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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60~70년대는 냉전에 의한 핵전쟁의 공포 속에, 이러한 위기를 불러일으킨 기성 세대들에게 젊은 세대들이 전에 없던 반항과 풍자를 일으킨 시기다.

젊은이들은 반문명적이며 평화운동 지향자였던 히피들과 전쟁반대를 외치며 조직적으로 사회운동을 해나갔고, 많은 인권운동 단체들과 진보단체들은 이 시기를 기반으로 틀을 잡아가던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이런 기풍을 바탕으로 당시 미국의 오락프로그램들은 5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정치인들과 기득권들을 무참히 때려버렸었다. 닉슨과 카터에 관한 주제는 늦은 밤 토크쇼에서 심심하면 등장했고, 스캔들에 걸린 정치인들은 스탠드 업 코미디언들의 입에서 시쳇말로 '오징어'처럼 '씹혀'버렸다.

▲ 현재 데일리쇼의 진행자인 죤 스튜어트 역시 코미디언 출신
ⓒ 최지민
이런 미국 코미디계의 전통(?)은 유럽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유스러워지고 미국인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미국 민주주의 척도를 나타나는 것처럼 보여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정치성 풍자와 조크는 '저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이런 농담이나 조크를 하는 코미디언들도 지켜야만 하는 몇 가지 불문율이 있으니 인종차별에 대한 것이나 2차대전시 유태인 학살에 관한 농담은 방송에선 절대 금기로 통한다.

이러한 풍자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 제일 유명한 것으로는 95년초에 방영을 시작하여 지금도 미국 케이블티비 방송인 코미디 센트럴(Comedy Central)에서 방영중인 '데일리쇼'(Daily Show)다.

데일리 쇼는 프로그램 시작 당시 미국의 유명한 영화 제작자이자 작가이며 현재 미국과 한국에서 히트한 베스트 셀러 <멍청한 백인들>의 저자 마이클 무어가 제작과 기획을 맡아 미국의 정치제도와 사회를 향해 처절한 '똥침'을 날린 프로그램이다. 이 쇼는 그날의 텔레비전 뉴스들을 모아 코미디와 코멘트 형식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미국에서도 전에 없던 새로운 형식이었다.

한 예로 무어는 데일리쇼의 한 에피소드에서 미국의 정치제도가 얼마나 부패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적이 있다. 그는 워싱턴의 한 로비스트에게 5천달러의 수표를 주면서 법적으로 데일리쇼의 날을 지정하게 해달라게 했었다.

며칠 후 이 농담 같은 제안은 의회 입법회의를 걸쳐 의원들의 의결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어 의회에서 통과가 됐고 행사 전문중계 채널인 CSPN을 통해 법안통과 과정이 방영되기도 했다. 이후 마이클 무어는 한 조그만 마을에서 축하 퍼레이드를 열면서 돈으로 좌우되는 미국 정치의 제도적 문제점을 풍자했었다.

마이클 무어는 1년 동안 이 프로그램의 제작을 맡다가 그만두었지만 그가 시도했던 주류에 대한 비판은 본격적인 시사 코미디 프로그램들의 이정표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미국의 정치판과 주류 사회에 비판과 풍자를 날리던 코미디언들은 9.11 사건을 계기로 대중 언론이 보수로 돌아서면서 점점 고개를 수그리는 모습이다.

여전히 토크쇼와 코미디 프로그램들에서는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가 등장하지만 전보다 많이 자제된 모습이며 부시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은 피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얼마 전 '제리 스프링어 쇼'라는 미국의 저질 토크쇼에서는 게스트들이 부시대통령을 칭찬하자 방청객들과 방송국 스태프들이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얻으며 '부시'를 연발하기도 했다. 마치 2차대전때 나치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이런 현상에는 유명한 언론인들도 어느 정도 자중하는 분위기다. 얼마전 미국 ABC 방송의 유명 앵커인 탐 브로커가 9.11 테러에 대해 사우디 아라비아의 외교장관과 인터뷰 중 부시의 외교정책을 비판조로 말하자 수천통의 항의전화와 광고주의 압력으로 사과멘트를 해야만 했었던 일은 언론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미국에서는 극히 이례적으로 꼽히는 일이다.

이렇게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 보수주의가 팽배해지자 코미디언들은 이제 '알아서 긴다'라고 표현될 정도로 이라크 전쟁과 미국의 부당함에 대해서 침묵해가고 있다.

2년 전부터 모든 출연진들이 유태인 출신들로 바뀐 데일리쇼도 지난 2일 방송에서 이라크 무기 사찰단들을 겨냥해 '1킬로 바깥에서도 잘 보이는 파란색 야구모자를 쓰고 이라크 시골의 빈 창고들을 돌아다니며 뭘 하겠냐'하는 식으로 비꼬는 식의 방송을 내보냈다. 정작 이들의 관심은 이라크 전쟁에 쏠려 있다는 증거다. 미 연예가엔 이제 국익을 위해서는 웬만하면 입을 열지 말라는 불문율이 통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 지난 10월 워싱턴에서 반전 시위를 하는 평화단체들
ⓒ 최지민
미국 내 이런 보수 경향은 많은 양심 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미국이 제2의 경찰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지만, 중간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이긴 공화당의 승리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미국 내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증명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뉴스보다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이들의 위치가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이들에게 당장 국가 정책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없다 해도, 이들이 쇼에서 언급하는 말들은 미국인의 의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뉴욕 타임즈의 작은 기사보다 투나잇쇼(Tonight Show) 진행자인 제이 레노가 말하는 15초짜리 멘트가 더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은 이미 미국인들 사이에는 잘 알려진 사실.

이라크와의 전쟁을 앞둔 지금, 지금과 같이 미국의 코미디언들과 언론이 계속 침묵을 지킨한다면 미국을 바꿀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는 것이 세계인들과 양심 있는 언론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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