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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재단의 완결판(0)
  오!교주님 2003.02.06 15:57 조회 93 찬성 3 반대 0
[커버스토리] 의혹, 마지막 성역 아태평화재단 (2002.03.05)


수백억대 후원금 규모-사용내역등 불투명
일부선 "DJ비자금 관리본부 아니냐"
지난 2월 23일 오전 서울 동교동 178번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옛 사저(私邸) 자리. 사복 전경이 골목 입구부터 경비를 서고 있는 가운데 사저가 있던 땅 주위에는 철제 방벽이 빙 둘러처져 있었고, 그 안에서 포클레인이 땅을 파고 있었다.


구(舊) 사저를 철거하고 김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물 집을 새로 짓고 있는 현장이었다. 사진기자들이 공사 현장을 찍으려 하자 전경이 다가와 ‘보안’이라며 촬영을 제지했다. 공사장 바로 옆에는 아태재단 신축 건물이 번듯하게 올라가 있었다.

최근 이수동(李守東) 전 상임이사의 ‘이용호 게이트’ 연루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아태재단은 이날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연구원들이 토요일이라 휴무(休務)인 가운데 김병호 행정실장 등 간부 몇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건물은 텅텅 비어 있었다. 비서ㆍ임원실이 있는 4층과 김 대통령의 집무실로 쓰일 5층에는 엘리베이터가 아예 올라가지도 않았다. 건물 수위는 “이수동 전 이사 사건이 터진 후 임원들이 나오지도 않는다”며 “5층은 아직 내장 공사가 끝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던 한 간부는 빌딩 앞에서 서성이던 기자들에게 “검찰에서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날 오전 아태재단 주변에는 특검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들이닥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김 대통령 퇴임 후 외국의 유명 학술재단에 버금가는 재단으로 키운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아태재단이 야당으로부터 해체 압력까지 받으며 ‘비리의 온상’으로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4년 1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한반도와 아시아의 민주 발전, 공동 번영 그리고 안전 보장 ▲세계의 평화와 협력 등에 대한 이론과 정책의 연구 개발을 설립 목적으로 내걸고 출범한 아태재단은 그동안 끊임없는 구설수와 시비를 몰고 다녔다. 학술단체라기보다는 ‘정치인 김대중’을 위한 조직이라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은 아태재단이 김 대통령의 정치자금을 관리해 왔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 94년 설립 후부터 끊임없는 구설수


▲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이사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아태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엔 ‘동교동의 영원한 집사’로 불린 이수동 전 이사가 이용호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고 김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李亨澤)씨와 민주당 후원회장을 지낸 김봉호(金琫鎬) 전 국회부의장도 모두 이용호씨의 검은 돈에 연루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아태재단이 ‘DJ 비자금 관리본부’라는 세간의 의혹이 밝혀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아태재단이 ‘청와대의 별실’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정두언(鄭斗彦) 부대변인은 “DJ는 과거 야당 시절은 물론이고 수도 없이 비자금과 관련된 의혹을 받은 바 있다”며 “DJ는 과거 야당 시절은 물론이고 집권 후에도 아태재단 등을 중심으로 비자금을 조성, 관리한 꼬투리가 이번에는 잡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아태재단에 의혹의 시선이 가시지 않았던 것은 후원금의 규모와 사용내역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아태재단의 공식 후원금 규모는 설립 후 2000년까지 7년간 총 213억여원. 회원들이 낸 후원회 수입이 133억4300여만원으로 가장 많고 공식 후원행사에서 10만원짜리 쿠퐁을 판 수입이 48억6300여만원을 차지했다. 이밖에 찬조금이 12억6100여만원, 재단 설립시 초대 이사장인 김 대통령이 낸 출연금이 15억400여만원을 차지했다. 재단 설립 첫해인 94년 7억3500여만원에 불과했던 후원금은 95년 33억6500만원을 기록했고 96년 9억300여만원, 97년 10억2400여만원이 걷혔다. 김 대통령 취임 후인 98년에는 28억7000여만원으로 급증했고 99년 23억8000여만원, 2000년 20억3000여만원으로 취임 후에는 후원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게 늘었다. 7년간 평균으로 따지면 연간 30억원 정도의 후원금이 걷힌 셈이다.

이 후원금은 김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金弘業) 아태재단 부이사장 산하의 후원회가 관리하고 있는데 후원회는 연간 10만원의 회비를 내면 일반위원, 연간 500만원의 회비를 내면 운영위원의 자격을 준다. 아태재단은 공익 재단법인으로 등록됐기 때문에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에 따라 후원금을 낸 사람이 영수증을 발급받으면 세제(稅制)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태재단의 후원금 수수(授受)를 둘러싸고 그동안 ‘잡음’도 적지 않았다. 일종의 정치자금 성격으로 후원금이 오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예컨대 지난 95년 서울시 교육위원 선거를 앞두고 아태재단 후원회 부회장으로 있던 김 모 서울시의회 부의장이 교육위원 후보들을 밀어주는 대가로 후원금을 요구했다가 불구속 기소됐고, 같은해 지방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된 서울의 최 모 구청장이 아태재단에 5000만원을 후원금으로 낸 사실이 밝혀져 ‘공천헌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96년 총선 당시에는 유 모씨 등 일부 의원들이 ‘공천 탈락’을 이유로 자신들이 냈던 후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당시 공천 탈락 의원들은 아태재단에 3000만~5000만원의 후원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고, 일부 의원들은 1억원, 2억원씩의 후원금 반납 요구도 했다.


● 김 대통령 취임 후 후원금 급증

아태재단은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도 후원인의 밤 행사를 열어 소속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걷을 방침이었는데 후원금 강제 할당에 대해 잡음이 일자 후원회 행사를 무기 연기하기도 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아태재단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공식적인 후원 행사는 자제해 왔지만 대신 아태재단 전·현직 간부들의 ‘개인 비리’가 심심치 않게 터져 나왔다. 예컨대 지난 99년 지방선거 당시 아태재단 후원회 김영래 전 중앙위원이 장흥군수 로비 대가로 3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고, 같은해 7월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이영우 아태재단 미주지부 이사가 경기은행 퇴출 저지 로비자금으로 1억원을 수수한 것이 밝혀져 구속됐다. 당시 김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영작(李英作) 아태재단 미주지부장도 경기은행 퇴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검찰은 수사를 하지 않았다.

또 2001년 12월에는 황용배(黃龍培) 전 후원회 사무처장이 코스닥 등록업체인 S사의 주가조작 혐의와 관련된 금감원 조사를 무마하는 대가로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96년 후원회 사무처장을 맡았던 황씨는 김 대통령 취임 후인 98년 “좋지 않은 일에 개입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아태재단측이 방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권력 핵심층과의 친분 때문에 당시 야당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됐다. 아태재단을 떠난 후 마사회 상임감사를 거쳐 문화관광부 산하 모 골프장 사장을 지낸 황씨는 대통령 가족과 서울 C 교회를 같이 다닌 인연으로 70년대부터 대통령 가족들의 비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99년 옷로비사건 당시에는 신동아그룹 최순영(崔淳永) 회장 부인 이형자(李馨子)씨로부터 남편의 구명 요청을 받고 이희호(李姬鎬) 여사에게 선처를 부탁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아태재단 간부들의 비리 의혹은 최근에는 ‘핵심’을 향해 치닫는 양상이다. 자금관리책인 이수동 전 상임이사가 ‘이용호게이트’에 연루돼 특검에 소환됐고 김홍업 부이사장도 얼마 전 진승현 로비스트인 최택곤(崔澤坤)씨의 구명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샀다.

현재 아태재단은 그동안 제기된 전·현직 간부들의 비리가 단순히 ‘개인 차원’의 비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아태재단이야말로 현 정권 비리의 총체적 실상을 밝힐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라며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아태재단 후원금과 재산 내역에 아직도 의문점이 적지 않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2월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아태재단이 93년 설립 후 작년 7월 현재 명목상 213억원의 후원금을 모았다고 하지만, 이는 결산보고서에 기재된 액수일 뿐 훨씬 많은 돈을 모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평균 후원금 30억원의 용처가 불분명한 데다 작년 7월 현재 재산만도 45억원에 가까워 설립 당시보다 250% 신장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 설립 당시 아태재단이 외교통상부에 신고한 기본 재산은 17억5000만원이 전부. 이후 아태재단은 김 대통령 사저 인근의 토지를 지속적으로 사들였고, 후원금 수입을 통한 금융자산도 늘려 갔다. 2000년 말 현재 아태재단의 재산은 토지 28억9700여만원과 건물 임차보증금 8억2000여만원, 현금 및 현금 등가물 7억6700만원 등 총 44억8500여만원. 부채까지 포함되는 전체 자산 규모는 2000년 말 현재 66억2100여만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아태재단은 비공식 후원금과 은닉 재산이 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대해 말이 안된다며 반박하고 있다. 공식 후원금 외에는 단돈 한푼도 걷은 일이 없으며 연평균 30억원의 후원금 수입으로는 인건비와 연구비 등 재단의 운영자금으로도 풍족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건물을 제외하고는 금융자산으로 20억원의 순부채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아태재단 직원들에 따르면 아태재단은 최근 운영상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이라고 한다. 작년 12월 이사회를 열어 현 정부 출범 이후 자제해온 공식 모금(회원들 상대 쿠퐁 발행)을 재개하기로 한 것도 ‘당면한 재정난 타개’가 이유였다고 한다. 당시 이사회에서 아태재단은 올해부터 연봉제를 도입해 상근 직원 40여명 중 절반 정도를 감축키로 결정하기도 했다. 발족 당시 후원회 직원을 포함해 60여명의 상근 직원을 뒀던 아태재단은 지난 98년 7월 최재승(崔在昇) 의원이 후원회장에 취임하면서 광역시·도의 후원회 지부와 시·군 지회를 폐쇄했고 매년 한 차례씩 열어온 공식 후원회도 없앴다. 당시 중앙 후원회도 상근 조직 20%를 감축했다. 지금까지는 후원 행사 없이 순수하게 회비에만 의존해 재단을 꾸려왔다는 것이 아태재단측의 주장이다. 아태재단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 출범 후 후원 행사를 갖지 않으면서 직원들의 인건비와 건물관리비를 포함해 월 1억원의 경상 운영비조차 마련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아태재단측의 주장을 종합하면 아태재단은 그동안 모은 후원금과 토지 등의 재산을 모두 김 대통령의 퇴임 후를 대비한 신축 건물에 쏟아부었다는 얘기다. 2000년 5월 착공해 작년 12월 22일 아태재단이 입주한 신축 건물은 지상 5층 지하 3층 규모로 전면(前面)을 유리로 까는 등 외견상 고급스럽게 보인다. 5층은 접견실과 김 대통령의 집무실로 돼 있고, 4층은 비서실과 임원실, 3층은 사무처와 대회의실, 2층은 연구실과 도서실, 소회의실, 그리고 지하 1층에는 강의실과 체력단련실이 각각 들어서 있다. 지하 2, 3층은 주차장이다. 연건평은 1489평, 부지는 394평 규모.

아태재단측의 설명에 따르면 부지 중 150평 가량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동교동 사저를 감시했던 경찰의 ‘사찰(査察) 가옥’ 2채가 있던 자리로 원래 경찰공제회 소유로 돼 있던 것을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시절 재단 후원회가 “재단 건물을 짓겠다”며 매입했다고 한다. 이외에 김 대통령 사저와 인접해 있던 가옥 두 채를 더 사들여 부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 건물 공사장 전경들이 경비


▲ 동교동 178번지 김대중 대통령 옛 사저 옆에 들어선 아태재단 신축 건물. 지하3층,지상5층 규모로 50여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아래 사진은 아태재단 건물내부.
아태재단의 한 관계자는 “전체 부지 매입가는 모두 30억원 가량 들었고 건물 신축 비용은 50억원 정도였다”며 “신축 비용은 은행에서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은 20억원과 재단 후원적립금 30억원 등으로 충당했다”고 밝혔다. 현 정부 출범 후 직원들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직금 정산에만 4억~5억원 가량이 들어가는 등 지출이 많아져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은행 대출까지 받아가며 지은 이 재단 건물은 하지만 공사 기간 중 인근 주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김 대통령과 이웃으로 10수년간 살았다는 주민 김모씨는 “1년 내내 터파기 공사를 하면서 일몰(日沒) 후에도 공사를 계속해 주민들이 항의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며 “특히 전경 2개 중대가 교대로 아무 것도 아닌 공사장 주변을 철통같이 에워싸 주민들이 위축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태재단이 사저 주변 가옥을 매입한 후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낯선 젊은이들이 밤에 빈집에서 술판을 벌여 인근 주민의 빈축을 샀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명인 이수동 전 상임이사가 특검에 소환됨으로써 아태재단을 둘러싼 의혹의 불길은 이제 대통령 본인과 가족에게로 비화될 조짐이다. 이 전 이사는 97년 대선 직전 불거졌던 ‘DJ 비자금’사건 당시 김 대통령의 아들이나 친ㆍ인척을 제외하고 측근 중 유일하게 비자금 계좌를 갖고 있던 인물. 그는 지난해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야당 시절 김 대통령의 지시로 당에 돈을 내려보내는 등 김 대통령의 돈 심부름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만큼 그는 ‘인화성(引火性)’이 강한 인물이다.

야당은 이 전 상임이사 외에 김홍업 부이사장에게도 공세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 대통령 취임 후인 98년 2월 이문영(李文永) 이사장, 오기평(吳淇坪) 사무총장과 함께 부이사장에 취임한 홍업씨는 현재 아태재단의 실질적인 관리자로 알려져 있다. 작년 2월 오기평 이사장이 물러난 후 이사장직이 공석으로 남아 있는 것도 홍업씨가 실질적으로 재단을 이끌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라는 것이 재단 내부의 시각이다.

김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 홍업씨의 대외활동 범위는 그다지 넓지 않다. 아태재단에도 방이 있지만 자주 나오지 않고, 주로 강남역 인근의 개인 사무실에 가 있다. 개인 사무실과 가까운 리츠칼튼호텔의 음식점과 강남의 술집 등에서 그를 봤다는 말이 자주 나올 뿐 그의 ‘대외활동’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홍업씨의 근황에 대해 질문을 하면 “부이사장이 김 대통령 취임 후 지난 대선 때 운영하던 정치기획사 밝은세상도 문을 닫고 동창들과 가끔씩 어울릴 뿐 조용히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야당으로부터 각종 권력형 비리의 배후로 지목받으며 구설수에 휘말려 있다.

그는 최근 이수동 전 상임이사가 구속되며 아태재단이 ‘비리의 온상’으로 지탄받는 상황에서도 별 동요없이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수동 전 상임이사의 사퇴와 이용호게이트 연루 사실이 언론에 터져나온 지난 2월 21일 저녁 강남의 한 신장개업 카페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목격되었다. 당시 술집에 있던 목격자들은 “홍업씨가 밝은 표정이었다”며 “머리를 짧게 깎은 젊은이들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고 말했다.

아태재단이 과연 일해재단의 전철을 밟으며 해체의 운명을 겪을 것인가. 향후 아태재단의 운명은 퇴임 후 김 대통령의 위상과 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아태재단의 조직과 사람들

학술지 펴내고 일반인과 대학생 상대 강좌
임동원 특보 등 현정권 굵직한 실세들 거쳐가

아태재단 신축 건물에는 ‘Kim Dae-Jung Peace Foundation’이라는 영문 표기가 있다.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영문 이름에서부터 김대중 대통령 개인을 위한 조직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풍긴다.

지난 92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 대통령이 정계 복귀의 발판으로 설립한 아태재단은 정치적 배경에서 알 수 있듯 김 대통령의 측근들과 ‘정치적 동지’들이 많이 관여해 왔다. 지난 2월 25일 한나라당은 논평을 통해 아태재단을 ‘한다 하는 실세를 배출한 최고의 장외 권력집단’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아태재단 조직은 이사장과 부이사장, 사무총장, 사무부총장 등을 두고 있다. 실무 부서로는 연구실, 기획실, 교육실, 국제교류실, 출판도서실, 행정실 등의 기구가 있고 별도의 후원회를 두고 있다. 또 부설 기구로 사무부총장 산하에 아태평화아카데미, 민족통일문제연구소, 아시아태평양 민주화문제연구소 등 3개의 교육 및 연구소가 있다.

아태재단은 공식적으로 학술연구 단체인 만큼 평상시 이와 관련된 일이 주업무다. 매년 6월과 12월 학술지인 ‘평화논총’을 발간하고 있고 매월 ‘평화포럼’이라는 소책자를 낸다. 또 부설 아태평화아카데미와 아태청년아카데미에서는 각각 일반인과 대학생을 상대로 강좌를 열고 있는데 연간 300~500명이 수강을 했다고 한다. 94년 9월 개설된 아태평화아카데미에는 한반도 통일환경, 남북한 통일정책,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현실 등 재단의 학술 연구 목표와 관련된 총 30여개의 강좌가 준비돼 있고, 아태청년아카데미는 연간 2개 기수를 뽑아 통일정책과 관련된 강좌를 진행한다.

아태재단의 이사진은 최근 사퇴한 이수동 전 상임이사를 포함해 모두 8명. 김홍업 부이사장과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장행훈(張幸勳) 사무총장(아태평화아카데미 원장 겸임), 조찬형(趙贊衡) 전 의원, 한정일(韓貞一) 건국대 교수, 그리고 동교동 비서 출신인 남궁진(南宮鎭) 문광부 장관과 설훈(薛勳)·최재승 의원(후원회장 겸임) 등이다. 이사장의 경우 초대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맡았고 이후 김 대통령의 민주화 동지인 이문영(李文永) 교수(현 경기대 석좌교수)가 2대 이사장을, 오기평 전 사무총장이 3대 이사장을 맡았다. 작년 2월 오기평 이사장이 세종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현재 이사장직은 공석이다.

아태재단의 돈줄을 관리하는 후원회장은 이동진(李東鎭) 전 국회의원을 거쳐 오유방(吳有邦) 전 의원과 최재승 의원으로 이어져 왔다.

현 정부에서 일했던 인사 중 아태재단을 거쳐간 인물은 많다.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보의 경우 지난 98년 작고한 조영환(曺瑛煥) 초대 사무총장(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의 뒤를 이어 2대 사무총장을 지냈고, 신건(辛建) 국정원장은 아태재단 서울시지부장, 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는 사무부총장을, 박태영(朴泰榮)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후원회 중앙위원회 초대 의장을 지냈다. 이강래(李康來) 의원과 나종일(羅鍾一) 영국대사, 김상우(金翔宇) 국제안보대사 등은 재단 연구위원을 지냈다.


● 이희호와 ‘사랑의 친구들’

급성장 건설업체 회장이 후원회장
이수동씨가 운영이사 맡는 등 의혹의 눈길

아태재단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나라당은 영부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공세도 펼치고 있다. 지난 2월 21일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명예총재를 맡고 있는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이 지난 4년간 90억원을 모금하는 등 비정상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며 “모금 규모와 지출 내역 등을 투명하게 밝힐 것”을 요구했다. 남 대변인에 따르면 ‘사랑의 재단’은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가 운영이사를 맡는 등 이런저런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아태재단과 마찬가지로 해체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98년 8월 설립된 ‘사랑의 친구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단체로 결식아동을 도와주기 위한 ‘사랑의 바자 한마당’ 행사를 비롯해 ‘사랑의 떡국 나누기’ ‘공부방 돕기 운동’ 등의 자선사업을 벌여 왔다. 결산서에 나타난 이 단체의 수입금은 지난 98년부터 2001년까지 총 90억8600여만원(연도별 이월금을 합할 경우 111억6000여만원). 각종 기업체들로부터 물품을 기증받아 판매한 수입금이 79억1000여만원이고 후원회원들로부터 거둔 후원금이 5억6900여만원, 운영위원과 이사들로부터 걷은 회비가 1억2600여만원 등이었다.

한나라당은 이 단체의 성장 배경에는 특정 업체들이 버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나라당 임인배(林仁培) 의원은 지난 2월 21일 국회 대정부질문 원고에서 “‘사랑의 친구들’ 설립 이후 이사 및 후원회원 명단과 이들이 낸 돈의 액수를 밝힐 것”을 요구하면서 “지난 98년 이후 급성장한 건설업체 B사의 회장이 ‘사랑의 친구들’의 이사 겸 후원회장”이라고 주장했다.

‘사랑의 친구들’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청와대측은 “이희호 여사는 대통령 영부인으로서 이 단체에 이름만 걸어놓고 있을 뿐 실제 운영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태재단 연혁

▲1994.1.5 재단법인 아시아ㆍ태평양 평화재단 외무부 등록. 초대 김대중 이사장, 조영환 사무총장 취임.

▲1994.7.20 재단 후원회 발족. 초대 후원회 회장 이동진 의원 취임.

▲1994.12.1 아태민주지도자회의 창립총회 개최 및 상설 기구화.

▲1995.2.2 제2대 임동원 사무총장 취임.

▲1995.2.10 재단법인 아태평화재단으로 법인명 변경.

▲1997.2.11 제2대 오유방 후원회장 취임.

▲1997.12.19 김대중 이사장 대통령 당선.

▲1998.2.23 ?제2대 이문영 이사장, 제3대 오기평 사무총장 취임. 김 대통령 차남 김홍업씨 부이사장에 취임.

▲1998.7.20 제3대 최재승 후원회장 취임

▲1999.12.14 제3대 오기평 이사장 취임

▲2001.2 오기평 이사장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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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6 16:11
2
0
58
785
흠...!
02.06 16:11
0
0
22
784
구름거사
02.06 16:09
11
0
179
783
흠...!
02.06 16:08
1
0
45
782
오!교주님
02.06 16:07
2
0
34
781
북핵
02.06 16:07
1
0
32
780
t삼가자
02.06 16:07
1
0
47
779
02.06 16:05
1
0
29
778
오!교주님
02.06 15:57
3
0
93
777
술래
02.06 15:56
1
0
65
776
지금우리
02.06 15:54
16
0
249
775
전쟁
02.06 15:53
3
0
58
774
오!교주님
02.06 15:53
2
0
29
773
오!교주님
02.06 15:49
6
0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