곳으로 변해 안타깝다며, 이번 작전으로 목숨을 잃은 군인과 그의 가족, 현지에서 길잡이였던 베냉 가이드에 대한 애도의 감정을 차분히 표현했다. 그들이 영웅은 아니지만 죄인도 아니기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존재를 드러내는 데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던 것이다.
 
지난 2013년 튀니지의 한 여성이 페이스북에 상반신을 드러내며 자신이 튀니지의 첫 페멘(FEMEN, 프랑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페미니스트 그룹)이라고 선언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자, 프랑스 페멘 두 명이 그녀를 지지하기 위해 튀니지 법정에 간 일이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가슴에 구호를 적어 노출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했고, 그 결과 튀니지 법정으로부터 4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올랑드 대통령은 자국민을 구하기 위해 튀니지에 직접 날아갔고, 그들은 곧 석방되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이슬람 국가에 가서 상반신을 노출하며 메시지를 전한 페멘의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지 않았다. 4개월간의 징역형은 그 누구도 해한 적이 없는 사람들(가슴은 '아무도 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들이 선택한 무기였다)이 감당하기엔 가혹한 형벌이며, 그 부당한 형벌에 처한 자국민들을 구하는 게 국가의 의무라는 것만이 모두가 공유하는 사실이었다. 하여,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프랑스 대통령으로 꼽히는 올랑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했고, 다행히 성공했다. 그러나 올랑드도 페멘도 영웅이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을 뿐이다.
 
다수가 내던지는 혐오 발언이 비수가 되어 수시로 사람의 심장을 찌르는 사회, 정직하지 않은 언론들이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대중에게 혐오를 선동하는 사회가 '위험 국가'보다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자유롭게 생존할 권리에 대해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존중하는 사회가 바로 안전 사회다. 우리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한국 여행자의 생환을 기뻐하며 함께 박수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린 안전한 사회를 향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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