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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LA 합동취재반>

"여기는 미국이야 미국, 여기가 어디라고."
"병신 만들어 한국 보내."
"백악관서 냉대 받았으면 돌아가지 왠 소란이야."
"이놈들 잡아서 경찰에 넘겨." (이상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의 고함소리)

평화롭던 촛불시위장에 갑자기 소란

9일 오후 6시3분(현지시각) LA다운타운 로욜라법대 맞은편 윈저 홀 양로원 주차장. 사방에 촛불을 켜고 손에 손에 촛불을 든 시민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촛불시위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재미 6.25참전동지회, 재향군인회, KLO 8240 유격대 회원 등 40여명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이들은 손에 피켓을 들고 "반미감정 획책 즉각 중단하라" "주한미군 철수 운운은 이적행위다" "미국은 우리의 혈맹 반미시위 왠말이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LA 촛불시위에 모인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며 두 여중생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 최지민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밀어닥치기 시작하더니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 여중생 범대위 방미투쟁단(단장 한상렬 목사)일행을 안쪽 철조망 가까이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양측간 몸싸움은 이때 일어났다. 저항을 하지 못한 촛불시위대가 일방적으로 밀렸다. 그러자 군복을 입은 참전동지회 등 회원들은 "여긴 한국이 아니야"라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극도로 흥분한 동지회원들중 일부는 촛불을 짓밟아 끄려고 시도했다. 그때 백악관 항의방문단 남가주후원회 노길남씨가 나서 "그러면 민주적으로 하자"며 "우선 참전동지회 김봉건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제의했다.

6.25참전동지회 김봉건 회장은 "우리는 시위를 반대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견을 전하기 위해 왔다, 여중생 사망은 안타깝다(동족으로서), 하나의 교통사고로 생긴 원인 가지고 반미시위를 하면 되느냐, 이것은 한-미간 해결해야 한다." (그때 동지회원중 한명이 불쑥 "미국에 살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라며 고함쳤다.)

경찰 출동, 앰뷸런스까지 대기

이로부터 얼마뒤 경찰이 출동했다. 만일의 불상사에 대비, 앰뷸런스까지 대기시킨 한인경찰 남모씨는 "떨어지라(seperate)"고 외치며 참전동지회원들과 방미투쟁단 일행간의 몸싸움을 중지시켰다. 이 때가 오후 6시25분. 사방은 어두워졌고 촛불은 시위장을 더욱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촛불의식이 시작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10여분동안 북과 꽹과리의 경쾌한 우리가락이 행사장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ADTOP6@
이어 촛불시위 행사를 주관한 남가주후원회측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런 광경은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이다. 우리 민족이 걸어왔던 아픔이다. 우리 뒤에 계시는 분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우리들의 부모님이다. 똑같은 아픔과 슬픔을 놓고 한쪽에서는 반미시위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다. 우리 민족이 깨부셔야될, 우리 어깨에 짊어진 시대의 과업이다."

갑자기 촛불시위장이 숙연해졌다. 시민들 사이에서 흐느낌도 들려왔다. 1백여명의 시민들은 저마다 손에 촛불을 들고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했다. 당초 예상 보다 촛불시위 참가자 숫자는 턱없이 적었지만, 참가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인타운에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일가족이 온 이모(35)씨는 "뭔가 해야하겠다는 것 보단 두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게 우선이었다"며 촛불을 높이 들었다.

6.25참전동지회 등 일행들은 오후 6시40분쯤 "알릴 것은 다 알렸다"며 "반미감정 획책하는 너희들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의 권유에 못이겨 철수했다.

아케디아에서 온 최모(50대 중반)씨는 "촛불시위는 반미시위가 아니다"며 "단지 죽은 여중생의 넋을 기리고 불공정한 SOFA가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모를 따라 동참한 이나라(11)양은 "엄마를 통해 소식 들었고 참 슬펐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유동수(27)씨는 "친구로부터 여중생 사건을 알았다"며 "미국서는 자유민주 정의가 보장되는데, 왜 제3국에서는 무시되는지 분노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반전평화단체인 IAC에서 나온 미국인 루디 피사니는 "한국전쟁 당시 미 2사단 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했으며 그 전쟁에서도 미국은 많은 양민을 학살하고 부녀자를 강간하는 등 많은 학살을 저질렀다"며 "한국민은 참을 만큼 참은 것 같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또 "장갑차 사건은 한국인에 대한 모욕"이라고 덧붙였다.

"여중생 희생이 너무 안타까워 촛불시위에 동참하게 됐다"는 정무(61, 오렌지 카운티 거주)씨는 "주권국가로서 너무나 억울한 대접을 받고 있다"며 "차제에 한미관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화꽃 들고 여중생 영정앞 애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자주" LA 다운타운 하늘에 조용하게, 그리고 길게 여운을 남기고 울려퍼진 구성진 가락을 뒤로한채 추모 촛불의식이 끝났다. 촛불을 밝혀든 참석자들은 두 여중생 신효순,심미선양의 영정 앞에 차례로 다가와 국화꽃을 놓으며 억울한 죽음을 함께 애도했다.

오후 7시쯤 참석자들은 현장에서 5블럭 가량 떨어진 한인음식점 '비원'까지 촛불을 들고 평화행진을 벌였다. 비원에서는 풍물패의 풍물장단과 살풀이 춤이 계속 이어졌다. 노래지기의 노래와 비디오 상영을 끝으로 이 행사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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