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15 18:08최종 업데이트 18.11.15 18:08
 

박재혁의사. 박재혁의사 생가 부근 독립운동가 골목 모습 ⓒ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제공

박재혁 의사의 부산경찰서 투탄과 서장 하시모토 사망사건은 총독부는 물론 일제에 큰 충격을 주고도 남았다. 따라서 그들은 보복과 증오심에 불탔다. 

또한 다시는 이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를 강화하는 한편 자신들이 '불령선인'으로 찍은 부산ㆍ경남지역의 한국 민족주의자들을 더욱 철저히 감시하였다.


박재혁 의사는 의거 당시 폭탄 파편으로 다리를 비롯 온몸에 상처투성이인데도 불구하고 일제 수사관들이 각종 고문을 자행하면서 '배후'를 캐고자 시도했다. 이 기회에 '항일분자'들을 일망타진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박재혁 의사는 저들의 야수적인 고문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의거 당일인 9월 14일 <부산일보>(당시 일인들이 발행한 신문)가 호외를 발행하는 등 국내 신문이 크게 보도하면서 이 사건은 부산지역을 뛰어넘어 큰 공안사건이 되었다.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의거 기사. 제목은 "부산경찰서폭탄소동"으로 폭탄은 매우 강렬하였고 폭파현장은 처참하였음을 싣고있다. <부산일보 호외>에는 경찰서장 하시모도가 심한 증산은 아니며 곧 치료를 받고 사무실에서 지휘명령을 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숨졌는데 일제는 이를 은폐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부산일보 호외>(1920년 9월 14일) ⓒ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제공

 <부산일보> 호외는 <의열단원 박재혁 폭격탄소요>라는 제하에 "부산서의 폭탄소요, 교본(矯本) 서장 부상, 범인도 부상ㆍ중상"이란 작은 제목으로 의거 사실을 보도하였다. 기사 중에는 "범인은 가정부원" 등의 내용도 실었다. 당시 일제와 총독부는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가정부(假政府)'라고 불렀다. 부산경찰서는 박재혁 의사를 의열단원이면서 임시정부의 요원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다. 

일제의 한국독립운동가에 대한 고문 악행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악행을 그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우리 애국자들에게 가한 고문의 방법은 무려 72종에 달하였다고 한다. 자행된 고문 하나 하나가 잔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방법이 몹시 간교하였다.

고문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최대의 효과를 노릴 의도에서 단근질을 할 때 온 몸에 기름을 바른 다음 지졌는가 하면, 천장에 매달 경우 새끼줄에 붕대를 감아 팔이나 어깨를 묶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상처의 회복이 가장 빠른 입속에 막대기를 쑤셔넣어 고통을 가하는 등 간교한 고문법을 이용했다.

이런 잔학한 고문방법 중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고문이 여러 날을 굶긴 후 그 앞에서 고문경찰들이 음식을 들며 이를 바라보도록 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한번 고문이 시작되면 보통  1~4시간 계속되었다. 

박근혜 정권 때 세월호 유족들이 광화문에서 단식투쟁을 할 때 극우단체들이 곁에서 닭다리 등 폭식한 것은 여기서 기원한다. 

1912년 105인 사건 때 구속되어 각종 고문을 당했던 독립운동가 선우훈은 일제 경찰의 고문수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주먹과 구둣발로 목부분과 전신을 비벼대거나. 
- 손가락 사이에 철봉을 끼우고 손끝을 졸라맨 후 잡아당기는 방법.
- 대나무 못을 손톱과 발톱 사이에 박는 방법.
- 수십일 간 완전 밀폐된 독방에 가두고 음식물을 일체 주지 않는 방법.
- 아주 추운 날 옷을 벗긴 후 수도전에 묶고 찬물을 끼얹어 얼음기둥을 만드는 방법.
- 가죽 채찍과 대나무 묶음으로 맨몸을 휘감아 갈기는 방법.
- 널판지에 못을 박아 그 위에 눕게 하는 방법.
- 양쪽 엄지손가락을 결박한 후 한쪽 팔은 가슴 어깨너머로 올리고 다른 한편 팔은 갈기는 방법
- 온몸에 기름을 바른 후 인두와 담배불 등으로 단근질하는 방법.
- 참대나무를 양쪽에서 마주 잡고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리는 방법.
- 입을 벌리게 한 후 혀를 빼게 하고 기도에 담배연기를 넣는 방법.
- 기절했을 때 종이로 얼굴을 봉창한 후 물을 끼얹는 방법.
- 1전짜리 동전 둘레만큼의 머리카락에 몸을 매달아 머리털이 빠지게 하는 방법.
- 돌바닥에 메쳐논 후 머리채와 귀를 잡아끌고 다니며 구타하다가 돌바닥에 처박는 방법.
- 코에 뜨거운 물을 붓고 거꾸로 매달거나 뒹굴리는 방법.
- 입을 벌리게 하고 막대기로 석탄가루를 쑤셔넣어 기절시키는 방법.
- 입에 재갈을 물리고 머리털을 선반에 잡아 맨 후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 처박아 놓는 방법.
- 여러 날 일체 굶긴 후 그 앞에서 만찬을 벌이는 방법.
- 수염의 양끝을 서로 묶은 다음 빠질 때까지 잡아당기는 방법.
- 사형집행을 가장하여 자백을 최후로 강요한 후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공포를 쏘아 실신시키는 방법.
(주석 1)

박재혁 의사도 이와 같은 고문을 당하였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옥중에서 단식 끝에 순국하였으므로 증언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주석
1> 김삼웅, <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 83~84쪽, 나남, 2000.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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