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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을 1주일여 앞두고 미국의 북한 미사일수출 선박 나포 사건이 발생,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스커드 미사일(scud-missile) 12기를 선적한 북한 화물선이 인도양에서 미 해군에 의해 나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미국발 북풍'이 외신을 타고 국내에 상륙했다. 16대 대통령선거일 'D-8'의 상황이다.

정치권은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분출한 반미(反美) 정서와 맞물린 대선정국에 돌출한 이 '돌발변수'를 계기로 국민 여론이 어디로 움직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 북한 화물선 억류 해제

미국은 예멘 근처 인도양 공해상에서 나포했던 북한 화물선 소산호를 예멘 정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11일 풀어줬으며 이 화물선은 스커드 미사일 15기를 실은 채 예멘으로 다시 출발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이 이 선박을 정지시키고 수색할 권한은 갖고 있지만 화물을 압류할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플라이셔 대변인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화물을 압류할 분명한 권한은 없다"면서 "이 상선은 풀려나고 있다"고 말했다.

석방 결정에 앞서 미국의 딕 체니 부통령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과 각각 전화통화를 했다. 플라이셔 대변인은 "예멘이 이 미사일들을 어느 국가에도 양도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미국에 했다"고 밝혔지만 미국이 외교경로를 통해 예멘에 미사일 인도 포기를 설득했는 지를 밝히지 않았다.

/ 연합뉴스
정부는 일단 이번 사건에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12월 10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별관에서 현판식을 가진 외교통상부는 하루가 다 가도록 이 시각 현재 공식논평을 내지 않고 있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매주 목요일 열리는 국가안보회의(NSC) 실무회의가 당겨서 열릴 조짐도 안보인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지금 정부는 이 사건 대한 어떤 해석은 물론 입장 표명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전제하고 "다만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이 왜 지금 시점에 이 문제를 이슈화하고 나섰는지가 미묘하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한미간 정보공유 여부에 대해서는 "반미정서 등을 논의키로 한 2+2회담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자연스레 미사일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한한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방부 부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북한 미사일 건을 보고했다는 보도와 관련해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이를 부인했다.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오기 전에 한나라당은 12월 11일 오전에 이미 서청원 대표 주재로 별도의 긴급전략회의를 갖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을 현 정권과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안보불감증'과 대북인식을 공격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남경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마구 퍼주기식의 투명성 없는 지원이 총알이 돼 돌아올 것이라는 우리당의 우려가 사실로 밝혀진 것"이라며 "북한을 평화협력의 대상으로만 보는 노 후보와 민주당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우선 '사실관계 확인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당당한 한·미 관계'와 대북 화해정책을 강조하고 있는 노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해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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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사건이 전적으로 미국의 정보와 외신에 의존하는 등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반미감정'과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킬 소지도 있다. 그럴 경우 오히려 득표에 득이 될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번 사태의 자세한 사실 관계가 먼저 확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이번 사건을 가지고 대선에서 국민의 냉전의식, 반북의식을 부추기려는 어떤 세력의, 어떤 시도도 단호히 규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노당은 이어 미국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번 북한 선박의 항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이미 11월경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지금에 와서야 나포한 이유가 무엇인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혹시 미국이 이번 건을 가지고 한국 대선에 개입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광범위하게 일고 있는 미국규탄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시도는 아닌가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경우 관련 정보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초기부터 '미국의 음모'설(設)이 부상하고 있다. 이번의 '미국발 북풍'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반미 촛불'과 대선 열기를 한꺼번에 잠재울 수 있는 메가톤급 위력을 가진 태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를 택해 북한 선박을 덮쳤다'는 점에서 그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의도한 만큼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미풍'(微風)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이번 사건은 미국의 정보기관과 국방부가 일부 언론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수출 정보를 사전에 흘린 다음에 전격적으로 북한 선박을 나포했다는 점에서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북한의 행태에 대한 '물증'을 확보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타이밍 때문에 한국내 반미감정이 확산되고 북한의 위협을 과소평가해 주한미군 철수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대한 미국의 대응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절묘한 타이밍'이 노리는 또 다른 측면은 북한 뿐만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북한, 파키스탄, 중국' 제하의 <워싱턴타임스>지 12월 9일자 사설의 다음과 같은 대목이 눈에 띈다.

"핵무기로 로스앤젤레스(LA)를 잿더미로 만들겠다고 위협한 중국 장성이 12월 9일부터 워싱턴을 방문한다. 중국의 정보 담당 참모차장 시옹 구앙카이 장군은 파키스탄과 북한간의 탄도 미사일 교환을 위한 핵무기 거래에 있어 종범이 아니라 주범이라는 증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올 봄 시옹 장군은 이슬라마바드에서 파키스탄과 '공동 군사 생산' 및 '공동 방위' 협정을 맺었다. 클린턴 시절 이후 미-중 국방회담에 대해 거부 반응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미 국방부가 내주 시옹 장군과 그 일행을 초청할 것인지 이라크를 제외한 나라들에게는 의심스럽다."

북한 미사일 수출 정보를 맨 처음 '특종보도'한 언론도 <워싱턴타임스>였다. 이 신문은 지난 12월2일자에서 "북한이 최근 예멘에 미사일을 추가로 수출했다"고 처음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 정보당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2주 전 북한의 남포항에서 미사일을 실은 배가 예멘으로 향했으며 이는 수주간 정보당국의 감시대상이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북한은 미사일과 함께 스커드미사일 연료 산화물로 쓰이는 화학물질인 질산이 든 용기도 선적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 신문의 보도는 미국이 미사일 부품을 적재하고 북한을 출발한 선박을 감시하고 있다는 '경고'였던 셈이다. 북한은 올 초에도 예멘에 미사일을 수출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8월 제재조치의 일환으로 북한의 국영기업인 창광신용과 미국 정부와의 거래 및 미국과의 무역면허 취득을 금지한 바 있다. 이미 미사일 수출 선박이 나포된 경험이 있는 북한 당국이 이런 미국의 '경고'와 감시능력을 몰랐을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미국에 의해 선박이 나포될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되는 데도 북한 당국이 항해를 '강행'하도록 한 점이 의미심장하다. 즉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으로 보지만, 북한은 '수출물자'임을 주장하면서 줄곧 미사일 문제를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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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등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미국 당국은 미사일 부품을 선적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을 추적해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이 선박을 직접 검색하지 않고 24시간 전에 스페인 정부에 정보를 제공해 스페인 군함을 통해 '대리 나포'하게 한 것이다.

이 스페인 군함은 인도양에서 실시되고 있는 '항구적인 자유'(Enduring Freedom)라는 이름의 대테러훈련에 참가중인 스페인 해군의 프리깃함으로 인도양 소코토라 섬 동쪽 해상에서 문제의 화물선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이 지역으로 이동중이었다.

스페인 해군은 선명이 '소산(Sosan)'호인 문제의 화물선을 북동아프리카에서 동쪽으로 965㎞ 떨어진 인도양에서 나포한 뒤에 미 해군에 폭발물 처리반(EOD) 지원을 요청해 현재 전문요원들이 선체를 수색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화물선에는 선장 등 21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미 국무부의 애미 블랙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다국적 수색팀에 의한 수색결과 북한산으로 믿어지는 스커드미사일이 발견됐다"면서도 "선적화물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이 선박의 깃발은 '캄보디아' 국기를 달고 있으나, 나라 이름은 지운 배인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미국 당국이 어디로 향할지도 모르는 이 북한 선박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덮친 것은 미묘한 해석을 낳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스페인 정부가 먼저 터뜨린 것에 항의할 정도로 미국 정부도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왜냐하면 자칫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것을 미국 정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정보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 공화당 정부는 국익을 실현하기 위한 '뚜쟁이 매체'로 <워싱턴타임스>를 곧잘 활용해 왔다"면서 "그런데 이번에는 CNN을 통해 신속하게 전파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그 '절묘한 타이밍'과 '의도'가 너무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선거와 관련해서는 '미풍'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워싱턴타임스>는 지난 11월 18일에도 익명의 고위관리의 발언을 인용해 '부시 행정부는 한국의 차기 대선 승리자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철폐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조선일보>·<동아일보>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 신문 보도를 크게 인용 보도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워싱턴타임스> 기사의 일부이다.

"한 미국 고위관리가 밝히는 바에 따르면, 부시행정부는 내년 1월 남한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어떤 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며, 다음 달 있을 대선 승리자가 부시의 강경 입장에 좀 더 협조적인 동시에 물러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철폐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신문이 전하는 미국 고위관리의 기대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지난 몇 주간 한국 사회에서 분출된 '반미정서'는 과거 대학가에서만 표출된 '반미감정'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북한 선적 나포 전문가 분석]

"한국의 반미, 일본의 독자적 북일수교 의식한 행동"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정당성에 힘을 실어줄 것"


미국이 10일 스커드미사일을 실은 북한 화물선을 나포했다는 외신 보도와 관련,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 화물선이 잡힌 예멘 앞바다는 미국 입장에서 극히 민감한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의 반미정서나 북일 수교 교섭 등을 감안, 사건이 터져나온 시점에 주목하며 남북관계 위축을 우려하기도 했다.

▲ 외교안보연구원 김성한 미주연구부장 직무대리 = 북한 미사일을 전통적으로 수입한 것으로 알려진 '고객'은 예멘과 시리아, 리비아, 이란 등이었다.

이중 예멘은 올해 초 북한과 미사일 수출 계약을 한 사실이 밝혀졌고 8월에는 북한 회사가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또 북한 화물선이 남포항을 출발했을 때 이미 미국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이에 대해 경고한 바도 있다. 미국이 2∼3주 전부터 경고를 해가면서 어떤 음모를 꾸미기는 힘들다.

문제는 북한 화물선이 나포된 예멘 앞바다가 미국으로 봐서는 극히 민감한 지역이라는 데 있다. 지난 10월 프랑스 대형 유조선 랭부르호에 대해 테러가 가해진 곳도 예멘 앞바다였다.

또 미국은 아프리카 동부 지역 국가들, 즉 소말리아나 케냐 등에 알카에다 세포 조직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 대량살상무기나 그 운반체인 미사일이 들어가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이라크에 미사일이 들어가는 것보다 더 민감한 문제다.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은 이를 테러와 연계해서 볼 가능성이 없지 않다.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김창수 정책실장 =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수출은 새로운 사실이 아닌데 이 시점에서 사건이 터졌다는 점이 의심스럽다.

이미 아미티지 보고서에는 미국이 북한 미사일 수출 대응책으로 공해상에서 배를 검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이 하필 이 시점에서 북한 배를 공해상에서 나포한 것은 한국의 반미감정과 일본의 독자적인 북일 수교 등을 의식한 행동 아닌가 싶다.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협상된 바 있는데 여기서 해결책을 찾지 않고 극한 대결로 치닫는 걸 보니 2003년 북미관계 위기설이 현실화되는 징후로 보여 불안한 측면이 있다.

▲ 외교안보연구원 장동철 안보통일연구부장 = 현재로선 외신 보도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미사일을 하나의 수출상품으로 보고 이를 중단하려면 미국이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이를 지역분쟁이나 테러와 연계라는 측면에서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에는 협상이 있었지만 부시 행정부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

미국 학계 일부에서는 해상 봉쇄 주장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국내 상황만 보고 이를 음모론적으로 보는 데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북한 핵 문제가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의 결의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 한국국방연구원 백승주 북한실장 = 미사일 부품을 선적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선박 나포 사건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정당성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동중국해상에서 격침된 북한 경비정이 마약 운반선이라고 밝힌데 이어 이번 사건이 터져 미국과 일본이 대북정책에서 일종의 공동전선을 펴고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때문에 앞으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선택의 폭이 줄게되고 이에 따라 대북정책의 주도권도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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