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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05 20:49 수정 2019.04.08 13:51
'버선발'은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의 곁을 지키고, 한평생 평화와 통일의 길을 걸어온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자신의 삶과 철학, 민중예술과 사상의 실체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책 <버선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버선발'은 '맨발, 벗은 발'이라는 의미인데요, 백 선생님 책 출간에 부쳐 사회 각계에서 '버선발'을 자처하는 이들의 글을 '우리가 버선발이다'라는 이름으로 묶어 차례로 싣습니다. 이번 글은 문화연대 신유아 활동가가 보내왔습니다.[편집자말]
두 번 울었습니다. '버선발'이 엄마와 헤어지던 날 그리고 다시 엄마를 만나던 날. 버선발은 그저 태어나서 주어진 환경 속에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버선발 이야기>를 읽으며 그가 소리 없는 울음을 펑펑 울면서 따라가는 장면에서, 지난 2017년 봄 광화문광장에서 펑펑 울던 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2016년 겨울 광화문광장에는 문화예술인들의 텐트촌이 만들어졌습니다. 텐트촌 한 곳에 작은 텐트 하나 들고 들어가 '박근혜 퇴진'을 외쳤습니다. 추운 겨울 눈 속에 파묻힌 텐트 속에서, 군중의 함성 속에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3개월을 보냈습니다. 무엇이라도 해 보려고 이 궁리 저 궁리에 하루도 쉬지 않고 만들고 부수고 노래하고 춤췄습니다.

왜 우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모르겠다고, 나도 내가 우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모릅니다. 무지렁이 민중은 무엇을 배워서도, 누군가 시켜서도 아닌, 그저 삶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삶은 자연스럽게 저항이 되고 저항의 힘이 모였을 때 눈물이 되는 모양입니다. 눈물은 땀이고 땀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한 줌 거름일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에 나는 내 눈물의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슬프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던 그 날의 기억입니다. 왜 울었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백기완 선생, 말을 잇지 못했다
 

백기완 선생님과 광화문 광장에서. ⓒ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2018년 새 봄을 맞이하던 때, 백기완 선생님의 수술 소식을 들었습니다. 겨우내 광장에서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그곳 어딘가에 늘 함께 계시던 선생님. 거동이 힘드셨던 팔순 노인은 기저귀를 차고 광장에 나오셨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도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화장실을 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선생님의 의지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입원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습니다. 그때 저는 콜트콜텍 기타를 만들다 해고되어 13년째 길바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였습니다. 선생님을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콜트콜텍 기타를 만들다 해고된 노동자들과 함께 병원으로 갔습니다.

입원실 햇살 좋은 창가의 작은 침대 위에는 하얀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었고, 희고 곱다기보다는 윤기 없는 얼굴에 깊은 주름이 가득한 선생님이 누워 계셨습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우리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십니다.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에 같이 울었습니다.

"너는 끝까지 노동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

울컥울컥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부분이 이 책 <버선발 이야기>의 마지막에 그려져 있습니다. 버선발이 펑펑 울며 따라가던 그 길 위에 예술이 있습니다. 돌멩이 하나, 솔방울 한 톨이 모여 우르르 몰려가는 바로 그곳에 내가 있고, 버선발이 있습니다.

버선발의 여정 속에 등장하는 민초들의 삶은 현재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의 삶입니다. 그 삶에 함께하며 힘을 키우던 버선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넘기면서도 다시 일어나 싸우던 그 버선발이 되라고 하셨던 겁니다.

<버선발 이야기>를 읽으며 그간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이 떠올랐고, 구슬프게 들려주시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개복 수술을 하셨고 3개월 동안 병원에 계셨던 선생님이 퇴원을 하셨습니다. 어쩌면… 어쩌면… 이라는 말들이 들리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배짱은 병마와도 싸워 이겨냈습니다. 모진 고문에도 상대방을 위협하는 힘, 굴복하지 않고 방어하는 힘이 바로 배짱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배짱 덕에 친구들과 함께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갈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몸은 이제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모습은 아닙니다. 엄청 크고 무서운 할아버지로 기억되던 선생님은 이제 누구라도 두 손으로 번쩍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지셨지만, 우렁찬 목소리와 반짝거리는 눈동자는 그대로입니다.

"내가 병원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와 너희들을 볼 수 있으니 좋구나. 그러니 너희도 내게 무언가 줘야지. 노래 한번 해 봐라."

쭈뼛거리는 우리들에게 세뱃돈을 건네주시며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나이 열셋, 누이 나이 열일곱에 6.25전쟁으로 헤어졌는데, 그 누이를 60년쯤 지난 어느 날 북녘을 방문했을 때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할머니 한 분이 보이는데 그냥 딱 '내 누이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합니다.

<과꽃>이라는 노래를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문득 누이가 생각났다며 이 노래를 불러 보자 하셨습니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특히나 2절을 들으면 더 많이 생각난다고 하셨습니다.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 꽃 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 시집 간 지 언 삼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우리는 다 같이 목청껏 불렀습니다.

<버선발 이야기>를 권하는 이유
 

<버선발 이야기> 겉표지 ⓒ 오마이북

버선발이 엄마를 만나던 날,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겠다던 엄마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엄마는 깡마른 몸에 썩은 밥풀을 입에 물고 쩍쩍 갈라진 손엔 호미를 치켜들고 '네 이놈, 내 땀을 내놓거라, 이놈. 내 피눈물도 내놓고 내 바랄(꿈)도 내놓고 네놈의 그 응큼한 대갈빼기도 내놓거라, 이놈' 하며 젖은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던 바로 그 곳에서 버선발은 다시 세상 속으로 달려 나갑니다.

사람들은 자주 저에게 묻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냐고. 이 일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냐고도 묻습니다. 저는 백기완 선생님의 <버선발 이야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왜 살고 있는지, 나는 내 삶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 책은 나는 누구이고 어떤 위치에 살고 있는지 고민할 수 있는 책입니다.

'왜'냐고 묻지 마세요. 나는 무지렁이라 아는 것이 없습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버티고 있으니까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서러움, 그것을 '깐나'라고 합니다. 깐나 속에서 날마다 짓밟히는 이의 몸에서만 터져 나오는 노여움의 불씨, 바로 '서돌'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버선발 이야기 - 땀, 눈물, 희망을 빼앗긴 민중들의 한바탕

백기완 지음, 오마이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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