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5.27 18:56최종 업데이트 19.06.10 17:04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사회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그 답을 찾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가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를 심층취재했습니다. 이 연재는 2014년 9월 초 단행본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찾고 있다고요? 그렇다면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코펜하겐에서 '행복지수 세계 1위의 나라' 덴마크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 지 나흘째, 소기업 'EBO 컨설트' 사장 에릭 크리스텐슨씨는 그의 사무실에서 기자를 맞이하자마자 '파워포인트' 특강을 시작했다. 올해 56세인 그는 '준비된 취재원'이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두 명의 덴마크 사람이 열차의 옆자리에 탔다고 합시다. 그 열차가 종점까지 도착하려면 약 45분 정도 걸리는데, 출발역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두 사람은 종점에서 내리기 전에 하나의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합의합니다. 이것은 이 나라에서 보통 있는 일이죠."



덴마크에 오기 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이야기를 그가 지금 하고 있었다.



"이 나라는 시민들 사이의 네트워킹이 매우 강합니다. 덴마크 사람들 100%가 어떤 종류이든 하나 이상의 사회적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런저런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만 전 국민의 15% 정도 되지요. 제가 참여하고 있는 에너지 산업분야만 보면 시민들이 참여해서 만든 협동조합이 전체 에너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70%가 될 정도입니다."



변호사에서 협동조합 전도사로 변신한 까닭



그는 덴마크에는 '이웃'이 살아 있고 그들 사이에 '신뢰'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시민참여형 모임과 협동조합이 가능하다고 했다.



"내 아들은 취미로 음악을 하는데 친구들끼리 밴드를 결성하면서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그들은 서로를 믿기 때문에 밴드를 어떻게 꾸려가면 좋을지 토론해서 조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덴마크인들은 어려서부터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지요."



단 두 명뿐인 외국 손님을 위해 30분간 유창한 영어로 특강을 하는 크리스텐슨씨는 그 이웃과 신뢰를 "덴마크가 가진 매우 중요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불렀다.



- 그런 이웃, 그런 신뢰가 있기 때문에 덴마크인들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말이군요.

"물론입니다. 세계 기관들이 행복지수 조사를 하면 덴마크가 1위를 합니다. 같은 유럽이라도 남유럽은 행복지수가 낮아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시민들 사이의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가 아닌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요. 만약 이웃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이나 공포를 느낀다면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지 않겠습니까?"



크리스텐슨씨는 대학 졸업 후 변호사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협동조합 전도사로 변신한다. 직원 11명을 둔 회사의 사장인 그는 요즘 하루 7시간 노동을 모두 협동조합과 관련된 일을 한다. 그는 바람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미들그룬덴풍력협동조합의 이사장이고, 또 다른 몇 개의 협동조합 운영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다. 이런 일은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인데 하루에 2시간 정도를 이 일에 할애하고 있다. 나머지 5시간은 자기 회사의 일을 하는데 그것도 협동조합과 관련이 깊다. 



"내가 만든 이 회사는 에너지 협동조합들을 도와주는 사업을 합니다. 에너지 관련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협동조합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도와주지요. 우리가 거래하는 곳은 풍력 협동조합, 가스 협동조합, 전기 협동조합 등 870여 곳 정도 됩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협동조합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저를 신뢰하지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좀 더 낫게 하려고 한다는 것을 그들도 압니다."



그는 청년시절인 1981년 공동주택 협동조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997년부터는 에너지 관련 협동조합에 적극 참여했단다. 듣고보니 궁금했다. 변호사이기 때문에 돈도 어느 정도 벌었을 것이고 사회적 지위도 있을 텐데, 그는 왜 협동조합에 그토록 많은 정열을 쏟아온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처음에 공동주택 협동조합에 참여했는데, 내가 그 동네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니라 '문화'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문화는 덴마크의 어떤 특성 때문에 뿌리 내릴 수 있었을까?



'이웃' '신뢰'가 만들어낸 협동조합


 

크리스텐슨씨는 단 두 명뿐인 외국 손님을 위해 30분간 유창한 영어로 덴마크 협동조합에 대한 특강을 해주었다. 준비된 취재원인 그는 그 이웃과 신뢰를 “덴마크가 가진 매우 중요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했다. ⓒ 김민지

"일부 분석가는 덴마크가 옛날에 척박한 땅이었기 때문에 농부들이 생존을 위해 협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던데, 협동조합 문화는 거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가요?"



기자의 질문에 크리스텐슨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덴마크의 옛 농부들은 굶을 정도로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면서 '함께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가는 문화'는 수동적 방어에서 나오지 않고 적극적 노력에서 온다고 했다.



"신뢰는 신에게서 오지도 않고 자연조건에서도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서로 쌓아가야 하지요. 서서히 발전시켜야 합니다. 덴마크 사람들 사이의 신뢰는 수 세기 동안 쌓여온 것이지요. 협동조합 문화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루 아침에 된 게 아니예요."



물론 크리스텐슨씨는 덴마크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이웃이 살아 있는 신뢰사회'가 된 배경에는, 인구가 550만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점과, 생활에서 유머까지 덴마크인들 사이에 문화적 공감대가 높은 점, 그리고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될 때 피를 흘리지 않은 '대화와 타협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노력'이었다고 그는 강조한다.



"우리가 1997년에 풍력 협동조합을 만들었을 때는 7명이 10달러씩 내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자본금이 고작 70달러였어요. 우리는 시민들에게 좋은 일에 동참하라고 설득했습니다. 우리 지역 에너지는 우리가 책임지자는 거였죠. 그랬더니 8600명이 참여했어요. 그래서 총 3000만 달러나 투자받을 수 있었다니까요."



그는 참여하는 시민에 의해 신뢰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덴마크 사회의 신뢰는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시민들이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지요. 에너지산업만 봐도 그래요. 중앙정부는 난방시설과 관련하여 주요설비만 제공합니다. 그 다음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요. 시민들이 우리 지역 난방은 우리가 주인이 돼서 관리하자고 나선 것이지요. 그 시민들이 무려 807개의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지역난방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주민참여는 덴마크의 에너지산업 지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1970년대까지만해도 에너지의 99%를 수입했던 덴마크는 현재 에너지 자급률이 100%가 넘는다. 크리스텐슨씨는 주민들이 협동조합에 참여하면서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고 했다.

   

"대부분의 지역난방 협동조합은 비영리인데 주민들이 주인입니다. 한 해를 결산할 때 적자면 주민들이 갹출해서 메우고, 흑자면 나누지요. 그래서 늘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룹니다. 이것은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모두 주인의식을 갖고 서로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하지요. 그래서 협동조합들이 매우 효과적으로 운영됩니다."



그는 주인의식이 곧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과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투자금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1인 1표를 행사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안에서 운영진이 잘못된 일을 하면 바로 시민들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시민에 의한 제어가 가능하다는 거지요.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합니다. 또 누구나 동등하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조금은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우리 한번 시도해볼까요' 하고 제안을 할 수 있지요."



왜 수입 56%를 세금으로 내면서도 즐겁냐고?



크리스텐슨씨는 이렇게 시민의 역할을 중시 여겼지만 그렇다고 그가 정부의 역할을 가벼이 본 것은 아니다. 그는 덴마크 정부가 시민들이 편하게 일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잘 하고 있다면서 EU에서 한 체험을 들려줬다.



"제가 최근에 EU 차원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연구를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 테이블에 참여하는 여섯 나라 중에 협동조합을 관의 허락 없이, 어떤 법률의 제약도 없이 그냥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는 덴마크밖에 없었어요. 다른 나라들은 협동조합을 만들면 관에 가서 신고도 하고 서류도 작성하고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앉아서 회원들끼리 서로 합의하면 됩니다."



그는 "덴마크 정부는 기업들이 편하게 일하게 도와주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부정부패도 없다"면서 "덴마크 사회는 시민들 사이의 신뢰와 시민-정부 사이의 신뢰가 훌륭하게 결합돼 있다, 이것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크리스텐슨씨는 그 신뢰가 있기 때문에 덴마크 사람들이 높은 세금을 내고도 불만이 없다고 했다. 상대적 고수입자인 그는 자기 수입의 56%를 세금으로 낸다.



"나는 그 세금을 기쁜 마음으로 냅니다. 왜냐하면 나도 1센트도 안 내고 교육을 받았고 우리 아이들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복지제도 덕분에 서로를 믿는 사회가 됐잖아요."


 

덴마크 풍력협동조합 미델그룬덴의 에릭 크리스텐슨(56) 이사장. 변호사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금은 협동조합과 관련이 깊은 중소기업의 사장이자 몇 개의 협동조합 운영에도 직접 참여하는 협동조합 전도사다. ⓒ 김민지

약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코펜하겐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도 그랬지만, 크리스텐슨씨는 마치 덴마크 홍보대사 같았다. 그래서 이런 질문도 해봤다.



"아메리칸 드림과 데니쉬(덴마크 사람) 드림의 차이는?"



그는 마치 준비를 해둔 것처럼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아메리칸 드림은 자기와 자기 가족이 잘 되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나요? 그러나 데니쉬 드림은 거기에 그치지 않지요. 자기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로 이어집니다."



크리스텐슨씨는 아들 1명, 딸 1명을 두고 있다. 그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데, 아들은 시민참여형 디자인 사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딸은 국제관계를 다루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단다.  



-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자녀들이 변호사가 되길 원하지 않았나요?

"그런 마음이 있긴 했는데 둘 다 변호사 되는 것을 원하지 않더군요. 그래도 저는 그들의 지금을 보면서 행복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사람들과 함께 할까를 배웠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빠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그는 "그런 점에서 나쁜 아빠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 오늘 행복 특강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신 개인도 지금 행복한가요?

"물론입니다(웃음). 그런데 우리 덴마크사람들은 막 내놓고 '하하 호호' 하지 않아요."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는 협동조합 만들기, 마을 만들기를 시정의 주요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서울 거리 여기저기에서 "마음 맞는 사람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는 서울시의 안내광고를 볼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은 꿈꾸고 있지만, 덴마크에서는 이미 오래된 역사이자 문화가 되어 있었다.


 

오연호 대표 기자가 연재했던 <'행복사회의 리더십'-'행복지수 1위 덴마크 비결을 찾아서'>가 2014년 9월1일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마이북)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 오마이북

 
 
덧붙이는 글 다음에는 '수입의 80%를 공동 소유하는 동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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