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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3.27 08:40 수정 2019.03.27 10:41
국민 1인당 소득이 3만달러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 지갑은 줄거나 두둑하지 않습니다. 기업들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의 일자리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정부나 기업 등은 앞장서 경제를 살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 주변 동네가게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대형 마트로 채워집니다. 매일 쏟아지는 경제뉴스가 우리에게 와 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매주 수요일 <오마이뉴스>가 새로운 경제필진 4명과 함께 '똑바로' 쓴 경제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편집자말]
지난해 고등학생 대상으로 '좋은 일의 기준'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었다. 강의 중에 "대한민국에서 월급 200만 원 정도 받는다면 전체 일하는 사람 중에서 중간쯤 되는 것이다"(2017년 임금근로자 중위소득 210만 원, 통계청)라고 설명했더니, 몇몇 아이들이 '악' 소리를 냈다.

"한 달 내내 하루 종일, 그렇게 10년 넘게 일해도 월 200만 원 받는다고요? 저는 그냥 직장 안 다닐래요."

이렇게 말하는 아이에게 "그럼 뭐가 될래?" 하니 "건물주요" 한다.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까지 폭소를 터트려 분위기가 좋아졌기에 굳이 "건물주는 거저 되겠니?" 하고 따지지 않고 넘어갔다. 시간이 지나 그 대화를 곱씹어 보니, 내가 "뭐가 될래?" 하고 물은 것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으냐고 물은 셈이었다. 거기에 '건물주'라고 한 아이는 무엇을 답한 것이었을까?

건물주
 
무엇보다도 '건물주'는 과연 직업일까? 몇년 전 한 언론사가 초중고 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었더니 '건물주'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고 알려진 뒤로 이 내용은 '도전의식이 사라지고 활력도 잃은 대한민국 현실'을 개탄하는 칼럼과 강의 등에 숱하게 인용돼 왔다. 공시족 청년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지표와도 좋은 짝을 이뤘다.

그런데 '건물주'가 장래희망이라는 것은 되짚어 볼 만한 얘기다. 장래희망은 일반적인 경우에 '장래에 되고 싶은 직업'을 뜻한다. 그런데 공무원 등 다른 직업들과 달리 '건물주'는 직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정한 근로시간 동안 어떠한 작업(task)을 수행하는 '일'이라기보다는 건물을 소유한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굳이 끼워 맞추자면 '자기가 소유한 건물을 관리하는 일을 하루 일정 시간 이상 하는 사람'을 뜻할 수도 있겠다. 다만, 보통은 그런 경우에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OO 관리회사(주) OOO 대표' 또는 이사 정도로 소개한다. 이름 들으면 알만한 사람들, 그 자녀들 중에는 건물을 자산으로 하는 재단을 만들어서 그곳의 대표 또는 이사라고 자칭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는 편이 "어떤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하는 일은 없는데요, 건물 있으니까 사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여긴다. 자산보다는 '직업'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저서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일을 중심에 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도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쉽게 말하면, 소개팅 하러 나간 사람이 상대방에게 "어떤 일 하세요?"라고 묻지 "어느 집안 몇대 손이세요?"라고 묻지 않는다는 말이다.
 

끝이 안 보이는 '청년실업' ⓒ 고정미


어떤 일을 하느냐가 곧 사회 속에서의 내 정체성인 시대. 이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장래희망'이라는 말도 곧 '직업'을 묻는 의미라고 생각하고,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말도 '직업'을 뜻한 것이라고 여겨버린다. 대대손손 먹고 살 만큼 재산을 가진 사람들도 자녀가 번듯한 직업을 갖기를 바라고, 그것이 자신의 성공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안정된 직장에 있는 사람들조차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퇴사를 꿈꾸는 것도 같은 맥락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일'로부터 부여되는 정체성이 중요하다면 '건물주'는 무슨 의미란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건물주'는 건물을 소유한 상태다. 건물에서 매달 들어오는 임대수입으로 인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이 '건물주'가 그토록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즉, 한때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높은 지위(대통령, 대기업 사장 등)에 오르거나, 특정한 자격(의사, 변호사 등)을 획득하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임금소득 이외의 안정적 소득이 있는 상태'여야만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사회학자 최태섭은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를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라고 설명한다. 그런 세대에게 '원하는 삶을 영위할 만큼의 소득이 보장되는지'를 기준으로 직업을 택하라는 것은 이미 모순이다.

기성세대들이 가족들을 부양하느라고 전쟁터 같고 지옥 같은 일터에서 몸부림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들이 '부양할 가족을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직장에 속하지 않고서는, 거기서 장기근속하지 않고서는, 자기 한 몸조차 안정적으로 지탱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에 청년 세대는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자유롭기는커녕 윗세대에 비해 배우자도 자녀도 없는, 더 결핍된 세대로 비친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어느덧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일=소득=삶'이라는 도식이 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 정체성을 담은 일과, 생계를 보장해 주는 소득원과, 일에 국한되지 않는 총체적인 삶의 지향점은 제각각 다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특히 새로운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청소년, 어린이들의 인식인 게 아닐까? 그 증거가 '장래희망 1위 건물주'인 것이라면 그리 개탄할 만한 현상은 아닐 수도 있다.

건물 대신 사회가 안정성을 준다면?  

이렇게 곱씹어 보니 그 강의에서 만난 고교생이 "건물주가 될래요"라고 한 것은 "그냥 아무 일도 안 하고 살래요"는 뜻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싶어요. 어떤 일을 하면서 살지, 혹은 하지 않고 살지는 그 다음에 생각해 볼래요'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대답을 들은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땀 흘려 일하는 보람을 알아야지!"하고 가르치려 하거나, "너희들이 그러면 대한민국 경제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짐을 지우는 것일까. 아니면 부모가 건물을 물려줄 만큼 부유한 아이들이 아니어도 누구나 진짜 하고 싶은 일, 살고 싶은 삶을 찾을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일정한 안정성을 사회적으로 보장해 주는 방법을 찾는 것일까.

우리 사회, 이 시대에 맞는 '좋은 일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몇 년째 연구 주제로 붙잡고 있는 가운데, 이런 경험들과 생각들이 쌓일수록 '좋은 일'이라는 것의 기준이 '일', 혹은 '일자리'의 테두리 안에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매년 수천억 원을 들여 각종 청년 정책을 쏟아내는데도 호응이 높지 않은 이유도 다시 찾아봄직하다. 청년들이 자기의 일과 소득과 삶을 보는 눈을 통해서 다시 사회를 바라보는 데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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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기자,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홍보팀장으로 일했고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경제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희망제작소 연구원으로 ‘좋은 일, 공정한 노동’ 기획 연구, 보드게임 ‘좋은 일을 찾아라!’ 개발을 담당했다. 현재 LAB2050 연구실장으로 일하며 고용위기 시그널 분석, 지역 일자리 구조 전환 연구 등을 진행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