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25 08:13최종 업데이트 19.04.25 08:25
중국 둔황시 막고굴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다. 이곳에서 신라 출신 혜초 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막고굴은 중국 사람에게도 인기가 많다. 약 천 년에 걸쳐 13개 나라 사람들이 막고굴에 벽화를 그렸다. 벽화 그림에는 불교 경전 내용뿐만 아니라 각 시대 사람들 생활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막고굴이 있는 중국 둔황시는 옛날 중국 사람들이 파미르고원을 지나 유럽 혹은 인도로 향하는 여행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이곳에서 중국, 페르시아, 아라비아, 인도, 유럽 문화가 교차했다. 그래서 둔황시 벽화에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모습과 문화 교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연히 한국 문화 모습도 있다. 지금도 중국 둔황시에서 한국 문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둔황시 랜드마크 비파 춤추는 여인 동상 ⓒ 김기동

 
중국 둔황시는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하는 공연을 3개 운영한다. 둔황시의 랜드마크가 <비파를 들고 춤추는 여인 모습>이라는 이름의 동상인데, 이 모습 역시 막고굴 벽화에 있는 모습이다. 이 여인 이야기를 줄거리로 만든 <비단길에 내리는 꽃비(絲路花雨)>라는 춤 공연이 가장 인기다. 

사실 이 공연은 굉장히 유명하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공연했고, 중국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이나 국제회의에서 지금도 공연된다. 또 중국 국영 텔레비전 CCTV에서 정상 회담 소식을 뉴스로 방송할 때 외국 정상이 이 공연을 보는 화면을 자주 보았다. 


그래서 지난 3월 둔황시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 이 공연을 보았다. 세 가지 감상이 들었다. 

누적관객 400만... 중국 대표 공연 직접 보니
 

중국 둔황시에서 본 '비단길에 내리는 꽃비' 일부. ⓒ 김기동

 
첫째 이 공연은 중국의 여느 공연과 달리 '쪽수'로 승부를 걸지 않는다. 춤추는 공연자가 약 50여 명 정도고, 무대 장치도 첨단기술이나 크기로 승부하지 않았다. 최대한 단순화시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오로지 출연자의 춤에만 집중하는 공연이다. 대사나 노래가 전혀 없다. 그래서 막 사이에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는 영상을 띄운다. 줄거리 자체도 너무 단순하다. 중국어와 영어로 소개하기 때문에 한국사람도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문제 없다. 중국 사람보다 외국 사람을 위해 만든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막고굴에는 시대별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다수다. 이 공연은 벽화 속 춤 모양을 재현해 보여준다. 시대 배경은 당나라다. 당나라 시대 실크로드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이 그 시대 중국의 수도였던 장안에 왔고, 여기 온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춤을 볼 수 있다. 춤에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출연자들의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둔황시 방문을 예정해둔 한국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다. 
 

한국 전통 복장을 입은 남녀 출연자. 정가운데를 기준으로 왼편에 서있다. ⓒ 김기동

 
셋째 가장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 전통 복장을 한 두 사람이 공연에 출연한다는 것이다. 

막고굴 벽화에는 당나라를 방문한 세계 여러 나라 외교사절 모습이 있는데, 공연에서도 그때 외교사절들이 각자의 전통 옷을 입고 등장한다. 공연에는 6개 나라 외교사절이 등장하는데, 가장 중간에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교사절과 페르시아 외교사절이다.

특별히 우리나라와 페르시아 외교사절은 부인과 동행해 남성과 여성이 나오고, 다른 네 개 나라는 남성 외교관만 등장한다. 다만 연극 배경이 당나라 시대이니 고구려, 백제, 신라 중 한 나라의 외교 사신이어야 하는데, 연극 무대에서는 조선 시대 복장을 한 사람이 나온다.

이 공연은 1979년 처음 만들었고 그동안 30여 개 나라에서 공연했다. 현재까지 총 2600회 공연했고 누적 관객 수가 4백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공연이라 할 만하다. 이런 공연에서 뜻밖에 한국 전통 복장을 만나 특별히 반가웠다. 

불교 경전 반야심경
 

중국 둔황시 백마사 구층석탑 ⓒ 김기동


중국 둔황시에는 '백마사'란 절이 있다. 백마사는 '하얀 털을 가진 말을 위해 지은 절'이란 의미다. 

기독교에 주기도문이 있다면, 불교에는 반야심경이 있다. 불교도는 항상 반야심경을 낭송한다. 불교사상의 진수를 뽑아놓은 글이라고 한다.

반야심경은 서유기에 나오는 현장법사가 인도경전을 해석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반야심경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는 쿠마라지바 스님이 인도 불경을 번역하면서 직접 만들었다. 쿠마라지바는 우리가 잘아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극락(極樂)'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다.

둔황시 백마사는 쿠마라지바가 서역 구자국에서 중국 장안으로 가면서 머문 곳이다. 쿠마라지바가 이곳 백마사 절에 머무는 동안 타고 다니던 털이 하얀 말이 죽어서, 말을 위해 탑과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백마사'로 지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쿠마라지바가 이곳에 서너 달 머문 사실은 맞는데, 그 외는 틀린 같다.

첫째, 그 당시 쿠마라지바는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신세인데 말을 위해 절과 탑을 세울 여유와 돈이 없었을 것이다.

둘째, 장안에서 둔황까지는 말을 타고 이동하고, 둔황에서 서역으로 갈 때는 낙타를 타야 한다. 그런데 그때 쿠마라지바는 서역에서 둔황에 도착했으니 말이 아니라 낙타를 탔을 것이다.

쿠마라지바는 <금강경>이라는 불교 경전을 한자로 번역했다. 그래서 현재 한국 불교 스님과 불교 신자들도 쿠마라지바가 한자로 번역한 <금강경> 경전을 읽는다. <금강경> 경전 첫머리에 '요진 삼장법사 쿠마라지바 역'이라는 글씨가 있다. '요진'은 '요장'이라는 사람이 세운 '후진'시대를 의미하고, '삼장법사'는 훌륭한 스님이라는 의미이고, '쿠마라지바'는 경전 번역자 이름이다.

사천왕상과 한류
 

중국 쿠처 키질석굴 쿠마라지바 동상 ⓒ 김기동

 
쿠마라지바는 구자국(현재 중국 지명 '쿠처')에서 태어나 쿠처에 있는 키질석굴과 쑤바스사원에서 스님 생활을 했다. 그래서 중국 쿠처 키질석굴 입구에는 쿠마라지바 동상이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 서쪽에 위치한 쿠처 지역은 인도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키질석굴 벽화에서 인도 불교가 중국에 도착한 후 중국 문화와 융합하여 새로운 모습의 불교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불교 사찰에 가면 절 초입에 부처님을 지키는 사천왕상이 있다. 최초 인도 불교에는 사천왕상이 없었는데, 이곳 키질석굴에서부터 사천왕상이 시작되어 한국까지 전래됐다.

키질석굴 벽화는 개인이 혼자 관람을 할 수 없다. 관광객은 유물을 설명하는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단체로 석굴에 들어가 벽화를 볼 수 있다. 당연히 사진기로 벽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하지만 해설사는 상황에 따라 여행객이 핸드폰으로 벽화를 찍는 걸 허락하는 듯하다. 

비수기에 방문한 덕분에 관광객이 없어서 중국 사람 안내원과 나 두 사람만 석굴에 들어갔다. 안내원은 내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알고는 한국 연속극과 노래를 좋아한다며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석굴 안에서는 해설사가 나에게 벽화에 대해 설명하고, 다음 석굴로 이동하면서는 내가 해설사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주었다. 덕분에 핸드폰으로 벽화 사진 몇 장을 찍을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은 한국 절에서 중국 키질석굴에서 시작된 불교 사천왕상을 볼 수 있고, 중국 키질 석굴 해설사는 중국에서 한국 연속극을 보고 한국 노래를 듣는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