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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국충정 2003.04.26 13:40 조회 128 찬성 7 반대 11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러는 안보의 위기를 말하고 더러는 경제의 위기를 말합니다. 말로는 위기라고 하지만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이나 저는 그 수위가 턱밑에까지 차 올랐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을 위기라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최소한 우군들입니다. 하지만 같은 편이라 해도 우리처럼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우리를 극우라며 가까이 하기를 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외롭습니다.

지난 5년 간, 우리는 골수좌익인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모셨습니다. 그 결과 어찌 되었습니까? 공적자금 160조를 만들어 아무도 조사하지 못하게 하면서 탕진했습니다. 가족과 그의 지지세력들이 분탕질을 쳤습니다. 5조 규모의 자금은 북한에 갔습니다. 몰래 주다가 들킨 돈도 있습니다. 남한의 좌익세력을 키우고 적화통일 작전을 하는 데에도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갔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경제는 타이타닉호처럼 침몰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살기 어려워졌다고 울상입니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청와대, 국정원에서부터 사회 각계에 이르기까지 좌익이 장악했습니다. 골수좌익인 김대중과 임동원 등이 청와대를 점령했고, 또 다른 좌익 김동신이 국방장관을 했습니다. 수많은 좌익들이 공공연히 장관을 하고 각계의 요직을 점령했습니다. 국정원도 좌익들이 주물렀습니다. 우익들은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핸드폰 마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교단이 좌익에 의해 점령되고 학생들이 미국과 맥아더 장군을 증오합니다. 미국을 지지하면 왕따를 당합니다. 평생 스스로를 좌익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수많은 국민이 방송매체에 최면되어 좌익이 내는 목소리를 냅니다. 사이버 수사대, 검찰-법관들이 우익 논객들을 잡아 가두고 전과자로 만들어 말문을 막습니다. 공적자금으로 말 꽤나 하던 사람들을 매수합니다. 좌익의 목소리는 드높고 우익은 지하로 숨어 수군거리기만 합니다. 이라크 전을 놓고 방송들은 노골적으로 미국이 망하기를 바랬고 미군과 부시를 인격적으로 모독합니다. 우익언론과 우익인사는 노골적인 탄압을 받습니다.

간첩이 물밀 듯 들어왔겠지만 정부는 간첩을 잡지 않습니다. 간첩신고도 외면합니다. 드디어 간첩 잡는 대공부서를 사실상 없애버렸습니다. 대통령이 북한의 핵을 공공연히 지지합니다. 장병들은 김정일에게 극존칭을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며, 감싸야 할 동포라고 교육했습니다. 앞으로 전쟁이 없으니 주한미군더러 나가라 했습니다. 휴전선의 도로와 철로는 공격하는 자에게 유리하고 방어하는 자에 절대적으로 불리하지만 저들은 지뢰와 장벽을 제거해주고, 도로와 철로를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이는 남이 북으로 가는 통로가 아니라 북이 남으로 오게 하는 통로입니다. 민간인들이 성금을 걷어 땅굴을 찾아내면 정부가 와서 증거를 인멸시키고 고소를 합니다. 정부가 간첩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에는 무기를 증강하라고 달러를 보내 주면서 한국군을 향해서는 전쟁을 미워하라고 쇠뇌 시킵니다. 이를 어기고 서해사태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우리 병사들이 엄청난 천대를 받았습니다.

존경하는 애국자 여러분

남한 사회는 개방사회이기 때문에 좌익도 얼마든지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정부 부서에 좌익들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주한미군이 나가고 작전권 마저 빼앗아 오면 한국은 언제라도 김정일에 넘겨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과 김대중이 그토록 바라던 그 작전권이 곧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나갑니다. 시간만 가면 남한은 김정일에게 아주 쉽게 넘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지금이 위기가 아닙니까?

이런 위기로부터 우리를 구하려면 먼저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온 김대중부터 단죄해야 합니다. 그를 단죄해야 좌익과 싸울 수 있는 발판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지난 5년 간 김대중이 어떤 대역죄를 저질렀는지 샅샅이 알아야만 합니다.

김대중은 1945년 해방 직후 23세의 나이로 "남로당"에 가입하여 청년부장을 맡았습니다. 파출소를 습격했습니다. 6.25 때 인민군이 들어오자 그는 목포시 인민위원회을 결성하고 붉은 완장을 차고 다니며 부역을 관리했습니다. 이후 각종 방화-파괴활동과 간첩자금 수수관계로 여러 차례 검거되었으나 그 때마다 잔꾀로 풀려났습니다.

김대중은 1972년 일본에서 한민통을 결성하여 북한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가면서 좌익활동을 했습니다. 한민통은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의 약자이며 간첩들로 구성된 조직입니다.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 그 후 한국에 들어왔다가 간첩으로 체포된 김정사도 한민통 사람입니다. 조총련이 그에게 매월 1,000만엔 내지 2,000만엔씩 자금을 공급했습니다, 이런 반국가단체 구성죄로 그는 국가보안법 제1조에 의해 대법원에서 사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1980년, 10.26 사태로 인해 발생한 정국불안을 틈타 광주시위를 선동하여 내란을 음모했습니다. 이 내란음모에는 문익환과 서경원도 가담했습니다. 서경원은 북한에서 공작자금을 받아왔다가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으며, 문익환은 북한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될 만큼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1981년 김대중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극도의 존칭을 써가면서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반성문을 썼습니다. 그 후 미국의 덕분으로 사면되었지만 그는 그에 씌워진 붉은 색깔이 신군부에서 씌운 누명이라며 국민을 속였고, 이에 속은 국민은 빨갱이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뽑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한민국이 도둑맞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적장에게 퍼다주고 대한민국을 걸레로 만들었습니다. 이라크전 복구사업비가 130조 정도라 합니다. 김대중은 160조의 공적자금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추적한 사람이 한국에는 없습니다. 김정일에도 5-6조의 돈을 갖다 바치는 판에 국내 좌익들과 간첩활동을 지원하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공적자금을 투입했겠습니까? 오늘날 좌익들이 온 사회를 장악하고, 좌익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것만 보아도 아마 수십 조는 족히 될 것입니다.

국부만 퍼내 간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공전선을 완전히 와해시켰습니다. 사회주의 표방으로 근로정신을 병들게 했습니다. 어린아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김정일을 존경하게 만들었습니다. 남침 통로를 개척해 주었습니다. 이제 미국만 나가면 김정일은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는 한국호를 원산 앞 바다에까지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선장실은 이념세대에 의해 점령돼 있습니다. 그들이 마지막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참으로 가슴 조여집니다.

좌익 대통령의 굵직한 죄상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99년 9월, 그는 타임지에 말했습니다. "식사 때 음식이 남으면 북한 동포들의 얼굴이 떠올라 몹시 괴롭다. 충분히 돕고 싶지만 국민여론이 부정적이어서 애를 먹고 있다".

99년 2월. 그는 일본과의 어업협정에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3,000여 척의 어선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어민들은 슬퍼했지만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다음날 어선들을 북한에 보내자 했습니다.

같은 해 3월, 수많은 중소기업이 도산해서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습니다. 기계를 뜯어다 북한에 설치해주자 했습니다.

2001.10월, 그는 전국 보건소에서 결핵백신을 단 한병도 남기지 않고 모두 쓸어다 주었습니다. 30만명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에게는 입단속을 시켰습니다.

2000년, 러시아 대통령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러시아에서 받을 14억 7천만 달러를 받지 않을 테니, 러시아도 북한에서 받을 50억 달러를 받지 말아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쌀 100만톤, 비료 104만톤을 퍼주었습니다. 1조 1천억원 어치입니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김정일은 크게 부족하다며 김대중을 3번씩이나 협박했습니다.

1999년 말, 일본 문예춘추지에 김정일이 김대중을 압박하는 육성녹음이 소개됐습니다. 우리 아버지 수령으로부터 사랑과 배려와 도움을 받고도 배은망덕하다는 내용입니다.

같은 시기에 북한 김병식 부주석이 1971년 김대중에게 20만 달러를 주면서 동지애로 뜨겁게 포옹했다는 편지가 공개됐습니다.

역시 같은 시기에 구국전선이라는 노동당 기관잡지와 전단을 통해 김대중이 스위스 은행에 10억 달러를 보관하고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 책자와 전단은 한국의 휴전선과 해외교포들에게 뿌려졌습니다. 바라는 요지는 김대중이 김일성 주석의 은혜에 빨리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당황한 김대중이 2000년3월, 갑자기 베를린으로 날아가 접선을 요청했습니다. “이제까지 민간단체를 통해 북한을 도와주었지만 도와준 양이 변변치 못했다. 좀 넉넉하게 도와주려면 아무래도 정부가 앞장서야 할 것 같다. 그러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정상회담을 열자”는 요지의 선언이었습니다. 김정일은 쾌히 그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차안에서 단둘이 55분간 접선을 했습니다. 색깔로 의심받아온 그가 대열을 이탈해 적장과 단둘이 1시간씩이나 밀담을 나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접선 이후에 나타난 김대중의 행동은 결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약점 잡힌 사람의 행동이었습니다. 김정일이 앉아라하면 앉고 서라하면 서야 하는 사람으로 비쳤습니다.

그 후 그는 국가의 간판기업을 송두리째 김정일에 바쳤습니다. 현대를 적장에게 군자금을 바치는 창구로 활용했습니다. 봉이 김선달식 위장사업을 만들어 적장에게 막대한 군자금을 바쳤습니다. 국민은 금강산 사업의 속임수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하루 입산하는 데 100달러를 바쳐야 합니다. 3일 코스에 300달러입니다. 이런 예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관광객이 있으나 없으나 무조건 연간 50만명이 간 것으로 쳐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연간 1억5천만 달러를 자동으로 주는 것입니다. 1999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이후 4년간 금강산에 6억 달러를 주었을 것입니다. 화장실 한번 가는데 4달러를 주게 했습니다.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김정일에 바치라 한 것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존재하지도 않는 독점개발권을 내걸어 9억4,200만 달러를 주었습니다. 장전항 부두, 온천장, 공연장 등 부대시설에 1억 2,600만 달러를 퍼넣었습니다. 호텔 및 스키장 건설에 2억1,400만 달러를 퍼넣었습니다. 8,863평짜리 평양실내 체육관을 지어주었습니다. 3,420만 달러어치입니다. 20인치 칼라 TV 3만대를 북송했습니다. 445만 달러 어치였습니다. 190만 달러 상당의 기와공장 설비를 반출했습니다. 모두가 현대가 한 것입니다.

현대와는 별도로 많은 기업들이 정부의 압력을 받아 북에 퍼주었습니다. 모 그룹이 평화자동차 공장에 3억 달러를 투입했습니다. 모제당이 연간 2만톤 즉 60만 달러씩 북한에 제공했습니다. 모 그룹이 평양체육관용 전광판 시스템에 400만 달러를 투입했습니다. 조선컴퓨터 소프트웨어 지원에 73만 달러를 부담했습니다. 모 메리야스 회사가 내복 천만벌을 북에 보내라는 압력을 받고 600억원에 해당하는 내복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금강산에 돈을 갖다 비치면서도 민 여인을 비롯한 수많은 관광객들이 온갖 수모를 감수해야 했고, 북한의 억지에 대해 그는 언제나 북한 편을 들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는 "한국"이라는 낱말 때문에 H일보라는 명찰을, 대한매일은 "대한"이라는 글자 때문에 D일보라는 명찰을 달아야 했습니다. "한국"과 "대한"은 북한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매국노 김대중과 임동원은 국민에게 이러한 굴종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했습니다.

관광에 대한 악 소문이 수군수군 물밑으로 퍼졌습니다. 관광객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관광객이 없어도 북한에는 자동적으로 매년 3억7백만 달러가 나갑니다. 관광객이 없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주면 비난이 쏟아집니다. 저들은 어떻게든 관광객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가공할 국민 총동원령입니다. 인구의 3분의1인 1,300만을 동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원되는 국가 예산만 정확히 4조입니다. 정부가 4조, 국민이 2조, 합해서 6조를 금강산에 바치는 것입니다. 금강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등극하는 반면 설악산과 한라산은 초라하게 허물리고 있습니다. 산을 가진 우리 지역경제가 망가지고 있습니다. 북한 땅이 성지가 되고, 북한정권이 상전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것만 쳐도 북에는 5조 이상의 돈이 갔습니다. 북한은 이 엄청난 돈을 가지고 무얼 했습니까? 카자흐스탄으로부터 신예전투기 50대를 구입했습니다. 스커드를 500기에서 600기로 늘렸습니다. 휴전선 대포를 25% 증강했습니다. 전차와 화학무기도 전방으로 추진했습니다. 휴전선에 전진배치된 군사력을 65%에서 70%로 늘렸습니다. 땅굴도 팠습니다. 10년이래 최대 규모의 훈련도 했습니다. 우리를 곧 군사력으로 먹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기막힌 정보는 미국이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쉬쉬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그는 마카오에 있는 조광무역이라는 무시무시한 대남테러 조직을 통해 5억 달러를 몰래 바치다가 발각되었습니다. 조광무역이 어떤 기관입니까? 아웅산 테러를 주도했고, KAL858기를 폭파했고, 최은희-김상옥 부부를 납치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란 자가 대한민국에 테러를 가한 이런 시커먼 마피아 기관을 통해 적장에게 5억달러를 몰래 바쳤다는 것은 대역죄에 해당합니다. 지금 국민은 이런 대통령을 처벌하고싶어도 이를 비호하는 또 다른 검은 세력이 있어 허탈해 하고 있습니다.

그의 좌익행적이 어찌 적장에 돈을 바친 일 뿐이겠습니까.

그는 적장인 김정일을 식견 있고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가진 지도자"라며 찬양했습니다. 2000년, 엄청난 돈을 들여 개최한 제3차 ASSEM회의를 김정일 외교장으로 활용하면서 유럽국가들을 상대로 북한과 수교하라고 종용했습니다. 스스로 김정일 영업부장을 자처한 것입니다.

국민과 국회의 동의도 없이 김정일과 연방제 통일안에 합의 서명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초법행위요 국가보안법 위반행위입니다.

연합사령관이 미의회에서 증언을 했습니다. "2000년 한 해에 이루어진 북한의 전력 증강은 과거 5년 치에 해당한다", "지난해의 훈련은 10년이래 최대 규모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은 이를 쉬쉬하고 감췄습니다. 한국군의 군사훈련을 모두 축소 생략했습니다. 2001년에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대대적으로 준비한 6.25행사도 못하게 했습니다.

2001. 2월, 미국방문 전, DJ는 평화선언을 획책했다가 부시에게 저지당했습니다. 1973년 월맹의 레둑토와 키신저가 파리에서 평화협정을 맞고 노벨상을 탔습니다. 2년후인 1975년 월맹은 순식간에 월남을 삼켜버렸습니다. 800 - 1,200 만이 재교육 캠프에서 이슬로 사라졌 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이슬"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지난 2월 김정일 방문이 임박하다며 갑자기 중령급 이상 20%를 삭감시키라고 했습니다. 반 DJ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일자 즉각 없던 일로 처리했습니다. .

평양에서 오자마자 “전쟁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적을 의심해야할 위치에 있는 최고 통수권자가 적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면 바로 그가 내통자로 의심받아야 합니다.

스스로 주한미군 지위변경, 보안법 철폐를 주장하여 지하에서 활동하던 좌익들에게 면죄부를 주어 공공연히 주한미군 추방 운동을 전개하도록 길을 터 주었습니다.

국정원으로 하여금 사회단체를 초청해 김정일의 초 호화판 생일잔치 비디오를 보여주고 김정일이 식견있는 지도자이며 매우 합리적인 지도자라고 선전하게 했습니다.

국정원으로 하여금 언론 및 사회단체 간부를 데려다가 전쟁은 없다고 교육케 했습니다. "110 만 대군은 남침용이 아니라 일자리가 없어서 붙들어 둔 것이다". "서부전선에 콘크리트 장애물과 지뢰를 설치한 것은 옛날 장군이 바보였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와 철로는 방어하는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는 식의 교육을 했습니다. 많은 언론 사 간부들이 교육내용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평양에서 돌아오자 마자 2000.12.31일까지 무조건 지뢰를 제거하라 명했습니다.

2001. 6.2부터 6일간 북한의 대형 선박들이 제주영해 및 NLL을 유린했을 때, 그는 이에 분노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3가지 특혜를 북한에 주려했습니다. (1) 이번 통과에 대해서는 6.15정신으로 수용한다. (2) 제주해협 통항권을 북한에게도 개방한다 (3) 앞으로 북한이 사전 통보만 해주면 NLL을 언제든 통과할 수 있게 한다. 반면 UNC사령관은 북한에게 "귀측은 한국영토를 침범했다. 강력 히 경고한다"는 메시지를 6.2일 밤 2시30분에 보냈습니다. 김대중과 임동원은 영해를 북한에 내주자 했고, 8군사령관은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 우리 영토를 지켜주었습니다.

연천의 제5땅굴은 법정에서도 땅굴이라고 사실상의 판단이 내려졌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천연동굴"이라고 못박았습니다.

북한이 사건을 일으킬 때마다 북한을 감쌌습니다. 1998. 7.12일 북괴 잠수정이 속초 앞 바다 꽁치망에 걸렸습니다. 꽁치망에 걸릴 정도의 작은 잠수정 속에 든 공작원은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였습니다. 공작원을 생포하면 공작내용이 모두 드러납니다. 해군은 그 잠수정을 밧줄에 매달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줄이 끊어졌다며 수중에 빠추어 죽였습니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모두 수장된 것입니다.

1999.6.15일. 연평해전 마지막 날에 북한 경비정을 들이받는 것은 순전히 현장 지휘관의 배짱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해군은 북괴 해군함정 10척중 어뢰정 1척을 격침하고 중소형 경비정 5척을 대파함으로써 북방한계선을 확고히 수호하여 온 국민을 기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휘관은 곧 예편당했습니다.

2001년 기무사 대공처장이 1년여에 걸쳐 "좌익세력의 대군침투 실상"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군에 1,000명 이상의 좌익이 있고, 이들이 정관계 좌익들과 연루돼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성태 장관은 이를 전국 지휘관에게 배포하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이유 없이 국방장관이 경질됐습니다. 2001.3.26일, 김동신이 국방장관이 되었습니다. 김동신은 2001.6.30일 염준장을 해외출장 중에 보직해임 시키고 이어서 예편을 시켰습니다.

2002.6.29일 서해 도발에 대해서도 그는 북한을 옹호했습니다. 국군 장병들이 북괴의 테러에 의해 5명씩이나 죽고 22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대통령이란 사람이 빨간 넥타이를 매고 일본으로 축구구경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북한을 이렇게 감쌌습니다. "이번 사태는 우발적인 것이다", "김정일은 개입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지시를 내릴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대북지원과 금강산 사업은 계속돼야 한다". 장관과 합참의장 등은 장병들의 빈소를 단 한번도 찾지 않았습니다.

2002년6월 그의 핵심참모인 임동원은 남북협상이 잘 되어가고 있는데 미국이 방해를 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북지원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무조건적이어야 하며 이를 반대하는 자들은 비인도적인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했습니다. 우리 군은 북한에 비해 월등한 군사력을 갖고 있으니 염려할 것 없다 했습니다. 연방제란 국방과 외교권만을 통합해서 갖고, 서로가 자기 체제를 유지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 없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빨갱이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말들을 거침없이 털어놨습니다.

황장엽을 박해했습니다.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만나지 말 것, 외부 강연에 나가지 말 것, 책을 출판하지 말 것, 탈북자동지회 소식지인 '민족통일'을 내보지 말 것, 민간 차원의 대북 민주화 사업에 참가하지 말 것" 등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황장엽, 김덕홍씨를 연금상태로 가뒀습니다.

국정원이 이용호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 모두를 주도했습니다. 그 검은 돈이 어디에 쓰여졌겠습니까?

2001. 8. 15-21간 이적단체인 범민련을 창구로 사용하여 평양과 거래했습니다. 평양에서 열린 적화통일 행사에 337명을 날치기식으로 보냈습니다. 안보회의와 통일부가 불가로 결정했는데도 불구하고 김대중과 임동원이 날치기로 보낸 것입니다. 이 중 100여명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습니다.

이들은 연방제 통일 운동에 눈물을 흘리고 찬양했습니다. 만경대정신 이어 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 노동자계급 앞장서 조국의 자주적 통일 앞당기자,백두산 정기를 타고나신 장군님이시라 훌륭한 장군님이 되신 것 같습니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일부는 김일성을 찬양하는'한별을 우러러'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들 중 처벌된 사람은 없습니다.

이로 인해 임동원이 2001.9.3일 국회해임건의안에 의해 쫓겨났지만 1주일만인 9.11일에 장관급 특보에 다시 기용됐습니다.

그 후 임동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의심하지 말자. 의심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며 국민의 대북경계심을 와해시켰습니다.

그는 김정일과 5시간 면담한 후 돌아와 국방부에 압력을 넣어 주적개념을 땅에 묻게 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2002. 5. 24, 국방백서 발간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1999.4.6일, 그는 '주한미군 지위변경 발언을 했습니다. 그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까지 열어 "주한미군 지위변경 문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원은 바로 이번 4.9일날 성취되었습니다.

2,000. 9. 2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아무런 대가 없이 영웅으로 만들어 북송했습니다.

월간조선 2000년 9월호에는 청와대 여비서가 했다는 말이 실려있습니다. "벌써부터 우리 장관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을 뵙게 되었으니 저처럼 크나큰 영광을 지닌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2000년 8.11일, 대통령이 46개 언론사 사장들을 김정일에 보냈습니다. 그들은 국빈대접을 받으며 행복해 했습니다. 김정일의 술자리 매너에 반했습니다. 더러는 귀국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김정일을 찬양하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상호비방 중지를 내용으로 하는 '남북언론합의문'을 교환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보도를 저들의 입맛에 맞추어 주었습니다.

그 때 김정일은 참으로 무서운 말을 했습니다. "통일은 내가 맘먹을 탓이다", "내 힘은 군력에서 나온다".

그래도 언론사 사장들은 그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김정일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9.7%나 된다 합니다. 초등학생의 90%가 김정일을 김대중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람이라 한답니다. 부인들 사회에도 김정일 오빠부대가 생겼다 합니다.

2002.6.29 서해사태에서 우군 6명이 사망했고 21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좌익대통령은 “설사 먼저 맞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먼저 발포하지 말라”며 우리 병사의 손발을 묶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의 손발은 풀려있었습니다. 북한군은 남한의 대통령이 자기들 편이라며 사기가 등등했습니다. 우리 병사들이 대통령을 믿고 방심할 때 북은 여지없이 테러를 가했습니다. 반전-평화 세력은 이렇게 억울하게 테러를 당한 데 대해 촛불하나 켜지 않고, 김정일을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갑차의 좁은 창 때문에 발생한 단순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미선아-효순아 , 왜 어린 너희들이 미국놈들에게 희생당해야 했느냐!”, 수만 개의 촛불을 켜면서 미국을 증오했습니다. 부시대통령 초상화에 불을 지르고 성조기까지 태웠습니다. 저는 이런 좌익들을 극도로 증오합니다.

학교와 방송과 신문들이 좌익전선의 첨병이기를 자임했습니다. 여론의 70% 이상을 방송이 좌우한다 합니다. 이를 악용하여 국민을 집단-최면 시킵니다. 그 결과 스스로를 좌익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좌익이 내는 목소리를 냅니다. 핵무기는 민족무기다. 왜 미국은 가져도 되고 북한이 가지면 안 되느냐. 미국은 침략자다.

한국인들이 이렇듯 환각상태에 있을 때 김정일은 무엇을 했습니까? 남북정상이 만난 직후에 김정일이 지시한 공문 내용을 보십시오. "나의 통일관은 무력통일관이다", "인민군대는 반미, 반일, 반괴뢰 구호를 더 높이 들고 계급의 총창을 보다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원쑤들과 한 번은 싸워서 결판을 내야 한다"고 다그쳤습니다.

2003년1월호 문예춘추는 남한을 사상적으로 와해시키라는 김정일의 극비 문서를 입수하여 게재했습니다. 그 중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적군와해공작은 전쟁승리의 중요한 조건의 하나입니다. 대포를 쏘고 총을 쏘는 것만으로는 적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와해공작을 강화하는 것 이야말로 적을 사상적으로 무장해제 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을 사상적으로 무장해제 시키는데 총진군하라는 교시를 내렸습니다.

2년전, 전교조가 [이겨레 살리는 통일]이라는 통일교육지침서를 배부했습니다. 북침이라는 설도 유력하니 학생들에게 6.25를 누가 일으켰는지를 따지지 말도록 가르쳐라. 단지 학생들에게 사진과 비디오 등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가르쳐라. 이 세상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는 미국뿐이라고 가르쳐라. 그래서 미국은 인류의 적이자 우리의 적이라고 가르쳐라. 그 다음의 적은 남한 내 친미-반공 기득권 냉전세력임을 가르쳐라. 북한은 우리의 동포이며 더욱 더 도와주어야 한다고 가르쳐라. 토론-연극-윷놀이를 통해 미국과 냉전세력을 증오하게 만들라.

아이들에게 확인해 보십시오. 옛날 북한 어린이들이 미국을 증오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 자식들이 그 모양이 되었습니다. 통일교육지침서의 표지에는 활짝 웃는 인민군 얼굴이 크게 부각돼 있고, 그 주위를 수많은 얼굴들이 꽃잎처럼 감싸고 있습니다. 인민군이 중심이 된 통일사회가 영상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정부가 이를 방조한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2.28일 전남 광주시 교육감이 교장을 잘못 임명했다고 전교조에 반성문을 썼습니다. 이번 4월6일 전교조는 예산군 서승목 교장을 자살로 내몰았습니다. 이번 서교장 사건은 교장과 담임을 모두 전교조 통제 하에 두기 위한 대대적인 작전을 펴다가 저질러진 사건입니다. 교장을 비리 및 비행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게 저들의 상투적인 수법입니다.

뜻 있는 분들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사학들이 줄줄이 탈취되어 이념교육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민]자 돌림 폭력 교수들이 소위 [교수협의회]라는 걸 만들어 선동과 폭력으로 재단이사장을 내쫓고 주인 행세를 하면서 직위와 돈을 나누어 갖고, 이념교육을 시킵니다. 30개 정도의 대학교가 이렇게 빼앗기고 있는데도 매우 희한하게도 정부는 이에 적극 공조하고 있습니다. 교육계 중앙에도 검은 세력이 있는 것입니다.

최근의 대통령들이 북한을 옹호하고 미국을 미워합니다. 우리에게 안보와 경제라는 가장 결정적인 분야에서 도움을 주고 있는 미국을 DJ 정부에 들어서면서부터 갑자기 배척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김정일을 도와주기 위한 것으로밖에 풀이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구 덕으로 해방되었습니까?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일본을 극적으로 이기지 못했다면 우리가 어찌 일본치하를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6.25 전쟁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그들은 한국인들이 지키지 못한 자유를 찾아주느라 56,000여명의 생명을 잃었고, 11만5천여명의 부상자를 냈습니다. 한국이라는 미개한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조차 모르면서 단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동양인을 구하기 위해 국가의 부름을 받고 와서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1950년6월30일, 한국에 진주한 미 24사단이 대전 전투에서 15일간에 8,000명을 잃었습니다. 부상당한 사단장 딘 소장이 한국인의 밀고로 인해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좌익들은 이런 미군에 대해서는 양민학살자로 매도했고, 노근리에서 피해를 본 소수의 주민들만 중요하다 떠들어댔습니다. 노근리 피해는 자살특공대 때문에 발생한 피해였습니다. 이라크전에서 우리는 자살특공대라는 걸 보았습니다. 어린이, 임신부들에게 폭탄을 들려 내보내 미군을 죽였습니다. 노근리에서도 그랬습니다. 이런 자살특공대의 공격을 어느 군대가 오래 당해 주겠습니까? 그래 놓고 독재자들은 미군이 어린아이와 임신부를 죽였다고 대대적으로 왜곡 선전합니다. 좌익들의 전형적인 모략 수법인 것입니다.

6.25때에 미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는 당시 한국군의 실상을 보면 매우 잘 나타납니다. 군번 1번 이형근 대장의 회고록만 보아도 6.25직전의 한국군은 좌익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일선 부대의 적정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계속 묵살했습니다. 6.25가 발발 2주전에 중앙 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급의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단행되었습니다. 6.25 1주일 전에 전후방부대의 대대적인 위치교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지형도 낯설고 부하와 상관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쟁을 한 것입니다. 6.11부터 발령됐던 비상경계령이 6.24일 0시에 해제됨과 동시에 전 장병의 50%에게 휴가를 주었습니다. 6.24일 저녁, 전후방 연대장급 이상의 모든 지휘관을 불러 육군 장교클럽 댄스 파티를 열어 새벽까지 술과 파티를 즐기게 했습니다. 국군이 계속 퇴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방송은 국군이 반격, 북진중이라고 허위 방송함으로써 군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상황판단을 그르치게 했습니다. 그 때에도 지금처럼 방송들이 좌익에 점령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서울에 있는 애국인사들이 피난을 나가지 못한 채, 모두 인민군에 살해됐습니다. 병력과 군수물자가 한강 이북에 있는데도 당시에는 유일했던 한강교를 서둘러 폭파했고, 폭파명령을 집행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이 1950.9.21일, 비밀리에 사형집행 됨으로써 폭파를 명령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게 했습니다.

98,000명의 한국군 중 맨몸으로 한강을 건너 남쪽 둑에 모인 병사가 겨우 22,000명이었습니다. 총 한 자루 없이 이 병력으로 무슨 전쟁을 합니까?

6.29일 0600시, 맥아더 원수가 그의 전용기 C-54를 타고 와서 한강 남쪽 제방을 순시했습니다. 6.30일 04:57분, 그는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전쟁개입 결심을 받아냈습니다. 트루먼은 2개사단과 1개 전투연대 파견을 전 세계에 공표했습니다. 당시 미군 병사의 70%는 불과 19-20세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7.1일 03시, 스미스 부대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구마모도를 출발, 08:05분에 이다쓰게에 도착했습니다. 7.1일 08:45분,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4대의 C-54기에 탑승하고 부산으로 출발했지만 안개가 짙어 내릴 수 없었습니다. 10회나 회항하다가 15:00시에 겨우 착륙했습니다. 열차를 타고 7.2일 08:00시에 대전에 도착했습니다. 7.8-15간 제 25사단이 부산에 속속 들어왔고, 7.14일,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군 지휘를 UN군사령관에게 위임했습니다. 미군은 이렇게 해서 56,000명이나 죽은 것입니다.

미국이 없고, 맥아더가 없었으면 우리는 지금 공산치하에서 꽃제비가 되고 아오지에서 신음하다 죽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찔한 일입니까?

미국은 지난 50년 간 북괴의 악랄한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북이 청와대를 기습하고, 이승복 어린이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아웅산 테러를 자행하고, 땅굴이 연속적으로 발견됐을 때, 우리는 얼마나 미국의 도움을 바랬습니까? 카터가 미7사단을 빼내갈 때, 우리는 카터를 얼마나 미워했습니까?

미국은 우리가 버린 고아와 장애인을 데려다 길러주었습니다. 무역의 가장 큰 파트너요 기술의 공급자였습니다. 무역에 필요한 해상통로를 지켜주고 있으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배움의 대상이 돼 주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우리의 자산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못마땅하기에 갑자기 미국을 미워해야 합니까?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은 쇄국주의입니다. 쇄국주의로 돌아가면 우리는 누구로부터 배웁니까? 일본을 보십시오. 의약품도 개발하면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살인무기를 만들어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세계 최초로 원자탄의 실험대상이 됐습니다. 1945년8.6일에는 우라늄 원자탄을, 8.9일에는 풀루토늄 원자탄을 맞았습니다. 이 엄청난 재앙을 유전자로 대물림하는 일본인들의 대미 증오심이야말로 어찌 하늘을 찌르지 않겠습니까.

이 기막힌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미국을 무작정 증오하지는 않았습니다. 전후 그들은 대거 미국으로 건너가 공장 문 밖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들보다 잘난 미국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미국인들은 그런 일본인들을 멸시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미국을 따라올 수 없다. 문을 활짝 열고 다 보여줘라".

1957년 당시 덜레스 미국무장관이 수많은 군중을 향해 미국의 우월감을 표현했습니다. "일본은 기술면에서 영원히 미국과 경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 매우 훌륭한 손수건과 훌륭한 파자마를 생산하고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을 미국에 수출하려 하지 않습니까?". 감히 미국을 흉내내겠다며 공장문을 기웃거리는 꼴사나운 모습들을 멸시하는 연설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욕을 무릅쓰고 일본인들은 미국으로부터 선생님들을 불러들이고 미국을 견학하면서 미국을 모방하려 애썼습니다. 잘난 나라를 배우자는 열정이었습니다. 소니의 신화를 일구어낸 천재 아키오모리타씨를 보십시오. 그는 아시아 10대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그는 미국을 공격하기 위한 유도탄을 개발하다가 종전을 맞았습니다. 종전을 맞이하자마자 그는 미국의 기술을 카피하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는 미국에 가서 젊음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미국을 이기는 기술을 만들어 냈습니다.

1980대 초, 드디어 일본이 생산 기술과 품질관리에서 미국을 앞섰습니다. 덜레스 미국무장관의 조롱 섞인 연설이 있은 이후 25여년만인 1982년, 승용차에 대한 미국인의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일본 승용차가 나란히 1,2,3위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미국 차는 겨우 7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알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일본인들은 "N0라고 말하자"며 미국과 동격임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얼 했습니까? 미워하기만 하면 무엇이 나옵니까? 그러니 점점 더 낙후하고 멸시를 받는 게 아닙니까? 우리 역시 이러한 일본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좌익들은 북한과 수준을 맞추기 위해 잘난 나라를 억지로 배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일본을 왜 미워합니까? 한강의 기적에는 일본 기술과 일본 자본이 듬뿍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국방송은 일본을 표절하지 않으면 방송을 하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일본을 미워한다 하면서 속으로는 일본 문화를 표절하고 일본 상품을 애용합니다. 당장 방송장비들을 보십시오. 모두가 일제입니다. 정말로 ‘어글리-코리안’입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됐던 시절, 그 시절에는 약육강식이 세계의 상식이었습니다. 식민지를 갖는 것이 선진국의 유행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우리의 못난 조상들도 지금의 우리들처럼 서로를 모함하고 죽이면서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개화된 일본에 점령당한 것입니다. 못나서 점령당해놓고 잘났던 일본을 왜 욕합니까? 중국 역시 한때 일본에 짓밟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누워서 침 뱉기라며 발설하지 않습니다.

과거 때문에 일본을 증오하는 사람들, 참으로 못났습니다. 일본과는 과거가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우리에게 고마운 일을 해준, 미국은 도대체 무엇 대문에 미워합니까? 미국을 미워하는 마음이 가장 심한 곳이 북한입니다. 그들이 못 사는 이유는 그들보다 잘 난 미국과 일본을 배척하고 증오했기 때문입니다. 증오심을 부추기면 단합은 시킬 수 있어도 발전은 기할 수 없습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길러주어야 할 어린이들에게 좌익들은, 잘난 사람, 가진 사람에 대한 증오심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는 인성 파괴 행위입니다.

저들은 민족이라는 말을 내걸며 이런 짓을 합니다. 도대체 [민족]이라는 게 왜 중요합니까? 가장 잘 사는 미국을 보십시오. 그 나라에 무슨 민족이 있습니까. 민족이라는 말은 순수한 국민들로 하여금 미국과 일본을 증오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위장용어]입니다. 사상과 사고방식, 지적 수준이 같으면 이민족간에도 사랑하고 결혼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다르면 형제지간, 부자지간에도 싸우고 죽입니다.

[조아세]라는 홍위병 집단이 난동을 부립니다. 조아세는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의 약자라 합니다. 문성근, 명계남 등이 폭력 정예 집단을 만들어 우익신문들을 공격합니다. [민주화]를 위해서 우익신문들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선택한 신문을 저들이 무슨 권리로 없애자 합니까? 간판은 [민주화]이지만 내용은 [볼쉐비키 혁명]입니다.

문성근이 누구입니까? 문익환 목사의 아들입니다. 문익환 목사는 북한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될 만큼 영웅으로 추대되어 있는 좌익입니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는 통일의 사도로 불렸습니다. 통일이 민족의 염원이라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지금 벌이는 통일은 절대로 막아야 합니다.

통일운동에 앞장 선 한완상을 보십시오. 그는 김대중이 평양에서 돌아온 그 다음 날인 6.16일, 인민군 111구가 묻혀있는 파주시의 '북한군묘지' 를 찾아 잡초를 뽑으면서 통일이 임박했다고 고했습니다. 이어서 2000. 10. 5일,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에 가서 축사를 읽었고 남북한 군을 통합하여 한겨레군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때에 누가 같이 갔습니까? 김근태와 이부영 등 6명이 대동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통일전선에 앞장 서 있는 것입니다. 매우 위험한 세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조건 반통일 세력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저들이 설자리를 잃게 됩니다.

이제는 법에도 좌익이 있습니다.

1981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광주사태를 김대중 내란음모자로 판결했습니다. 광주사태를 좌익과 불순세력이 대한민국 전복을 목적으로 하여 일으킨 폭동이라고 판결했습니다. 그 결과 김대중, 문익관, 서경원 등의 좌익들이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법원이 지금은 판결을 바꾸었습니다. 1995년의 대법원은 광주사태를 민주화 의거로, 이를 진압한 공수부대는 내란목적 살인군으로 판결했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놓고 1980년도의 대법원과 1995년도의 대법원이 정반대인 것입니다. 15년 전의 판사는 우익의 손을 들어주었고, 15년 후의 판사는 좌익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잠시 회상해 보십시오. 1980년 당시는 박대통이 시해되어 국가안보가 가장 걱정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유신잔당 최규하 정권 물러가라, 주한미군 물러가라, 보안법 철폐하라” 등이 당시 데모대들의 구호였습니다”. 전황이 평양방송을 통해 시시각각 중계방송 되었고, 북한이 전단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이런 소요가 확산되고 장기화되면 이는 북한에게 어부지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당시를 살아온 사람들의 상식이었습니다. 당시는 안보시국이었지 민주화시국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최규하 대통령은 1980년 5.17을 기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다른 곳은 진정되었지만 유독 광주만 시위가 극성을 부렸습니다. 경찰이 도망을 가고 도청이 저들의 작전본부로 바뀌어 행정이 마비되었습니다. 관청에 불을 지르고 대부분의 파출소가 불탔습니다. 그야말로 무정부상태였습니다. 이를 수수방관하는 국가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경찰이 손들고 도망간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군이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이 시위진압에 오래 묶이게 되면 대북 군사력에 공백이 생깁니다. 군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적은 병력으로 이를 진압해야 했습니다. 진압과정은 전쟁입니다. 전쟁에서 누가 더 가혹했느냐를 따지는 건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군과 민간폭도와의 싸움에서 민간이 많이 당하는 것은 어느 국가에서나 상식화돼 있습니다. 그러나 ‘민'자를 내거는 이념세력은 전체의 틀은 무시하고 가혹행위로 보이는 부분만 찍어 여론을 왜곡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켜낸 군은 악으로 매도하고, 좌익들이 배후 조종한 민간 폭동은 의거로 미화한 것입니다.

똑같은 수법으로 저들은 4.3사태를 뒤집고 있습니다. 4.3사건 재조명에 선두에 선 추미애 의원은 국회연설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량양민학살을 외치면서 희생자들의 원통함을 알길 없는 표선 백사장에는 오늘도 무심한 갈매기만 날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대명사격인 정방폭포 그러나 시원스레 떨어지는 물살 아래에는 아직도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한 원혼들이 폭포수를 맞으며 시신을 부대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를 외면하도록 배워온 우리는 무심하게도 그 원혼들 앞에서 여행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보십시오. "눈물나게 호소하라"는 게 역사 뒤집기의 수법인 것입니다.

한국의 내적들은 심지어 한국군의 위상을 세계에 떨치고 한강의 기적이 있게 한 주월한국군까지 양민학살자로 매도합니다. 1999년 한겨레21은 이름도 없는 베트남 유학생 구수정이라는 여인이 쓴 가공 소설을 진실인양 보도하면서 주월한국군 전체를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이라고 매도했습니다. 한겨레 21 제273호에 실린 그녀의 글도 추미애 의원의 글과 상통합니다.

"먹빛 얼굴을 하고 땅을 굽어보고 있던 하늘은 바람을 앞세워 나무의 머리채를 흔들었다. 빗방울은 제몸을 차창에 던지며 투두둑 눈물을 떨군다". "젖먹이까지 죽이고도 모자라 무덤조차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갈기갈기 찢겨져 흩어진 살점과 뼛조각을 주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 . . 하늘도 눈이 멀던 그 날에". "아이들의 머리를 깨트리거나 목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거나 사지를 절단해 불어 던져 넣었다", "여성들은 돌아가며 강간한 뒤 살해하고, 임산부의 배를 태아가 빠져나올 때가지 군화발로 짓밟았다", 주민들을 마을의 땅굴로 몰아넣고 독가스를 분사해 질식사 시켰다", "한국군의 대량학살이 자행된 곳에는 캔디나 케이크가 물려있었다. 노인들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었다. 아마도 마을사람들을 안심시키면서 한 곳으로 모으는 한 수단이었는 듯 하다", "어린이, 임산부, 70세 이상의 노인까지 50명을 한곳에 몰아넣고 죽였다". "주민을 몰아넣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 주민들을 한 집에 몰아넣고 기관총으로 난사한 후 죽은 자와 산 자를 통 채로 불태운다".

그녀의 이와 같이 허무맹랑한 악의적 소설에 강정구 교수, 한홍구 교수, 고경태기자가 매달려 눈물과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효과음을 넣음으로써 32만5천의 파월장병들은 한 순간에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아비가 되었습니다. 저는 월남전에 42개월이나 있었습니다. 이 상상을 초월하는 소설은 문구조차 악의적이며 거기에 문학소녀 같은 유치한 표현까지 곁들여 느끼하기까지 합니다.

추미애와 구수정, 바로 이런 여인들이 벌이는 수법이 광주사태라는 역사 뒤집기에도 적용됐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대학가에는 찢겨진 깃발이라는 대자보가 붉은 글씨로 나붙습니다. 작자도 없는 이 내용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다시 일본에서 건너온 믿을 만한 내용이라며 한국 대학가에 증폭시켰습니다.

“남녀 노소 학생 일반 시민의 구별 없이 닥치는 대로 얻어맞고 찔리고 때려 눕혔다. 미쳐 도피하지 못한 70세 정도의 노인의 머리위로 공수부대병의 철퇴가 내려쳤다. 노인의 입과 머리에서 분수 같은 피가 분출했고, 노인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대로 툭 쓰러졌다”,

“ 공수부대원 두 사람에게 개처럼 끌려온 한 여인은 산월이 임박한 임산부였다. 반항할 틈도 없이 옷을 붙잡아 잡아당겨 찢었다. 여인의 원피스가 찢기고 살이 보였다. 공수병은 대검으로 이 여인의 배를 푹 찔렀다. 대검을 찌를 때 돌려가면서 찔렀는지 곧 장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다시 여인의 아랫배를 찢어 태아를 꺼내서 신음하고 있는 여인에게 그 태아를 던졌다”.

“여대생으로 보이는 3명의 처녀들이 공정대 병사 등에 의해 옷을 벗기우고 있었다. 브라자와 팬티까지 모두 찢고 그들 공정대 병사들 중 가장 악랄해 보이는 병사가 군화로 처녀들을 걷어찼다. 처녀들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가리고 길가에 주저앉고 말았다. 순간 처녀들의 등에는 대검이 동시에 꽂혔으며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넘어진 처녀들의 가슴에 대검으로 X자를 쓰고 생사의 확인도 없이 청소차에 던져 넣고 말았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4.3사건, 한국군파월사건, 광주사건의 진실을 뒤집는 저들의 모략전술이 어쩌면 이리도 똑같습니까!

이러한 역사뒤집기 수법에 모든 국민이 넘어갑니다. 대법원도 넘어갑니다. 광주사태에 대해 내려진 1995년도 판결문을 보면 과연 대법원이 대한민국 대법원인가를 의심케 합니다. 군이 5.17에 계엄을 선포한 것 자체를 내란죄로 규정합니다. 민주화 의거에 군을 파견하면 살인행위가 일어날 것임을 뻔히 알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군을 파견한 것은 살인행위이며 그 살인은 내란을 목적으로 하여 이루어졌다고 판시했습니다. 북한에 국가를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계엄령선포와 군의 소요진압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들은 어느 나라 법관들입니까?

존경하는 애국자 여러분,

국가는 사정이 어려울 때 국민을 향해 나서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길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국가의 안녕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어제의 명예가 오늘은 불명예로, 어제의 충신이 오늘은 역적으로 뒤바뀌는 일이 백주에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국가는 무슨 수로 국민을 향해 나서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를 뒤집는 행위는 국가안보 정신을 송두리째 허무는 행위인 것입니다.

1989. 2. 15.일자 국민신문은 다시 5월이 오면 우린 승리한다는 제하에 무시무시한 심층취재 기사를 실었습니다. 호남 일대의 대학들에 전투조직들이 자라나고 있다 합니다. 전남대의 오월대, 조선대의 녹두대, 목포대의 동백대, 순천대의 유월대, 호남대의 전사대 등 수천명 단위의 전투조직들이 힘을 키우면서 다시 5월이 오면 우린 승리한다는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합니다. 학생운동 출신의 광주-전남지역 20대 애국투사들 중 남대협 전투조직을 거치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다고 하며, 이들의 수는 지금 얼마나 달하는지 외부에서는 잘 모릅니다.

이들의 존재는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정부에 대해 언제든 제2, 제3의 5.18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일단 소요를 일으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이들은 어째서 지금까지 데모 한번 일으키지 않습니까? 과거에 얼마나 많은 화염병 데모가 있었습니까? 그들이 지금 조용한 것은 과거에 극성맞게 데모를 주도한 사람들이 좌익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이처럼 광주사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한국의 안보를 두 가지 측면에서 허물고 있는 것입니다. 반정부 소요를 정당화하기 때문에 민간전투부대가 양산되고, 정부군을 내란군으로 매도하기 때문에 군은 앞으로 국가명령을 존중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은 좌익도 얼마든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개방사회입니다. 좌익이 대통령이 되면 군사안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수장이 적장에게 항복을 하는데 군대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제는 전쟁을 하지 않고 국가가 적에 흡수되는 사태를 염려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정부의 사상을 믿고 편히 살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한총련을 포함한 이적단체를 해방하려 합니다. 대공수사기구를 사실상 없앴습니다. 간첩 잡는 일이 중지됐습니다. 대공 기관이 없어지면 보안법은 있으나마나 입니다. 이번 사면을 기점으로 사상범도 합법화된다 합니다.

베트남이 공산치하로 통일된지 28년이 지났습니다. 월맹 통일주체는 통일 후 8년 간 문을 닫고 암흑과 공포의 정치를 했습니다. 자유에 물들었던 사람들을 때려죽이고 굶겨 죽였습니다. 더러는 700만, 더러는 13,00만이라 합니다. 106만명의 난민이 보트를 타고 도망가다가 11만명이 빠져 죽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희생을 치르고 통일을 이루어 낸 베트남! 지금 얼마나 잘 살고 있습니까? 국방 전쟁사 연구단이 최근에 베트남 곳곳을 다녔습니다. 찍은 사진과 관찰 내용을 요약하여 참전용사들에게 브리핑을 해주었습니다. 지금의 베트남은 1965년 한국군이 최초로 파병되었을 때보다 훨씬 낡고 병들어 있었습니다. 화려했던 사이공 거리가 남루하게 퇴색해 있었고, 새로 들어선 건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생활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었습니다. 사이공 거리를 달리는 아가씨들의 얼굴도 예처럼 화사하지 않았습니다. 38년 전보다 뒤떨어져 있는 것이 지금의 베트남 현실입니다. 현지 답사자들의 말이 가슴을 때립니다. 무엇을 위한 통일이었는가.

통일 후 28년간 베트남은 무엇을 했습니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탄압하고,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를 비난하고, 도덕을 내걸며 사상교육만 했습니다. 이념주의자들은 선동-선전만 할 줄 알았지 과학적 경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이념정부가 하루아침에 과학정부로 바뀔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베트남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퇴화된 삶과 스산한 거리를 그대로 방치할 것입니다. 국제사회에서 못사는 나라 축에 끼어 완전한 뒷골목으로 전락해 가는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정부 역시 이러한 이념세력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들은 이념에 몰두하고 데모를 하고 파괴를 생각하면서 귀중한 청년시절을 허송했습니다. 이들은 건설이나 경영을 알지 못합니다. 잘 사는 사람들을 적이라고 생각하며 빼앗는 것을 선이라고 생각해온 시대착오적 인물들입니다. 설사 저들이 북한과 연루되지 않았다 해도 한국사회는 이들에 의해 베트남 식으로 퇴화될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포퓰리즘과 인민재판이 유행입니다. 이들에 의해 한국사회는 인민재판으로 얼룩질 것입니다.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도 인민재판이 선을 보입니다. 참여연대, 민변, 민노총, 지하철노조 들이 날뛰는 모습을 보십시오. 저들의 행태가 바로 인민재판입니다. 낙선운동을 편다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침략이라고 규정한답니다. 침략전에 파병하는 것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가지 낸다 합니다. 시민단체가 나서서 공병부대 장병들에게 지휘에 응하지 말라고 선동합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아닙니다.

국회의원이 자기들만의 전유물입니까? 국회의원은 독자적인 의견과 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저들은 그걸 무시하고 자기들만의 거수기가 되라고 협박합니다. 국회의원이 어째서 저들의 의사만 반영해야 합니까. 저들만 사람이고 우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런 정신나간 인간들을 우리는 언제가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합니까?

저들의 눈에는 국제경쟁이 얼마나 살벌한 것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기업과 정부가 온갖 과학적인 기법을 동원하여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GE의 잭 웰치 회장은 공학박사입니다. 그는 GE를 과학적으로 경영했습니다. 식스-시그마는 통계학 용어이며 백만 개의 제품 중 불량품이 3개라는 것을 뜻합니다. 과학세력의 지원을 받아 그 방법을 개발하는 데 20년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GE의 주식가치는 130억 달러에서 6,000억 달러로 팽창됐습니다. 한국 전체 상장가의 3배입니다. 그는 40만 명을 30만으로 줄이면서도 매년 이윤을 7배로 향상시켰습니다. 미국에는 수많은 잭들이 양성되고 있습니다.

잘 나가는 미국도 살아남겠다며 이렇게 하는데 도대체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기업에 공포를 가합니다. 기업들이 러시를 이루어 해외로 옮깁니다. 제조업의 76%가 해외로 나갔거나 곧 나갈 예정에 있다 합니다. 지난해 창업된 법인체 중 제조업체는 불과 25%에 불과했으며, 매년 제조업체 수가 감소하고 있다 합니다. UN통계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주요 교역품목 5,000개 중 한국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수는 80개에 불과하며 이는 IMF 때보다 10개 품목이 줄어든 것이라 합니다. 같은 기간 중 중국은 487개에서 731개로 대 약진을 했다 합니다. 새로운 제품 개발능력도 중국에 뒤져 있습니다. 벌써부터 국제시장에 팔아먹을 게 별로 없는 것입니다.

국부를 창출하는 경제 주체 모두가 국제경쟁력을 잃어 1달러를 쓰면 1달러 이하만 내놓습니다. 모두가 빚입니다. 가계가 430조의 빚을 진 채, 구매력을 잃고 있습니다. 농어촌이 250조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국영기업체의 빚만도 500조라 합니다. 민간 기업체의 빚이 800조를 넘는다 합니다. 모두가 빚으로 연명하지만 우리에겐 빚을 늘릴 능력 밖에 없습니다. 가진 사람들이 대거 해외로 몰려 나갑니다. 그들은 내가 국가를 버린 게 아니라 국가가 나를 버렸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말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떠나지 마십시오. 살기 좋은 국가를 만들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가려면 불평하지 말고 조용히 나가라 했습니다. 대북문제만 잘하면 다른 건 깽판쳐도 된다고 했습니다.

이념 세력들은 TV 및 라디오 방송을 시켜 이라크전을 침략전이라고 부르며 미국을 증오합니다. 미국이 전쟁에서 망하기를 학수고대해 왔습니다. 전쟁이 나면 국가는 국민부터 피신을 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후세인은 시민을 바그다드 시에 붙들어 놓고 개인의 생존을 위한 인간방패로 사용했습니다. 임신부와 이린이들을 자살특공대로 내보낸 악마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눈에는 이런 후세인이 천사처럼 보이고, 이를 단죄하는 부시가 악마로 보인다 합니다.

세계가 모드 악마라고 부르는 후세인을 동정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후세인보다 더 악독한 김정일을 위한 포석인 것입니다. 이런 김정일 옹호자들로 인해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미국의 경제적 -외교 안보적 보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저들과 한 배를 타고있다는 것 하나로 저들이 벌이는 장난질에 희생돼야 합니다.

우리는 9.11이전과 달라진 미국의 변화와 이로 인해 달라진 세계의 변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9.11 테러 이전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대지였습니다. 모든 국제전쟁은 미국 밖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의 미국은 가장 불안전한 대지가 됐습니다.

미국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테러 그 자체보다는 테러에 사용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입니다. 국제사회에서 테러에게 제공될 수 있는 악성 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는 북한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단순히 남한의 적이 아니라 미국의 직접적인 적이 됐습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은 테러 공포를 매일 느끼면서 살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미국인들의 불안한 생활을 하루라도 빨리 해소해 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더구나 북한은 수개월 이내에 미국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의 핵무기를 가지게 됩니다. 이는 미국에게 악몽입니다. 미국에게만 악몽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게도 악몽입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면 대만이 핵을 가집니다. 이는 중국의 악몽입니다. 핵을 가진 김정일 체제로 남북한이 통일되는 것은 일본에게도 악몽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선제공격 정책을 선포한 것입니다.

미국이 북한을 다자간 대화 시스템으로 몰아넣는 것은 일본과 중국이 미국과 한배를 탔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이 북한과 단 둘이 회담을 한다면 북한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시간을 끌거나 미국이 하지 않은 말도 했다며 누명을 씌울 것입니다. 하지만 뜻을 같이 하는 여러 나라들과 같이 한 테이블에 앉으면 북한은 이런 짓을 하지 못합니다. 다자가 힘을 합쳐 북한을 때릴 수 있는데 미국이 무엇 때문에 독단을 했다며 비난받으려 하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우리의 대통령은 북한만 편들며 다자간 대화를 반대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미국의 여론형성층은 이라크보다 북한을 먼저 때리라 했습니다. 이라크를 공격하지 말라는 나라는 많았어도, 북한을 때리지 말라는 나라는 남한말고는 별로 없습니다. 남한은 더 이상 미국의 동지가 아닙니다. 미국이 북한을 친다해도 미국은 남한에 정보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한을 한편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는 미국이 북을 때릴 때에 한국군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이 일단 개입하면 북한에 역시 개방 마인드를 가진 정권이 수립될 것입니다. 한국이 개입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미국이 점령한 북한을 한국에 넘겨주겠습니까? 남북한은 제각기 별도의 독립국가로 살게 될 모양입니다. 현재의 휴전선은 국경선이 될 것이며, 북한과 남한에는 서로를 침략할 수 없을 만큼의 아주 작은 자위대만 허용될 모양입니다. 한반도가 무장해제 된다해도 한반도의 안전은 주변국들이 가지는 힘의 균형원리에 의해 매우 잘 유지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보며, 부디 하루라도 빨리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마치 캐나다와 미국이 사이좋은 이웃국가로 살아가는 것처럼 이 기회에 남북한 역시 캐나다와 미국처럼 사이좋은 이웃국가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기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이질적 사고방식을 갖고있는 북한 주민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을 원치 않으며 수입이 현격히 줄어드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남한의 지방자치단체의 사업비는 70% 이상이 중앙정부에서 보내는 돈으로 충당됩니다. 통일되면 북한에 얼마나 많은 세금을 걷어 보내야 하겠습니까? 반쪽 땅을 가지고도 사회를 혼란으로 몰고 가는 그 알량한 국가경영능력을 가지고 남북한을 하나로 합해 보십시오. 국가는 오히려 4분5열 될 것입니다.

지금 미국은 북한을 때리기 위해 주한미군을 후방으로 빼거나 철수하려 합니다. [선제공격] 하려면 주한미군을 북한의 [야포 및 지상군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거리에서 충분히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미 국방성 사람들의 새로운 논리입니다. 6.25 직전에 한국에는 좌익들이 우글거렸습니다. 남침만 하면 한국을 곧바로 접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6.25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 6.25가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6.25를 통해 북한의 만행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반공정신으로 무장할 수 있었습니다. 6.25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북한 주민들처럼 비참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에도 6.25직전처럼 그렇게 좌익들이 우글거립니다. 우리 진지 내에 들어와 있는 적을 우리는 무찌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 진지 위에 포를 쏘아야 적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 진내 사격이 바로 미국의 북한 공격입니다. 김정일만 제거되면 남한의 좌익들은 뿌리 없는 나무가 됩니다. 진 내 사격에는 우리의 희생도 따릅니다. 미국은 어째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이라크와 전쟁을 합니까? 미국인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희생 없이는 평화를 지키지 못합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 마지막 희망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그걸 피하면 용기 없고 게으른 무리가 됩니다. 이런 무리들에게는 오직 죽음과 비열함만이 선물로 주어질 것입니다. 6.25가 우리를 살려주었듯이 지금 우리는 전쟁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북한에 뇌물을 주어 평화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좌익들에게 우리는 돌을 던져야 합니다. 어제는 반전-평화 데모로 월남을 패망시킨 틱낫한이라는 중을 데려 오고, 오늘도 울고 있는 이라크 아이의 사진을 내보이며 반전-평화를 외치는 쓰레기들에게 우리는 돌을 던져야 합니다.

2003. 3. 17일, 미국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후세인에게 48시간 안에 이라크를 떠나지 않으면 군사적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맨 마지막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입니다. 그렇다고 연약한 국민은 아닙니다. 우리는 폭력배와 살인마들에 의해 주눅들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의 적이 감히 우리를 공격한다면 그들과 그들을 도와준 사람들은 가공할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이런 의연한 대통령 한번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국가의 역적, 김대중은 반드시 처단돼야 합니다. 그런 내통자를 어떻게 아방궁에 살게 내버려 둘 수 있다는 말입니까?

둘째, 우리는 도처에 자리잡고 있는 좌익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 국민을 결집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한나라당이 우리가 모일 수 있는 깃발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더 이상 이를 위한 대안으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한나라당과 이회창은 우리를 실망시켰습니다. 누군가가 나서야 합니다. 그 누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며, 땅에서 솟아나지도 않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부터 먼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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