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25 09:07최종 업데이트 19.03.25 14:29

핀란드 네우볼라(Neuvola, 모성육아 검진센터)에서 제공하는 각종 책자 ⓒ 김아연


"아이를 키우는 게 좀 편해졌니?" 

담당 간호사 민나(Minna)의 질문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타지에 나와 도움 하나 구할 곳이 없던 정착 초기에는 모든 것이 도전 과제였다. 키우는 방식은 물론 아이들이 먹는 것, 입는 것조차도 완전히 다른 외국살이 속에서 유일하게 진짜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던 곳은 다름 아닌 핀란드 네우볼라(Neuvola, 모성육아검진센터)에서였다.


핀란드에서는 아이를 임신하면 사설 산부인과가 아닌 네우볼라에 전화예약을 하고, 8주에서 10주 차 사이에 첫 초음파 검진을 한다. 임신이 확정되면 출산까지 11~15회 정도의 검진을 받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취학 전까지 첫 1년은 10번 정도의 미팅이 있고, 취학 전까지 6번의 검진을 더 받는다. 평소에는 담당 간호사가 미팅을 주관하지만, 의사 검진도 5번 정도 포함된다.

예방접종부터 이유식까지... 1시간씩 충분히 상담
 

담당 간호사가 아이건강수첩에 아이의 발달상황을 기록한다 ⓒ 김아연

  
정기검진에 가면 아이의 예방접종은 물론 신체발달검사를 통해 키, 몸무게 등을 또래와 비교했을 때 몇 번째에 위치하는지 백분위를 알려준다. 우리 아이처럼 한국에서 태어난 다음 핀란드로 오게 된 경우에는 한국에서 접종한 예방접종목록을 보건소에서 영문으로 발급 후, 핀란드 접종 스케줄과 맞추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담당 간호사는 아이의 접종기록을 보더니, 한국은 핀란드에 비해 접종스케줄이 빨라서 돌 때까지는 더 이상 맞힐 주사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예방접종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비용적인 면에서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담당 간호사와의 유대감이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한 명의 주치 간호사가 아이와 산모를 꾸준히 관리해준다. 또,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시간에 쫓길 필요 없이 1시간가량은 조용하고 세심한 분위기 속에서 내 아이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음식에 들어가는 설탕에 대한 양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 김아연

 
아이의 식단에 필요한 영양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처음 핀란드에 왔을 때 한국 기준으로 중기 이유식을 먹이는 기간이었는데, 사실상 외국에서 한국과 똑같은 재료와 환경으로 이유식을 만들기란 불가능했다. 간호사는 따뜻한 음식과 차가운 음식을 번갈아 먹이는 원리를 알려 주었고, 한국 블로그에서 본 휘황찬란한 이유식 만들기 자랑 사진에 부담을 느끼던 나에게 새로운 지표가 되어주었다.

핀란드 엄마들은 한국 이유식처럼 많은 재료를 한 번에 써서 한끼를 만들지 않는다. 아래 첨부된 표처럼 부드러운 감자를 주거나 요거트 등 원푸드 방식으로 수유 중간에 자주 이유식을 주었고, 때로는 슈퍼마켓에서 1유로 내외로 살 수 있는 병이유식을 이용하기도 한다. 한 지인의 담당 간호사는 핀란드 시중에서 판매하는 이유식이 오히려 영양학적으로 좋으니, 집에서 만들지 말고 사 먹이라고 권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핀란드 권장 이유식 식단표. 한국과 비교해 이른 개월 수에 시작하고 자주 준다 ⓒ 김아연

  
지역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갈 수 있는 놀이공간인 오픈데이케어 센터에 대한 언급이나, 지역 내 의료시설 이용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면 상대적으로 정보에 취약한 외국인 엄마로서 여러모로 고립되기 쉬웠을 것 같다.

사실 아이의 발달 상태부터 입에 들어가는 것 하나까지 아이가 태어난 첫 1년은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느라 엄마들은 무척이나 바쁜 한 해를 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과 핀란드가 다르다고 느낀 점은 한 아이가 자라기까지 필요한 정보의 출처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정보가 있으면 인터넷 검색이나 카페를 통해서 공부하기 바빴다면, 핀란드에서는 네우볼라가 제공하는 정보만으로도 크고 작은 육아 고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이 말고 너의 기분은 어때?" 매우 고마웠던 질문
 

아이와 평소처럼 놀면서 자연스럽게 발달상태를 체크한다 ⓒ 김아연

 
어느 정기검진 날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아이에게 장난감을 꺼내어주고 바닥에 놀게 하면서 담당 간호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늘 그랬듯 담당 간호사인 민나는 검진 때마다 단순히 아이의 건강상태만 체크하지 않고, 주양육자인 나의 정신건강까지도 늘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너의 기분은 어떠니?"
"친구는 사귀었니?"


가볍고 일상적인 질문이었다. 출산 후 모든 삶이 달라진 나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질문이었다. 어쩌면 한 아이가 건강한 양육 환경에서 자라나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기도 했다.

네우볼라는 산모들의 산후 정신 건강을 위해서 필요 시 심리상담사를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또, 핀란드인들 대부분 영어를 잘하지만 검진 및 상담 과정에서 통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통역 서비스를 갖고 있어 전화나 출장 등으로 언어지원도 가능하다.

엄마가 되고 나선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축하해!"라는 말보다 "고생했어"라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대개 사람들은 아이에게만 관심을 갖고 안부를 먼저 묻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도 그 못지 않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다. '아이건강검진' 못지않게, '엄마검진'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핀란드 네우볼라의 세심한 시스템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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