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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4.04 15:10 수정 2019.04.04 16:13
'버선발'은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의 곁을 지키고, 한평생 평화와 통일의 길을 걸어온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이 자신의 삶과 철학, 민중예술과 사상의 실체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책 <버선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버선발'은 '맨발, 벗은 발'이라는 의미인데요, 백 선생님 책 출간에 부쳐 사회 각계에서 '버선발'을 자처하는 이들의 글을 '우리가 버선발이다'라는 이름으로 묶어 차례로 싣습니다. 이번 글은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리대로 공동대표가 보내왔습니다.[편집자말]
사람들은 백기완 선생을 민주투사, 통일과 노동운동가로만 알고 있는 이가 많다. 그보다 백 선생은 우리 겨레와 우리말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실천하는 우리말 으뜸 지킴이요, 백범 김구 선생의 소원인 자주문화강국을 이루려고 애쓰는 빼어난 우리 겨레 독립운동가다.

그동안 외치고 한 일이 다 그 일이고 그 마음과 넋살(정신)이 이번에 나온 글묵(책) <버선발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글묵에 한자말과 외국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바로 그 본보기다. 나도 칠십 평생을 우리말과 얼을 지키고 살려서 우리 자주문화가 꽃피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발버둥친 사람이지만 백 선생이 더욱 우러러보이고 고맙다.

한자말과 외국말 없는 <버선발 이야기>
 

백기완 선생의 육필 원고. ⓒ 이희훈


 
이번에 낸 <버선발 이야기>의 머리말에 니나(민중), 갈마(역사), 새름(정서), 든메(사랑), 하제(희망), 달구름(세월), 때결(시간), 얼짬(잠깐), 글묵(책) 같은 낯선 말들이 나온다. 백 선생이 옛날 어려서 들은 말도 있지만 새로 만든 토박이말도 있다.

일본 식민지 때 길든 일본 한자말과 광복 뒤 퍼진 미국말에 푹 젖은 보통 한국인들에겐 매우 낯설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 말뜻을 미루어 짐작해 알 수 있다. 이 말들은 우리 한아비들이 쓰던 토박이말이거나 그에 바탕을 두고 새로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 모든 한국 사람들이 백 선생의 그 높고 거룩한 뜻을 알고 따르면 바로 그 말들과 벗이 될 것이다.

난 일찍이 백 선생으로부터 '파이팅'이란 말을 쓰지 말고 "아리아리 떵", '뉴스'가 아닌 '새뜸'이란 말을 쓰자고 배워서 그 말을 자주 쓴다. 처음에 토박이말이나 새로 만든 우리 낱말을 봤을 때에 많이 낯설었지만 자꾸 써보니 조금씩 토박이말이 더 좋아지고 오랜 벗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백 선생 뜻을 알고 그 마음으로 그 글을 읽으면 바로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토박이말은 낯설다고 쓰지 않으면서 더 낯선 "이벤트, 재테크, 힐링"같은 미국말이나 어려운 일본 한자말은 잘 따라서 쓰고 좋아한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이제 남의 것을 더 우러러보고 내 것을 깔보는 못된 버릇을 싹 버려야 한다.
   
나는 "여러 사람이 가면 없던 길도 생긴다"면서 일본 침략에 맞서서 싸운 중국 사상가요 문학인인 노신을 좋아했다. 그는 그의 글에 중국 넋을 담아 중국인들에게 자주 정신을 심어서 나라를 일으키려고 애썼다. 외국인이지만 그의 삶이 좋아서 노신의 고향에 있는 중국 절강월수외대에 가서 우리말을 가르치며 그의 삶과 넋살을 살펴본 일이 있다.

난 그곳에 있는 그의 동상을 보면서 백기완 선생을 생각했다. 그가 중국 혼을 살리고 빛내자고 외친 삶이 백 선생을 떠올렸고 그의 생김새도 백 선생과 닮아 보였다. 그동안 백 선생이 쓴 글과 이번에 낸 <버선발 이야기>는 노신이 문학 작품에 그의 철학과 사상을 담은 것도 매우 닮았다.

백 선생은 2009년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자서전을 한겨레출판사에서 낸 일이 있다. 그때까지 살아온 이야기들이었는데 그 글묵에도 미국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한자말은 글목 이름에 쓰인 '명예'란 말처럼 몇 개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낸 <버선발 이야기>는 한자말이 하나도 없다. 참으로 놀랍고 새로운 일이다. 아니 큰 새뜸(뉴스)이다.

열 해 앞서 낸 그 글묵에 "나는 늙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노녁(북쪽)에 남아있는 누님을 만나지 못하고는 죽을 수 없다는 말인데 남북이 하나 되기를 바라는 뜨거운 마음이 느껴졌다. 이번에 낸 글묵은 한자말이나 미국말을 줄이고 우리말을 살려서 우리 겨레와 나라 넋을 튼튼하게 하자는 백 선생의 큰 바람과 뜻이 담겼다.

백 선생이 우리말을 살려서 쓰는 것을 보면서 1874년 백 선생과 같은 황해도에서 태어나 한삶을 우리말과 글을 살리고 빛내려고 애쓴 주시경 선생이 떠오른다. 주 선생은 대한제국 때부터 우리 말글을 살리려고 애썼는데 1910년 일본제국에 나라를 빼앗기니 '국문(나라글자)'이 일본글자가 되어서 우리 글자를 국문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기에 우리 글자를 "한겨레의 글자"란 뜻으로 '한글'이라고 새 이름을 달아주었다.

또 그때 일본말이 '국어'가 되니 우리말을 '국어(나라말)'라고 할 수 없게 되어 우리말을 "한겨레 말"이라는 뜻을 담아 '한말'이라고 새 말을 만들어 썼다. 그리고 '주시경'이란 당신의 한자 이름을 안 쓰고 '한힌샘'라는 우리말 이름으로 바꾸고 '말모이(사전)'를 만들다 돌아가셨다.
 
주례사도 남달랐던 백기완 선생

이런 한힌샘 선생 삶과 백기완 선생 삶과 뜻이 같다고 본다. 그래서 나도 두 분처럼 우리말을 찾거나 만들어 우리 겨레 얼을 튼튼하게 하려고 요즘 토박이말을 찾거나 만들어 쓴다. '사진'을 '찍그림', '사진기'는 '찍틀', '동영상'을 '움직그림', '에스컬레이터'를 '움직계단', '무빙워크'는 '움직길', '동지'는 '뜻벗'이라고 바꿔서 쓰고 있다.

그리고 하이텔 천리안 같은 통신이 유행할 때에 그곳 '한글사랑모임' 뜻벗들과 '네티즌'이란 말을 '누리꾼'이라고 쓰자고 해서 널리 쓰게 한 일이 있다. 그래서 요즘 그 말이 말모이(사전)에도 올라갔다. '새내기'란 말도 그랬다. 둘 다 없던 길도 많은 사람이 가면 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본보기이다.

이런 백 선생의 큰 뜻을 난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1980년대 '써클'이란 미국말을 '동아리'로, '신입생'이란 한자말을 '새내기'로 말하는 백 선생을 보고, 또 1990년대 내 처조카 혼인 주례를 맡은 백 선생이 "아들딸 많이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고 하는 보통 주례사가 아니라 "미국말 쓰지 말고 우리말을 사랑하라"라는 남다른 주례사를 듣고 백 선생을 좋아했다.

그래서 1994년 조선일보가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서 쓰자는 무리들과 함께 "한자를 배우고 씁시다"라는 글을 그 신문 1면에 17회째나 이어서 쓰면서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말글살이를 못하게 나섰을 때에 그 짓을 막으려는 한글단체 강연회에 백 선생을 연사로 모신 일이 있다.

그때 다른 분들은 백 선생을 연사로 모시는 것을 반대했으나 내가 강력하게 나서서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 김동길 연세대 교수와 함께 백기완 선생까지 모셔서 조선일보의 잘못을 꾸짖고 따졌다. 그때 조선일보가 바로 그 못된 짓을 그만두었는데 백 선생까지 나서니 놀래서 그랬다고 본다.

그 뒤 그런 백 선생의 아름답고 큰 뜻을 고마워하면서 나는 이오덕 선생과 함께 만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 2002년 한글날에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아 온 누리에 알린 일이 있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온 겨레가 주는 상이었고 고마움이었다.
 

<버선발 이야기> 겉표지. ⓒ 오마이북

이렇게 나는 백기완 선생의 뜻을 우러러 보면서도 가깝게 모시고 활동하지 못하고 있어 언제나 아쉽고 죄송했다. 다행히 내가 앞장서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고, 한자로 된 국회 보람 '國'자를 한글인 '국회'로 바꾸는 일을 할 때 도와준 이수호 선생이 백 선생과 같이 있어 고맙고 든든하다.

백 선생은 100년 전 중국 민중운동가요, 계몽주의자 노신과 대한제국 때에 우리 얼말글을 살리고 지키려고 애쓴 주시경 선생의 삶과 넋살이 닮았다. 베트남이 프랑스, 중국, 미국과 싸워 이긴 것은 베트남이 얼 찬 나라이기 때문이다. 백 선생의 뜻과 삶은 얼 찬 나라로 가는 길이고 자주통일과 참된 민주 국가로 가는 길이다. 많은 이들이 <버선발 이야기>를 읽고 백 선생이 가는 길을 함께 따라가길 바라고 빈다.


버선발 이야기 - 땀, 눈물, 희망을 빼앗긴 민중들의 한바탕

백기완 지음, 오마이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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