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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아체 지역은 동남아시아 이슬람의 메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이 곳은 예로부터 동남아시아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되는 주요 통로였고 지금도 여전히 전 주민의 90%를 훨씬 상회하는 주민들이 이슬람 신자일 정도로 이슬람 세가 강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체 지역은 말레이지아나 아체를 제외한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곳이다. 나는 아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어디에서도 술을 파는 곳을 보지 못했다.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아체 주의 수도 반다아체를 방문하던 지난 9월 8일 나는 청바지를 차려 입은 세 명의 이슬람 여대생을 만났다.

메가와티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후 시위 행진을 따라가다 나는 '쭈 아울리아', '쭈 리스나 와띠', '쭈 파트마 하눔'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여대생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사촌 형제로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날 모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슬라 율법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는 이 곳에서 이들은 왜 청바지를 입었던 것일까?

"우리의 원하는 것은 오직 독립일 뿐입니다."

나는 아체인들을 만나면 항상 같은 질문을 제일 먼저 던졌다. 뻔히 같은 대답이 나올 줄 알면서도 정말 이 사람들이 독립을 원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워 계속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당신은 독립을 원하느냐고. 이 여대생들에게서도 결국 같은 대답을 얻었다.

이들이 독립을 원하는 주된 이유는 '평화를 얻기 위해서'다. 아체인들은 지난 26년간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여왔다.

그 과정에서 6천명이 사망하고 15만명이 국외로 추방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들 여대생들은 독립을 달성하는 것만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고 있었다.

"아체 지역의 많은 학교가 불타 버렸어요.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지요.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평화를 원합니다."

쭈 아울리아의 말이다. 그는 반다아체 외곽 다루살람에 있는 한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있다.

"저는 인도네시아 경찰과 군인들이 너무 무서워요. 그들은 우리들을 너무 많이 죽였습니다."

쭈 아울리아의 사촌 형제이고 같은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는 쭈 리스나 와띠의 말이다.

쭈 리스나 와띠의 쌍동이 자매인 쭈 파트마 하눔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자유아체운동(GAM)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대부분의 아체인들은 자유아체운동(GAM)을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독립을 위해 총을 들고 싸우고 있으니까요"라고.

자유아체운동(GAM)은 1976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아체의 독립을 주장하며 인도네시아 정부에 맞서 싸워온 아체인들의 무장조직이다.

자유아체운동(GAM)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들 목소리가 작아지고 표정이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이들 여대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엔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들은 내가 우리밖에 없으니 굳이 작은 소리로 말할 것 없지 않느냐고 말하니까 9월 6일 신원미상의 괴한에게 살해된 사리야 쿠알라 대학의 다얀 다우드 교수의 죽음에 대해 언급했다.

쭈 아울리아는 "아체에서는 자유아체운동(GAM)에 대해 함부로 말하다가는 큰일난다"고 말했다. 쭈 아울리아는 다얀 다우드 교수를 누가 죽였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OTK가 죽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OTK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다시 말해서 신원미상의 인물이다.

나는 그들이 자유아체운동(GAM)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때 긴장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비교적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아체의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두 명의 쌍둥이 자매는 간단하게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으나, 쭈 아울리아가 "이렇게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장래을 꿈꿀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이 때 아이스크림 가게엔 스웨덴의 4인조 그룹 아바의 '아이 해브 어 드림'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이날 나는 이 세 명의 이슬람 여대생과 데이트를 즐겼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나온 후 함께 신문과 필름을 사러 다니고 함께 식사하고 강변을 거닐고 사진을 찍었다. 아체의 어두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해맑은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쭈 아울리아는 헤어질 때가 다 되어서야 자신의 꿈을 내게 말해주었다. "저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미스터 김처럼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하고 싶어요"라고. 그런데 그는 바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아체는 너무 가난합니다. 어떻게 해야 당신의 나라 한국처럼 잘 살 수 있을까요?"라고.

나는 쭈 아울리아의 이 말 때문에 모처럼 20대 초반의 생기발랄한 여대생들과 즐거운 데이트를 즐기고도 무거운 마음을 안고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아체인들은 현재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로부터 경제적으로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1년 예산의 13%를 담당하고 있는 천연액화가스 기업 아룬이 아체 지역에 있지만 아체인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경제적 혜택도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세 명의 이슬람 여대생과 헤어질 때가 다 되어서 나는 이들 세 명이 모두 청바지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온 몸을 이슬람 전통 의상으로 가리고 다니는 보수적인 이 곳 아체의 여성으로서 왜 청바지를 입었는지가.

이들은 왜 청바지를 입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도 평소에는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니지요. 평소에는 롱드레스를 입고 얼굴만 겨우 보이게 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오늘은 메가와티 대통령이 아체에 오는 날이라 바지를 입었어요. 왜냐하면 만약에 시내에서 시위가 벌어져 인도네시아 군경에 쫓기게 되면 잘 달려야 하니까요."

이들 세 명의 아체 이슬람 여대생에게는 죽음이 아주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이 것이 이들 세 명의 아체 이슬람 여대생이 청바지를 입은 사연이다. 그리고 또한 이 이야기는 모든 아체인들이 처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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