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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철 후보의 지역구에 살고 있는 김태섭 기자회원이 입을 열었다.

-이사철후보 집중낙선운동에 동참하면서 결과를 주목했었다. 이사철 지역구에 산다는 것이 수치스럽기도 했는데 결과를 보니 뿌듯하더라. 향후 시민단체 차원에서 정치개혁 과제로 인권탄압자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시민운동이 잘해서 낙선율이 높아졌다고는 보지 않는다. 국민들의 낡은 정치에 대한 환멸과 새정치에 대한 열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향후과제물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어떠냐에 따라서 개혁과제가 모아질 것이다. 단, 이번 총선연대 활동의 경우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운동이었다. 인권탄압 등을 향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함께했던 단체들과의 심도깊은 논의를 통해 충분히 준비된 운동으로 가야할 것으로 본다."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조선일보앞 청년진보당 화형식 기사를 보면서 출마자들을 어떻게 연행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총선연대와 사전에 연계고리가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탄압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또 대학생들의 조직력이 총선연대로 모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총선연대가 특정정당이나 정치세력과의 연계를 할 수는 없었다. 운동의 기본이 훼손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마음은 진보적이고 깨끗한 정치세력이 우리 운동의 성과인 과실을 따먹고 원내에 진출하기를 바랬었다. 그분들이 우리를 비판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속내는 그랬다.

대학생들과도 연계노력을 했었지만 학생들의 학내문제, 조직문제 등 때문에 어려웠다. 사실 대학에 가서는 등록금 인하투쟁하지 말고 등록금 철폐투쟁을 해야한다고 말하면서 총선연대와 함께 길거리로 나가자고 주장했지만 어려웠다.

지역감정 금지 서약을 받으러 정당을 찾았을 때다. 난 한나라당을 갔었는데 보좌관이 '허락도 없이 남의 사무실에 들어와 플래카드를 붙이면 어떡하냐'라며 주거침입죄 운운 했었다. 사실 주거침입죄가 맞다. 80년대에는 미문화원, 삼성본관 등에 들어간 학생들을 변호할 일이 많았는데, 이제 그들은 사라지고 내가 불법농성을 하고 있다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웃음)"

-총선연대는 이제 해체될 텐데 향후 총선연대는 어떻게 되는 건가.

"해산은 분명하다. 동시에 거대한 실험이었기 때문에 이 실험의 경험을 이어가기 위해 연대의 틀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어떤 정도로, 어떤 내용의 일을 할 지는 참여단체의 고민으로 확정될 것이다."

-16대 국회 원구성 즈음해서 시민단체의 향방에 대한 열린인터뷰를 한 번 더 갖자.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할 것이다."

-총선연대 취재중에 느낀 것 중 하나가 유인물의 디자인, 내용이 대중적이라는 것이었다. 맨마지막 명동성당에서 박변호사이 읽었던 '유권자들게 드리는 글'은 누가 쓴 것인가.

"내가 직접 썼다. 다른 것은 이태호 정책기획국장이 주로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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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발표후 총선연대 논평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난 그 자리에 없었는데, 아침 회의때 뭔가 논평이 필요하다는 말은 공유했었다. 그 논평은 장원 대변인, 정대화 교수가 썼던 것이다. 대표자회의에서 얘기한 것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안된다'는 정도였다.

내 개인적으로는 서두에 남북정상회담의 의의를 충분히 언급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균형감각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총선연대 운동이 기적같이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작은 부분에서는 이견, 또는 의사소통 부족 등이 있을 수 있다고 봐달라. 다만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크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안된다는 것은 맞다."

-총선연대, 시민운동이 이제는 의견세력에서 정치세력화 되어간다는 주장이 있다. 이번 투표를 안한 사람들은 총선연대나 정치인들을 똑같이 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낙선대상자들의 낙선율이 높았던 것은 참여했던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시민단체의 그간의 공익성을 신뢰해줬던 결과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로 낙인찍은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뒤에 뭐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하기도 했었다. 향후에는 시민단체 본연의 역할에 몰두하면서 앞으로의 개혁과제가 거부할 수 없는 강물로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대중속으로 시민운동이 들어가서 시민사회를 성숙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다. 직업이 변호사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무늬만 변호사 아닌가.(웃음)

"최근 4-5년간 변호사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 사실이다. 변호사도 알고보면 3D업종이다. 남의 시비속에서 평생을 보낸다고 생각해봐라. 난 먹고 살 걱정만 해결된다면 그것보다는 시민운동이 백 번 낫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는 초긴장의 연속이다. 결과가 나오는 날은 겁이 나서 사무실에 못 들어갈 정도다. 만일 긴장하지 않는다면 나쁜 변호사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보람덩어리 아닌가. 현재는 변호사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고, 돌아가더라도 속초 등에 가서 여유롭게 하고 싶다. 이미 변호사로 성공할 나이도 지났다. "

-먹고 살기만 한다면 시민단체 활동가로 살고싶다고 했는데, 먹고살수 있는 시민단체로 만들기위해 고민한 것이 있나.

"처음부터 시민단체를 시작하면 나처럼 다른일 하다가 중간에 뛰어드는 사람들보다는 나을 것 같다. 내가 74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에 갔었는데 그보다 좋은 곳이 없더라. 책읽을 수 있고 밥도 주고... 대학생활을 그냥 그런대로 했다면 아마 서울지검 공안부장쯤 됐을 것이다.(웃음) 시민단체도 희생은 물론 크지만 즐겁게 살려면 살수 있을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월간 인물과사상에서 박대표와 일부 시민단체 사람들이 조선일보에 관대하다고 주장했다는 질문이 올라와 있다.

"내가 거기에 인터뷰한다고 그사람들 장사가 되는가."

이때 참석자들은 대부분 대답했다. "돼죠"
합창과도 같은 대답에 모두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조심하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든, 단체로든 '당신들과는 안한다'고 할 단계는 아니었다"

-게시판 질문 하나 더하겠다. 총선연대의 활동을 훼방놓는 조선일보를 보다못해 "꼭 10만부만 불매운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때 '아직은 때가 아니다'며 만류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힐 수 있는가.

"초기 낙선운동은 칼날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조선일보 등에서는 계속 왜곡보도를 일삼았다. 우린 거기에 분노했었고, 문제삼자는 말도 실제 나왔었다. 그렇다고 언론 반대운동을 할만한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또 그후 조선일보의 태도도 좀 바뀌지 않았나. 조선일보내에서도 이론이 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당시에 분노했던 것 만큼은 사실이다. "

-4.13이후에는 시민운동이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언론운동으로 갈 것이다라는 말이 나왔었는데.

"이 자리에서 이거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당연히 언론개혁도 하나의 이슈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이전에 책을 많이 낸 것으로 안다.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한 개인, 인간이나 집단,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죽음밖에 없다. 만물은 유전하는 것 아닌가. 사회가 스스로 자기개혁능력이 없으면 망한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운동체나 사회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면 자유, 번영도 다 사라진다.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댓가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감시라면 공공사안에 대해 눈을 바로 뜨고 참견하는 것이다.

-총선연대 활동하면서 가족에 소홀하셨을 텐데 ...

"그래도 나는 웬만하면 집에 들어갔다. 새벽에 끝나더라도 집에 가려고 노력했다. 딸이 그새에 엄청 성숙했더라. H.O.T의 강타 팬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총선연대에 나타난 것이다. 종묘집회 때 무용도 하고, 모임도 만들고 하느라고 요즘 바쁘다."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우선 오마이뉴스 기자회원중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좀 더 용기를 내서 시민사회 확산의 전사로서 열심히 뛰자는 말을 하고 싶다. 또 오마이뉴스 네티즌 들도 이번 총선운동에 함께 했다고 생각한다. 기사와 의견달기 등으로 말이다. 다만 앞으로는 오프라인으로 나와서 시민단체를 더 강화시켜 주는 역할도 했으면 좋겠다. 비판은 생명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과제들을 풀어가는데 함께 가주었으면 한다."

박 변호사의 마지막 대답이 끝나자, 인터뷰의 중심역할을 하던 류시민 씨가 마지막 말을 던졌다.

"박변호사는 전임 시민운동가에서 벗어나 약간의 취미생활이라도 즐기기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시민단체에 비판 한마디 할때마다 성금도 한 번씩 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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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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