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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30 09:38 수정 2019.04.30 09:38
홍승은님은 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쓴 작가입니다.[편집자말]
엄마는 초보 자취생이다. 두 달 전, 엄마가 고양시로 이사하고부터 춘천에 사는 아빠와 별거를 시작했다. 금요일 밤이면 두 사람은 전화에 대고 옥신각신한다. 아빠는 혼자 있으면 심심하다고 엄마 집에 오겠다고 하고, 엄마는 오지 말고 친구나 만나라고 한사코 만류한다.

"오지 마. 귀찮아. 오면 또 밥해야 하잖아. 나도 좀 쉬자." 엄마도 밥하기 귀찮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알아가는 서른두 살 딸은 최근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란다. 침대 위에 널브러진 티셔츠와 수건, 테이블에 펼쳐진 먹다 남은 과자 봉지 같은 광경을 내 방이 아닌 엄마 방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 같은...

"엄마, 방이 이게 뭐야. 정리 좀 해!"라고 잔소리하면, 엄마는 "나 원래 게을러, 그래도 너보단 낫다"라고 답한다. 묘한 동질감과 함께 그간 내가 얼마나 이 사람을 모르고 살았나 싶어 멋쩍어진다. 

'카티아 만' 같았던 엄마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 pixabay

 
그때는 모르고 지금은 알게 된 목록은 날마다 늘어난다. 엄마도 벌레를 무서워한다, 엄마도 음식 기호가 확실하다, 엄마도 해 먹기보다 사 먹는 밥을 좋아한다 등등. 얼마 전 엄마와 외식하러 가는 길에 내가 가지 요리를 먹고 싶다고 하자 엄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가지 싫어. 할머니 집에서 매일 풀만 먹고 살았는데 여기서도 먹어야 해? 이제 내가 좋아하는 거 먹을래."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옛말을 사뿐하게 즈려 밟는 엄마의 태도에 나는 또 놀랐고 내심 기뻤다.

어린 시절 내 눈에 엄마는 철인 같은 사람이었다. 마치 '카티아 만'처럼 말이다. "양육과 가사에 요구되는 일상의 모든 과업은 그녀가 도맡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남편의 뮤즈이자 벗이었고, 비서와 출납원, 운전자이자 간호사였고, 그의 작업 환경이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도록 밤낮으로 지키는 경비원이었으며, 신경 쓰이는 일들을 해결하는 중재자였다.

"카티아 여사는 이 모든 역할을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수행했다."( <읽거나 말거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카티아 만은 <베네치아의 죽음>, <마의 산>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토마스 만의 아내다. 그녀가 노인이 되었을 때 자녀들의 입을 빌려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책이 <쓰지 못한 내 추억들>이다. 카티아 만은 아흔 살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고백한다. 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아무것도 못 했노라고. 카티아 만이 쓰지 못한 추억들을 뒤늦게라도 다시 쓰게 된 것처럼, 엄마도 아빠와 헤어진 뒤 자기의 욕망에 충실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엄마의 인생'이라는 말 앞에만 서면, 가슴에 바윗덩이가 뚝 떨어지는 흔한 딸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나. '왜 엄마는 짜장면을 안 먹는다고 했어, 왜 엄마는 자기 인생을 살지 않았어.' 이런 원망이 불쑥 올라올 때면 내가 엄마의 삶을 부정하는 꼴이 될까 두렵기도 했다.

이런 죄책감은 나만의 감정이 아니었는지, 주위에서도 비슷한 호소를 자주 들었다. 한 친구는 엄마에게 페미니즘을 알려주고는 싶은데, 혹시라도 엄마가 당신의 삶을 모두 부정하게 될까 봐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진 엄마들이 있었다. '자식의 인생' 앞에서 마찬가지로 무거워지는 마음이다. 

멍청하지도, 불쌍하지도 않습니다
 

미성년 스틸컷. 영주(엄정화 분)의 모습 ⓒ 쇼박스

 
김윤석 감독, 이보람 공동 각본의 영화 <미성년>은 서사, 연출, 연기, 캐릭터의 입체성 등 다양한 면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영화다. 모든 장면을 하나하나 곱씹고 싶지만, 유독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영주(염정아)는 남편의 외도에 이혼을 결심하곤 집안의 각종 재산 서류를 뒤진다.

바닥에 펼쳐진 서류뭉치 앞에서 영주는 한숨을 쉰다. 지난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일군 재산 명의가 모두 남편인 대원(김윤석) 앞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 그 사실을 마주한 영주는 토하듯 말을 뱉는다. "멍청한 X." 자기 자신을 향한 원망이었다. 영주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비난의 화살은 나쁜 놈이 아닌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향한다.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아빠가 다른 사람과 바람피우는 사실을 알게 된 딸은 친구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엄마는 멍청해서, 내가 지켜줘야 돼."

최선을 다해 가족을 보살피며 노동한 엄마는 왜 '멍청한 X' 혹은 '불쌍한 사람'이 될까. 영화 속 영주를 기만한 건 누구였을까. 남편이었을까. 내연녀였을까.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면 영주는 남편 명의로 채워진 서류 앞에서 억울하지 않았을까. 어떤 노동은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여 돈, 예술, 인정, 명예가 되고, 어떤 노동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한 번에 수십 가지 작업을 수행하는 고도의 전문적인 노동 경력임에도 가족을 벗어나는 순간 이력서 공란만 남는다. 살림과 돌봄을 여전히 엄마의 본성(모성)이라고 믿는 사회에서 일상을 채우는 노동은 쉽게 삭제된다. 본성이 아니라 노동이고, 당연한 게 아니라 부단히 애쓰는 거라는 걸 모른다. 그 자리가 비어봐야 상대도 조금은 알게 되는 것이다. 나를 돌봐주던 끊임없는 노동을. 

소설가 이외수의 아내였던 전영자씨의 인터뷰(우먼센스)를 읽었다. 남편은 글을 썼지만, 그녀는 다방면의 전문가였다. 43년 동안 가정의 조력자, 가사노동자, 요리사, 간병인, 은행원, 상담사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남들에게는 '보살'로 불렸지만, 자신을 '계집종'이라 생각했다는 그녀는 더는 이런 내조를 하기 싫다고 말한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열심히 살았죠. 지난 43년은 다 행복했고 다 지겨웠어요."

남편의 외도와 혼외 자식, 매일 같이 차려야 했던 수십 명의 밥상과 술상. 인터뷰에 적힌 글자들이 잔혹해 보였는데, 정작 그는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거나 자기를 멍청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시간을 끌어안으면서도 정확하게 지금 원하는 걸 말했다. 

"이외수의 아내로 존재했던 제가 이제는 저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에요." 

곧 다가올 5월은 가정의 달. 평화롭게 전시되는 화목한 가정은 가혹한 노동을 야금야금 먹으며 유지된다. 꾸역꾸역 가족 행사를 치르던 예전보다 엄마는 백숙, 나는 짬뽕을 시켜 먹는 각자의 시간이 훨씬 평화롭게 느껴진다. 자기 자신을 미뤄두지 않으려는 엄마의 욕망 앞에서 비로소 내 죄책감도 사라졌으니까. 엄마는 더는 내가 지킬 존재도, 멍청한 존재도 아니니까.

가족 내에서도, 가족 밖에서도, 이별 후에도 엄마의 삶만 일방적으로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5월이면 좋겠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질 거라는 전영자씨의 말을 진심으로 믿기로 했다. 

"이 나이에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60대 여성도 싱글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줄까, 많은 생각이 들죠. 중년 여성들이 이런 이유로 이혼을 결심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잘해내고 싶어요. 어떻게든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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