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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1.24 08:57 수정 2019.01.24 08:57
중국사람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정확하게 포착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중국사람 이야기>의 저자 김기동 작가가 연재하는 '김기동의 차이나 클래스'는 매월 둘째, 넷째주 목요일에 만날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옹정제가 모델인 현대 그림 ⓒ 김기동

 
중국 거리를 걷다 보면, 황제 옷을 입고 윙크를 하면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또 얼굴 양옆으로 손을 모아 앙증맞은 황제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처음에는 남자 연예인 모델이 사진 찍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중국 친구에게 물어보니 진짜 황제란다.

옹정제 정식 초상화를 보면 독특한 수염 모양을 하고 있는데, 위의 그림에서도 똑같은 수염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 옹정비행락도 동영상 파일 
ⓒ 바이두

옹정제는 재위 기간 그림을 좋아해서 자신을 모델로 하는 초상화와 자신의 일상생활을 그림으로 많이 남겼는데, 그중에는 후궁들을 그린 그림도 있다. 이 그림을 <옹정비행락도>라고 한다. 이 그림은 중국 인터넷에서 인기가 많다. 이 그림을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꾼 동영상 GIF 파일이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시리즈로 유행한다.

황제 초상화를 이렇게 현대적으로 재미있게 바꾸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한국에서 세종대왕 초상화를 변형시켜 윙크하면서 V자 손가락을 한 모습으로 만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조금 바뀐 옹정제의 초상화이긴 하지만, 길거리 가게 입구에도 걸려 있고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현상에서 중국 사람들이 옹정제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중국 사람이 싫어한다면, 가게 주인이 가게 입구에 걸어 둘 수 없으니까.

역사서엔 부정적 묘사만
 

옹정제 초상화 ⓒ 바이두

 
그런데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옹정제에 대한 기록은 부정적이다. 독재자로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공식적인 역사서 외에 다른 책에서도 옹정제는 나쁜 사람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옹정제를 나쁘게 묘사한 내용을 소개한다. 먼저 옹정제의 황제 자격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옹정제는 강희제의 4번째 아들이다. 강희제가 죽으면서 14번째 아들을 다음 황제로 지명했는데, '14'라는 글자에서 '1'을 몰래 지우고 '4'로 고쳐서 황제가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형제를 죽였다고 한다. 권력 다툼 과정에서 형제를 죽인 황제들이 많지만, 유독 옹정제만 문제 삼는 경우다. 셋째로 형제를 죽이는 과정에서 옹정제의 친어머니가 화가 나서 화병으로 죽었으니, 결국 옹정제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죽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옹정제는 황제 자리를 훔쳤고 친어머니를 죽게 했으니 인륜을 저버린 패륜아가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점은 이는 관리(요즘시대 공무원)들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중국 한자가 어렵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1950년에도 문맹률이 80%를 넘었다. 청나라 시대 역사서를 기록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관리다.

옹정제는 그 당시도 지금처럼 일반 백성에게는 인기가 있었지만, 관리에게는 환영을 받지 못했다. 환영을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관리들은 옹정제가 빨리 죽기를 학수고대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 관리들은 왜 옹정제를 싫어했을까?

중국 역사학자 리중톈은 중국 황제들이 인재를 쓰는 방법이 아래와 같다고 말한다.

중국 황제들은 인재를 쓸 때 도덕과 능력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평가했다. '덕'을 중요시하는 황제는 능력이 있어도 덕이 없는 사람은 중용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말 잘 듣는 바보가 말 안 듣는 인재보다 낫다'는 의미다. '덕'보다 '능력'을 중요시하는 황제들은 능력 지상주의 관점을 가졌다. 능력만 있다면 그자가 불효를 저질렀든 도적질을 했든 상관이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인재는 '덕'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다.   

옹정제는 이 '덕'과 '능력'을 새롭게 해석했다. 옹정제 이전까지 역대 모든 황제는 사마소의 <삼자경>을 준칙으로 삼았다. <삼자경>의 세 글자는 청(凊), 신(愼), 근(勤) 즉 청렴, 신중, 근면이다. 옹정제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옹정제는 아버지 강희제가 오래 사는 바람에 45세가 되어서야 황제가 되었다. 다른 황제들이 어린 나이에 세상 물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황제가 되었다면, 옹정제는 황제가 되기 전에 오랜 기간 청나라 관료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요즘 말로 하면 '준비된 황제'인 것이다.

임자 만난 관료들

옹정제는 확실히 여느 황제들과 달랐다. 오랜 시간을 황자(한국의 세자) 신분으로 보낸 그는 청렴, 신중, 근면이 관료 사회에서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똑똑히 지켜보았다. 청렴은 위장된 가난으로 변질하여 명예를 낚는 수단이 되고, 신중은 무사안일주의로 변질되고, 근면은 번잡한 절차만 만들어 득보다 실이 컸다.

옹정제는 부패한 관료도 싫어했지만 평범한 관료도 싫어했다. 무엇보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제 일상만 보존하기 바쁜 관리를 가장 경멸했다. 국가가 관리를 임용하는 것은 단순히 그에게 밥을 퍼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 관리는 모두 파면시키고, 그 자리에 유능한 관리로 바꾸어야 한다고 옹정제는 생각했다. 그래서 관료는 옹정제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옹정제는 자신이 있었다. 그의 자신감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어리석은 군주가 아니었다. 게다가 황자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아버지 강희제보다 백성들의 삶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관료들이 무슨 속셈으로 무슨 짓들을 하고 다니는지, 그것이 어떤 폐단을 만드는지 그는 속속들이 꿰뚫었다.

중국에서 과거제도는 지배 세력을 양산하는 온상이다. 공평하게 인재를 등용한다는 것은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여 년의 수업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류계급이 아니면 실제로 과거에 응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를 거치지 않으면 관리가 될 수 없고, 설령 된다고 하더라도 입신출세는 기대할 수 없다. 과거를 통과해서 관리가 되면 저절로 금전이 굴러들어온다. 이에 반해 관직이 없으면 겨우 모은 재산조차도 유지해 가기가 어렵다. 이렇게 해서 재산과 관직, 교육과 문화 등이 특수한 계급으로 집중되는 것이다. 그러면 관료는 이 특권계급을 위하여 일하게 되고 여론(역사서 기록)은 이러한 특권계급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아마도 옹정제는 황제가 되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을 것이다.

"짐이야말로 45년간의 더부살이 생활에서 세상의 쓴맛 단맛을 다 맛본 후에 비로소 천자가 된 황제다. 응석받이로 자란 여느 황제들과는 사정이 다르다. 만만히 보고 덤비었다가는 호되게 당할 줄 알라."

단명과 함께 끝난 개혁

옹정제는 부패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길을 철저히 봉쇄했다. 관료들의 부패는 근절됐고, 국가 재정은 튼튼해졌다.

중국 어린이 필독서 <증광현문>에는 "나라의 지도자가 청렴결백하면 관리가 가난해지고, 사찰의 주지가 영험하면 향을 파는 장사꾼이 돈을 번다(官清司吏瘦,神靈廟主肥)"는 글귀가 있다. 그러니까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면, 공무원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이 없다는 의미다.
 

증강현문 ⓒ 김기동

 
옹정제 시대 관료들의 무덤 비문(비석에 쓴 글로 그 사람의 일생을 평가하는 내용이다)에는 청렴결백했다는 내용이 많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그렇게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면 옹정제는 관료의 기풍을 단속하고 뇌물의 폐단을 근절하였다.

이 시대에는 누구나 법을 지키고 청렴하게 사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옹정제 이전에는 탐욕스럽게 살았던 관료라도 옹정제 시대에도 그렇게 살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개혁은 성공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했다.

옹정제가 세상을 떠나자, 이제 한숨 돌렸다는 것이 일반 관료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옹정제가 여자 검객에게 암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것은 관료 사이의 희망이 형상화된 것이라 보아도 된다. 옹정제는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저주받아온 황제였으니까.

옹정제는 재위 기간 동안 밤 12시에 자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을 했다. 옹정제는 13년이라는 짧은 황제 생활 후에 죽었다. 그 뒤 건륭제가 즉위하자 청나라 정책은 과거로 돌아갔다.

옹정제는 자신의 재위 기간 자신의 능력으로 청나라를 원칙이 통하는 나라로 만들었다. 하지만 청나라의 관료주의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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