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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23 09:43 수정 2019.04.23 09:43
봄이 설레는 계절이라고 누가 규정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이유는 아마도 날씨 탓일 것이다. 겨울은 옷가지가 무거워 활동하기 힘들고, 여름은 가만히 있어야 살아남는 계절이니까. 그나마 가을이 있는데, 가을보다 봄이 좋은 이유는 맹추위에 긴장했던 몸이 서서히 녹아내리면서 꽃향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꽃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맛 돌아오게 하는 매력정도는 있는 것 같다.

짧든 길든 매년 찾아오는 봄이지만 올 봄은 유독 설렌다. 그 이유는 2017년 겨울에 아쉽게 막을 내렸던 광주 서구 발산마을의 '이웃캠프'가 5월에 부활하기 때문이다(정확한 날짜는 미정). 이웃캠프는 한 달에 한 번, 발산마을에서 1박 2일을 살아보는 '마을살이 체험'이다. 도심 한복판에 덩그러니 자리한 달동네, 이 마을에 모인 청년들은 나이도 직업도 모른 채 대화를 나눈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가리는 음식은 없는지 등을 물어보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웃캠프에서 상추를 파는 할머니들 ⓒ 박정훈

   
팀을 나눠 팀장을 정하고, 마을에 숨겨놓은 미션 쪽지를 찾아 지도 속 퍼즐을 완성시키고, 미션에서 승리한 팀은 더 많은 '마을화폐'를 환전할 수 있는 현실판 게임이다. 화폐는 식사 미션 때 할머니들이 직접 재배하신 상추와 깻잎을 구매할 때 쓰이는데, 정량보다 덤으로 주는 양이 많아서 가끔은 적자가 나기도 한다.

캠프가 진행되는 동안은 우리가 아는 '돈'을 쓸 수 없다. 갈비찜이 맛있는 다경이네 식탁도, 시원한 커피와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 표류도, 달콤한 수제 디저트를 파는 '플롱'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데블스 하우스까지 상가들은 일절 돈을 받지 않는다. 오직 '마을 화폐'로만 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한다면 이웃 캠프는 취향저격일 것이다. 또 청년들에게는 문화충격일 수 있는 '할머니 클럽파티'도 체험할 수 있다. 이 클럽의 DJ는 실제 마을 주민들의 음성을 녹음해 디제잉 노래로 만들었고, 캠프 때마다 그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클럽을 연다. 나이제한은 무려 99세(발산마을 최고령 할머니 나이). 어르신들은 떡과 맥주를 들고 트롯인지 디스코인지 알 수 없는 장르에 몸을 맡긴다. 그 시절 청춘으로 돌아간 것처럼. 
 

발산마을의 디스코 펑키 파티 ⓒ 김영빈

  

'발산 디슥호 훵키 파티'의 포스터 ⓒ 김영빈

 
20대와 80대의 이웃되기

발산마을엔 노인들과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들어온 청춘들이 함께 어우러져 산다. 전쟁과 가난이 얼마나 고된 것이었는지, 말로만 들어도 영화 한 편이 나올 것 같은 평균나이 85세의 스토리텔러들과, 그 스토리를 자신의 특기와 접목해 퓨전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평균나이 25세의 청년 활동가들이 이웃으로 관계를 맺었다. 

이웃이라는 단어가 조금 어색할 수 있다. 요즘은 옆집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주고받는 문화가 사라졌으니까. 그냥 오다가다 만나면 가볍게 인사만 나누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친다. 어쩌면 그게 더 편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귀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시간과 감정, 그리고 비용이 소모되니까. 발산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청년활동가들은 어르신들을 무서워했고 어려워했다. 경로당에 인사를 드리러 갈 때도, 빈손으로 갈 수 없다며 초코파이를 사 들고 쭈뼛쭈뼛 걸어가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20대와 80대가 서로의 집을 넘나들며 함께 밥을 먹고, 이웃캠프가 열릴 때면 온 마을 주민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우리 마을에 놀러 오신걸 환영합니다. 쌀이 없거든 경로당서 가져가세요." 마을 회장인 할머님이 말씀하신다. "선물은 나한테도 가치 있는 것이어야 혀. 쓸모없는 것을 주면 상대도 금방 알아채브러. 아낌없이 주면 진심이 통한당게." 

할머님은 살림이 넉넉해서 쌀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없이 살던 그때,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사람이 베풀어야 된다는 것을 삶으로 경험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르신들의 지혜가 청년들의 삶 깊숙이 파고든다.

내가 이웃캠프를 사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공동체 문화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그렇게 이웃이 됐을 때 우리는 보다 다양한 관점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남이기에 나눌 수 없었던 것들도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 남이기에 외면했을 무언가도 이웃일 때는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다. 

올 봄에 우리는 새로운 이웃을 마을에 초대하려 한다. 조금 엉뚱해도, 조금 이상해도, 가끔 실수해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고, '이웃캠프'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동시대 청년들과 만나고 싶다. 따뜻한 마을의 정으로 청년들에게 위로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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