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4 언론 징벌적 손배 반대

"박근혜 때 징벌적 손배 있었다면? 국정농단 취재 아찔"

[창간21주년 기획 논쟁 /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 반대]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21.02.22 07:11최종 업데이트 21.02.22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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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포털사이트까지 징벌적 손배 대상으로 한다면 빈대 몇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셈이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언론의 권력 감시 위축 등 부작용을 우려했다. ⓒ 이희훈

 
"박근혜 정권 때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었다면 언론이 국정농단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었을까? 아찔하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한겨레 출신)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에 언론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면서도 "선의의 오보까지 처벌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자들을 엄청나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17일 한국기자협회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강하게 반대 의견을 표했다. 김 회장이 소속된 한국기자협회뿐만 아니라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대다수 언론단체도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2월 초 민주당은 '언론개혁 6개 법안'을 발표했다. 그 중 윤영찬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가장 뜨거운 감자다. 이른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불리는 법안이다.
 
법안에는 "정보통신망 이용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 또는 불법정보 생산·유통으로 명예훼손 등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손해를 입힌 이용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법원은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결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즉 정보통신망 이용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문제가 될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할 수 있도록 정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용자'의 범위에 1인 미디어, 유튜버, SNS 사용자뿐만 아니라 언론과 포털사이트까지 포함시키겠단 방침이다.
 
김 회장은 "윤영찬 의원 법안은 지난 2020년  9월 법무부가 내놓은 상법 개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켜 결국 민주당에서도 언론계 여론을 반영해 접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라고 상기시켰다. 이어 "그때 우리가 대안으로 냈던 게 정필모 의원 법안에 담겨 있다. 가짜뉴스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곳이 1인 미디어와 유튜버이니 이들을 핀셋으로 발본색원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하자는 것이었다"며 "언론과 포털사이트까지 그 대상으로 한다면 빈대 몇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아래 김 회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셈"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생긴다면 기자들이 위험한 기사를 쓰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자연스레 권력에 대한 감시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 이희훈

 
- 민주당 '언론개혁 6개 법안' 중 핵심은 윤영찬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다. 이른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인데, 한국기자협회는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윤영찬 의원 법안은 지난해 9월 법무부가 내놓은 상법 개정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켜 결국 민주당에서도 언론계 여론을 반영해 접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그때 우리가 대안으로 냈던 게 정필모 의원 법안에 담겨 있다. 가짜뉴스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곳이 1인 미디어와 유튜버이니 이들을 핀셋으로 발본색원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하자는 내용이었다. 언론과 포털사이트까지 그 대상으로 한다면 빈대 몇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셈이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엔 결정적 결함이 있다. 이중처벌이고 과잉입법이란 것이다. 우리나라엔 언론중재위원회가 있고 이후 민·형사 소송이 모두 가능하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만드는 건 맞지 않다. 그리고 '악의적 가짜뉴스'라는 걸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종북이나 친일파로 낙인찍을 경우 이것이 사실적시인지, 의견인지,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선의의 오보'도 많이 있잖나. 저스티스 미스테이크(justice mistake)."
 
- 재판에서 위법성 조각사유가 발생하는 보도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특히나 요즘 재판에선 위법성 조각사유마저도 잘 인정되지 않는다. 4년 전 국정농단 때 열심히 취재해 문화계 비리 의혹 기사를 썼던 기자가 있었다. 오보로 드러나긴 했는데 (위법성 조각사유가 인정되지 않아) 민사로 7500만 원을 배상했고 형사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적용된다면 어떤 기자가 권력을 감시할 수 있겠나."
 
- 오보와 그로 인한 악성댓글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는 피해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갈수록 그 심각성이 높아지고 있다.
 
"악성댓글은 사실 언론의 책임보다는 포털사이트 등에 대한 규제와 관련된 내용이다. 가짜뉴스에 대해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법과 제도로 규제할 필요성에 공감한다. 가짜뉴스로 인해 언론 신뢰도가 추락하는 상황에서, 언론 역시 가짜뉴스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기자협회도 정필모 의원 법안으로 대변되는, 핀셋으로 가짜뉴스의 발원지만 발본색원할 대안을 냈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논의하지 않고 또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회귀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 발본색원의 대상으로 1인 미디어, 유튜버를 말씀하셨는데 그들 중 긍정적 역할을 하는 이들도 있다. 반대로 언론도 긍정적 역할을 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언론만 징벌적 손해배상제 대상에서 빼야한다는 주장으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언론은 그래도 게이트키핑이 작동하고 있다. 기자가 기사를 쓰면 부장·국장의 확인을 통해 최소 2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중요한 기사는 더 많은 단계를 밟는다. 1인 미디어와 유튜버는 그렇지 않다보니 훨씬 더 빈번하게 가짜뉴스가 생산된다. 이를 먼저 규제하며 그 효과를 지켜봐야 하는데 기존 언론까지 한 번에 다 포함시키면 언론계의 반발만 불러올 뿐이다. 또한 이는 표현의 자유와도 연관된 문제다. 일선 기자들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생긴다면 기자들이 위험한 기사를 쓰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논란이 될 만한 제보는 아예 처음부터 취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적 약자가 기댈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자연스레 권력에 대한 감시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언론 피해자에 대한 사법부의 현실적인 법적용 필요"
  

"입증을 위해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은데, 취재원 보호는 기자 직업윤리의 핵심 아닌가."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 이희훈

 
- 현재로선 언론보도 피해자에 대한 구제책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언론중재위원회나 소송을 거쳐도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법원 판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동안 법원이 관대했던 거다. 현행법을 제대로 적용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 이야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언론 스스로의 자성과 성찰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 4년 전 국정농단 때 굉장히 높았던 언론 신뢰도가 지금 왜 이렇게 됐는지 언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언론의 자성과 성찰, 그리고 사법부의 현실적인 법적용이 필요하다."
 
- 윤영찬 의원 법안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손해배상 조건으로 삼고 있다. 이전 정청래 의원 법안엔 '악의적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를 기준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기준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를 막겠다는 주장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정청래 법안의 '악의적'이란 문구에 대해서도 해석이 다양했고 그 규정이 모호하단 지적이 나왔다. 거기에 '중대한 과실'이 더해져 선의의 오보까지 처벌할 수 있는 윤영찬 의원 법안은 기자들을 엄청나게 위축시킬 것이다."
 
- 윤영찬 의원 법안은 고의 또는 중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손해를 입힌 자'에게 지도록 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입증을 위해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은데, 취재원 보호는 기자 직업윤리의 핵심 아닌가. 특히 기밀문서나 북한 관련 보도의 경우 어떻게 취재원을 공개하겠나."
 
- 언론 신뢰도가 낮게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선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확증편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들 사이에 '정파적이지 않은 기사가 과연 팔리냐'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다보니 가짜뉴스까진 아니더라도 자꾸 덧칠하는 기사가 나온다. 본질은 30인데 60, 70, 80을 덧칠해 확대·왜곡하는 기사가 나타난다. 뉴스 생산자인 언론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책임이 있다.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런 뉴스에 또 열광한다. 소비하는 사람이 그러한 뉴스에 몰리고 그럼 언론은 더 자극적인 기사를 쓰며 악순환이 반복된다. 마치 불량식품이 잘 팔리니 계속 생산되는 이치와 같다." 
 
"문재인 정부 언론개혁, 정책이 없는 게 정책"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의도는 딱 하나다. 언론이 미운 거다. 징벌이란 단어 속에 그런 심리가 반영돼 있는데 응징을 위한 감정으로 법을 만들어선 곤란하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 이희훈

 
- 그러한 진단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저는 규제나 처벌도 중요한 만큼 장려와 지원도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기자들의 사기가 뚝 떨어졌다. 언론사 내 이직이 아니라 아예 다른 직종으로 떠나고 싶다는 기자들이 굉장히 많다. 지난해 한국기자협회 창립기념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기자에 대한 만족도가 50% 아래로 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언론 공약을 보면 굉장히 좋은 게 많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회단체가 1월 초에 언론 공약을 이행하라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 이야기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경우, 지금 180석을 가진 민주당이라면 당장이라도 추진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MBC·EBS 사장직을 놓고 소용돌이가 벌어지지 않나. 
 
지역신문발전지원 특별법은 여전히 특별법에 머물며 상시법으로 전환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관련 예산이 400억 원이었는데 지금 85억 원에 불과하다. 또 미디어개혁위원회를 만들어 그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언론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 역시 계획조차 없다. 기자실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 때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라는 아주 획기적인 안이 나왔다. 정권 말기였고 언론과 소통이 안 된 상황에서 나온 안이라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지만 제도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 최근 검찰 기자실 문제도 있었지만, 이 사안은 언론과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 기자실 제도에서 브리핑룸 제도로 전환하는 게 맞는 방향인데 그러려면 카르텔로 묶여 있는 언론보다 청사의 주인인 정부가 조치를 내놔야 한다.
 
지금 정부는 '정책이 없는 게 정책'이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언론개혁에 손을 놓고 있다. 정부·여당이 이런 것들부터 챙기며 뉴스의 선순환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만 이야기하니 답답할 뿐이다."
 
- 실존하는 피해를 막고 낮은 언론 신뢰도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선제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현존하는 문제를 시장 원리에 맡겨두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해선 분명히 구제책이 있어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지금의 법과 제도로 제어할 수 있다고 본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의도는 딱 하나다. 언론이 미운 거다. 징벌이란 단어 속에 그런 심리가 반영돼 있는데 응징을 위한 감정으로 법을 만들어선 곤란하다. 보수 지지층보다 진보 지지층이 훨씬 더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근데 정권이 바뀌었을 경우를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박근혜 정권 때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었다면 언론이 국정농단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었을까? 누가 권력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고 용감하게 뛰어들 수 있겠나."
 
- 바람직한 언론개혁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언론개혁엔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만 다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하는지 답답하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개혁위원회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위원회 안에 여러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개혁 방안을 하나하나 실천하면 된다. 앞서 말씀드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겠지만, 꼭 진행했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에 언론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 언론의 자성과 성찰이 먼저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한편 뉴스를 소비하는 분들도 확증편향을 경계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 뉴스 소비자를 위한 좋은 뉴스를 골라보는 법,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굉장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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