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3 09:12최종 업데이트 18.12.13 14:07
중국사람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정확하게 포착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중국사람 이야기>의 저자 김기동 작가가 연재하는 '김기동의 차이나 클래스'는 매월 둘째, 넷째주 목요일에 만날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여행객을 산채까지 태워줄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 김기동


중국은 내수를 늘리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쓰고 있다. 그중 하나가 여행 산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 사업이다. 직접 느끼고,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중국 사람답게 정부의 여행 산업 지원 방법 또한 실제적이다.

버스 한 대를 채울 수 있는 숫자의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지원 대상 여행 상품 중 하나를 고르면, 정부가 여행 경비의 50% 정도를 보조해 준다. 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인 나도 중국 동네 사람이기에, 마을 사람과 같이 '반값 여행'을 자주 간다.


이번에 갔던 여행지는 중국 명나라 4대 소설 <수호지> 무대인 '동평호'다. <수호지>는 송나라를 시대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데, 협객 108명이 양산박에 모여 부패한 송나라에 대항하며 도탄에 빠진 백성을 도와준다는 내용이다.

양산박(梁山泊)에서 '양산'은 지명 이름이고 '박'은 호수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수호지>는 중국 산둥성 양산이라는 곳에 있는 호수를 무대로 활동한 협객들 이야기다.

백성들이 관의 수탈을 피해 건넜던 호수
 

배의 노가 부러져 동력선에 매달려 호수를 건너는 모습 ⓒ 김기동

 
약 천 년 전 송나라 시대 양산 지역으로 황하가 흘렀는데, 황하 물이 범람하여 만들어진 호수가 바로 양산박이다. 그 당시 양산박은 사방 둘레가 약 팔백리(400km, 중국에서 십리는 5km임)나 되는 엄청나게 큰 호수였다. 그래서 <수호지>에 나오는 협객 108명이 호수 지형을 이용해 이곳에 많은 산채를 짓고 송나라 관군에 대항할 수 있었다.

약 800년 전, 양산 지역으로 흐르던 중국 황하 물길이 바뀌자 양산보 호수도 작아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양산보 호수가 없어지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호수가 바로 동평호다. 천년 전 둘레가 약 400km나 되던 호수가 줄어들어 현재는 둘레가 약 140km 정도인 자그마한 호수로 변한 것이다.

호수를 건너는 배는 자그만하다. 배는 동력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사공이 노를 저어야 한다. 한 척에 6명 정도 탈 수 있는데, 일행 50명 정도가 한꺼번에 이용하자면 배가 10척 정도 필요하다. 내가 이용한 배의 사공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어 아저씨인지 할아버지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배를 몰았다며 예사롭지 않은 노 젓는 실력을 뽐냈다.

배가 오래되어서인지 호수 중간쯤에서 노의 이음새가 부러져 더 이상 노를 저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사공은 이런 사고에 익숙한지 당황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배가 고장 났다며 동력선을 보내라고 연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력선이 왔고 내가 탄 배는 동력선에 매달려 호수를 건넜다.

<수호지>에서는 천년 전 송나라 시대 많은 백성이 관의 수탈을 피해 이 호수를 건너 '양산박' 산채로 도망갔다고 한다. 잠시 그 당시에는 호수가 지금보다 서너 배나 넓었는데, 만약 호수 중간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중국사람들에게 무협지란

<한중일의 미의식>을 쓴 지상현 작가는 책에서 중국 사람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준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나 백성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는데, 이 힘든 삶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가 생겨났다고 한다. 백성들이 고생스러운 세상살이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자신들만의 탈출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탈출구가 한국에서는 '해학'이고, 일본에서는 '요괴'이고, 중국에서는 '무협지'라고 한다.

<수호지>는 무협지다. 무협지에는 협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협객은 법질서를 어기더라도 정의를 중시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협객이 나오는 무협지를 읽고 협객을 칭송하는 시대는 그 사회의 시스템이나 법이 백성들의 심리와 결을 같이 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현실과 백성들 사이의 이런 마음의 간극을 메워주는 것이 협객이다. 중국 사람들은 수많은 협객(무협지) 이야기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중국 사람이 삶의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이라며.

천년 전 송나라 시대 중국 사람은 협객이 모여 만든 산채를 찾아 동평호를 건넜고, 오백 년 전 명나라 시대 중국 사람은 <수호지>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대리 만족으로 잠시나마 삶의 고통을 잊었을 것이다. 그리고 2018년 현재 중국 사람과 나는 관광을 위해 이 동평호를 건넌다. 100년 후 200년 후 그리고 천년 후 중국 사람은 어떤 이유로 이 호수를 건널지 궁금하다.

천년 후에는 부디
 

산채 입구에 '수호전 마을' 이라는 성문이 있다. ⓒ 김기동

 
두 시간 정도 배를 탄 후,  양산박 산채 중 한 곳에 갈 수 있는 호수가 부두에 도착했다. <수호지>에서는 부두에 도착한 천년 전 송나라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꿈꾸며 걸어서 산채로 올라갔다. 하지만 관광하러 온 나는 산채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 하며 버스를 타고 산 정상으로 향했다.
  
산채 입구에 '수호전 마을'이라는 성문이 있다. 관광객이 성문 앞에 도착하자 무술 시범 공연을 했다. 송나라 협객 옷을 입은 사람이 <수호지>에 나오는 협객 108명 중 한 사람으로 분장하고 병기를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수호지>에 나오는 협객 108명 중 한 명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확히 누군지는 알 수 없다 ⓒ 김기동

 
아마도 <수호지> 줄거리에 이 장소에서 관군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내용이 나오는가 보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위해 공연하는 것이니 연기자의 얼굴이 편하게 보인다. 앞으로도 지금 연기자의 후손이 <수호지> 내용처럼 관군과 싸우면서 목숨을 걸고 병기를 사용하지 말고,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병기를 휘두르기를 빌었다.

돌아오는 길에 배 사공을 다시 만났다. 관광 성수기에는 하루에 세 번 정도 관광객을 태우고 호수를 건넌다고 한다. 불쑥 천년 전 호수 마을에 살았을 사공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정의감에 불타는 협객을 태워주었을지, 관의 수탈을 피해 도망가는 백성을 태워주었을지, 아니면 협객을 쫓는 관군을 태워주었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다시 만난 배 사공 모습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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